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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르몽드디플로마티크(LeMonde Diplomatique) - 전체기사</title>
<description>르몽드디플로마티크(LeMonde Diplomatique)</description>
<link>https://www.ilemonde.com</link>
<language>ko</language>
<lastBuildDate>Sat, 26 Sep 2026 15:46:43 +0900</lastBuildDate>
<copyright>르몽드디플로마티크(LeMonde Diplomatique)</copyright>
  <item>
	  <title><![CDATA[[구체성의 변증법] 한동훈의원의 막말정치, 트럼프는 성공했고 매카시는 몰락했다. 적을 만드는 정치’의 유혹과 종말]]></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6</link>
	  <dc:creator><![CDATA[신성은 (에디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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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6 Sep 2026 15:46:31 +0900</pubDate>
	  <description><![CDATA[한동훈 의원은 참 나쁜 정치인이다.그는 보수진영에서 가장 촉망받는 대권후보다. 보수매체는 앞을 다투며 그를 뛰어주기에 열을 올린다. 한동훈의 부상과 이목 집중은 한국 정치의 서글픈 현실이 집대성된 결과다. 권력투쟁,여론,언론,유권자 등 한국 정치의 주요 요소가 엮어낸 극단적으로 왜곡된 현실을 반영한다. 그는 금수저다. 굳이 돈에 엮일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나름 정치적 자산이다. 그는 통상적인 예의가 없다. 이것도 사람들에겐 신선함으로 비치는 것 같다. 논쟁을 즐긴다. 그러나 논리 다툼이라기 보다는 말싸움 같다. 조롱과 막말이 혼용]]></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6_51554_2914.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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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div>

<p>한동훈 의원은 참 나쁜 정치인이다.</p>

<p>그는 보수진영에서 가장 촉망받는 대권후보다. 보수매체는 앞을 다투며 그를 뛰어주기에 열을 올린다. 한동훈의 부상과 이목 집중은 한국 정치의 서글픈 현실이 집대성된 결과다. 권력투쟁,여론,언론,유권자 등 한국 정치의 주요 요소가 엮어낸 극단적으로 왜곡된 현실을 반영한다. </p>

<p>그는 금수저다. 굳이 돈에 엮일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나름 정치적 자산이다. 그는 통상적인 예의가 없다. 이것도 사람들에겐 신선함으로 비치는 것 같다. 논쟁을 즐긴다. 그러나 논리 다툼이라기 보다는 말싸움 같다. 조롱과 막말이 혼용된다. 역시 철학도 깊어 보이지 않는다. 주변 정치인들과 친화력은 없고 대중과의 접촉을 즐긴다. 심하게 말하면 "관종"스럽다. 이렇게 끌어올린 자신의 인기로 측근 정치인들을 줄세운다.</p>

<p>지금까지 없었던 정치인 스타일이다. 그런데 여러가지 이해가 맞물려 야권 진영 최고의 스타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그래서 더욱 서글프다. 그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형태는 역사적 막말 정치인의 대표사례에 근접하고 있다. 자기말만 옳고 모든 논리를 이에 꿰맞춘다. 문제는 구사하는 언어나 행태가 너무 저질이다. 야비하다.  </p>

<p>정치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보여주면서 지지자를 넓혀가는 정치가 있고, 상대방의 실패와 약점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정치가 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쉽고 강력한 방법이 하나 더 있다. 상대를 단순히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하고, 별명을 붙이고,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면서 지지자의 분노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다.</p>

<p>최근 한동훈의 언어에서 그런 정치의 냄새가 짙어진다. 같은 보수진영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서도 ‘민주당의 전략자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1987년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를 소환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구포국수와 손편지를 보내 “함께 힘을 모으겠다”고 한다. </p>

<p>이런 표현들은 우연히 튀어나온 말이라기보다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으로 볼 여지가 있다. </p>

<p>상대를 공격한다. 강렬하고 민감한 단어를 선택한다. 언론이 받아쓴다. SNS에서 확산된다. 지지층이 환호한다. 그리고 다시 한 단계 강한 표현을 찾아낸다. 여기에 막말을 섞어 언론의 유혹을 부추킨다. </p>

<p>물론 한동훈만의 문제는 아니다.</p>

<p>오히려 세계 정치사를 보면 이것은 대단히 오래되고 유혹적인 정치기술이다. 그리고 때로는 성공했다. 가장 성공한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다.</p>

<p><strong>트럼프는 ‘막말 정치’로 대통령이 됐는가</strong></p>

<p>트럼프가 미국 정치에 등장했을 때 미국의 전통적인 정치문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계속됐다.</p>

<p>그는 상대 정치인들에게 조롱 섞인 별명을 붙였다. 언론을 공격했고, 자신을 비판하는 정치인과 관료를 공개적으로 조롱했다. 상대방의 정책보다 상대방 자체를 공격하는 경우도 많았다. 기존 정치학의 상식으로 보면 오래 버티기 어려운 정치였다.</p>

<p>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2016년 대통령이 됐다. 2020년 패배했다. 그리고 2024년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막말 정치가 성공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인가.</p>

<p>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트럼프가 발견한 것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분노가 엄청난 정치적 에너지라는 사실이었다.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 워싱턴 정치에 분노한 유권자, 불법이민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진보적인 문화 변화에 반감을 가진 보수층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p>

<p>트럼프가 분노를 만든 것이 아니다. 트럼프는 흩어져 있던 분노에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적을 만들어줬다.</p>

<p>워싱턴 엘리트, 주류 언론, 불법이민자, 중국, 민주당 등등. 트럼프 정치의 강력함은 복잡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설명하는 대신 “누구 때문인가”를 끊임없이 제시했다는 데 있었다. 정치적으로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p>

<p>그러나 여기서 트럼프를 단순한 ‘막말 정치인’으로 이해하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p>

<p>트럼프에게는 동시에 정치적 의제가 있었다. 미국 우선(America First), 국경 통제, 관세, 제조업 회귀, 에너지 확대, 대중국 압박, 동맹의 방위비 부담 확대, 좋든 싫든 그의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집권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막말 뒤에 정치적 세계관이 있었다. 이것이 중요하다.</p>

<p><strong>트럼프보다 60년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사람</strong></p>

<p>1950년대 미국에는 트럼프보다 훨씬 먼저 분노와 공포를 정치적 자산으로 만든 정치인이 있었다.</p>

<p>조지프 매카시다.</p>

<p>그 역시 처음에는 엄청나게 성공했다. 냉전이 시작되고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중국에서 공산혁명이 성공하면서 미국 사회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퍼져 있었다. 매카시는 그 공포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정부 안에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누군가를 의심했다. 상대가 부인하면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증거를 먼저 제시하기보다 상대방에게 결백을 증명하도록 만들었다.</p>

<p>사람들은 두려워했다. 정치인도 언론인도 관료도 매카시와 싸우기를 꺼렸다. 그렇게 그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 됐다.</p>

<p>그러나 공격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계속 공격하려면 계속 새로운 적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제보다 오늘 더 강하게 공격해야 한다. 마침내 매카시는 미국 육군까지 공격했다. 1954년 육군-매카시 청문회에서 매카시가 육군 측 변호사 조지프 웰치의 젊은 동료 변호사를 공격하자 웰치가 그 유명한 말을 했다.</p>

<p>“Have you no sense of decency?”(당신에게는 최소한의 품위도 없느냐?)</p>

<p>미국 국민은 TV를 통해 그 장면을 지켜봤다. 그해 12월 미국 상원은 67대22로 매카시를 공식 견책했다. 매카시의 정치적 영향력은 이후 급격히 쇠퇴했다. 매카시를 권력자로 만들어준 무기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다.</p>

<p><strong>영국에도 이녹 파월이 있었다</strong></p>

<p>1968년 영국 보수당의 유력 정치인이었던 이녹 파월은 이민 문제를 다룬 연설을 했다.</p>

<p>훗날 ‘Rivers of Blood’, 즉 ‘피의 강’ 연설로 불린다. 이민이 계속되면 영국 사회가 심각한 충돌을 겪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대중적 파장은 엄청났다. 파월을 지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p>

<p>그러나 당시 보수당 대표 에드워드 히스는 그를 예비내각에서 해임했다. 파월의 정치 인생이 그날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후에도 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보수당 지도부의 중심에서 국가 지도자를 향해 가던 정치인의 경로는 결정적으로 달라졌다.</p>

<p>여기에서도 같은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극단적인 언어는 지지층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지지층을 강하게 만드는 것과 지지층을 넓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p>

<p><strong>막말에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있다</strong></p>

<p>정치적 막말에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확체감과 비슷한 현상이 있다. </p>

<p>처음에는 효과가 크다. 평범한 정치인이 “정부 정책이 잘못됐다”고 말할 때 누군가 “이것은 독재다”라고 말하면 언론은 후자를 선택한다. 다음에는 모두가 독재라고 말한다. 그러면 관심을 받기 위해 더 강한 표현이 필요해진다.</p>

<p>“반민주 세력”, “범죄집단”, “반국가 세력”, “내란 세력”, 그렇게 언어의 인플레이션이 시작된다. 어제의 막말이 오늘의 평범한 말이 된다. 정치인은 더 독한 단어를 찾아야 한다.</p>

<p>SNS와 유튜브는 이 현상을 훨씬 강하게 만들었다. 차분한 정책 설명은 잘 퍼지지 않는다. 분노가 퍼진다. 조롱이 퍼진다. 15초짜리 공격 영상이 30분짜리 정책 토론보다 훨씬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그래서 현대 정치인은 끊임없이 유혹받는다. 정책을 만드는 것보다 적을 만드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p>

<p><strong>다시 한동훈을 보자</strong></p>

<p>그래서 한동훈의 최근 정치를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것이다. 한동훈은 사실 막말에 의존할 이유가 별로 없는 정치인이다. 검사 출신이다.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법률과 수사에 관한 전문성이 있고 자료를 분석하고 상대 논리의 허점을 찾아내는 능력을 자신의 정치적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다.</p>

<p>최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그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실제로 9월 한국일보·STI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53.5%가 그의 복당에 찬성했다. 전체 응답자에서는 찬성 33.2%, 반대 32.4%로 팽팽했지만 보수층에서는 복당 찬성이 48.1%였다. 최근 몇몇 대권후보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한 적도 있다.</p>

<p>그런데 그는 대중적 인기를 활용해 저열하고 공격적인 언어들, 특히 상대방을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조롱의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한국 정치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다. 그의 인기는 높일 수 있지만 이런식이면 그리 오래 못간다. 트럼프 같은 사례보다는 추락한 추악한 정치인들이 훨씬 많다.</p>

<p><strong>‘전두환의 4·13 호헌’이라는 말</strong></p>

<p>더 우려스러운 것은 역사적 비유다. 한동훈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4·13 호헌 대신 6·29 선언을 선택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4·13 호헌은 가벼운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거부하고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한 사건이다. 그것은 결국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p>

<p>현재 정부의 특정 인사나 정책을 비판할 수 있다. 강하게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에 비유하려면 상당한 설명이 필요하다. 현재 어떤 민주적 권리가 1987년과 같은 방식으로 차단되고 있는가?, 어떤 헌정질서의 훼손이 당시와 비교될 수 있는가?</p>

<p>김승원 법무부장관 후보자에게도 그는 "오빠","술집 마담", "독", 등 자극적인 언사로 일관했다. 효과는 좋았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에게도 "9억원을 쳐먹은"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검사시절, 수사의 기본인 "인권보호"를 국익,공익이라는 미명하에 마구잡이로 퍼붓는다.  </p>

<p>정치적 언어에는 비례의 원칙이 필요하다. 작은 잘못에는 작은 비판을 하고 큰 잘못에는 큰 비판을 해야 한다. 모든 일을 독재라고 부르면 진짜 독재가 등장했을 때 사용할 단어가 없어진다. </p>

<p><strong>‘적을 만드는 능력’을 정치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strong></p>

<p>한동훈의 정치를 보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것이다.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는 능력과 국가를 운영하는 능력은 다르다. 검사는 범죄 혐의를 찾아야 한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밝혀야 한다. </p>

<p>그러나 정치인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치인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예산안을 만들어야 한다. 싫어하는 정치인의 표도 얻어야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오늘 자신을 공격한 사람과 내일 협상해야 한다. 정치는 상대를 제거하는 기술이 아니다. 상대를 남겨둔 채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다. 그래서 검사의 세계와 정치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p>

<p>검사는 상대방의 모순을 발견하면 이긴다. 정치인은 상대방의 모순을 발견한 뒤에도 그 사람과 협상해야 한다. </p>

<p><strong>그렇다면 한동훈의 대한민국은 무엇인가</strong></p>

<p>그리고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한동훈은 무엇을 만들려는 정치인인가.</p>

<p>이재명 대통령을 빼보자. 장동혁을 빼보자. 김승원을 빼보자. 민주당을 빼보자.</p>

<p>그 뒤에 남는 ‘한동훈 정치’는 무엇인가? </p>

<p>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AI 시대 산업정책은 무엇인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한국 외교는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하는가? 저출생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연금개혁의 부담을 세대별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문제에는 어떤 해법이 있는가? 에너지정책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북한과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p>

<p>국가 지도자를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결국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트럼프가 막말 정치인이면서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다. 그에게는 적어도 유권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 정치적 세계관이 있었다.</p>

<p>America First라는 문장 안에 국경, 이민, 제조업, 관세, 에너지, 중국, 동맹정책을 넣었다. 동의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무엇을 하려는 정치인인지는 분명했다.</p>

<p><strong>한동훈에게 필요한 것은 더 센 말이 아니다</strong></p>

<p>한동훈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오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그의 복당을 원하는 여론이 커졌고, 김승원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정치적 존재감을 다시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친한계는 이를 계기로 복당을 요구하고 있고 당권파는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p>

<p>그에게는 정치적 공간이 다시 생겼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자극적인 단어가 아니다.</p>

<p>오히려 반대다. 자신이 다른 정치인과 무엇이 다른지 보여줘야 한다. 한동훈의 경제정책, 외교, 복지, 교육, 산업정책, 보수 철학 등, 그것이 있어야 한다.</p>

<p>그것 없이 ‘전두환’, ‘4·13 호헌’, ‘민주당의 전략자산’ 같은 말만 계속 강해진다면 한동훈 정치 역시 매카시가 빠졌던 함정으로 들어갈 위험이 있다. 공격의 정치는 반드시 새로운 공격을 요구한다. </p>

<p><strong>그래서 한동훈 의원은 ‘나쁜 정치인’이다</strong></p>

<p>첫 문장으로 돌아가자. 한동훈 의원은 참 나쁜 정치인이다.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상당한 정치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가장 쉽고 위험한 정치의 길로 들어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상대의 약점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다. 말을 압축하는 능력이 있다. 언론이 무엇을 받아쓰는지도 안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방법도 안다.</p>

<p>그 능력을 정책과 비전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상대에게 더 강한 이름을 붙이고 적을 만드는 데 사용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p>

<p>매카시는 그렇게 성공했다. 그리고 그렇게 몰락했다. 이녹 파월 역시 강렬한 언어로 엄청난 대중적 반향을 일으켰지만 정치적 확장성에는 한계를 드러냈다.</p>

<p>트럼프는 달랐다. 그는 막말과 공격의 정치를 하나의 정치적 브랜드로 만들었고 대통령에 두 차례 당선됐다. 그래서 트럼프는 현대 정치인들에게 가장 위험한 성공 사례다.</p>

<p>“저렇게 해도 이길 수 있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성공에서 막말만 배우는 것은 가장 피상적인 모방이다.</p>

<p>그의 정치적 성공을 설명하려면 미국 사회의 양극화, 이민과 세계화에 대한 불만, 러스트벨트의 변화, 공화당 지지층의 재편, SNS와 보수 미디어 생태계, 그리고 America First라는 정치적 의제까지 함께 봐야 한다.</p>

<p>욕설과 조롱만 떼어내 따라 한다고 트럼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매카시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막말 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막말을 들은 정치인이 아니다.</p>

<p>국민이다. 그가 그렇게 강조하는 수익어 국민이다. 정치가 누가 더 좋은 정책을 제시하느냐의 경쟁에서 누가 더 독한 말을 하느냐의 경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p>

<p>정치인은 말로 권력을 얻을 수 있다. 말로 지지자를 흥분시킬 수도 있다. 말로 상대를 쓰러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의 가장 어려운 기술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까지 설득하는 것이다.</p>

<p>한동훈 의원이 정말 보수를 재건하고 더 큰 정치인이 되려 한다면, 앞으로 증명해야 할 것도 바로 그것이다. 계속 적을 만들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면 첫 문장의 평가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p>

<p>왜냐하면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는 많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은 너무 쉬운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미국중간선거여론조사 분석③] 경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미국 중간선거를 움직이는 ‘이슈 연합’]]></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5</link>
	  <dc:creator><![CDATA[신성은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5</guid>
	  <pubDate>Sat, 26 Sep 2026 12:18:58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미국 중간선거가 11월 3일을 향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선거를 설명하는 두 개의 상반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첫째는 경제다. 앞서 살펴봤듯 생활비와 인플레이션은 현재 미국 유권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다. 9월 《Marquette Law School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묻자 37%가 인플레이션과 생활비를 선택했고, 일반적인 경제 문제가 16%로 뒤를 이었다. 둘을 합치면 절반을 넘는다. 둘째는 경제만으로는 미국 유권자의 선택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유권자들은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거의 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height="6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5_51553_1838.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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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div>

<p>미국 중간선거가 11월 3일을 향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선거를 설명하는 두 개의 상반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p>

<p>첫째는 경제다. 앞서 살펴봤듯 생활비와 인플레이션은 현재 미국 유권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다. 9월 《Marquette Law School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묻자 37%가 인플레이션과 생활비를 선택했고, 일반적인 경제 문제가 16%로 뒤를 이었다. 둘을 합치면 절반을 넘는다. </p>

<p>둘째는 경제만으로는 미국 유권자의 선택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p>

<p>유권자들은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거의 비슷한 평가를 내리면서도 범죄와 이민에서는 공화당 쪽 정책에 더 공감하고, 의료·낙태·교육·기후에서는 민주당 정책에 더 공감한다. 한 사람이 경제에서는 한 정당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이민이나 범죄에서는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p>

<p>2026년 중간선거는 그래서 단순한 ‘경제선거’라기보다 여러 이슈가 서로 다른 유권자 집단을 묶고 풀어내는 ‘이슈 연합(issue coalition)의 선거’로 볼 필요가 있다.</p>

<p>범죄는 공화당, 의료는 민주당…갈라진 이슈 지도</p>

<p>《Pew Research Center》가 지난 7월 미국 성인 3,5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이 같은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p>

<p>“어느 정당의 정책에 더 동의하느냐”고 물었을 때 범죄정책에서는 공화당 43%, 민주당 29%였다. 14%포인트 차이다. 이민정책에서도 공화당 41%, 민주당 36%였다.</p>

<p>반대편에는 의료가 있다. 의료정책에서는 민주당 42%, 공화당 28%였다. 환경·기후정책도 44% 대 30%로 같은 14%포인트 차이가 났다. 낙태는 민주당 42%, 공화당 32%, 교육은 41% 대 32%였다. </p>

<p>흥미로운 것은 경제다. 민주당 37%, 공화당 36%로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 외교정책도 36% 대 35%, 군사력 사용은 민주당 35%, 공화당 36%였다. 재정적자 대응 역시 민주당 33%, 공화당 31%였다. </p>

<p>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어느 한 정당이 모든 주요 이슈에서 일관된 평가 우위를 갖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p>

<p>《Marquette》의 9월 조사에서도 비슷한 분화가 나타났다. 민주당은 경제·인플레이션·의료케어(Medicare)와 사회안전(Social Security)·의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공화당은 국방·범죄·이민 및 국경안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p>

<p>따라서 남은 선거운동의 중요한 문제는 단순하다. 어떤 문제가 투표 직전 유권자의 머릿속에서 가장 중요해지느냐다. 경제와 의료가 전면에 등장하는 선거와 범죄·국경·이민이 전면에 등장하는 선거는 같은 유권자라도 판단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p>

<p>공화당의 강점 ‘이민’에도 균열</p>

<p>트럼프와 공화당이 비교적 높은 평가를 유지해온 대표적 분야는 이민과 국경안보다.</p>

<p>9월 Marquette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안보 대응 지지율은 49%, 이민정책 지지는 43%였다. 경제 28%, 인플레이션·생활비 19%, 휘발유 가격 20%와 비교하면 확연히 높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Pew 조사에서 이민정책에 대한 공화당 우위는 41% 대 36%, 5%포인트였다. Pew는 이전 조사에서 9%포인트였던 공화당의 우위가 좁혀졌다고 분석했다. 9월 17~20일 《Reuters/Ipsos》조사에서는 트럼프의 이민정책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36%, 반대가 55%였다. 공화당 지지층 내부에서는 여전히 79%가 지지했지만 전국 여론과 공화당 핵심 지지층 사이에는 상당한 간격이 존재했다. </p>

<p>이는 이민 문제가 공화당에 유리하다거나 불리하다는 단순한 결론보다 더 복잡한 상황을 보여준다. 국경통제와 불법이민 억제를 중시하는 유권자와 구체적인 추방 방식이나 집행 강도에 거부감을 느끼는 유권자의 판단이 반드시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p>

<p>범죄에서도 나타나는 비슷한 현상</p>

<p>범죄는 정책 공감도 조사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격차가 가장 큰 분야 가운데 하나다.</p>

<p>Pew 조사에서는 43%가 공화당의 범죄정책에 더 공감한다고 답했고 민주당은 29%였다. 그러나 대통령 개인의 정책수행 평가로 질문을 바꾸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9월 Reuters/Ipsos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범죄 대응을 지지한다는 미국인은 35%였다. 즉 ‘범죄 문제에서 공화당 정책에 상대적으로 공감한다’는 것과 ‘트럼프 행정부가 범죄 문제를 잘 처리하고 있다’는 평가는 동일하지 않다. </p>

<p>이 차이는 이번 선거를 읽는 데 중요하다. 정당이 특정 이슈에서 역사적으로 쌓아온 이미지와 현재 행정부의 실제 정책수행에 대한 평가는 분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p>

<p>민주당의 방어선은 의료·낙태·교육</p>

<p>반대로 민주당이 정책 공감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분야는 의료·낙태·교육이다.</p>

<p>Pew 조사에서 의료정책은 민주당 42%, 공화당 28%였다. 낙태정책은 42% 대 32%, 교육정책은 41% 대 32%였다. 특히 의료는 경제와 완전히 분리하기 어려운 문제다. 보험료와 약값, 병원비는 모두 가계의 생활비와 연결된다. 따라서 경제 문제를 ‘GDP와 일자리’가 아니라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의료는 사실상 생활비 이슈의 일부가 된다.</p>

<p>《Fox News》 역시 9월 초 중간선거 이슈를 분석하면서 경제와 함께 의료가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낙태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생활비처럼 모든 유권자에게 매일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권자에게는 투표 선택을 좌우하는 강력한 단일 이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의 선거전략에서는 경제적 불만과 의료·낙태 문제를 얼마나 결합시키느냐가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p>

<p>더 중요한 변화는 ‘누가 움직이고 있느냐’</p>

<p>그러나 이슈별 정당 평가보다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이번 선거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 보인다.</p>

<p>미국의 전통적인 정당 지지 연합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Pew의 7월 등록유권자 조사에서 민주당 후보와 공화당 후보에 대한 지지는 전체적으로 42% 대 38%였다. 그러나 인구집단별로 보면 차이가 상당했다. </p>

<p>여성은 민주당 후보 45%, 공화당 33%였지만 남성은 41% 대 42%로 거의 같았다.</p>

<p>백인 유권자는 민주당 36%, 공화당 46%였다. 반면 흑인 유권자는 68% 대 8%, 히스패닉은 49% 대 26%, 아시아계는 56% 대 21%였다. 아시아계 수치는 영어 응답자만을 대표한다는 조사상의 한계가 있다. </p>

<p>세대 차이도 크다. 18~29세는 민주당 47%, 공화당 24%였다. 30~49세는 42% 대 35%, 50~64세에서는 반대로 민주당 39%, 공화당 44%였다. 65세 이상에서는 44% 대 41%로 다시 격차가 작아졌다. </p>

<p>학력에 따른 차이는 더욱 선명했다. 대학원 이상에서는 민주당 59%, 공화당 29%, 대학 졸업자는 48% 대 35%였다. 반면 고졸 이하에서는 민주당 31%, 공화당 41%였다. 미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진행돼 온 교육수준에 따른 정치적 재편이 이번 선거에서도 중요한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p>

<p>주목해야 할 히스패닉 표심</p>

<p>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집단은 히스패닉 유권자다.</p>

<p>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과거 공화당 후보들보다 히스패닉 유권자에게서 높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2026년 조사에서는 이 집단의 움직임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다.</p>

<p>Pew의 7월 조사에서 히스패닉 등록유권자의 의회투표 의향은 민주당 49%, 공화당 26%였다.  최근 《NYT/Siena》조사에서도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트럼프 국정수행 평가에서 부정적인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다만 이런 움직임을 곧바로 장기적인 정당 재편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르다. 관련 분석에서도 히스패닉 유권자의 불만이 곧 민주당에 대한 안정적인 지지로 전환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디언</p>

<p>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히스패닉 유권자에게 이민만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p>

<p>생활비와 임금, 주거비 같은 경제문제가 동시에 작동한다. ‘히스패닉=이민’이라는 단순한 선거공식으로는 이들의 투표행태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p>

<p>청년층의 민주당 지지와 ‘투표율’은 별개 문제</p>

<p>18~29세에서도 민주당 후보 지지가 47%로 공화당 24%보다 높았다. </p>

<p>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같은 Pew 조사에서 18~29세 등록유권자 가운데 아직 어느 후보를 선택할지 결정하지 않았거나 기타 응답을 한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무엇보다 중간선거는 대통령선거보다 투표율이 낮고, 실제 투표자 구성은 전체 등록유권자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Pew 역시 이러한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청년층에서 어느 정당의 지지율이 높다는 사실과 그 표가 실제 투표함에 들어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p>

<p>이는 여성·히스패닉·흑인 유권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결국 중간선거의 마지막 변수는 지지율뿐 아니라 동원율(turnout)이다.</p>

<p>무당층 4명 중 1명 이상이 아직 선택하지 않았다</p>

<p>더 복잡한 집단은 무당층이다. Pew의 7월 조사에서 독립·기타 정당 성향 등록유권자는 민주당 후보 37%, 공화당 후보 24%였다. 그런데 26%는 아직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고, 기타 응답 등을 포함하면 불확실성이 더 커진다. </p>

<p>이들은 강한 민주당 지지층이나 MAGA 핵심층처럼 특정 이슈 하나에 의해 일관되게 움직이는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생활비 때문에 현 정부에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범죄나 국경에서는 공화당 정책에 동의할 수 있다. 반대로 이민정책에는 공화당과 비슷한 견해를 가지면서 의료보험이나 낙태에서는 민주당과 가까울 수도 있다.</p>

<p>바로 이 교차압력이 2026년 중간선거를 단순한 좌우 대결로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p>

<p>이란 전쟁까지 ‘경제 이슈’가 됐다</p>

<p>여기에 2026년 선거에서 예상하기 어려웠던 변수가 하나 더 들어왔다. </p>

<p>이란 전쟁이다. Marquette 9월 조사에서 이란·이스라엘·미국 간 전쟁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선택한 응답자는 10%였다. 경제나 생활비보다는 낮지만 이민·국경 6%, 범죄 3%, 낙태 2%보다 높았다.  그러나 이란 문제의 정치적 영향은 10%라는 숫자만으로 측정하기 어렵다.</p>

<p>전쟁이 국제정치의 영역을 넘어 휘발유와 디젤 가격, 물류비와 생활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9월 Reuters/Ipsos 조사에서 트럼프의 이란 공격에 대한 지지는 34%에 그쳤고, 응답자의 82%는 전쟁이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미시간과 아이오와의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들이 최근 전쟁의 조기 종식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Reuters는 높은 연료가격과 유권자 불만이 선거를 앞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p>

<p>이 대목에서 경제와 외교정책의 경계도 흐려진다. 이란 전쟁 → 국제유가 → 휘발유·디젤 → 운송비 → 식료품 가격 → 생활비라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면 외교안보 문제가 다시 경제 문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p>

<p>결국 ‘어떤 이슈로 투표장에 들어가느냐’의 싸움</p>

<p>세 차례에 걸쳐 최근 미국 중간선거 여론을 살펴보면 하나의 흥미로운 구조가 드러난다.</p>

<p>이번 시리즈 1편에서는 최근 전국 의회투표 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지지가 공화당보다 높게 나타나는 반면 실제 하원 경합지역에서는 격차가 훨씬 작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편에서는 그 변화의 중심에 생활비가 있다는 점을 살펴봤다. 그리고 3편에서 확인되는 것은 생활비가 가장 중요한 공통 변수라고 해서 모든 유권자가 같은 이유로 같은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p>

<p>범죄에서는 공화당 정책에 더 공감하는 사람이 많고, 의료에서는 민주당 정책에 더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이민에서는 공화당 쪽 정책에 대한 공감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그 격차는 과거보다 좁아졌다. 경제와 외교정책에서는 두 정당에 대한 평가가 거의 갈리지 않는다. </p>

<p>더구나 미국인의 상당수는 두 정당 모두에 만족하지 않는다. 7월 Reuters/Ipsos 조사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많거나 어느 정도 있다”고 평가한 비율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똑같이 39%였다. 반대로 좋은 아이디어가 거의 없거나 조금밖에 없다고 평가한 응답 역시 민주당 46%, 공화당 45%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중간선거를 단순히 ‘민주당 대 공화당’의 대결로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각 정당이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이슈를 얼마나 선거의 중심에 놓을 수 있느냐, 그리고 그 이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권자를 실제 투표장으로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느냐다.</p>

<p>공화당에는 이민·국경과 범죄가 있다. 민주당에는 의료·낙태·교육이 있다. 경제는 어느 한 정당의 독점적 영역이라기보다 양당 모두가 경쟁해야 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이란 전쟁과 에너지가 경제와 외교정책을 연결한다.</p>

<p>그리고 그 모든 이슈 위에 생활비가 놓여 있다. 미국 유권자가 투표장에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슈퍼마켓 영수증이라면 경제의 영향이 커질 것이다. 국경과 범죄라면 다른 판단 기준이 작동할 수 있다. 의료보험과 낙태라면 또 다른 유권자 연합이 움직일 수 있다.</p>

<p>결국 2026년 미국 중간선거의 마지막 국면을 이해하는 핵심은 “어느 정당의 지지율이 몇 퍼센트인가”만이 아니라 “유권자가 어떤 문제를 생각하며 투표장에 들어가는가”에 있다.</p>

<p>11월 3일까지 남은 기간,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계속 바뀌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1세기 국제정치학의 대전환 ②] 세계화는 끝났는가…‘상호의존의 평화’에서 ‘경제안보의 전쟁’으로]]></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4</link>
	  <dc:creator><![CDATA[신성은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4</guid>
	  <pubDate>Sat, 26 Sep 2026 11:21:05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냉전이 끝난 뒤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을 만들었다. 미국 기업은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했고 중국은 미국에 상품을 수출했다. 러시아는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했고 독일은 러시아산 값싼 에너지를 이용해 자동차와 화학제품을 만들었다. 한국과 일본, 대만은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이 됐고 세계의 금융거래는 달러와 미국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연결됐다.이 시스템을 움직인 가장 중요한 원리는 ‘효율성’이었다. 가장 싸게 생산할 수 있는 곳에서 만들고, 가장 효율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국가 간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면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height="39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4_51551_1752.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51 float-center" data-idxno="51551"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39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4_51551_1752.pn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냉전이 끝난 뒤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을 만들었다. 미국 기업은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했고 중국은 미국에 상품을 수출했다. 러시아는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했고 독일은 러시아산 값싼 에너지를 이용해 자동차와 화학제품을 만들었다. 한국과 일본, 대만은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이 됐고 세계의 금융거래는 달러와 미국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연결됐다.</p>

<p>이 시스템을 움직인 가장 중요한 원리는 ‘효율성’이었다. 가장 싸게 생산할 수 있는 곳에서 만들고, 가장 효율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국가 간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면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냉전 이후 30여 년 동안 세계화는 단순한 경제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국제정치 질서였다.</p>

<p>그러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믿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p>

<p>러시아와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에너지 경제권 가운데 하나였다. 유럽은 러시아의 에너지가 필요했고 러시아는 유럽의 시장과 자금이 필요했다. 전통적인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의 논리라면 이런 상호의존은 전쟁의 비용을 높이고 군사충돌을 억제하는 힘으로 작용해야 했다.</p>

<p>그러나 전쟁은 일어났다.</p>

<p>더 중요한 변화는 그다음이었다. 러시아는 에너지를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했고 서방은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과 금융망, 기술과 수출통제를 압박수단으로 동원했다. 세계경제를 연결했던 금융·무역·에너지 네트워크가 순식간에 지정학적 전쟁터로 변했다.</p>

<p>세계화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계가 너무 깊게 연결됐기 때문에 그 연결 자체가 권력이 됐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전략경쟁 이후 국제정치학에서 나타난 두 번째 거대한 변화다.</p>

<p><strong>코헤인과 나이, ‘상호의존의 시대’를 설명하다</strong></p>

<p>이 변화를 이해하려면 약 반세기 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p>

<p>1977년 미국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코헤인(Robert O. Keohane)과 조지프 나이(Joseph S. Nye)는 《Power and Interdependence》를 출간했다. 두 사람은 당시 국제정치학을 지배하던 현실주의만으로 변화하는 세계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았다.</p>

<p>국제정치는 더 이상 군사력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국적기업이 등장했고 국제금융시장이 확대됐으며 국제기구와 NGO, 기업과 사회단체가 국경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국가 사이에도 안보뿐 아니라 무역·금융·에너지·환경 등 수많은 연결관계가 형성됐다.</p>

<p>코헤인과 나이는 이를 ‘복합적 상호의존(complex interdependence)’이라고 불렀다.</p>

<p>이들의 중요한 문제의식은 국제정치에서 군사안보만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의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제와 금융, 환경, 국제제도 역시 국가 관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었다. 코헤인과 나이는 상호의존을 무조건 평화로운 관계로 본 것도 아니었다. 상호의존이 비대칭적이라면 덜 의존하는 국가가 더 큰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이미 지적했다. 즉 상호의존 안에도 권력은 존재했다.</p>

<p>그럼에도 냉전 종식 이후 국제정치와 국제정치경제 연구에서는 이들의 문제의식 가운데 ‘협력’의 측면이 크게 부각됐다. 무역이 증가하고 국제제도가 발전하며 국가 간 상호의존이 깊어지면 전쟁의 비용은 높아질 것이다. WTO와 세계 금융시장, 글로벌 공급망은 단순한 경제시스템을 넘어 국가들을 하나로 묶는 장치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p>

<p>냉전 이후 세계화 시대를 떠받친 국제정치학적 낙관론이었다.</p>

<p><strong>그런데 상호의존은 왜 전쟁을 막지 못했나</strong></p>

<p>21세기에 들어오면서 이 명제에 균열이 나타났다. </p>

<p>미국과 중국의 경제관계가 대표적이다. 두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경제대국이 됐다. 미국 기업은 중국에서 생산했고 중국은 미국 시장에 수출했다. 중국은 막대한 미국 국채를 보유했고 미국 소비자는 중국의 저가 제조업 제품으로부터 혜택을 얻었다.</p>

<p>경제논리로만 보면 양국의 상호의존은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미국의 시각이 달라졌다. 경제성장이 곧 군사력과 기술력의 성장으로 연결되고 중국이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미국은 상호의존의 ‘절대적 이익’뿐 아니라 그 결과 만들어지는 상대적 힘의 변화를 보기 시작했다.</p>

<p>나이 자신도 2020년 미·중 관계를 분석하면서 경제학자들은 상호의존의 후생효과에 주목하는 반면 전략가들은 상대적 이익과 그것이 국가 간 힘의 분포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주목한다고 지적했다. </p>

<p>세계화의 질문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는 “얼마나 많이 연결돼 있는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누가 누구에게 더 의존하는가”가 중요해졌다.</p>

<p>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오늘날의 국제정치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이론이 등장했다.</p>

<p><strong>패럴과 뉴먼, 세계화의 숨겨진 권력을 발견하다</strong></p>

<p>2019년 헨리 패럴(Henry Farrell)과 에이브러햄 뉴먼(Abraham L. Newman)은 국제정치학계에 상당히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p>

<p>제목부터 도발적이었다. 《Weaponized Interdependence: How Global Economic Networks Shape State Coercion》. ‘무기화된 상호의존’이었다.</p>

<p>두 학자는 기존 자유주의적 세계화론이 글로벌 네트워크 안에 숨어 있는 권력의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세계화가 진행된다고 모든 국가가 평등하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금융과 정보, 기술과 공급망의 네트워크에는 사람들이 몰리는 중심부, 즉 허브(hub)가 생긴다. 그리고 그 허브를 통제할 수 있는 국가에는 엄청난 권력이 생긴다.</p>

<p>패럴과 뉴먼은 특히 두 가지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하나는 파놉티콘 효과(Panopticon Effect)다.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국가는 그 네트워크를 통과하는 정보와 거래를 관찰할 수 있다. </p>

<p>다른 하나는 초크포인트 효과(Chokepoint Effect)다. 중심 노드를 통제하는 국가는 필요할 경우 상대방이 그 네트워크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차단할 수 있다. 금융망이나 인터넷, 공급망의 중심부를 장악하는 것이 항공모함이나 군사기지를 보유하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전략적 권력이 된다는 것이다.</p>

<p>이 이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기 3년 전에 발표됐다. 그러나 2022년 이후 세계는 패럴과 뉴먼의 이론을 거대한 현실 실험처럼 보여주기 시작했다.</p>

<p><strong>SWIFT와 달러가 ‘무기’가 됐다</strong></p>

<p>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과 유럽은 군대를 직접 파병하지 않으면서도 전례 없는 경제제재를 가했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힘을 발휘한 것이 국제금융 네트워크였다.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달러 결제망과 국제금융기관에 대한 접근은 국가경제를 움직이는 필수 인프라에 가깝다. 이 시스템의 중심에 접근할 수 있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금융네트워크 자체를 압박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p>

<p>패럴과 뉴먼이 주목했던 바로 그 현상이다. 세계화 시대에는 군사적으로 영토를 점령하지 않고도 상대방의 금융거래와 첨단기술 접근, 해외자산 활용을 제한할 수 있다. 21세기 권력정치에서 ‘길목’을 장악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p>

<p><strong>러시아는 가스를 무기로 만들었다</strong></p>

<p>그러나 경제적 네트워크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었다. 러시아가 가진 가장 강력한 경제적 무기는 에너지였다. 유럽, 특히 독일은 오랫동안 값싼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산업경쟁력의 중요한 기반으로 활용했다.</p>

<p>냉전 이후 유럽에서는 에너지 상호의존이 러시아를 유럽 경제질서에 묶어두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같은 관계가 취약점으로 변했다. 유럽 입장에서 러시아 가스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전략적 위험이 됐고, 러시아 입장에서는 유럽의 에너지 의존성이 하나의 압박수단이 될 수 있었다.</p>

<p>따라서 국제정치경제의 질문 역시 달라졌다. “어디에서 가장 싸게 에너지를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전쟁이나 정치적 충돌이 발생해도 계속 공급받을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 것이다.</p>

<p>경제적 효율성의 문제가 국가안보의 문제로 바뀌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52 float-center" data-idxno="5155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4_51552_1923.pn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strong>반도체는 21세기의 전략물자가 됐다</strong></p>

<p>미·중 경쟁에서는 이 현상이 더욱 선명하다. 과거 전략물자라고 하면 석유와 철강, 우라늄, 무기 등이 먼저 떠올랐다. 지금은 반도체가 그 자리에 들어왔다. AI, 데이터센터, 첨단무기, 미사일, 위성, 통신, 자율무기체계가 모두 첨단 반도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p>

<p>미국은 중국의 첨단 반도체 및 제조기술 접근을 제한하는 수출통제를 지속적으로 조정해왔다. 2024년에는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고, 2025년에도 첨단 컴퓨팅 반도체와 관련한 규제를 보완했다. 2026년 1월에는 H200과 AMD MI325X급 일부 반도체에 대해 일정한 안보 조건 아래 중국 수출 허가를 건별 심사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조정했다. 즉 통제의 강도와 방식은 변하고 있지만 첨단 반도체가 국가안보 정책의 핵심 수단이라는 구조는 유지되고 있다.</p>

<p>이것은 국제정치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과거 군사력과 경제력을 서로 다른 권력자원으로 구분했다면 이제 첨단기술과 산업생산능력은 경제력인 동시에 군사력이다. 반도체 공장이 곧 전략자산이 된 것이다.</p>

<p><strong>‘자유무역 국가’에서 ‘경제안보 국가’로</strong></p>

<p>이러한 변화는 이제 학계의 이론을 넘어 국가의 공식 정책으로 들어왔다.</p>

<p>EU가 대표적이다. EU의 경제안보 전략은 위험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p>

<p>공급망 회복력, 핵심 인프라의 물리·사이버 안보, 기술안보와 기술유출, 그리고 경제적 의존관계의 무기화 및 경제적 강압이다.</p>

<p>특히 2025년 12월 EU 집행위원회는 경제적 수단을 전략적 목적에 사용하는 현상이 오늘날 지정학의 특징이 됐다고 평가하면서 경제안보 정책을 한층 강화했다. 학자의 언어가 정부의 정책용어가 된 것이다.</p>

<p>2026년 국제통화기금(IMF)의 논의에서도 같은 변화가 확인된다. IMF는 최근 세계경제에서 경제정책과 국가안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으며 관세와 제재, 수출통제가 국가의 안보와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새로운 지경학(geoeconomics)의 시대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p>

<p><strong>효율성에서 ‘회복탄력성’으로</strong></p>

<p>그래서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단어도 달라지고 있다. 1990년대 세계화의 핵심은 Efficiency, 효율성이었다. 생산비용을 최소화하고 재고를 줄이며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에 생산을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p>

<p>그러나 이런 시스템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특정 국가나 특정 기업, 특정 항로가 막히면 전체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Resilience, 회복탄력성이다.</p>

<p>조금 비싸더라도 공급처를 여러 곳으로 나눈다. 핵심제품은 국내에서 생산한다. 전략물자는 비축한다. 동맹국과 공급망을 구축한다. 중요 기술의 해외 유출을 통제한다. 과거 경제학의 기준으로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p>

<p>그러나 경제안보의 관점에서는 보험료다. 최근 지경학 연구 역시 무역에서 발생하는 규모의 경제와 전문화가 경제적 이익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특정 국가나 기술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켜 강압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상충관계를 지적하고 있다.</p>

<p><strong>그렇다면 세계화는 끝났는가</strong></p>

<p>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세계화는 정말 끝나고 있는가.</p>

<p>현재 나타나는 현상을 단순한 ‘탈세계화(deglobalization)’로 규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세계경제가 완전히 분리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경쟁하면서도 여전히 거대한 경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 역시 중국과 경제관계를 완전히 끊는 디커플링보다 위험한 의존도를 줄이는 ‘디리스킹(de-risking)’을 강조해왔다.</p>

<p>따라서 현재의 변화는 세계화의 종말이라기보다 세계화의 성격 변화에 가깝다.</p>

<p>과거에는 “세계화 → 상호의존 → 효율성 → 번영”이라는 논리가 강했다.</p>

<p>이제는 그 사이에 하나의 질문이 추가됐다. “세계화 → 상호의존 → 의존성 → 취약성 → 권력”이다. 상호의존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의 정치적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p>

<p><strong>국제정치학과 국제정치경제학의 경계도 무너진다</strong></p>

<p>이 변화는 학문 자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국제정치학에서는 안보와 국제정치경제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었다. 전쟁과 동맹, 핵무기와 군사력은 안보연구의 영역이었다. 무역과 금융, 통화와 기업은 국제정치경제의 영역이었다.</p>

<p>하지만 이제 이런 구분이 어려워졌다. 반도체는 산업정책인가, 안보정책인가. 에너지 공급망은 경제정책인가, 외교정책인가. 달러 결제망은 금융시스템인가, 전략자산인가. AI와 클라우드 컴퓨팅은 기업의 사업영역인가, 국가권력의 기반인가. 희토류와 리튬은 상품인가, 전략물자인가?</p>

<p>답은 점점 ‘둘 다’가 되고 있다.</p>

<p>그래서 패럴과 뉴먼의 ‘무기화된 상호의존’이 중요한 것이다. 이들의 이론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 새로운 다리를 놓는다. 현실주의가 강조했던 권력과 강압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권력이 발생하는 공간을 군사력과 영토가 아니라 세계화가 만들어낸 네트워크에서 찾는다.</p>

<p>세계화가 국가를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특정 국가에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권력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p>

<p><strong>세계화의 시대가 아니라 ‘무기화된 세계화’의 시대</strong></p>

<p>결국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전략경쟁 이후 국제정치학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단순히 보호무역주의가 부활했다는 문제가 아니다. </p>

<p>훨씬 근본적이다. 냉전 이후 세계는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려 했다. 기업은 가장 싼 곳에서 생산했고 국가는 그 결과 만들어지는 번영을 관리했다. 그러나 이제 국가는 다시 기업의 투자와 생산, 기술과 공급망에 개입하기 시작했다.</p>

<p>어디에 공장을 지을 것인가. 누구에게 반도체를 팔 것인가. 어느 나라의 통신장비를 사용할 것인가. 어디에서 배터리와 핵심광물을 확보할 것인가. 어떤 국가에 AI 기술을 제공할 것인가?</p>

<p>이 모든 결정이 경제문제이면서 동시에 국가안보 문제가 되고 있다.</p>

<p>패럴과 뉴먼은 이후 《Underground Empire》를 통해 이 문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세계경제의 금융·정보·기술 네트워크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중심적 위치가 어떻게 국가권력으로 전환됐는지를 추적했다. 이들의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세계화가 국가권력을 없앤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장소를 바꾸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p>

<p>1977년 코헤인과 나이가 세계의 변화를 보며 ‘Power and Interdependence’를 썼다면, 반세기 뒤 국제정치학이 직면한 문제는 그 제목의 두 단어 가운데 ‘Interdependence’보다 다시 ‘Power’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p>

<p>그러나 이번의 권력은 과거와 다르다. 전차와 항공모함만이 권력이 아니다. 달러가 권력이고 반도체가 권력이다. 가스관이 권력이고 데이터센터가 권력이다. 희토류가 권력이고 해저케이블이 권력이다.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을 누가 장악하고 있는가가 새로운 국제정치의 권력구조를 결정한다.</p>

<p>따라서 21세기 국제정치학의 두 번째 대전환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p>

<p>세계화는 끝난 것이 아니다. 세계화가 무기화되고 있다. 그리고 국제정치학은 이제 자유무역이 얼마나 많은 부를 만드는지만 묻지 않는다.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p>

<p>“세계경제의 길목을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p>

<p>그 질문이 바로 경제안보 시대 국제정치학의 출발점이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1세기 국제정치학의 대전환 ①] 전쟁이 돌아왔다…우크라이나가 깨뜨린 ‘평화의 30년’]]></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3</link>
	  <dc:creator><![CDATA[신성은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3</guid>
	  <pubDate>Sat, 26 Sep 2026 10:56:02 +0900</pubDate>
	  <description><![CDATA[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됐을 때 국제정치학계에는 거대한 낙관론이 퍼졌다.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를 앞세워 대치하던 냉전이 끝났고 세계경제는 빠르게 하나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확대됐고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으며 중국도 세계시장으로 들어왔다. 경제적 상호의존과 국제제도가 국가 간 갈등을 관리하고,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전쟁의 비용을 높여 강대국 간 전쟁을 점차 과거의 유물로 만들 것이라는 기대가 힘을 얻었다.그러나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으면서 이 믿음은 결정적인 시험대에 올랐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height="39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3_51549_5251.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49 float-center" data-idxno="5154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39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3_51549_5251.pn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됐을 때 국제정치학계에는 거대한 낙관론이 퍼졌다.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를 앞세워 대치하던 냉전이 끝났고 세계경제는 빠르게 하나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확대됐고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으며 중국도 세계시장으로 들어왔다. 경제적 상호의존과 국제제도가 국가 간 갈등을 관리하고,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전쟁의 비용을 높여 강대국 간 전쟁을 점차 과거의 유물로 만들 것이라는 기대가 힘을 얻었다.</p>

<p>그러나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으면서 이 믿음은 결정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유럽에서 영토 획득과 세력권 확보를 목적으로 한 대규모 국가 간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4년이 지난 2026년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국제정치학의 질문도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p>

<p>국제정치학은 다시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가고 있다.</p>

<p>국가는 왜 전쟁을 하는가. 강대국은 왜 세력권을 추구하는가. 동맹은 전쟁을 막는가, 아니면 때로는 갈등을 증폭시키는가. 국제법과 경제적 상호의존은 국가의 생존과 안보가 걸렸을 때 얼마나 강력한 억제력이 될 수 있는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정치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이 질문들의 귀환이다.</p>

<p><strong>국제정치학으로 돌아온 ‘현실주의’</strong></p>

<p>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장 많이 다시 불려 나온 국제정치학자는 미국 시카고대의 존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 교수다.</p>

<p>미어샤이머는 대표적인 《공격적 현실주의자》다. 그의 이론에서 국제사회는 국가 위에 군림하는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 상태다. 국가는 다른 국가의 장기적인 의도를 완벽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따라서 강대국은 가능하다면 더 많은 힘을 확보하고 자신이 위치한 지역에서 패권적 지위를 추구하려 한다.</p>

<p>미어샤이머는 이미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 위기의 근본적인 배경으로 NATO의 동진과 우크라이나의 서방 편입 움직임을 지목했다. 러시아라는 강대국이 자국 국경에 서방 군사동맹이 접근하는 것을 중대한 안보위협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p>

<p>2022년 전쟁이 터지자 그의 주장은 세계적인 논쟁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현실주의 논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학술지 《International Affairs》가 미어샤이머의 주장을 구조적 현실주의와 고전적 현실주의의 차이 속에서 별도로 분석했다. 연구자 하랄트 에딩거(Harald Edinger)는 현실주의 내부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해석이 하나가 아니며, 미어샤이머식 공격적 현실주의와 케네스 월츠의 구조적 현실주의가 동일하지 않다고 지적한다.</p>

<p>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국제정치학에서 한동안 뒤로 밀려났던 현실주의를 다시 강의실과 연구의 중심으로 불러들였다. 그렇다고 현실주의의 귀환이 곧 미어샤이머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p>

<p><strong>케네스 월츠를 다시 읽다</strong></p>

<p>미어샤이머보다 앞선 신현실주의의 거장은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다. 1979년 출간한 《국제정치이론(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에서 월츠는 국가의 행동을 지도자의 성격이나 이념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p>

<p>그가 주목한 것은 국제체제의 구조였다. 세계에는 국가보다 상위의 중앙정부가 없다. 따라서 국가들은 자신의 안전을 궁극적으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현실주의의 ‘자조(self-help)’ 체제다. </p>

<p>우크라이나 전쟁을 월츠의 시각으로 보면 푸틴 개인의 성격보다 더 큰 구조가 보인다. 냉전 종식 이후 NATO는 동쪽으로 확대됐다.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에서 발트 3국으로 이어졌고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던 동유럽 국가들이 차례로 서방 안보체제로 편입됐다. 우크라이나까지 서방으로 기울면서 러시아가 이를 자국 안보에 대한 구조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p>

<p>그렇다면 현실주의 분석은 이 전쟁을 어디까지 설명해줄 수 있을까? 국제체제의 압력이 전쟁의 환경을 설명한다고 해서 반드시 2022년 2월 24일의 침공 결정까지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p>

<p>같은 구조적 압력 속에서도 국가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왜 푸틴은 외교적 압박이나 제한적인 군사행동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침공을 선택했는가? </p>

<p>이 전쟁의 파장은 국제정치학계에도 컸다. 국제정치학계의 논쟁은 월츠와 미어샤이머뿐만이 아니라 미국 국제정치학의 기반을 구축했던 한스 모겐소까지 끄집어냈다.</p>

<p><strong>다시 등장한 모겐소와 ‘인간’</strong></p>

<p>여기에서 한동안 신현실주의에 가려졌던 한스 모겐소(Hans J. Morgenthau)의 고전적 현실주의가 다시 의미를 갖는다. 모겐소는 국제정치를 권력투쟁으로 보았지만 국제체제의 구조만으로 정치현상을 설명하지 않았다. 인간의 권력욕, 국가 지도자의 판단, 역사적 경험, 정치적 신중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p>

<p>우크라이나 전쟁 연구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류타 이토(Ryuta Ito)는 2023년 《International Affairs》에 발표한 연구에서 구조적 현실주의만으로 푸틴의 침공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hubris balancing’, 즉 과도한 자신감과 오판에 기반한 공격적 균형행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푸틴의 과신과 분노, 민족주의 등을 침공 결정의 중요한 변수로 분석했다. 이 연구에는 영국의 전략학자 로런스 프리드먼(Lawrence Freedman)이 강조해 온 푸틴의 자기기만과 오판에 대한 논의도 연결된다.</p>

<p>실제로 전쟁 초기 러시아의 행동을 보면 구조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대다수 학자들은 우려를 표명했지만 전쟁 발발 여부엔 조심스러웠다. 러시아 지도부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빠르게 붕괴할 것으로 판단했다. 러시아군은 키이우를 신속하게 장악할 수 있다고 기대했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 의지도 과소평가했다. 서방이 얼마나 강하게 결집할지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 </p>

<p>결국 전쟁은 러시아의 예상과 전혀 다른 장기 소모전으로 변했다. 국제정치학의 오래된 논쟁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전쟁을 만드는 것은 국제체제인가, 국가인가, 아니면 지도자인가.</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50 float-center" data-idxno="5155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3_51550_5338.pn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strong>신현실주의에서 ‘신고전적 현실주의’로</strong></p>

<p>이 질문 때문에 최근 더욱 주목받는 흐름이 신고전적 현실주의(Neoclassical Realism)다.</p>

<p>신고전적 현실주의는 국제체제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국가가 그 압력을 그대로 받아 행동한다고 보지 않는다. 국제체제에서 발생하는 위협은 국내 정치와 지도자의 인식, 국가의 군사능력과 역사적 경험을 거쳐 실제 외교정책으로 전환된다.</p>

<p>벤저민 마틸(Benjamin Martill)과 모니카 수스(Monika Sus)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반응을 분석하면서 바로 이 문제를 지적했다. 러시아라는 동일한 위협을 마주했는데도 프랑스와 영국, 독일, 폴란드, 에스토니아, 스웨덴의 대응은 서로 달랐다.</p>

<p>이를 국제체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각국의 군사능력과 지리적 위치뿐 아니라 정치적 이념과 정체성, 국내정치가 결합해 외교정책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p>

<p>이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정치학의 변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현실주의가 돌아왔지만 1970년대의 현실주의가 그대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구조와 국가, 지도자를 동시에 보려는 현실주의가 돌아오고 있다.</p>

<p><strong>스티븐 월트가 본 우크라이나 전쟁</strong></p>

<p>하버드대의 스티븐 월트(Stephen M. Walt)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국제정치이론이 이 전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p>

<p>월트는 현실주의자이지만 미어샤이머와 완전히 같은 입장은 아니다. 그는 특히 ‘위협균형(balance of threat)’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가가 단순히 힘이 강한 국가에 맞서 균형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국가에 대응한다는 것이다.</p>

<p>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논리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러시아는 NATO 확대를 위협으로 인식했지만 역설적으로 러시아의 침공 자체가 유럽 국가들에게 훨씬 강력한 러시아 위협을 각인시켰다. 그 결과 NATO는 약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됐다. </p>

<p>핀란드가 NATO에 가입했고 오랫동안 군사적 비동맹 노선을 유지했던 스웨덴까지 NATO에 들어갔다. 러시아가 자신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전쟁이 결과적으로 러시아 주변의 서방 군사동맹을 더욱 확대시킨 셈이다.</p>

<p>월트는 전쟁 직후부터 우크라이나 사태를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 등 서로 다른 국제정치이론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비교하면서 하나의 이론만으로 복잡한 전쟁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p>

<p><span style="color:#2980b9;">“[21세기 국제정치학의 대전환] 7부작</span></p>

<p><span style="color:#2980b9;">① 전쟁이 돌아왔다 — 우크라이나와 현실주의의 귀환 ② 세계화는 끝났는가 — 상호의존에서 경제안보로 ③ 미국 패권은 흔들리는가 — 단극체제에서 새로운 다극질서로 ④ 글로벌 사우스의 반란 — 중견국은 왜 편을 선택하지 않는가 ⑤ AI·드론·반도체 — 21세기 국가권력의 새로운 조건 ⑥ 기후위기는 지정학이다 — 에너지·광물·산업을 둘러싼 새로운 전쟁 ⑦ 새로운 국제질서와 한국 — 강대국 정치의 귀환 속 생존전략 ”</span></p>

<p><strong>자유주의는 정말 패배했는가</strong></p>

<p>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실주의의 승리이자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의 패배일까.</p>

<p>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을 대표해 온 로버트 코헤인(Robert Keohane)의 핵심 문제의식 가운데 하나는 무정부적인 국제사회에서도 제도와 상호의존을 통해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p>

<p>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낙관론에 심각한 충격을 줬다. 러시아와 유럽은 에너지와 금융, 무역으로 깊게 연결돼 있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규모로 사용했고 러시아 역시 유럽 시장에서 막대한 에너지 수입을 얻었다.</p>

<p>경제적 상호의존은 전쟁을 막지 못했다. 국제질서 연구에서도 러시아의 침공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중요한 원칙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경제적 상호의존이 반드시 평화를 촉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된다.</p>

<p>그러나 자유주의가 완전히 무너진 것도 아니다. 전쟁 이후 NATO와 EU는 예상보다 강한 결속력을 보였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대규모 경제제재를 조직했고 국제금융과 무역, 기술통제라는 제도적 네트워크를 러시아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사용했다. 즉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유주의의 종말이라기보다 자유주의 이론이 ‘협력의 국제정치’뿐 아니라 ‘상호의존을 이용한 강압의 국제정치’까지 설명해야 하는 시대가 왔음을 보여준다.</p>

<p><strong>이켄베리가 말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시험</strong></p>

<p>프린스턴대의 G. 존 아이켄베리(G. John Ikenberry)는 냉전 이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대표적으로 연구해 온 학자다.</p>

<p>그가 설명해 온 전후 국제질서의 중요한 특징은 미국의 힘만이 아니었다. 미국이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맹과 국제기구, 규칙과 제도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일정 부분 제도 속에 묶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이 미국 중심 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p>

<p>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질서의 한계를 노출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서방의 예상과 달리 세계 전체가 러시아에 맞서 하나로 결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도와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러시아의 침공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그대로 참여하지 않았다.</p>

<p>최근 연구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서방 대 글로벌 사우스’ 구도로 보는 것 역시 부정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켄베리가 제시한 글로벌 웨스트(Global West), 글로벌 이스트(Global East),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는 ‘세 개의 세계’ 구도가 현재 국제질서를 설명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논의되는 이유다.</p>

<p>국제정치의 구조가 미국 대 중국,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두 개의 진영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p>

<p><strong>우크라이나 전쟁이 깨뜨린 ‘평화의 착각’</strong></p>

<p>결국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정치학에 던진 가장 큰 충격은 하나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냉전 이후 국제정치의 우선순위 자체가 잘못 설정됐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p>

<p>세계화는 중요하다. 국제기구도 중요하다. 경제적 상호의존도 중요하다. 민주주의와 국제규범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가 자신의 생존과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군사력과 동맹, 영토와 산업능력이 다시 가장 원초적인 권력의 문제로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줬다.</p>

<p>그래서 국제정치학은 다시 모겐소를 읽고 월츠를 읽으며 미어샤이머와 논쟁한다. 동시에 프리드먼을 통해 지도자의 오판을 연구하고, 신고전적 현실주의를 통해 국내정치와 국가역량을 국제체제와 연결하려 한다. 이것은 단순한 ‘현실주의의 부활’보다 훨씬 큰 변화다. 국제정치학이 다시 권력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p>

<p><strong>2022년 이후 시작된 국제정치학의 새로운 질문</strong></p>

<p>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6년 8월 현재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와 서방에서는 병력뿐 아니라 드론과 미사일, 방공체계, 방산 생산능력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가 핵심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측에서도 AI 유도 드론과 저가형 요격체계, 자체 탄도미사일 개발 등 전쟁 수행방식 자체의 혁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p>

<p>이 대목에서 국제정치학의 질문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p>

<p>국가의 힘이란 과연 무엇인가.</p>

<p>핵무기인가. GDP인가. 첨단 전투기인가. 동맹국의 숫자인가. 아니면 수백만 대의 드론과 수십만 발의 포탄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산업생산능력인가?</p>

<p>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실주의를 부활시킨 동시에 현실주의가 말하는 ‘Power’의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p>

<p>모겐소 시대의 권력정치와 2020년대의 권력정치는 같을 수 없다.</p>

<p>오늘날 국가의 힘에는 군사력과 경제력뿐 아니라 반도체, AI, 위성, 드론, 에너지, 핵심광물, 금융망, 데이터, 공급망과 방위산업 생산능력까지 포함된다. 그래서 2022년 2월 24일은 훗날 국제정치학의 하나의 분기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p>

<p>냉전이 끝난 뒤 국제정치학은 오랫동안 “국가들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연구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는 국제정치학자들에게 훨씬 오래되고 불편한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p>

<p>“국가는 왜 다시 전쟁을 선택하는가.” </p>

<p>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국제정치학은 지금 다시 변하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논란 많던 정부 출연 연구기관 연구원 창업,지분 취득 등 허용]]></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2</link>
	  <dc:creator><![CDATA[김시래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2</guid>
	  <pubDate>Sat, 26 Sep 2026 04:32:02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2026년 기준 연간 30조 원(약 225억 달러) 안팎에 육박하고 공공 연구기관이 보유한 유효 특허만 수만 건을 헤아린다. 그러나 연구실 바깥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투입해 확보한 기술의 대부분은 특허청 등록원부와 연구보고서 서랍 속에 갇혀 먼지를 뒤집어썼다. 국내 공공연구기관의 기술이전율은 30% 중반 언저리를 맴돌았고, 이전된 기술이 실제 상용화로 이어져 시장에서 매출을 일으키는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이를 연구개발 결과물이 시장의 수요를 만나지 못하고 증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실험실의 사슬이 끊어지고, 연구자는 시장의 문턱을 넘는다ⓒ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5"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2_51548_126.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48 float-center" data-idxno="51548"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실험실의 사슬이 끊어지고, 연구자는 시장의 문턱을 넘는다ⓒ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5"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2_51548_126.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실험실의 사슬이 끊어지고, 연구자는 시장의 문턱을 넘는다ⓒ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2026년 기준 연간 30조 원(약 225억 달러) 안팎에 육박하고 공공 연구기관이 보유한 유효 특허만 수만 건을 헤아린다. 그러나 연구실 바깥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투입해 확보한 기술의 대부분은 특허청 등록원부와 연구보고서 서랍 속에 갇혀 먼지를 뒤집어썼다. 국내 공공연구기관의 기술이전율은 30% 중반 언저리를 맴돌았고, 이전된 기술이 실제 상용화로 이어져 시장에서 매출을 일으키는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이를 연구개발 결과물이 시장의 수요를 만나지 못하고 증발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혹은 연구실에서 시장으로 건너가지 못하는 실험실의 역설이라 불렀다.</p>

<p>원인은 명확했다. 혁신 기술을 개발한 주역인 연구자가 사업화 과정에 직접 뛰어들거나 지분을 취득할 때마다 도덕적 해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법적 처벌의 공포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직자 윤리 확립이라는 명분 아래 덧씌워진 촘촘한 그물망은 공공 연구원의 창업과 기술이전을 잠재적 범죄 행위로 취급했다.</p>

<p>마침내 침묵의 사슬을 끊어내는 중대한 법률 개정이 단행됐다. 2026년 9월 15일 공포돼 2027년 3월 16일 시행을 앞둔 법률 제21911호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이다. 이번 개정은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자가 기관 보유 기술을 활용해 창업하거나 기업에 기술이전을 하는 대가로 취득한 주식·지분·자본금에 대해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제2조제6호바목에 따른 사적이해관계자 규정 적용을 전면 배제하도록 규정했다. 아울러 연구자가 기술을 넘겨받은 기업이나 창업기업에 노무와 자문을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해당 기업의 임원 등 직위에 취임하는 길을 제도적으로 열어젖혔다.</p>

<p>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간소화가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국가 주도 추격형 경제성장의 틀 속에 갇혀 있던 공공 연구개발 생태계를 시장 중심의 벤처 혁신 엔진으로 전환하겠다는 국가적 패러다임 전환의 선언이다.</p>

<p> </p>

<p><strong>규제의 덫에 갇혔던 대덕: 지분은 곧 범죄라는 도식</strong></p>

<p>공공기술 사업화가 오랫동안 질식했던 배경에는 2022년 5월부터 시행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의 획일적 잣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부패 방지와 공직 사회 청렴도 제고를 위해 제정된 이 법은 연구개발이라는 특수한 창의적 생산 현장을 일반 인허가 행정 관청과 똑같은 잣대로 재단했다.</p>

<p>기존 이해충돌방지법 제2조제6호바목에 따르면, 공직자나 그 가족이 단독 또는 합산해 3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거나 발행주식총수의 30% 이상을 소유한 법인, 혹은 자본금 총액의 30% 이상을 출자한 법인은 ‘사적이해관계자’로 규정된다. 문제는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임직원 전원이 공직자로 묶여 있다는 점이었다.</p>

<p>연구자가 자신이 수년간 피땀 흘려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실험실 창업(스핀오프)을 감행하면 지분의 30% 이상을 쥐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외부 벤처캐피털(VC)의 투자를 유치하기 전까지 창업팀 지분율이 50%를 웃도는 일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 순간 연구자는 자기 연구소 내에서 법률상 ‘잠재적 비리 유발자’인 사적이해관계자로 전락했다.</p>

<p>연구자가 창업한 뒤 모기관 연구실의 특수 장비를 사용하거나 후속 연구개발 과제를 위탁받아 진행하려 할 때마다 연구원은 즉각 직무 회피 대상이 됐다. 만약 이를 소홀히 하면 감사원 감사와 징계, 형사처벌 위험에 직면했다. 심지어 연구소 기술을 민간 중소·중견기업에 이전하면서 기술료를 현금 대신 성공 가능성에 베팅해 주식이나 지분으로 받는 스톡옵션형 계약조차 이해충돌 규정의 직격탄을 맞았다. 기업이 성장해 지분 가치가 오를수록 연구자는 직무수행의 공정성을 의심받는 기이한 역풍이 불었다.</p>

<p>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 20여 년간 바이오 소재를 연구해 온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한 책임연구원은 기술창업을 결심했다가 포기했던 과거 경험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p>

<p>“신약 후보물질을 민간 제약사에 넘기려 해도 초기 바이오 벤처는 당장 지불할 현금이 없다. 기업 지분을 일부 받고 상용화까지 연구원이 밀착 자문해 주는 방식이 글로벌 제약 바이오의 표준 문법이다. 하지만 연구소 감사실에서는 기업 지분을 쥐는 순간 후속 정부 과제 심사에서 배제되고 직무 관련 이해충돌 신고를 감당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결국 기술은 연구실 안에서 시들어버렸다.”</p>

<p>기술 유출에 대한 과도한 공포 역시 혁신의 발목을 잡았다. 제31조 비밀유지의무 조항의 모호함 때문에 연구원이 이전 기업에 가 기술 지도를 하거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경영에 조력하는 행위는 늘 형법상 배임이나 기술 유출 시비에 휘말릴 위험을 안고 있었다. 딥테크(Deep Tech) 영역의 기술은 특허 명세서 몇 줄로 완결되지 않는다. 기술을 직접 개발한 연구자의 손끝에 축적된 묵시적 지식(Tacit Knowledge)이 전수되지 않으면 상용화 수율 1%를 넘기기 어렵다. 그럼에도 연구원의 기업 겸직과 자문은 사실상 금기시됐고, 기술을 사간 기업들은 기술 구현에 실패한 채 비용만 날리는 악순환이 거듭됐다.</p>

<p> </p>

<p><strong>미국의 &#39;바이-돌 교훈&#39;과 한국판 혁신 생태계의 분수령</strong></p>

<p>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 주요국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제도적 해법을 모색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역사적 이정표가 바로 미국이 1980년에 제정한 바이-돌법(Bayh-Dole Act)이다. 1970년대 말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과 일본 제조업의 거센 추격 속에 신음하던 미국은 정부 연구개발 예산으로 개발된 연방 특허 약 2만 8000여 건 중 민간에 이전된 비율이 고작 5% 미만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목도했다. 정부가 특허 소유권을 독점하고 상업화를 제한한 결과였다.</p>

<p>인디애나주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 버치 바이(Birch Bayh)와 캔자스주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 밥 돌(Bob Dole)이 초당적으로 주도해 통과시킨 바이-돌법은 연방 자금으로 개발된 기술의 소유권을 대학과 비영리 연구기관, 중소기업에 귀속시키고 연구자에게 상업화에 따른 로열티와 지분 배분을 허용했다. 경제학 전문지들은 이를 두고 “지난 반세기 동안 제정된 미국 법률 중 가장 혁신적인 법”이라 평가했다. 바이-돌법 시행 이후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와 실리콘밸리에는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원들이 연구실 문을 박차고 나와 창업한 제넨텍, 암젠 같은 딥테크 공룡 기업들이 줄을 이었다.</p>

<p>대한민국 국회가 2026년 가을 완성한 법률 제21911호는 이른바 ‘한국판 바이-돌법의 실질적 완성’이라 부를 만하다. 법안 개정을 이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구혁채(56) 제1차관은 법안 공포 직후 정부 브리핑에서 제도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이번 법 개정으로 연구자가 본인의 연구성과로 딥테크 창업에 적극 도전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마련됐다. 첨단 바이오, 양자, 우주항공 등 7대 미래 전략 분야의 연구성과가 실험실에서 시장으로 직진해 미래 국가 먹거리로 성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p>

<p>개정 법률의 골자는 철저히 시장 유인과 현실 적합성에 맞춰졌다. 신설된 제32조의2 제2항은 연구자가 연구기관 보유 기술을 활용해 창업하거나 기업에 기술을 이전할 때 대가로 취득한 주식·지분·자본금에 대해 이해충돌방지법상 사적이해관계자 적용을 명시적으로 배제했다. 연구자가 지분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후속 과제에서 배제되거나 감사 대상이 되는 제도적 족쇄를 완전히 풀어버린 것이다.</p>

<p>여기에 제3항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연구기관 및 연구회 소속 임직원이 창업기업 등에 대해 노무나 조언, 자문을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비밀유지의무(제31조)에 위배되지 않는 한 소속 기관의 직무 관련 지식과 정보를 기업에 합법적으로 제공하고 대가를 받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창업기업 등의 임원 및 기술고문 등 ‘직위에 취임하는 행위’를 공식 허용했다. 기술 이전 후 사후 지원이 단절돼 기업이 고사하던 취약점을 정면으로 돌파한 셈이다.</p>

<p> </p>

<p><strong>연구원 창업·기술이전 관련 규제 개선 (법률 제21911호 신설)</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47 float-center" data-idxno="5154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816px"><img alt="" height="911"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2_51547_3112.jpg" width="816"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다만 이 같은 규제 완화가 공공 연구비의 사유화나 방만한 도덕적 해이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교한 방화벽도 함께 설치됐다. 제32조의2 제2항 단서 조항은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제24조 제2항에 따른 연구지원인력이거나 연구지원조직에 소속된 행정·관리 인력의 경우 이번 특례 대상에서 철저히 제외했다. 연구비를 배분하고 과제 진도와 정산을 감독하는 관리자가 기술이전 기업의 주식을 받거나 창업 지분을 챙기는 구조적 비리를 원천 봉쇄한 것이다. 오직 실험실에서 땀 흘려 기술을 창조해 낸 연구 주체에게만 합당한 보상과 참여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엄격한 원칙주의다.</p>

<p>지역별 혁신 거점의 지형도 재편될 전망이다. 대한민국 공공 연구개발의 핵심 허브인 대전 대덕을 비롯해 원자력·에너지 혁신 클러스터인 전남 나주와 경북 포항, 조선·해양·소재 거점인 부산과 울산, 바이오 메디컬 연구소가 밀집한 충북 오송과 대구 신서 첨단의료복합단지 등 전국 연구 거점들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왔다.</p>

<p>지금까지 대덕연구단지는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창업과 투자가 서울 테헤란로와 판교 테크노밸리로 쏠리는 현상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연구원이 직접 스타트업을 진두지휘할 수 없으니, 기술만 헐값에 매각되고 기업의 본사는 벤처 자금이 풍부한 수도권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으로 출연연 연구자가 현지에 본사를 둔 스핀오프 창업기업의 기술 지휘봉을 쥐고 대덕의 인프라를 활용해 성장하는 로컬 유니콘의 출현 경로가 열렸다.</p>

<p>물론 2027년 3월 법 시행까지 남은 과제는 적지 않다. 출연연 각 기관과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연구원의 겸직 허가 범위, 기업 자문에 따른 대가 산정 기준, 모기관 연구 장비 활용에 대한 사용료 정산 체계 등 촘촘한 내부 가이드라인을 완비해야 한다. 공직자의 청렴성과 과학기술 혁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밀한 제도 설계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p>

<p>실험실 벤처의 거대한 도약은 이제 법전 속 문구를 벗어나 시장의 영토로 진입하고 있다. 1980년 미국의 바이-돌법이 실리콘밸리의 기술 번영을 견인했듯, 2026년 대한민국 국회가 통과시킨 제21911호 법률은 반세기 동안 관료주의에 묶여 있던 공공 연구개발 자산을 시장의 파괴적 혁신 동력으로 탈바꿈시키는 거대한 분수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대덕의 연구실 창문 너머로 기술의 자본화, 연구의 산업화라는 새로운 시대가 밝아오고 있다.</p>

<p> </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세대유감] 테이블을 짓는 사람들 ― 비정치라는 낙인, 그 억울함에 대하여]]></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1</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1</guid>
	  <pubDate>Fri, 25 Sep 2026 21:54:41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무시라는 이름의 침묵억울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지 않은 일로 비난받는 억울함과, 한 일을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함. X세대가 오래 품어온 것은 후자다.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세대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그 그림은 틀렸다.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왔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역사학자 얀 아스만이 제시한 \'문화적 기억(cultural memory)\'은 과거의 사실을 복원하는 행위가 아니다. 현재의 공동체가 정체성을 확인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과거를 끊임없이 다시 불러내고 편집하는 상징적 투쟁의 장이다. 한국 사회]]></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광장의 빛은 언제나 마이크를 향한다. 그러나 그 마이크가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누구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테이블을 붙들고 있는 손들 때문이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1_51542_237.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42 float-center" data-idxno="5154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광장의 빛은 언제나 마이크를 향한다. 그러나 그 마이크가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누구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테이블을 붙들고 있는 손들 때문이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1_51542_237.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광장의 빛은 언제나 마이크를 향한다. 그러나 그 마이크가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누구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테이블을 붙들고 있는 손들 때문이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strong>무시라는 이름의 침묵</strong></p>

<p>억울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지 않은 일로 비난받는 억울함과, 한 일을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함. X세대가 오래 품어온 것은 후자다.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세대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그 그림은 틀렸다.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왔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p>

<p>역사학자 얀 아스만이 제시한 &#39;문화적 기억(cultural memory)&#39;은 과거의 사실을 복원하는 행위가 아니다. 현재의 공동체가 정체성을 확인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과거를 끊임없이 다시 불러내고 편집하는 상징적 투쟁의 장이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 논의가 다루어지는 방식 역시 이 기억의 정치학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금까지 세대 담론은 거대한 정치적 사건을 독점한 집단이나, 새로운 소비 주체로 부상한 집단에 의해서만 언어화되어 왔다. 공적 역사와 공식적 기호학의 체계 뒤편에는 정치적 슬로건으로 환원되지 않는 정동(affect)의 영역이 있다. 감정의 계보학은 이 언어화되지 않은 채 묻힌 정동의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비로소 작동한다.</p>

<p>레이먼드 윌리엄스가 개념화한 &#39;느낌의 구조(structure of feeling)&#39;는 아직 이념이나 제도로 정착되지 않았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적 경험에 스며 있는 과도기적이고 생생한 감정의 질감을 뜻한다. 197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사이세대, X세대가 통과해온 문화적 궤적은 이 느낌의 구조가 작동한 대표적인 지점이다. 그들은 산업화의 결실과 소비사회의 도래를 처음 경험함과 동시에, 외환위기라는 구조적 폭력을 청년기에 맞닥뜨려야 했다. 이들이 들었던 깃발은 집단적 구호가 아니었다. 워크맨의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개인의 밀실로 들어가는 고독, 분절된 대중문화의 취향을 홀로 수집하는 감각이었다. 고독은 정치가 아니라고 누가 정했는가. 고독이 정치가 아니라면, 정치는 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가.</p>

<p>우리는 이 침묵을 오래 오독해왔다. &#39;정치적 무관심&#39;이니 &#39;탈이념적 소비주의&#39;니 하는 평가는 정동의 표면만 훑은 말이다. 침묵은 비어 있지 않다.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사회적 갈등의 뿌리를 분배나 권력이 아니라 무시(Missachtung)에서 찾는다. 정당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이 먼저다. 무시는 분노를 부르고, 분노는 투쟁을 부른다는 것이다. X세대에게 붙은 &#39;비정치적 세대&#39;라는 낙인은 바로 이 무시의 결과다. 이들의 노동과 감정은 애초에 정치라는 이름조차 얻지 못했다. 이름을 얻지 못한 감정은 어디로 가는가. 밀실에 쌓인다. 밀실에 쌓인 감정은 언젠가 손끝으로 옮겨간다. 그렇게 침묵은 노동이 되었다.</p>

<p>베네딕트 앤더슨의 &#39;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39;는 국가나 정당이라는 제도적 매개에서만 출현하지 않는다. 동일한 매체를 소비하고 유사한 감정적 반응을 공유하는 일상적 매개에서도 출현한다. X세대의 사사화(私事化)된 문화 경험—마이카 시대의 차 안에서 듣던 음악, 어두운 극장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며 나누었던 침묵의 동질감—은 정치적 선언문보다 더 단단한 감정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들의 기억은 기록된 연대기가 아니라 몸에 각인된 정동의 아카이브로 남았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43 float-center" data-idxno="5154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밀실에 쌓인 감정은 이름을 얻지 못한 채, 끝없는 서랍 속에 무명으로 남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1_51543_319.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밀실에 쌓인 감정은 이름을 얻지 못한 채, 끝없는 서랍 속에 무명으로 남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미셸 푸코가 &#39;계보학(genealogy)&#39;을 통해 권력 담론이 만든 보편적 진리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억압된 지식을 호출했다. 이처럼 문화평론이 수행할 과제는 공적 담론의 그물망을 빠져나간 세대적 정동의 궤적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다만 이번에는 다르게 물어야 한다. 무시당한 것은 감정만이 아니었다. 무시당한 것은 노동이었다. 감정이 무시당한 채로 남으면 우울이 되지만, 노동이 무시당한 채로 남으면 그것은 사회의 손실이 된다.</p>

<p>거대 담론의 시대였던 586의 명분론과, 능력주의와 박탈감의 언어로 무장한 2030의 청년 담론 사이에서, 사이세대의 침묵은 무능이나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두 시대를 온몸으로 받쳐내며 사회적 허리 역할을 수행해온 이들이 선택한, 내면적 견딤의 방식이자 감정의 유예였다. 견딤은 정지가 아니다. 견딤은 다른 방식의 노동이다. 이 침묵 속에서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만들고 지켜왔는지, 우리는 아직 제대로 묻지 않았다.</p>

<p> </p>

<p><strong>착근(着根)된 세계, GDP라는 신화</strong></p>

<p>문화철학자 프레드릭 제임슨은 후기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역사성의 소멸과 맥락의 도식화를 짚었다. 오늘의 위기는 결핍이 아니다. 물질은 과잉되지만, 그것을 인간적 의미로 매개하던 맥락이 증발하고 있다는 데 본질이 있다. 텍스트는 상품의 가치로만 환산되고, 예술적 정동은 기술 혁신의 부산물로 격하된다.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에서 발표된 이재명 대통령의 &#39;뤼미에르 선언&#39;은 이 맥락의 부재를 아주 극적으로 증명해 보인 정치적 스펙타클이었다.</p>

<p>언뜻 인공지능(AI) 시대에 예술의 가치를 보존하겠다는 선진적 문화 정치처럼 읽힌다. 그러나 화려한 수사를 한 거풀 벗겨내면, 그 안에는 한국 사회를 오래 지배해온 오래된 망령이 있다. &#39;GDP 4만 달러&#39;라는 성장의 환영이다. 프랑스 측 서명자 명단에는 창작자의 노동과 권리를 지켜온 민간 창작자 단체들이 이름을 올렸다. 반면, 한국 측 서명석을 채운 것은 기획사와 대기업, 국가 기관이었다. 문화가 &#39;창작되는 삶의 맥락&#39;이 아니라 &#39;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39;으로만 부호화되고 있음을 드러낸 장면이다.</p>

<p>이러한 현상은 장 보드리야르가 통찰한 &#39;기호 자본주의&#39;의 전형이다. 문화정책은 문화 자체의 내재적 질서나 인간의 정동적 연대를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국가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고 수출 지표를 끌어올리는 신산업의 부품으로 동원될 뿐이다. 뤼미에르 선언이 말하는 AI와 영화 산업의 상생이 그 대표적인 예다. 창작자의 노동권이나 문화적 기억의 계보를 보존하려는 고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기술 전환기 속에서 K-콘텐츠 시장의 점유율을 지키고 자본을 축적하려는 산업적 조바심의 다름 아니다.</p>

<p>문화(culture)의 어원이 밭을 일구고 내면을 가꾸는 경작(cultivation)에 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혔다. 문화를 산업의 틀로만 이해할 때, 문화가 본래 맡아야 할 사회적 기능—파편화된 개인들을 잇고, 서사 없는 이들에게 언어를 부여하며, 시대를 통과하는 감정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난다. 독일의 매체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기술 매체가 인간의 감각과 기억을 기록하는 방식을 결정짓는다고 분석했다. K-컬처의 유려한 표면 뒤에는 실상 창작자의 주체성과 역사적 맥락이 표백된 첨단 상품의 스펙타클만 남는다. 뤼미에르라는 상징적 이름을 빌려온 외교적 성과도 마찬가지다. 성장률이라는 통계 수치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축조될 때 문화는 자기 해체의 길을 걷는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44 float-center" data-idxno="5154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성장률은 허공에서도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뿌리는 오직 흙에서만 자란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1_51544_432.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성장률은 허공에서도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뿌리는 오직 흙에서만 자란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숫자는 무엇을 세지 못하는가. 성장률은 착근을 세지 못한다.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는 시장이 본래 사회 속에 &#39;묻어 있는(embedded)&#39; 것이었다고 말한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 경제활동은 교환만이 아니라 호혜와 재분배로도 이루어졌다. 그 모든 형태가 공동체의 관계망 안에 녹아 있었다. 토지와 노동과 화폐는 애초에 팔기 위해 생산된 상품이 아니었다. 폴라니는 이것을 &#39;허구적 상품(fictitious commodities)&#39;이라 불렀다. 자기조정 시장이 이 허구적 상품을 진짜 상품처럼 취급할 때, 사회는 그가 말한 &#39;악마의 맷돌&#39;에 갈려나간다. 폴라니의 &#39;이중운동(double movement)&#39;은 이 파괴적 탈착근에 맞서 사회가 스스로를 지키려는 반작용이었다.</p>

<p>뤼미에르 선언이 자랑하는 것은 탈착근된 경제, 기호로만 떠도는 경제다. 반면 X세대가 실제로 떠받쳐온 것은 착근된 경제다. 공장의 라인을, 회사의 회계를, 조직의 규율을 묵묵히 지켜온 손들이 있다. 새벽의 물류창고를, 야근의 사무실을, 수십 년 된 거래처와의 신뢰를 지켜온 손들이다. 산업적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정동의 영역은 국가의 성장 담론 뒤편으로 어김없이 숨겨진다. 그러나 숨겨졌다는 것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착근된 경제를 지키는 손은 여전히, 다만 이름 없이 거기 있다.</p>

<p> </p>

<p><strong>광장 이전의 테이블</strong></p>

<p>오늘의 소셜 미디어라는 디지털 공론장은 이 맥락의 상실이 일상적 언어 행위에서 어떻게 파국으로 나타나는지 직관적으로 증명하는 무대다. 원문 기사나 비평문 아래에 논리적 균열을 지적하는 대화자는 드물다. 대신 사람들은 그 글을 자신의 &#39;담벼락&#39;으로 끌고 가 조롱의 잔치를 벌인다. 원문의 댓글창이라는 공적 무대에서는 침묵하면서, 자기 영역에서만 비웃음을 쏟아내는 행위는 대면의 긴장을 피하려는 비겁함의 다름 아니다.</p>

<p>심리학자 존 설러(John Suler)가 규명한 &#39;탈억제 효과(online disinhibition effect)&#39;의 &#39;지위와 권위의 최소화(minimization of status and authority)&#39;만으로는 이들을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은 익명의 가면 뒤에 숨지 않는다. 실명과 얼굴 사진을 걸어두고도 정체의 노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 회피하는 것은 노출이 아니라 대면 그 자체다. 무대를 옮기는 행위는 익명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다. 청중을 통제된 우호적 진영으로 재배치하는 전략이다.</p>

<p>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윤리의 출발점을 타자(the Other)의 &#39;얼굴&#39;과 마주치는 순간에서 찾았다. 타자의 얼굴은 나를 향해 소환장을 내민다. 나는 그 앞에서 무한한 책임(infinite responsibility)을 떠안는다. 그러나 로고와 프로필 사진 뒤에 웅크린 기관에는 마주칠 &#39;얼굴&#39;이 없다. 얼굴이 없으니 소환도 없고, 소환이 없으니 책임도 발생하지 않는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정리한 &#39;도덕적 해리(moral disengagement)&#39;의 &#39;책임의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39;은 이 지점에서 다시 소환된다. 철학자 한병철이 『타자의 추방』에서 진단한 &#39;동일자의 지옥&#39;—낯섦과 균열을 주는 타자가 사라지고 자신과 닮은 목소리의 반향만 도처에서 울리는 세계—은 오늘의 플랫폼이 쓰고 있는 가면이다.</p>

<p>그러나 X세대는 이 가면을 쓰지 않았다. 2002년 미선이·효순이 촛불집회부터 2008년 광우병 촛불, 2016년 탄핵 광장에 이르기까지, 광장을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실질적 권력의 무대로 재구성한 것은 이들이었다. 정치학자 찬탈 무페(Chantal Mouffe)가 말한 &#39;경합적 민주주의(agonistic democracy)&#39;—경직된 상징 질서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성을 형성하는—를 이들은 유모차와 촛불, 깃발과 음악으로 실천했다. 그런데 이 광장의 정치는 대체 어디에 서 있었는가. 빈 허공이 아니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45 float-center" data-idxno="5154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같은 광장 안에서, 어떤 이는 거울을 보고 어떤 이는 서로를 본다. 테이블은 마주 앉는 자들에게만 나타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1_51545_535.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같은 광장 안에서, 어떤 이는 거울을 보고 어떤 이는 서로를 본다. 테이블은 마주 앉는 자들에게만 나타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labor)과 작업(work)과 행위(action)를 구분했다. 노동은 생존을 위한 반복적 활동이다. 작업은 견고한 인공물의 세계를 짓는 일이다. 오직 행위만이 공적이고 정치적이라 그는 보았다. 그러나 아렌트 자신도 작업이 지어낸 인공물의 세계를 사람들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비유했다. 테이블은 사람들을 잇는 동시에 갈라놓는다. 행위, 곧 광장의 언어가 성립하려면 먼저 이 테이블이 있어야 한다. 테이블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마주 앉을 수 없다. 마주 앉을 수 없으면 말도 오갈 수 없다. 광장은 허공에 서지 않는다. 누군가 그 밑에 테이블을 놓았기에 사람들이 비로소 둘러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p>

<p>X세대가 짓고 지켜온 것이 바로 이 테이블이었다. 촛불을 들기 전에 이미 공장을, 회사를, 가정을 떠받치고 있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39;아비투스(habitus)&#39;로 말하면, 90년대의 문화적 자율성과 외환위기의 구조적 폭력을 동시에 체화한 이들의 사회적 성향은 어느 한쪽에 정체성을 고정하지 않는다. 권력이 삶의 맥락을 훼손할 때는 주저 없이 광장으로 나가 정권교체의 동력이 되었다. 그 정권이 삶의 세밀한 질감을 담아내지 못할 때는 엄정한 거리를 두었다. 이러한 특성은 이들을 한국 정치 지형에서 &#39;전략적 중도층&#39;, 향배를 결정짓는 스윙 보터(swing voter)로 만든 바탕이기도 했다.</p>

<p>광장에 나가는 행위와 테이블을 짓는 작업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노동이 아니다. 같은 손이 해온 일이다. 광장에서는 목소리로, 테이블 앞에서는 손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같은 일을 해온 것이다.</p>

<p> </p>

<p><strong>억울함에서 유산으로</strong></p>

<p>과학기술사학자 리 빈셀과 앤드루 러셀은 우리 시대가 혁신에는 탁월하지만 유지에는 실패한다고 진단한다. 이들은 이것을 &#39;혁신-스피크(innovation-speak)&#39;라 부른다. 새것을 향한 예찬이 이미 지어진 것을 지키는 노동을 체계적으로 지워왔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신화와 바이럴 경제가 각광받는 동안, 인수인계서를 쓰고 매뉴얼을 갱신하고 시스템을 점검하는 손은 뉴스가 되지 못했다. 혁신은 사진이 찍히고, 유지는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그러나 사진이 찍히지 않았다고 해서 손이 멈춘 것은 아니다. 그 손이 없었다면 혁신이 설 자리도 없었다.</p>

<p>MZ세대의 담론이 광장과 피드 위에서 인정을 요구하는 언어로 벼려질 때, X세대의 언어는 다른 곳에 있었다. 조직도 안에, 인수인계 문서 안에, 거래 장부 안에. 칭얼거림이라 낮잡아 부르는 이 아래 세대의 언어도, 실은 같은 무시에서 태어난 것일지 모른다. 다만 X세대는 요구하는 대신 이행했다. 요구와 이행은 둘 다 정치의 언어다. 단지 문법이 다를 뿐이다.</p>

<p>X세대는 위로는 독재와 산업화의 폭력을 견디며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했던 부모 세대의 한(恨)을 사회적 제도 안으로 번역해 올렸고, 아래로는 불안정한 노동 시장과 기후 위기, 양극화의 위험에 노출된 자녀 세대의 미래를 위해 안전망을 구축해왔다. 이것은 자기 이익의 관철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특한 에토스(ethos)를 갖는다. 아렌트가 정치의 본질을 개인의 사적 이익을 넘어서는 공동의 세계를 짓는 데 두었다면, 부모의 한을 번역하고 자녀의 미래에 안전망을 놓는 이 대리적 발화와 대리적 노동보다 더 정치적인 생산활동이 어디 있겠는가.</p>

<p>다시 호네트로 돌아가자. 무시는 분노를 부르고, 분노는 투쟁을 부른다고 그는 말했다. 낸시 프레이저와의 논쟁에서 호네트는 경제적 불평등의 밑바닥에도 인정구조의 왜곡이 깔려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분배의 문제로만 보이는 것의 뿌리에는 인정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X세대의 억울함도 그렇다. 이들이 요구해온 적 없는 것은 더 많은 몫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한 일에 붙어야 할 이름이었다.</p>

<p>그러나 X세대의 응답은 소란스러운 투쟁이 아니라 지속이었다. 소리 내어 인정을 요구하는 대신, 이들은 계속 만들고 계속 고쳤다. 이것이 억울함을 억울함인 채로 삼켜버렸다는 뜻은 아니다. 삼킨 것과 소화한 것은 다르다. 인정투쟁의 가장 성숙한 형식은 때로 소란이 아니라 지속이다. 무너지지 않은 테이블 자체가 이미 하나의 증언이기 때문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46 float-center" data-idxno="5154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광장의 빛은 꺼진다. 그러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다리 하나가, 테이블을 계속 서 있게 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1_51546_643.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광장의 빛은 꺼진다. 그러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다리 하나가, 테이블을 계속 서 있게 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39;비정치적 세대&#39;라는 낙인은 이제 다시 읽혀야 한다. 그들은 정치를 몰랐던 것이 아니다. 정치가 설 자리를 마련해온 것이다. 감정의 계보를 잇는다는 것은 특정 세대를 향한 사적 감상이나 단순한 향수(nostalgia)에 도피하는 일과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것은 과거의 감정적 경험이 현재의 구조적 조건과 마찰을 일으키며 연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지 규명하는 작업이다.</p>

<p>이 계보학의 끝에서 우리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억울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이제는 답할 수 있다. X세대의 억울함은 하지 않은 일로 비난받은 데서 온 것이 아니다. 그저 해온 일에 이름이 붙지 못한 데서 왔다. 고독은 정치가 아니었을까. 밀실에서 워크맨을 듣던 손이, 훗날 공장과 회사와 조직을 떠받치는 손이 되었다면, 그 궤적 전체가 이미 정치였던 것은 아닐까. 테이블을 지은 사람들의 이름은 광장의 구호처럼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름 없는 손들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무너지지 않고 아직 거기 남아 있는 세계 그 자체다. 광장은 언젠가 흩어진다. 구호는 언젠가 잊힌다. 테이블은 다음 사람이 와서 앉을 때까지, 거기 남는다.</p>

<p> </p>

<p> </p>

<p><strong>글‧박철웅</strong><br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에디터, 작가, 문화평론가.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IBM, NTT 등에서 마케팅과 컨설팅을 거치며 기술, 산업, 시장 현장을 경험했다. 사회와 문화 예술, 인간을 관통하며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글쓰기를 진행 중이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트럼프는 중국 봉쇄를 포기했나…시진핑과의 회담 뒤에 숨은 ‘새로운 포위전략’]]></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0</link>
	  <dc:creator><![CDATA[신성은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70</guid>
	  <pubDate>Fri, 25 Sep 2026 10:50:23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미국과 중국이 다시 마주 앉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24일 워싱턴 정상회담은 표면적으로 미·중 관계가 긴장 완화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두 정상은 무역전쟁을 관리하고 경제협력의 공간을 남겨두면서 군사적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데 이해관계를 공유했다.그러나 이번 회담을 미국 대중국 봉쇄 전략의 후퇴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난 10여 년 동안 구축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는 정책을 철회하지 않았다. 반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AI 생성 이미지" height="3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0_51541_5120.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AI 생성 이미지</div><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41 float-center" data-idxno="51541"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AI 생성 이미지" height="3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0_51541_5120.png" width="600" />
<figcaption>AI 생성 이미지</figcaption>
</figure>
</div>

<p>미국과 중국이 다시 마주 앉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24일 워싱턴 정상회담은 표면적으로 미·중 관계가 긴장 완화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두 정상은 무역전쟁을 관리하고 경제협력의 공간을 남겨두면서 군사적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데 이해관계를 공유했다.</p>

<p>그러나 이번 회담을 미국 대중국 봉쇄 전략의 후퇴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난 10여 년 동안 구축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p>

<p>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는 정책을 철회하지 않았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첨단 제조업, 핵심광물, 통신, 드론, 조선에 이르는 경제안보 정책도 유지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올해 출범한 미·중 무역위원회(Board of Trade)를 통해 비민감 상품의 교역은 관리하면서도 경제·국가안보를 위한 관세 수단은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p>

<p>달라진 것은 목표보다 전술이다. 트럼프 2기 미국의 대중 전략은 중국과 모든 거래를 끊는 전면적인 디커플링보다는 미국의 우위가 필요한 전략산업에서는 중국을 강하게 견제하면서 다른 영역에서는 거래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즉 ‘봉쇄하면서 거래하고, 거래하면서 다시 봉쇄하는 전략’이다.</p>

<p> </p>

<p><strong>40년의 대전환…‘중국을 키워 변화시킨다’에서 ‘중국의 부상을 관리한다’로</strong></p>

<p>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처음부터 봉쇄가 아니었다.</p>

<p>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의 기본 전략은 중국을 국제경제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특히 냉전 종식 이후에는 경제성장이 중국의 시장경제화와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워싱턴에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이러한 ‘관여정책(engagement)’의 정점이었다.</p>

<p>그러나 중국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군사력이 확대되면서 미국의 시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Pivot to Asia)’은 그 전환점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석유를 둘러싼 중동 중심의 외교정책은 바로 전환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을 겨냥한 새로운 외교전략은 무게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21세기초 중국은 이미 소련을 대체한 미래 강국의 면보가 드러났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에 외교·군사적 자원을 다시 배치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등소평의 집단지도체제를 다시 허문 시진핑의 정치적 야욕은 "중국몽"으로 발현되면서 미국 패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마저 드러냈다.  </p>

<p>결정적인 변화는 트럼프 1기였다. 2018년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미국의 중국정책이 관여에서 경쟁으로 넘어갔음을 상징했다. 관세뿐 아니라 화웨이 제재, 기술수출 통제,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 제한 등이 등장했다.</p>

<p>바이든 행정부는 방법은 달랐지만 큰 방향을 뒤집지 않았다. 오히려 반도체와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대중 견제정책을 더욱 체계화했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고 일본·한국·네덜란드 등 동맹국과 협력해 중국이 최첨단 반도체 제조기술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최근 평가에서도 바이든 정부가 수출통제·산업정책·동맹 조정을 결합하면서 기술을 미·중 경쟁의 핵심 전장으로 만들었으며, 이 구조가 트럼프 2기에서도 상당 부분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p>

<p>따라서 지난 10여 년, 미국의 중국전략과 그 흐름은 보다 강화되고 정교해지고 있다. </p>

<p><span style="color:#7f8c8d;"><strong>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 트럼프 1기의 무역·기술전쟁 → 바이든의 동맹형 기술통제 → 트럼프 2기의 경제안보·산업·군사력을 결합한 경쟁전략.</strong></span></p>

<p>정권은 바뀌었지만 중국을 미국의 핵심 전략경쟁자로 보는 워싱턴의 인식은 상당한 연속성을 보여왔다. </p>

<p> </p>

<p><strong>중국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strong></p>

<p>그러나 미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중국은 소련이 아니었다.</p>

<p>냉전 당시 소련은 서방 경제와 상당 부분 분리돼 있었다. 반면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이면서 미국과 유럽, 한국, 일본의 공급망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래서 중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은 소련을 봉쇄하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다.</p>

<p>CSIS의 최근 수출통제 연구도 이 차이를 지적한다. 중국은 이미 세계 공급망에 깊숙이 통합돼 있으며 상당한 자체 혁신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의 통제에 대해 우회조달, 국산화, 기술자립 투자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p>

<p>중국의 반격 수단도 점점 다양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희토류와 핵심광물이다. 중국은 2025년 중·중희토류 관련 품목에 수출통제를 도입했고 이후 통제범위를 확대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국가안보와 비확산을 위한 수출관리라고 설명하지만, 미·중 전략경쟁에서 중국이 핵심광물 공급망이라는 강력한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동시에 확인됐다.</p>

<p>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벌어진 무역충돌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2025년 초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미국산 석탄·LNG·원유·자동차 등에 관세를 부과하고 핵심 금속 수출을 제한했다. 이후 미국과 중국의 관세율은 한때 각각 세 자릿수까지 치솟았다. 결국 양국은 제네바 협상을 통해 관세를 대폭 낮추고 휴전에 들어갔다.</p>

<p>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드러났다. 미국도 중국을 완전히 고립시키기 어렵지만 중국 역시 미국과의 경제관계를 단절하기 어렵다는 것이다.</p>

<p>상호의존 자체가 서로의 무기가 됐다. </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40 float-center" data-idxno="5154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70_51540_4855.pn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트럼프 2기의 변화…‘봉쇄’에서 ‘선택적 봉쇄’로</strong></p>

<p>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트럼프-시진핑 회담의 의미가 나타난다.</p>

<p>트럼프가 중국에 유화적으로 변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와 AI를 중심으로 기술통제를 유지하고 있고 통신장비·드론·첨단 로봇·전력 인버터·해저케이블 등으로 경제안보의 범위를 넓혀왔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8월 이러한 미국의 조치에 대응해 미국을 대상으로 드론과 핵심 부품·기술의 수출통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p>

<p>트럼프 정부는 핵심광물에서도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 지난 7월 백악관은 국방과 산업에 필요한 핵심광물의 공급망 취약성을 국가안보 문제로 규정하고 국방물자생산법(DPA)을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했다.</p>

<p>따라서 중국 견제정책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모든 중국산 제품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중요한 것’과 ‘거래해도 되는 것’을 구분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p>

<p>반도체, AI, 군사용 첨단기술, 핵심광물, 통신과 일부 첨단 제조업에서는 높은 장벽을 유지한다. 반면 농산물, 항공기, 소비재 등 비민감 분야에서는 거래를 확대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미국내에서 중국산 제품들을 대체하기 어렵다.  </p>

<p>미국 정부가 새로 만든 미·중 무역위원회가 바로 이러한 구조를 제도화하려는 장치다. 미국 정부는 이를 비민감 상품의 교역을 조정하는 정부 간 채널이라고 설명한다. 즉 미국의 대중전략이 디커플링(Decoupling) → 위험회피(De-risking) → 경쟁관리(Managed Competition)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p>

<p> </p>

<p><strong>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은 무엇인가</strong></p>

<p>여기서 이번 워싱턴 정상회담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p>

<p>트럼프와 시진핑은 경쟁을 끝내지 않았다. 경쟁의 상한선을 설정하려 한 것이다. 트럼프 2기 초기 미국은 대규모 관세를 통해 중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중국은 희토류와 핵심광물, 미국 농산물 구매, 거대한 제조업 공급망이라는 자체 협상카드를 가지고 버텼다.</p>

<p>정상회담 직전 로이터 분석에서도 중국의 세계 무역흑자가 다시 1조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제기됐고, 미국의 압박에도 중국의 대미 수출 품목 상당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p>

<p>결국 미국도 전략을 조정해야 했다. 중국을 단기간에 굴복시키는 것보다 중국의 전략기술 발전을 억제하면서 경제관계는 관리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된 것이다.</p>

<p>이번 회담은 그런 점에서 봉쇄정책의 종료라기보다 봉쇄전략의 정교화에 가깝다. 미국은 중국을 세계경제 밖으로 밀어내려 하기보다 미국의 기술적·군사적 우위를 위협할 수 있는 분야에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려 한다.</p>

<p>반대로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면서 시간을 벌려고 한다. 정상회담 직전 전문가들은 시진핑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가 무역휴전을 연장해 중국 경제와 산업의 회복력을 강화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p>

<p>따라서 두 정상의 악수 뒤에는 역설적인 계산이 존재한다. 트럼프에게 필요한 것은 중국을 이길 시간이고, 시진핑에게 필요한 것도 미국의 압박을 견딜 시간이다.</p>

<p> </p>

<p><strong>그리고 여기에서 한국의 공간이 생긴다</strong></p>

<p>이 구조는 한국에는 위기인 동시에 상당한 산업적 기회를 만든다.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전략산업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 한다면 그 빈 공간을 누군가는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p>

<p>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반도체다.</p>

<p>한국은 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해 메모리반도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올해 1~8월 한국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169.6% 증가한 2,810억 달러를 기록해 전체 수출의 41%를 차지했다. 한국의 대중 수출과 대미 수출 역시 모두 크게 증가했다. 미·중 경쟁이 반드시 한국에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양자택일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p>

<p>두 번째는 조선이다.</p>

<p>오히려 이 분야가 가장 전략적일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의 압도적인 조선능력을 국가안보 문제로 보기 시작했지만 미국 자체 조선능력을 단기간에 복원하기는 어렵다. 이 빈틈에서 한국의 가치가 커지고 있다.</p>

<p>CSIS는 미국이 중국과의 조선 경쟁에서 한국·일본 등 동맹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한국 조선업의 높은 생산효율과 자동화된 조선소, 숙련인력을 평가했다. 미국이 중국과 경쟁하는 동안 한국이 미국의 조선능력 공백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p>

<p>세 번째는 AI와 첨단 제조업이다. 미국은 AI 모델과 설계 능력에서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이를 현실의 산업으로 구현하려면 반도체, 전력기기, 배터리, 데이터센터, 냉각장비, 조선·제조설비 등 거대한 물리적 산업기반이 필요하다.</p>

<p>한국은 이 가운데 상당수를 가지고 있다. 최근 한·미 경제협력이 AI·조선·원전·반도체·방산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도 이런 구조와 연결돼 있다. 브루킹스 역시 한·미 동맹이 전통적인 군사동맹을 넘어 AI·조선·원전·반도체를 포함하는 산업·기술 파트너십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한다.</p>

<p> </p>

<p><strong>그러나 ‘반사이익’에는 대가가 있다</strong></p>

<p>여기서 한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 미·중 경쟁이 심화된다고 한국이 자동적으로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중국 공급망을 한국으로 대체하려 할수록 한국 기업에는 미국 현지투자 요구가 커질 수 있다.</p>

<p>실제로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협상 과정에서 3,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제조업 투자계획을 약속했고 현재 투자방식과 수익성 등을 놓고 양국이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투자사업의 상업적 타당성이 중요한 쟁점이라고 밝히고 있다.</p>

<p>중국의 대응 위험도 있다. 한국은 중국과 여전히 거대한 무역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핵심광물과 일부 소재의 중국 의존도도 높다. 따라서 미국 중심 공급망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중국의 경제적 대응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p>

<p>미·중 경쟁은 한국에 기회를 주지만 동시에 ‘전략적 가치 상승’과 ‘전략적 비용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구조인 것이다. </p>

<p>한국은 미·중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중이 모두 필요로 하는 위치를 만들어야 한다</p>

<p>이번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을 한국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지점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전략을 단순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만 좁히면 산업구조의 변화를 놓칠 수 있다.</p>

<p>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미·중 경쟁이 장기화되는 세계에서 한국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반도체에서는 HBM과 첨단 메모리가 있다. 조선에서는 LNG선·특수선·군함 MRO와 스마트조선소가 있다. 배터리와 원전, 방산, AI 제조 인프라에서도 경쟁력이 있다.</p>

<p>이 산업들을 미국의 대중국 전략과 연결하면서 동시에 중국 시장과의 불필요한 단절을 최소화하는 것이 한국이 풀어야 할 과제다.</p>

<p>공교롭게도 이번 정상회담 직전 미국·한국·일본 외교장관은 뉴욕에서 만나 경제적 강압과 자의적인 수출제한에 공동 대응하고 핵심기술과 공급망을 다루는 새로운 경제안보 협의체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미국은 동시에 한국과 일본에 대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했다.</p>

<p>이 장면은 앞으로 동아시아 질서가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트럼프와 시진핑이 만나 무역휴전과 전략적 안정을 이야기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과 한국·일본이 공급망과 첨단기술 협력을 강화한다.</p>

<p>두 장면은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같은 전략의 양면이다.</p>

<p>미국은 중국과 대화하면서 동시에 중국에 대한 경제·기술적 억지력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과 정상외교를 유지하면서 희토류와 제조업 공급망, 기술자립과 글로벌 사우스와의 경제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워싱턴 정상회담은 미·중 신냉전의 종식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p>

<p>오히려 보다 복잡한 경쟁의 시작에 가깝다. 20세기 냉전의 봉쇄가 군사동맹과 이념, 핵무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21세기의 대중 견제는 반도체·AI·희토류·조선·배터리·데이터센터·에너지·공급망을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다.</p>

<p>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한국이 있다. 미·중 경쟁이 장기화될수록 반도체를 만들고, 배를 건조하고, 배터리를 생산하며, 원전과 방산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국가의 전략적 가치는 커질 수 있다.</p>

<p>그러나 그 기회는 공짜가 아니다. 미국의 투자 압력과 중국의 경제적 대응, 공급망 재편 비용을 함께 감수해야 한다. 결국 한국에 중요한 것은 미·중 사이에서 단순히 줄을 서는 문제가 아니다. </p>

<p>미국도 쉽게 대체할 수 없고 중국도 함부로 배제하기 어려운 산업적 위치를 만드는 것. 트럼프와 시진핑이 다시 악수한 워싱턴 정상회담은 역설적으로 그 필요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중동 석유 부국들이 설계하는 '고기 없는 축산' 제국]]></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9</link>
	  <dc:creator><![CDATA[김시래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9</guid>
	  <pubDate>Fri, 25 Sep 2026 05:57:44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뜨거운 열기가 지표면을 아지랑이로 뒤덮는 아라비아반도의 사막 지대에서는 지금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실험이 조용히, 그러나 매우 급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십 년간 지하 깊은 곳에서 검은 황금인 원유를 뽑아 올려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던 걸프 지역 군주국들이 이제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번쩍이는 초대형 세포 배양 장치인 바이오리액터(생물반응기)를 사막 한가운데 심고 있다. 과거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무지에서 기름을 퍼올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산유국들이, 이번에는 가축 한 마리 기르지 않고 세포를 증식시켜 전 세계인의 식]]></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대체 축산과 배양육이 중동 산유국의 새로운 산업으로 자리잡을까. Visual concept by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9_51539_1657.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39 float-center" data-idxno="5153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대체 축산과 배양육이 중동 산유국의 새로운 산업으로 자리잡을까. Visual concept by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9_51539_1657.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대체 축산과 배양육이 중동 산유국의 새로운 산업으로 자리잡을까. Visual concept by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뜨거운 열기가 지표면을 아지랑이로 뒤덮는 아라비아반도의 사막 지대에서는 지금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실험이 조용히, 그러나 매우 급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십 년간 지하 깊은 곳에서 검은 황금인 원유를 뽑아 올려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던 걸프 지역 군주국들이 이제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번쩍이는 초대형 세포 배양 장치인 바이오리액터(생물반응기)를 사막 한가운데 심고 있다. 과거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무지에서 기름을 퍼올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산유국들이, 이번에는 가축 한 마리 기르지 않고 세포를 증식시켜 전 세계인의 식탁에 올릴 고기를 만들어내겠다는 대담한 구상에 나선 셈이다.</p>

<p>이 프로젝트는 실리콘밸리의 이상주의적 신생 벤처기업들이 말하는 단순한 환경 보호나 동물 복지 운동의 차원을 아득히 넘어선다. 이것은 국가의 생존을 건 식량 안보 프로젝트이자, 화석연료 시대의 황혼기에 대비한 포스트 오일 경제 다각화 전략이며,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 20억 인구에 달하는 이슬람 무슬림 시장의 할랄 규격을 선점하려는 거대한 지정학적·경제적 권력 투쟁이다.</p>

<p>돌이켜보면 걸프 지역 국가들에게 식량은 언제나 아킬레스건이었다. 연간 강수량이 100밀리미터에도 미치지 못하고 국토의 대부분이 불모의 모래밭인 이들 국가에서 농경과 축산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에 가까웠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막대한 달러가 유입됐을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막대한 지하수를 퍼올려 사막 한가운데 원형 관개 시설을 만들고 밀과 건초를 자급하겠다는 이른바 &#39;녹색 사막 프로젝트&#39;를 추진한 바 있었다.</p>

<p>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화석 지하수는 수십 년 만에 바닥을 드러냈고, 지속 불가능한 농업은 수자원 고갈이라는 재앙적 대가를 치른 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전면 중단됐다. 이후 걸프 국가들은 필요한 식량의 80%에서 많게는 90%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해 돈으로 사 오는 방식을 택했다.</p>

<p>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목격한 글로벌 공급망 충격은 오일머니가 결코 만능 방패가 될 수 없음을 잔인하게 일깨워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요 곡물 수출국들이 문을 걸어 잠그며 촉발된 애그플레이션, 2020년 전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2022년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수입선이 끊기면 금탕을 쌓아놓아도 굶주릴 수 있다는 공포를 현실로 만들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배가 뜨지 못하고 비행기가 멈추면 모래벌판의 궁전은 고립된 섬에 불과했다. 이 지역 통치자들에게 사막 한가운데서 자급할 수 있는 대체 단백질 생태계 구축은 취향의 선택이 아니라 정권의 안위와 국가 존망이 걸린 사활적 과제로 급부상했다.</p>

<p> </p>

<p><strong>수입 의존도 90%의 공포, 사막의 식량 주권을 위한 오일머니의 새전략</strong></p>

<p>이 거대한 전환의 선두에 선 국가는 카타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이 작은 반도 국가는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이웃 국가들로부터 갑작스러운 외교 단절과 국경 봉쇄 조치를 당했던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시 육로가 막히며 식료품 사재기 패닉을 겪었던 카타르는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뼈에 새겼다. 카타르 국부펀드인 카타르투자청(QIA)과 도하벤처캐피털(DVC)은 미국의 유력 배양육 기업인 잇저스트(Eat Just)에 거액의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잇저스트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조시 테트릭(Josh Tetrick, 46세)은 당시 투자 유치를 확정 지은 뒤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p>

<p>"카타르는 단지 자본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식량의 미래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중동 지역은 기후 조건상 식량 생산에 가장 가혹한 곳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혁신 기술을 수용하고 상용화하는 데 가장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완벽한 장소입니다."</p>

<p>카타르 자유무역지대청(QFZA)은 잇저스트의 배양육 부문 브랜드인 굿미트(GOOD Meat)와 손잡고 하마드 항구와 직결된 움 알훌 자유무역지대 내에 대규모 세포 배양 생산 기지를 세우기로 합의했다. 이 시설은 단순히 카타르 국내 수요만을 충당하기 위한 설비가 아니다. 지리적 이점을 살려 인근 중동 전역과 북아프리카, 나아가 아시아 시장으로 배양육을 공급하는 중동·북아프리카 권역 최대의 단백질 허브를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구상이 담겨 있다. 항만 인프라와 결합된 배양육 바이오리액터는 사막에서 단백질을 제조해 전 세계로 수출하겠다는 공상과학적 상상을 산업적 현실로 바꾸고 있다.</p>

<p>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 역시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2021년 일찌감치 국립 연구소를 중심으로 미래 단백질 연구에 착수한 데 이어, 아부다비 투자진흥청(ADIO)을 필두로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아부다비는 디에브리컴퍼니(The EVERY Company)와 비비시(Vivici) 등 글로벌 정밀 발효 및 세포 농업 기업들과 협력해 400만 리터 규모의 초대형 다목적 단백질 발효 및 배양 인프라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고 있다. 400만 리터는 현재 전 세계 세포 농업 분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압도적인 규모다.</p>

<p>아부다비 투자진흥청의 바드르 알올라마(Badr Al-Olama, 46세) 청장은 글로벌 투자 포럼 연설에서 아부다비의 야심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p>

<p>"우리는 단지 기술을 사 오는 수동적인 수입국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아부다비를 글로벌 애그테크와 차세대 푸드테크의 글로벌 수도로 만들 것입니다. 사막이라는 지리적 한계는 우리에게 장애물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기술 혁신을 촉발하는 엔진입니다."</p>

<p>아랍에미리트가 특히 영리한 점은 단순한 공장 유치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 인프라를 동시에 깔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부다비 농업식품안전청(ADAFSA)은 전 세계 유망 바이오 기업들이 연구개발(R&D)부터 상용화 단계까지 거쳐야 하는 길고 지루한 신식품(Novel Foods) 승인 절차를 대폭 단축하는 신속 처리 규제 프레임워크를 마련했다. 까다로운 인허가 규제에 묶여 기술을 썩히고 있던 서구의 유망 스타트업들이 규제 샌드박스와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하는 아부다비로 몰려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p>

<p>사우디아라비아 또한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41세) 왕세자가 진두지휘하는 비전 2030의 핵심 프로젝트인 미래 신도시 네옴(NEOM) 내에 대규모 지속 가능한 식품 생산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사우디 국부펀드(PIF)의 농축산 투자 자회사인 살릭(SALIC)은 전 세계 식량 공급망 지분을 인수하는 동시에 세포 농업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를 급격히 늘리고 있다. 화석연료로 벌어들인 오일머니가 고갈되기 전에 바이오 단백질을 새로운 국부의 원천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p>

<p> </p>

<p><strong>전통 축산업과 중동국가의 세포 배양육 산업 비교</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37 float-center" data-idxno="5153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724px"><img alt="" height="339"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9_51537_579.jpg" width="724"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글로벌 20억 무슬림 할랄 시장의 패권과 전통 축산 벨트의 지각변동</strong></p>

<p>걸프 국가들의 배양육 드라이브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슬람 종교 율법인 할랄(Halal) 규격의 표준화 작업이다.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무슬림은 원칙적으로 알라의 이름으로 정해진 방식에 따라 도축된 고기만을 먹을 수 있으며, 돼지고기나 피를 마시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동물의 세포를 떼어내 영양액 속에서 키워낸 배양육은 과연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가. 이 질문은 전 세계 20억 무슬림 인구, 수천조 원 규모에 달하는 글로벌 할랄 육류 시장의 명운을 가르는 중대한 신학적·산업적 쟁점이다.</p>

<p>걸프 국가들은 이 쟁점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주도하는 게임의 룰로 만들고 있다. 이슬람 율법학자들과 바이오 생명공학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세포 추출 시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적법하게 채취했는지, 배양액에 돼지 유래 성분이나 알코올, 핏물이 섞이지 않았는지 등 구체적인 세부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표준 기관들이 배양육에 대한 할랄 인증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제도화하면, 이 기준은 향후 전 세계 배양육 기업들이 이슬람권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사실상의 글로벌 표준이 된다. 과거 영국과 미국이 공산품과 금융의 표준을 장악해 패권을 누렸듯, 걸프 국가들은 바이오리액터 기술과 결합된 종교적 정통성을 앞세워 미래 할랄 푸드테크 시장의 룰메이커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산이다.</p>

<p>사막에서 불어오는 이 거대한 변화의 바람은 전 세계 전통 농축산업계에 실존적인 위기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동안 중동 지역은 브라질, 호주, 미국, 뉴질랜드 등 전통적인 축산 강국들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다. 실제로 브라질의 세계 최대 육가공 업체인 제이비에스(JBS)나 비알에프(BRF) 같은 기업들은 매년 수백만 톤의 냉동 닭고기와 소고기를 중동에 쏟아부으며 막대한 흑자를 누려왔다. 중동 국가들이 막대한 돈을 주고 사 가던 수입 육류를 자국 내 사막 공장에서 직접 찍어내기 시작한다면, 이들 글로벌 육가공 공룡들의 수익 모델은 근간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p>

<p>더욱 무서운 것은 가격 곡선의 역전 속도다. 과거 배양육은 2013년 마크 포스트(Mark Post, 69세)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학교 교수가 세계 최초의 배양 소고기 햄버거 패티를 공개했을 당시만 해도 패티 한 장 생산에 32만 5,000달러(약 4억 3,500만 원)가 들어가는 값비싼 실험실의 유희에 불과했다. 그러나 걸프 산유국들의 조 단위 자본이 인프라 구축에 본격 투입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대형화된 바이오리액터 설비와 사막의 무한한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된 저렴한 전력이 결합하면서 생산 단가는 가파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1킬로그램당 생산 단가가 전통 도축육과 대등해지는 시점인 가격 패리티(Price Parity)가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일 내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p>

<p>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통 축산업계의 정치적 로비와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전통 축산 강국들이 몰려 있는 서구권에서는 배양육 기술을 둘러싸고 퇴행적인 규제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2023년 말 전통 음식 문화와 자국 농축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배양육의 생산과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에서도 플로리다주와 앨라배마주 등 보수적인 농축산 벨트를 중심으로 배양육 제조와 판매를 불법화하는 주 법안들이 속속 서명됐다.</p>

<p>전통 축산 로비에 발목이 잡힌 서구 국가들이 기술 혁신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사이에, 역설적으로 자본력과 규제 혁신 의지를 갖춘 중동 산유국들이 그 과실을 고스란히 낚아채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와 유럽의 유망한 바이오 기업들이 자국에서의 규제와 자금 경색을 피해 중동으로 연구진과 장비를 통째로 옮겨가는 엑소더스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이다. 세계 농업의 헤게모니가 오랜 세월 군림해 온 아메리카 대륙의 대평원과 유럽의 목초지에서 아라비아반도의 모래사막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p>

<p>사막 한가운데서 피어난 세포 농업은 이제 단순한 식량 생산 기술의 진보를 넘어, 21세기 글로벌 무역과 자본, 그리고 기술 패권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석유라는 유한한 자원으로 쌓아 올린 오일머니가 바이오 생명공학이라는 미래 기술과 결합해 사막의 황무지를 전 세계 단백질의 생산 기지로 탈바꿈시키는 현장은, 다가올 포스트 화석연료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묻는 묵직한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뜻밖의 금요일] 추석, 가장 알맞은 저녁]]></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6</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6</guid>
	  <pubDate>Thu, 24 Sep 2026 22:01:37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추석이 오면 사람들은 같은 말을 되뇐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절제를 노래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뿌리를 캐어보면 사정이 다르다. 한가위는 신라 유리왕 때의 길쌈 놀이인 가배(嘉俳)에서 왔고, 가위는 가운데를 뜻한다. 크다는 뜻의 \'한\'이 앞에 붙어 한가위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 속담은 적당함을 구하는 말이 아니었다. 결핍 없는 충만을 구하는 말이었다. 더도 덜도 없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한가위처럼 풍성하기를 바란 것이다.우리는 지금도 최적화 속에 산다. 다만 이름이 달라졌을 뿐이다. 기상 시간과 수면 시간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저울과 나침반이 계산한 경계 너머로, 손과 음식이 넘쳐 흐른다. 가장 알맞은 저녁은 재어지지 않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6_51526_4115.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26 float-center" data-idxno="5152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저울과 나침반이 계산한 경계 너머로, 손과 음식이 넘쳐 흐른다. 가장 알맞은 저녁은 재어지지 않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6_51526_4115.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저울과 나침반이 계산한 경계 너머로, 손과 음식이 넘쳐 흐른다. 가장 알맞은 저녁은 재어지지 않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추석이 오면 사람들은 같은 말을 되뇐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절제를 노래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뿌리를 캐어보면 사정이 다르다. 한가위는 신라 유리왕 때의 길쌈 놀이인 가배(嘉俳)에서 왔고, 가위는 가운데를 뜻한다. 크다는 뜻의 &#39;한&#39;이 앞에 붙어 한가위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 속담은 적당함을 구하는 말이 아니었다. 결핍 없는 충만을 구하는 말이었다. 더도 덜도 없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한가위처럼 풍성하기를 바란 것이다.</p>

<p>우리는 지금도 최적화 속에 산다. 다만 이름이 달라졌을 뿐이다. 기상 시간과 수면 시간을 앱에 기록하고, 하루의 동선을 알고리즘에 맡기고, 갓생이라는 말로 촘촘한 루틴을 자랑한다. 최적화는 더 이상 공장의 언어가 아니다. 삶 전체를 설계하는 문법이 되었다. 그런데 묻고 싶다. 잘 최적화된 하루가 잘 산 하루와 같은가. 그것은 목적을 묻지 않는다.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산출을 내라고 명령할 뿐이다. 그 명령 앞에서 삶은 관리해야 할 지표로 쪼그라든다. 무엇을 위해 최적화하는가. 이 질문을 잃어버린 최적화는 방향 없는 질주에 가깝다.</p>

<p>여기서 하나의 균열이 생긴다. 우리는 흔히 최적(最適)과 최선(最善)과 적당(適當)과 중용(中庸)을 같은 자리에 놓고 쓴다. 그러나 이 넷은 서로 다른 말이다. 최적은 계산이 도달하는 극점이고, 최선은 도덕이 요구하는 정점이다. 적당은 그 사이 어디쯤에서 멈추는 감각이고, 중용은 매번 다시 찾아야 하는 균형이다. 한가위의 속담이 감춘 충만은 이 넷 중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다. 계산의 끝도 아니고 도덕의 정점도 아니다. 나눔으로만 완성되는 자리다.</p>

<p>명절이 다가오면 잔소리가 예고편처럼 따라붙는다. 취업은 했느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 아이는 왜 안 낳느냐. 이 질문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저마다 자기 기준의 &#39;최선&#39;을 남에게 들이민다는 것. 최선은 원래 개인이 자신에게 묻는 말이었다. 그것이 타인을 향한 잣대가 될 때, 최선은 폭력이 된다. 최적이 계산의 언어라면 최선은 흔히 강요의 언어로 변질된다. 그 자리를 찾아가는 길에 두 편의 소설과 두 사상가가 서 있다. 하나는 완벽하게 설계된 세계를 그린 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마저 계산하려 한 세계를 그린 소설이다. 그 곁에 고대의 중용론과 현대의 의사결정 이론이 나란히 놓인다. 둘은 결국 같은 것을 말한다. 최적은 선이 아니다.</p>

<p> </p>

<p><strong>메소테스의 자리, 소마가 지운 것</strong></p>

<p>올더스 헉슬리는 1932년 『멋진 신세계』에서 완벽하게 설계된 사회를 그렸다. 이 사회는 인간을 알파와 베타와 감마와 델타와 엡실론이라는 계급으로 나누고, 유전자 조작과 수면 중 조건화 교육으로 각 계급을 제 자리에 최적화한다. 슬픔도 고통도 없다. 불쾌한 감정이 올라오면 소마(soma)라는 약이 즉시 지운다. 시스템의 눈으로 보면 이곳은 완전한 선이다. 불행이 없으니 악도 없다.</p>

<p>그러나 정말 그런가. 야만인 구역에서 온 존은 이 완벽함에 맞서 선언한다. 불행해질 권리, 늙고 추해질 권리,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괴로워할 권리를 달라고. 그는 효율이 아니라 고통을 원한다. 고통이야말로 그가 인간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또 다른 인물 버나드는 남들보다 열등하게 태어났다는 열패감에 시달린다. 완벽하게 설계된 세계에서조차 서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적화는 평등을 약속했지만, 실제로 내놓은 것은 또 다른 위계였다. 존은 끝내 이 세계에 동화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최적화된 사회는 그의 죽음마저 통계 한 줄로 흡수해버린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27 float-center" data-idxno="5152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완벽하게 정렬된 칸들 사이, 한 손이 작은 빛을 향해 뻗는다. 판단은 지워지고 습관만 남았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6_51527_4157.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완벽하게 정렬된 칸들 사이, 한 손이 작은 빛을 향해 뻗는다. 판단은 지워지고 습관만 남았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아리스토텔레스라면 이 장면을 어떻게 읽었을까.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중용(中庸, mesotes)을 말했다. 중용은 과도와 부족의 산술적 중간이 아니다. 매 순간, 매 상황에서 다시 찾아야 하는 질적 균형이며, 이를 찾아내는 능력을 그는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 phronesis)라 불렀다. 실천적 지혜는 정답지가 아니다. 판단하는 힘이다. 신세계의 최적화는 이 판단하는 힘을 통째로 삭제한 자리에 세워졌다. 판단할 필요가 없으니 지혜도 필요 없다.</p>

<p>오늘의 추천 알고리즘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살지, 심지어 누구를 만날지까지 계산이 대신 골라준다.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는 조금씩 판단하는 근육을 내려놓는다. 중용은 근육이다.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소마의 자리에 오늘은 무엇이 있는가. 손가락 하나로 넘기는 피드, 끝없이 이어지는 짧은 영상. 불쾌한 순간마다 우리는 화면 속으로 도피한다. 헉슬리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약의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헉슬리가 그린 디스토피아의 진짜 공포는 고통의 제거가 아니라 판단의 제거다. 완벽하게 계산된 선 앞에서 인간은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하지 않는 인간에게 덕은 없다. 덕이 없는 곳에 중용도 없다.</p>

<p> </p>

<p><strong>충분화의 지혜, 회색 신사의 계산</strong></p>

<p>미하엘 엔데는 1973년 『모모』에서 다른 대상을 겨냥했다. 이번엔 시간이었다.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을 찾아가 속삭인다. 수다 떠는 시간, 창밖을 보는 시간, 늙은 부모를 돌보는 시간은 낭비라고. 그 시간을 시간저축은행에 맡기면 삶이 넉넉해진다고. 사람들은 설득당한다. 더 바빠지고, 더 많이 처리하고, 시계를 보는 시간이 늘어난다.</p>

<p>그런데 삶은 풍요로워지기는커녕 메말라간다. 회색 신사들이 요구한 것은 언제나 최적해였기 때문이다. 최적해를 좇는 삶에는 여백이 없다. 여백이 없는 삶에는 우연도, 온기도, 머무름도 없다. 호라 박사가 지키는 시간의 꽃이 하나둘 시들어가는 것은 그래서다. 모모의 친구인 거북 카시오페이아는 늘 반걸음 늦게, 그러나 정확히 필요한 순간에 나타난다. 서두르지 않고도 늦지 않는 존재. 엔데는 그 느린 걸음에 지혜라는 이름을 붙였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28 float-center" data-idxno="51528"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회색 그림자들이 시간을 서랍에 거둬가는 동안, 한 아이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 충분함은 서두르지 않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6_51528_4238.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회색 그림자들이 시간을 서랍에 거둬가는 동안, 한 아이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 충분함은 서두르지 않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 1916~2001)은 1956년 이 여백에 이름을 붙였다. 충분화(satisficing). 인간은 모든 정보를 계산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최적해가 아니라 목표 수준을 넘어서는 &#39;충분히 좋은 해&#39;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 불렀고, 이 공로로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사이먼은 이 문턱을 열망 수준(aspiration level)이라 불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문턱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좋은 선택지가 쉽게 나타나면 문턱은 올라가고, 찾기 어려우면 내려간다. 오늘의 자기계발 담론은 이 문턱을 끝없이 밀어 올리라고만 말한다. 그러나 사이먼의 통찰은 정반대였다. 어떤 순간에는 문턱을 낮추는 것이야말로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p>

<p>최적화가 모든 가능성을 계산한 끝에 하나를 고르는 일이라면, 충분화는 문턱을 넘는 순간 멈추는 일이다. 모모가 지켜낸 것이 바로 이 충분화의 자리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곁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다. 그 비효율 속에서 사람들은 빼앗긴 시간을, 그리고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 사이먼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최적을 포기할 때, 비로소 충분함에 닿는다.</p>

<p> </p>

<p><strong>가배, 나눔이 완성하는 중용</strong></p>

<p>고속도로는 해마다 막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굳이 그 길을 간다. 최적의 경로 안내를 무시하고, 몇 시간을 더 써서라도 고향으로 향한다. 효율로 따지면 명백한 손해다. 그러나 그 손해를 우리는 기꺼이 감수한다. 거기 이미 답이 있다.</p>

<p>헉슬리의 소마와 엔데의 회색 신사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같은 말을 한다. 완벽한 설계는 인간에게서 판단과 여백을 함께 거두어 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과 사이먼의 충분화도 서로 다른 시대의 언어이지만 같은 것을 가리킨다. 선은 계산의 끝에 있지 않다. 선은 매번 다시 찾아야 하는 자리에 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29 float-center" data-idxno="5152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자와 가위는 상 한쪽에 놓아두고, 손들은 서로를 향해 건너간다. 중용은 나눔으로 완성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6_51529_4320.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자와 가위는 상 한쪽에 놓아두고, 손들은 서로를 향해 건너간다. 중용은 나눔으로 완성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그렇다면 한가위는 무엇을 기원한 말인가. 가배는 나눔의 놀이였다. 두 편으로 나뉘어 한 달 내내 길쌈을 겨루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회소곡을 불렀다. 승부의 끝은 축제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의 진짜 뜻은 아마 이랬을 것이다. 넘치더라도 나눌 사람이 있기를. 모자라더라도 나눌 마음이 있기를. &#39;적당함&#39;은 계산이 도달하는 지점이 아니다. 나눔이라는 태도로만 완성되는 자리다.</p>

<p>차례상 음식은 늘 조금 남거나 조금 모자란다.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상차림은 없다. 그런데도 그 자리가 넉넉하게 느껴지는 것은, 남으면 이웃과 나누고 모자라면 서로 양보해온 오래된 습관 때문이다. 계산이 아니라 습관이 중용을 만든다. 올해 한가위, 밥상 앞에 둘러앉은 이들을 보라. 거기 최적은 없다. 최선을 다투는 이도 없다. 다만 알맞게 나눈 저녁이 있을 뿐이다. 그 저녁이야말로, 문학과 철학이 오래도록 찾아 헤맨 중용의 얼굴이다. 가장 알맞은 저녁은 계산되지 않는다. 나누어질 뿐이다.</p>

<p> </p>

<p> </p>

<p><strong>글‧박철웅</strong><br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에디터, 작가, 문화평론가.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IBM, NTT 등에서 마케팅과 컨설팅을 거치며 기술, 산업, 시장 현장을 경험했다. 사회와 문화 예술, 인간을 관통하며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글쓰기를 진행 중이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K 방산 외교 ①] K-방산의 또 다른 사령부, 외교부와 재외공관. 그 현주소]]></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8</link>
	  <dc:creator><![CDATA[신성은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8</guid>
	  <pubDate>Thu, 24 Sep 2026 21:26:40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시리즈를 시작하며20세기 말 국제정치학의 관심은 전통적인 국제정치(International Politics)에서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 세계정치(World Politics), 글로벌 정치(Global Politics)로 빠르게 확장됐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국가 체제가 확립되면서 국제정치가 오랫동안 ‘국가 간의 정치(Politics among Nations)’를 의미했다면, 자본주의의 발전과 세계화는 기업과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등 국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행위자들을 국제정치의 전면으로 끌어냈]]></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AI 이미지"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8_51531_201.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AI 이미지</div><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31 float-center" data-idxno="51531"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AI 이미지"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8_51531_201.png" width="600" />
<figcaption>AI 이미지</figcaption>
</figure>
</div>

<p><strong>시리즈를 시작하며</strong></p>

<p>20세기 말 국제정치학의 관심은 전통적인 국제정치(International Politics)에서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 세계정치(World Politics), 글로벌 정치(Global Politics)로 빠르게 확장됐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국가 체제가 확립되면서 국제정치가 오랫동안 ‘국가 간의 정치(Politics among Nations)’를 의미했다면, 자본주의의 발전과 세계화는 기업과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등 국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행위자들을 국제정치의 전면으로 끌어냈다.</p>

<p>그러나 21세기 국제질서는 역설적으로 다시 ‘국가’와 ‘국경’의 중요성이 커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가이익과 영토, 주권을 둘러싼 충돌이 격화되면서 국제정치에서 국가의 역할은 다시 강화되고 있다.</p>

<p>한동안 세계화와 경제적 상호의존의 확대 속에서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났던 국가안보 역시 다시 국가정책의 핵심으로 돌아왔다. 유럽의 재무장과 세계 각국의 국방비 확대가 이를 보여준다. 군사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방위산업의 전략적 가치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p>

<p>이 변화 속에서 한국 방위산업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오랜 군사적 긴장 속에서 축적해온 무기체계 개발과 생산 기반을 바탕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이제 방산은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이자 국가 전략산업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p>

<p>그러나 방위산업은 자동차나 반도체와 다르다. 무기 수출에는 기업 간 거래만이 아니라 외교와 안보, 정부 간 교섭, 수출금융, 기술이전과 현지 생산, 장기간의 군수지원까지 결합된다. 결국 방산의 경쟁력은 무기의 성능과 가격뿐 아니라 국가의 외교력과도 맞닿아 있다.</p>

<p>이 기획은 이러한 국제정치의 변화 속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방산외교’가 어떤 구조로 움직이고 있으며, 외교부와 재외공관,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그리고 방산기업들이 세계 방산시장에서 어떻게 하나의 국가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p>

<p> </p>

<p><strong> [시리즈 ①] K-방산의 또 다른 사령부, 외교부와 재외공관</strong></p>

<p>K-방산 수출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을 물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방위사업청이다. 실제 무기체계의 수출허가와 기술이전, 정부 간 방산협력에서 방사청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국방부와 산업통상 부처, KOTRA도 각각 군사협력과 산업지원, 정부 간 거래를 담당한다.</p>

<p>그렇다면 외교부는 어디에 있는가?</p>

<p>2026년 9월 현재 외교부 조직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구조가 발견된다. 외교부에는 ‘방산외교국’이나 ‘방산수출과’라는 독립 부서가 없다. 하지만 외교부 공식 업무분장에는 이미 ‘방산협력 총괄’이라는 직무가 명시적으로 존재한다.</p>

<p>그 위치는 유럽경제외교과다. 외교부가 공개한 현재 유럽경제외교과 업무분장을 보면 한 담당자가 영국·아일랜드·네덜란드·폴란드·크로아티아를 맡으면서 동시에 ‘방산협력 총괄(1)’과 ‘EU와의 방산협력(SAFE)’을 담당한다. 별도의 다른 담당자에게는 ‘방산협력 총괄(2)’가 배정돼 있다.</p>

<p>방산을 전담하는 독립 ‘과’는 없지만 적어도 외교부 본부에 방산협력을 총괄한다고 공식적으로 명시된 실무자가 두 자리 존재하는 것이다.</p>

<p>더 흥미로운 것은 같은 유럽경제외교과의 다른 업무다. 폴란드 등 유럽 국가별 경제외교뿐 아니라 EU 경제통상 동향, 수출수주지원단, 정상외교 성과관리, 해외건설, 재외공관 기업활동 강화 사업과 공관장 평가까지 이 과의 업무에 포함돼 있다.</p>

<p>최근 K-방산 수출의 중심지가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유럽으로 이동하고 EU 차원의 방산산업정책이 중요해지면서 외교부 경제외교 조직에서도 방산이 별도의 업무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조직표 자체가 보여준다.</p>

<p> </p>

<p><strong>방산외교 조직을 따라가면 유럽경제외교과에서 끝나지 않는다</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32 float-center" data-idxno="5153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21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8_51532_2135.jp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K-방산 시장은 유럽만 있는 것이 아니다.</p>

<p>천궁-II가 진출한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가 있고, 레드백과 AS9의 호주가 있다. FA-50과 함정 사업이 진행된 동남아시아가 있고, 함정 MRO와 항공·유도무기 시장 진입을 추진하는 미국도 있다.</p>

<p>실제로 외교부가 방산수출을 지원할 때는 유럽경제외교과 하나가 움직이는 구조가 아니다. 2024년 3월 외교부가 개최한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를 보면 실제 지휘체계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외교부는 방산협력 핵심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UAE·인도네시아·카타르·폴란드·호주 등 6개국을 선정해 해당 국가 대사들을 서울로 불러들였다. 회의는 외교부 혼자 개최하지 않았다. 외교부·국방부·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 주관했고 방위사업청까지 참여했다.</p>

<p>더욱 흥미로운 것은 외교부 내부 업무 분담이다.</p>

<p>당시 UAE·인도네시아·폴란드·호주 대사와의 협의자료는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에서 작성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대사 관련 업무협의는 아프리카중동국에서 담당했다. 즉 실제 외교부의 방산외교는 ‘방산과→대사관’ 같은 단선적인 조직이 아니다. 경제외교 조직 + 지역국 + 재외공관이 국가별 프로젝트에 따라 결합하는 구조다.</p>

<p> </p>

<p><strong>경제안보외교과가 방산 전담이라는 설명도 정확하지 않다</strong></p>

<p>여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K-방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경제안보외교 조직이 방산 수출통제와 공급망 문제를 담당한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 외교부 공식 업무분장을 그대로 보면 경제안보외교과에 ‘방산’이라는 담당업무가 명시돼 있지는 않다.</p>

<p>현재 경제안보외교과에는 미국·일본, EU, BRICS, 공급망, 핵심광물, 에너지, ASEAN,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중동, 경제안보 관련 범부처회의 등의 업무가 배정돼 있다. 경제안보외교센터도 이 과에 연결돼 있다.</p>

<p>물론 방산 공급망과 첨단기술 통제가 경제안보와 겹칠 경우 이 조직이 관여할 수 있다. 그러나 공식 직무분장을 근거로 ‘경제안보외교과가 방산수출을 담당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런 부분부터 구분해야 외교부 방산외교의 실제 조직이 보인다.</p>

<p> </p>

<p><strong>외교부가 실제 만든 조직은 ‘수출·수주 외교지원 TF’다</strong></p>

<p>외교부의 방산지원 체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는 ‘수출·수주 외교지원 TF’다.</p>

<p>외교부는 수출과 해외 프로젝트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이 TF를 운영했고 2024년 4월에는 이미 제6차 TF 회의를 열었다. 여기에서 외교부는 재외공관을 수출·수주 전진기지로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다. 그런데 당시 외교부 발표를 자세히 보면 방산 관련 조직이 실제로 등장한다.</p>

<p>외교부는 공관장 주도의 기존 협의체로 해외건설수주지원협의회, 방산수출협의회, 원전수출지원협의회 등을 명시했다. 즉 ‘대사가 방산을 지원한다’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적어도 제도상으로는 주요 공관에서 공관장 중심의 ‘방산수출협의회’를 운영하도록 하는 장치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당시 외교부는 167개 재외공관을 수출·수주 전진기지로 삼고 공관장을 중심으로 현지 공공기관의 역량을 통합하겠다고 밝혔다.</p>

<p>이 대목은 K-방산에서 대사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대사가 직접 K2 전차 가격을 협상하거나 천궁-II의 레이더 성능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p>

<p>현지에 흩어져 있는 대사관·국방무관·KOTRA·공공기관·방산기업을 하나의 팀으로 묶는 사람이 공관장인 것이다.</p>

<p> </p>

<p><strong>외교부가 방산 핵심국 대사 6명을 따로 서울로 불러들인 이유</strong></p>

<p>2024년 3월의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는 외교부 방산외교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대상국은 사우디·UAE·인도네시아·카타르·폴란드·호주였다. 국가 선정만 봐도 당시 K-방산의 지도가 드러난다.</p>

<p>폴란드는 K2·K9·천무·FA-50의 최대 시장이었다. 호주에서는 레드백과 AS9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UAE와 사우디에서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가 대규모 수출시장으로 떠올랐고 인도네시아는 KF-21 공동개발국이었다.</p>

<p>외교부는 이들 국가 대사에게 단순히 ‘열심히 수출을 지원하라’고 주문한 것이 아니었다. 3월 28일 열린 합동회의에는 당시 외교부·국방부·산업부 장관과 방사청장이 모두 참석했다. 회의시간도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였다.</p>

<p>대사들이 각국의 방산시장 상황과 수주 여건을 설명하고 서울의 관계부처가 필요한 지원책을 논의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방산외교에서 대사가 갖는 또 하나의 기능을 보여준다. 현지 정보의 공급자다.</p>

<p> </p>

<p><strong>두 달 뒤에는 공관장 60여 명이 ‘방산수출 회의’에 들어왔다</strong></p>

<p>6개 핵심국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한 달 뒤인 2024년 4월 26일 외교부는 재외공관장회의 기간 중 별도의 ‘방산수출 분과회의’를 열었다. 참석한 공관장은 60여 명이었다. 외교부 제2차관과 국가안보실 제2차장, 방위사업청, 방산기업 관계자도 함께 참석했다.</p>

<p>이 숫자는 의미가 있다.</p>

<p>방산외교가 폴란드·사우디·UAE 같은 기존 대형 수출국 대사 몇 사람의 임무에서 벗어나 수십 개 공관이 신규 시장을 발굴하는 외교업무로 확대됐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이미 2023년 재외공관장회의에서도 본부와 당시 169개 재외공관이 협력해 원전·방산·건설·플랜트의 세일즈 외교에 나서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주문한 바 있다. 방산은 더 이상 일부 공관의 특수 업무가 아니었던 것이다.</p>

<p> </p>

<p><strong>그렇다면 대사는 실제 무엇을 하나</strong></p>

<p>이제 ‘대사의 역할’도 추상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공식 자료를 통해 확인되는 역할은 크게 몇 가지다.</p>

<p>첫째, 주재국 방산시장과 수주 여건을 서울에 보고한다. 2024년 외교부 장관이 UAE·인도네시아·폴란드·호주 대사와 개별 면담했을 때 공식 의제 자체가 각국의 ‘방산시장 동향’, ‘현지 상황’, ‘수출수주 여건’이었다. 사우디와 카타르 대사와의 면담도 마찬가지였다.</p>

<p>둘째, 주재국 정부와 한국 정부 사이를 연결한다. 국방부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대형 방산사업에는 대통령실·재무부·산업부·의회·국영 방산기업이 관여한다. 이들을 상대로 공식 외교채널을 가동할 수 있는 사람이 대사다.</p>

<p>셋째, 한국의 관계기관과 기업을 현지에서 묶는다. 외교부가 공관장 중심으로 ‘방산수출협의회’를 운영하도록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p>

<p>넷째, 서울의 정상·장관급 외교를 현지 수주전과 연결한다. 대형 방산계약에서 기업이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적 문제가 발생하면 외교장관·국방장관 회담이나 정상외교 의제로 격상시키는 통로가 공관이다.</p>

<p>대사는 영업사원이라기보다 현지의 정보수집 책임자이자 정부 간 교섭 창구, 그리고 한국 측 기관들을 조정하는 현장 책임자에 더 가깝다.</p>

<p> </p>

<p><strong>그런데 조직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도 보인다</strong></p>

<p>여기까지가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놓고 보면 몇 가지 문제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p>

<p>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조직의 비대칭성이다. 외교부에는 방산외교 전담 ‘국’이나 ‘과’가 없다. 그런데 유럽경제외교과에는 방산협력 총괄 담당자가 두 자리 존재한다. 반면 방산의 핵심 시장인 중동은 아프리카중동국이 국가별로 대응하고, 호주와 인도네시아 등도 해당 지역 및 경제외교 조직이 결합한다. 공관에서는 대사 중심 방산수출협의회를 운영한다. 서울에서는 수출수주지원 기능과 지역국이 움직이고, 대형 현안이 발생하면 국방부·산업부·방사청이 들어온다. 작동은 하지만 상당히 복잡한 구조다.</p>

<p> </p>

<p><strong>더 큰 문제는 ‘60여 명의 대사가 방산을 얼마나 아느냐’다</strong></p>

<p>두 번째 문제는 전문성이다.</p>

<p>2024년 방산수출 분과회의에 공관장 60여 명이 참석했다는 사실은 외교부가 방산외교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반대편 질문도 가능하게 한다. 60여 명의 공관장이 방산산업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가? 방산은 일반 수출과 다르다.</p>

<p>갑자기 K9과 K2의 성능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구매국의 획득 절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G2G와 기업 간 계약의 차이는 무엇인지, 현지생산과 기술이전이 왜 중요한지, 수출금융과 MRO가 계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정도는 알아야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서울에 보고할 수 있다.</p>

<p>그런데 외교관은 기본적으로 순환보직이다. 폴란드에서 방산을 이해한 외교관이 몇 년 뒤 전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대사가 교체되면 현지 군·정부와 구축한 개인적 네트워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p>

<p>현재 조직표에서 ‘방산협력 총괄’ 담당자는 확인되지만 별도의 방산외교 전문직군이나 독립적인 방산외교 조직은 확인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이 현재 외교부 방산지원 시스템의 가장 큰 숙제다.</p>

<p> </p>

<p><strong>K-방산은 커졌는데 외교부 조직은 따라왔는가?</strong></p>

<p>지난 몇 년 동안 K-방산의 체급은 급격히 달라졌다.</p>

<p>그러나 외교부의 방산지원 시스템은 독립된 방산외교 조직을 만드는 방식보다는 기존 경제외교·지역외교 조직에 방산업무를 얹고, 주요 공관의 대사를 현장 책임자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p>

<p>현재 확인되는 구조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36 float-center" data-idxno="5153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41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8_51536_2552.png" width="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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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div>

<p>이 구조가 한국 방산외교의 실제 모습에 가깝다. 그리고 여기서 앞으로 던져야 할 질문도 명확해진다. 방산협력 총괄 담당자 두 자리와 지역국·수출수주지원 조직의 매트릭스 체제로 수십조원 규모로 성장하는 K-방산을 계속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외교부 안에 방산외교 전문조직과 전문인력을 별도로 구축할 것인가?</p>

<p>또 하나는 대사다.</p>

<p>한국은 이미 수십 명의 대사를 방산수출 전선에 투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대사가 방산외교에 나서야 한다’는 선언을 반복할 단계가 아니다. 어떤 대사를 방산 핵심국에 보내고 있는가. 대사는 어떤 방산교육을 받고 부임하는가. 국방무관과 경제담당관은 어떻게 대사를 보좌하는가. 공관장 교체 뒤에도 기업과 주재국 정부의 네트워크는 유지되는가. 그리고 방산수출 성과가 공관장 평가에 실제로 어떻게 반영되는가.</p>

<p>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K-방산의 다음 단계에서 외교부의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공항까지 나온 트럼프, 시진핑과 무엇을 바꿀 수 있나]]></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7</link>
	  <dc:creator><![CDATA[성일권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7</guid>
	  <pubDate>Thu, 24 Sep 2026 07:40:45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도착했다. 11년 만의 미국 국빈 방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는 공항에 나가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맞았다. 미국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공항에서 직접 영접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본격적인 일정은 24일 백악관 환영식과 정상회담으로 이어진다.의전은 화려하지만 협상은 쉽지 않다. 두 정상 앞에는 관세와 희토류, 대만, 이란과 우크라이나 전쟁, 인공지능(AI)까지 놓여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기디언 래크먼(Gideon]]></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상회담을 둘러싼 희토류·반도체·대만 문제를 표현한 삽화. GhatGPT 이미지." height="26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7_51530_366.png" width="471"  class="type:primaryImage" /><div>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상회담을 둘러싼 희토류·반도체·대만 문제를 표현한 삽화. GhatGPT 이미지.</div><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30 float-center" data-idxno="5153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471px"><img alt="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상회담을 둘러싼 희토류·반도체·대만 문제를 표현한 삽화. GhatGPT 이미지." height="26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7_51530_366.png" width="471" />
<figcaption>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상회담을 둘러싼 희토류·반도체·대만 문제를 표현한 삽화. GhatGPT 이미지.</figcaption>
</figure>
</div>

<p>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도착했다. 11년 만의 미국 국빈 방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는 공항에 나가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맞았다. 미국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공항에서 직접 영접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본격적인 일정은 24일 백악관 환영식과 정상회담으로 이어진다.</p>

<p>의전은 화려하지만 협상은 쉽지 않다. 두 정상 앞에는 관세와 희토류, 대만, 이란과 우크라이나 전쟁, 인공지능(AI)까지 놓여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기디언 래크먼(Gideon Rachman)은 트럼프와 시진핑을 ‘잘못된 시기에 등장한 잘못된 지도자들’이라고 평했다. 세계가 미·중의 조율을 필요로 할수록 양국은 상대에게 양보가 약점으로 읽힐까 경계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p>

<p> </p>

<p><strong>희토류를 쥔 시진핑, 성과가 급한 트럼프</strong></p>

<p>두 정상의 시계부터 다르다. 트럼프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필요하다. 시진핑은 서두를 이유가 적다. 중국은 희토류와 핵심 광물의 수출을 통제할 수 있고, 미국은 자동차·첨단기술·방위산업에 필요한 공급을 안정시키려 한다.</p>

<p>지난해 10월 부산에서 합의한 무역 휴전은 오는 11월 10일 만료된다. 미국은 6개월 연장을 제안했지만 중국은 트럼프의 남은 임기까지 유지하기를 원한다. 휴전 기간조차 양측의 협상력 다툼이다. 미국이 처음에 가볍게 본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은 자국 산업에 빠르게 부담을 안겼다. 중국 역시 미국 시장을 포기하기 어렵다. 거래할 이유는 양쪽에 있지만, 그것이 전략적 신뢰를 뜻하지는 않는다.</p>

<p> </p>

<p><strong>가장 중대한 의제는 대만 문제</strong></p>

<p>가장 위험한 의제는 대만이다. 중국이 곧바로 무력 침공을 선택할 것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이란과 우크라이나에서 겪는 어려움은 전쟁의 비용을 보여준다. 반면 미국의 소진된 무기 재고와 트럼프의 불분명한 대만 방어 의지가 시진핑에게 기회로 보일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으로 계산하든 오판의 위험은 남는다.</p>

<p>중국은 군사적 압박과 함께 대만 내부의 여론·정치에도 접근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당국이 대만 제1야당 국민당의 정리원(鄭麗文·Cheng Li-wun) 주석 측과 방중 메시지를 사전에 조율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대만인의 불신이 곧 중국과의 통일 지지는 아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조사에서 미국을 신뢰할 만한 동맹으로 본 대만 유권자는 24%에 그쳤지만, 중국과의 통일을 지지하는 여론도 8%에 미치지 못한다.</p>

<p>일본의 불안도 여기서 비롯된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는 대만 유사시 일본이 개입할 수 있다는 발언 이후 악화한 중·일 관계를 관리하면서 미국의 안보 공약을 확인하려 한다. 트럼프가 시진핑과 거래를 모색하는 동안 일본에는 미국의 약속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호가 필요하다. 미·중의 합의가 주변국에는 또 다른 불안이 될 수 있다.</p>

<p> </p>

<p><strong>전쟁과 AI, 의전으로 좁힐 수 없는 간극</strong></p>

<p>전쟁 문제에서는 이해관계의 거리가 더 뚜렷하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 중이라고 해서 중국이 그 수습에 나설 이유는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중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엔총회를 계기로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이란 대통령이 뉴욕을 방문했지만, 미국과 이란의 정상 간 대화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미·중 회담 한 번으로 두 전쟁까지 풀릴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다.</p>

<p>AI 역시 협력의 필요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두 나라는 위험 관리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기술 우위를 놓고 경쟁한다. 미국은 중국 기업들이 자국 AI 모델의 출력을 이용해 다른 모델을 훈련하는 ‘증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기술 경쟁국 사이의 선언만으로 안전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마리에처 스하커(Marietje Schaake) 스탠퍼드대 연구원은 기업의 자발적 개발 중단보다 독립적인 검증과 구속력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p>

<p> </p>

<p><strong>한국은 회담 결과를 기다리기만 할 수 없다</strong></p>

<p>한국의 첫 과제는 핵심 광물 공급이 끊겼을 때를 대비하는 일이다. 어떤 품목이 어느 산업에 필요한지, 기업의 재고와 공공 비축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수입선을 늘리는 동시에 폐자석과 사용후 배터리의 재자원화, 희토류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에도 투자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급망 대책은 실제 공급 중단에 견디는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p>

<p>외교에서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현상 유지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 미국과 중국 모두에 한반도 안보와 한국 산업의 우려를 전달해야 한다. 일본·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자원·에너지 협력도 구체적인 조달 경로로 이어져야 한다. 지난 9월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핵심 광물 협력은 그런 선택지를 넓힐 출발점이다.</p>

<p>공항 영접은 트럼프가 이번 만남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의전의 높이가 합의의 깊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희토류 공급과 관세 휴전에서 작은 진전은 가능할 것이다. 대만을 둘러싼 오판을 막을 소통도 필요하다. 한국이 풀어야 할 방정식은 그다음에 있다. 두 정상의 합의가 흔들리거나 끝내 이뤄지지 않을 때에도 우리의 공급망과 외교는 버틸 수 있는가.</p>]]></content:encoded>
	  <category><![CDATA[한반도·동아시아​]]></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경계를 헤엄치다 — 북항 상어와 친수(親水)의 민낯]]></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2</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2</guid>
	  <pubDate>Wed, 23 Sep 2026 22:02:41 +0900</pubDate>
	  <description><![CDATA[9월 18일 아침 8시 57분, 부산 동구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 상어가 나타났다. 3에서 4미터에 이르는 몸통이 물살을 갈랐다. 등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이튿날인 19일 오후 1시 5분, 같은 자리에 다시 신고가 접수됐다. 같은 개체인지, 다른 개체인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이틀 연속이었다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부산시는 안전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 산책로를 걷던 주민들에게, 인근에 사는 시민들에게 물가에 다가서지 말라고 당부했다. 초량동에 사는 한 주민은 그날을 이렇게 전했다. \"코너 부분에 돌멩이 있는 데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경계는 그어졌으나, 물은 그 선을 읽지 않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2_51514_4734.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14 float-center" data-idxno="5151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경계는 그어졌으나, 물은 그 선을 읽지 않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2_51514_4734.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경계는 그어졌으나, 물은 그 선을 읽지 않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9월 18일 아침 8시 57분, 부산 동구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 상어가 나타났다. 3에서 4미터에 이르는 몸통이 물살을 갈랐다. 등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이튿날인 19일 오후 1시 5분, 같은 자리에 다시 신고가 접수됐다. 같은 개체인지, 다른 개체인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이틀 연속이었다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부산시는 안전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 산책로를 걷던 주민들에게, 인근에 사는 시민들에게 물가에 다가서지 말라고 당부했다. 초량동에 사는 한 주민은 그날을 이렇게 전했다. "코너 부분에 돌멩이 있는 데서 상어가 막 요동을 치더라고요."</p>

<p>관계당국은 흉상어과에 속하는 무태상어로 추정했다. 공격 위험이 있는 어종이었다. 중앙해양특수구조단과 연안구조정, 경비함정이 출동했다. 위험 어종 퇴치 장비까지 동원해 상어를 외해로 몰아내려 했다. 작업은 곧 중단됐다. 국립수산과학원이 권고했다. 무리하게 몰아내면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장비가, 결국 물러섰다. 상어는 스스로 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인간은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기다리는 법을 다시 배웠다.</p>

<p>불과 두 달 전, 이 수로는 다른 얼굴이었다. 7월 31일부터 8월 9일까지, 이곳에서는 &#39;2026 북항 오션 SUP 페스타&#39;가 열렸다. 부산시와 해양수산부, 부산항만공사가 함께 연 축제였다. 시민들은 패들보드를 탔고 카약을 저었다. 밤이면 무대 위에서 노래가 흘렀다. 그 여름의 수로는 인간이 물과 친해지는 공간, 이름 그대로 친수(親水)의 공간이었다. 두 달이면, 계절 하나가 겨우 바뀌는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 안에서 같은 수로가 놀이터에서 경계 구역으로 바뀌었다.</p>

<p>가을이 오자, 그 수로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들어왔다. 여름의 지도 위로, 낯선 몸통 하나가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 몸통은 질문 하나를 함께 끌고 왔다. 물과 친하다고 이름 붙인 이 공간은, 대체 누구의 물이었는가.</p>

<p> </p>

<p><strong>경계 위반이라는 사건</strong></p>

<p>친수공원의 수로는 원래 바다와 이어져 있다. 그러나 그 물은 이미 인간의 것으로 분류돼 있었다. 산책로가 나 있고 벤치가 놓여 있고, 여름이면 패들보드가 떠다니는 물이었다. 상어가 헤엄쳐 들어온 것은, 그러니까 낯선 종이 나타난 사건이 아니다. 분류 하나가 어긋난 사건이다.</p>

<p>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는 더러움을 "제자리를 벗어난 물질"이라 불렀다. 신발은 신발장에 있을 때 깨끗하고, 식탁 위에 오르는 순간 더러워진다. 물건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자리가 무너질 때, 비로소 그것은 오염이 된다. 질서란 결국 사물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였다. 상어도 다르지 않았다. 먼바다에서는 그저 포식자였던 몸통이, 친수공원 수로에 들어서는 순간 위협으로 바뀌었다. 같은 지느러미, 같은 이빨을 지닌 채였다. 변한 것은 상어가 아니라 자리였다.</p>

<p>경계를 넘은 것들이 언제나 공포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더글러스는 함께 짚었다. 금기를 어긴 존재는 위험하지만, 동시에 어떤 힘을 지닌다. 성스러운 것과 부정한 것은, 실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언론은 그 양면을 그대로 헤드라인에 옮겼다. 공포를 앞세운 기사 옆에, 호기심을 앞세운 기사가 나란히 걸렸다. 안전 안내 문자가 발송된 바로 그 순간, 공원에는 이미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위험과 구경은,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나란히 태어난 것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15 float-center" data-idxno="5151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물건은 변하지 않는다. 제자리가 무너졌을 뿐이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2_51515_4815.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물건은 변하지 않는다. 제자리가 무너졌을 뿐이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무태상어는 사실 낯선 종이 아니다. 아열대 해역을 포함해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에 두루 분포하며, 한국 연안에서도 이미 서식이 확인된 어종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최근 몇 해 동안 수온이 오르면서 무태상어의 출몰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올여름 동해안에서 확인된 대형 상어 출몰은 46건, 전년 대비 3.8배로 늘었다. 낯선 것은 상어가 아니었다. 상어가 인간의 지도 위로 성큼 걸어 들어온, 그 걸음의 빠르기였다.</p>

<p>그 경계선을 그은 것도, 처음부터 인간이었다. 상어는 그 선을 읽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면 애초에 그런 선은, 바다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p>

<p> </p>

<p><strong>도심이 된 동물원, 시선의 소비</strong></p>

<p>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는 1975년, 상어라는 생물 전체에 식인의 낙인을 찍었다. 이후 오십 년이 지나도록 그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북항의 상어를 마주한 대중의 반응은, 그 낙인과는 다른 결을 보였다.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동시에 카메라를 들었다. SNS에는 지느러미를 담은 짧은 영상이 올라왔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상어에게 별명을 붙였다. 인근 카페는 &#39;상어 빵&#39;과 &#39;상어 라떼&#39;를 내놓았다. 공포는 상품이 될 때 가장 잘 팔렸다.</p>

<p>비평가 존 버거는 동물원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오랜 관계가 끊어진 자리에 남은, 그 단절의 기념비라고. 사람들은 동물원에 가서 동물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눈맞춤은 이미 예전의 것이 아니다. 야생을 잃은 동물은 더 이상 인간을 마주 보지 않는다. 인간만이 일방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움직이지 않는 동물 앞에서 아이들은 묻는다. 왜 저것은 가만히 있느냐고, 죽은 것이냐고. 그 물음은 본디 동물을 향한 것이었으나, 실은 인간 자신을 향한 물음이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16 float-center" data-idxno="5151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눈맞춤은 이미 예전의 것이 아니다. 인간만이 바라볼 뿐이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2_51516_4854.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눈맞춤은 이미 예전의 것이 아니다. 인간만이 바라볼 뿐이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북항의 수로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동물원이 되었다. 며칠 전까지 패들보드가 떠다니던 그 물 위에서, 이제 사람들은 상어를 구경했다.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안전 문자는 여전히 발송되고 있었다. 그러나 위험과 구경은 더 이상 모순이 아니었다.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 두려움을 소비할 수 있었다. 통제된 공포, 안전거리 너머의 스릴이었다. 당국의 언어와 대중의 언어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문장을 썼다. 하나는 경고문이었고, 하나는 해시태그였다.</p>

<p>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상어는 관람을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길을 잃었거나, 먹이를 쫓다 갇혔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생존의 위기를 관광의 소재로 바꾸었다. 별명을 붙이고 빵을 팔고 영상을 올리는 사이, 정작 던져야 할 질문 하나는 조용히 묻혔다. 왜, 상어는 여기 있는가. 스펙터클은 질문을 삼킨다. 소비가 활발할수록, 질문은 더 깊이 가라앉는다.</p>

<p> </p>

<p><strong>예미도중(曳尾塗中), 진흙 속의 것</strong></p>

<p>장자(莊子)의 「추수(秋水)」 편에는 오래된 거북 이야기가 나온다. 초나라 왕이 죽은 지 삼천 년 된 신령한 거북의 등딱지를 비단에 싸서 사당에 모셔두었다는 이야기를, 장자는 낚싯대를 드리운 채 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겨 귀히 여겨지기를 바랐을까,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까. 예미도중(曳尾塗中) —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끄는 것. 장자는 후자를 택하겠다고 답했다. 존귀함보다 살아 있음을 택한 것이다.</p>

<p>북항의 무태상어에게도 같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그 몸통은 사천오백 년이 아니라 사억오천만 년을 헤아리는 계통의 후예다. 공룡이 지상에 나타나기도 전부터, 상어는 이미 바다를 누비고 있었다. 지구가 다섯 차례 대멸종을 지나는 동안에도, 유선형의 몸과 물속의 미세한 전자기장까지 감지하는 정교한 감각기관은 살아남았다. 최상위 포식자로서 먹이사슬의 균형을 지키는, 생태계의 핵심종(keystone species)이었다. 그런 생명체가 지금, 콘크리트 수로에 갇혀 사람들의 렌즈 앞에 놓여 있다. 별명을 얻고, 빵의 이름이 되고, 사당에 모셔진 거북처럼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자유의 이름이 아니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17 float-center" data-idxno="5151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사당에 모셔진 죽음과,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끄는 삶.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2_51517_4942.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사당에 모셔진 죽음과,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끄는 삶.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친수공간이라는 것은 애초에 인간을 위해 설계된 정원이다. 조류의 흐름도, 해양 생물의 이동 경로도 충분히 헤아리지 않은 구조물이었다. 밀물을 따라 들어온 상어에게 그 수로는 생태적 덫, 곧 생태적 트랩(ecological trap)이 되었다.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한 채 갇힌 것은 상어의 실수가 아니라 설계의 허점이었다. 수온이 오르며 서식 범위가 북상하고 연안의 먹이자원이 흔들리는 지금, 이런 충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p>

<p>진흙 속에서 꼬리를 끄는 삶과, 사당에 모셔진 죽음. 인간은 상어에게 후자를 강요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그대로 두는 대신, 구경하고 이름 붙이고 소비했다. 야생을 존중하는 일은 그것을 통제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진흙은 더럽지 않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들의 자리일 뿐이다.</p>

<p> </p>

<p><strong>다시, 친수(親水)를 묻다</strong></p>

<p>친(親)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깝다는 뜻이고, 정을 나눈다는 뜻이다. 그러나 북항의 친수공원이 물과 나눈 정은, 오직 인간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만큼의 정이었다. 패들보드를 띄우고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의 물이었다. 야생의 몫은 애초에 셈해지지 않았다. 인간은 물을 정원으로 들였을 뿐, 바다를 들인 적은 없었다.</p>

<p>이번 사건이 드러낸 것은 그 셈의 허술함이다. 인간은 바다의 일부를 잘라내 공원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나 바다는 경계를 읽지 않는다. 밀물과 썰물은 인간의 도면과 무관하게 드나든다. 상어가 수로에 들어온 것은 침입이 아니라, 애초에 있었던 연결이 드러난 것에 가깝다. 친수공원은 바다와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바다의 연장이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18 float-center" data-idxno="51518"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경계는 지울 수 없어도, 다시 그릴 수는 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2_51518_5021.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경계는 지울 수 없어도, 다시 그릴 수는 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진짜 친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물을 안전하게 구획해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물이 데려오는 낯섦까지 받아들이는 일이어야 한다. 조류의 흐름을 충분히 헤아리고, 해양 생물의 이동 경로를 존중하는 설계. 위험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여지를 남겨두는 설계. 그것만이 친수라는 말에, 부끄럽지 않게 값하는 유일한 방식일 것이다. 경계는 지울 수 없어도, 유연하게 다시 그릴 수는 있다. 인간이 그어놓은 선 바깥에도, 여전히 삶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그 설계는 시작될 것이다.</p>

<p>상어는 결국 스스로 물러갈 것이다. 밀물을 타고 들어왔듯, 썰물을 타고 나갈 것이다. 사람들은 곧 이 소동을 잊을 것이다. 상어 빵의 이름도, 별명도 흐려질 것이다. 그러나 질문 하나는 남아야 한다. 경계를 그은 것은 누구였으며, 그 경계를 진짜로 넘어야 했던 것은 누구였는가. 상어는 그저, 경계를 헤엄쳤을 뿐이다. 그 헤엄이 향한 곳은 도심이 아니라, 처음부터 바다였을 것이다. 친수(親水)라는 두 글자를 다시 쓰는 일은, 그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될 것이다. 북항의 수로 위로, 오늘도 물은 말없이 흐른다.</p>

<p> </p>

<p> </p>

<p><strong>글‧박철웅</strong><br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에디터, 작가, 문화평론가.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IBM, NTT 등에서 마케팅과 컨설팅을 거치며 기술, 산업, 시장 현장을 경험했다. 사회와 문화 예술, 인간을 관통하며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글쓰기를 진행 중이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수익성의 시대, DL그룹은 무엇을 바꾸고 있는가]]></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5</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5</guid>
	  <pubDate>Wed, 23 Sep 2026 17:43:02 +0900</pubDate>
	  <description><![CDATA[기업의 실적을 말할 때 매출은 흔히 성장의 크기를 보여주는 숫자로 읽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매출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매출이 얼마만큼의 이익을 남기는가, 그리고 그 이익이 일회성 반등인지 지속 가능한 사업 경쟁력에서 비롯된 것인가에 있다. 외형의 확장보다 수익성의 질이 기업의 체력을 설명하는 시대다.DL그룹의 올해 상반기 실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단순히 ‘실적이 좋아졌다’는 사실보다 눈여겨볼 것은 석유화학, 에너지, 건설, 호텔 등 서로 다른 사업에서 수익성 중심의 경영이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DL이앤씨가 6월 수주하였던 목동6단지 '아크로 목동리젠시' 단지 투시도. ⓒ DL 제공" height="35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5_51524_3911.jp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24 float-center" data-idxno="5152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DL이앤씨가 6월 수주하였던 목동6단지 '아크로 목동리젠시' 단지 투시도. ⓒ DL 제공" height="35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5_51524_3911.jp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DL이앤씨가 6월 수주하였던 목동6단지 &#39;아크로 목동리젠시&#39; 단지 투시도. ⓒ DL 제공</figcaption>
</figure>
</div>

<p>기업의 실적을 말할 때 매출은 흔히 성장의 크기를 보여주는 숫자로 읽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매출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매출이 얼마만큼의 이익을 남기는가, 그리고 그 이익이 일회성 반등인지 지속 가능한 사업 경쟁력에서 비롯된 것인가에 있다. 외형의 확장보다 수익성의 질이 기업의 체력을 설명하는 시대다.</p>

<p>DL그룹의 올해 상반기 실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단순히 ‘실적이 좋아졌다’는 사실보다 눈여겨볼 것은 석유화학, 에너지, 건설, 호텔 등 서로 다른 사업에서 수익성 중심의 경영이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SMR과 데이터센터 등 미래 성장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p>

<p>DL㈜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2조9,506억원, 영업이익 3,694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2분기에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DL케미칼을 비롯한 석유화학 부문의 수익성 개선과 DL에너지, 글래드 등 주요 자회사의 실적 호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p>

<p>그러나 이 숫자를 글로벌 석유화학 업황의 회복이라는 단순한 문장으로 설명하기에는 현재의 산업 환경이 녹록지 않다. 글로벌 석유화학 산업은 여전히 공급과잉과 중국발 경쟁 심화라는 구조적인 압력을 받고 있다. 범용 제품만으로는 가격 경쟁에서 지속적인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을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보다 무엇을 만들어 얼마나 높은 부가가치를 남길 것인가가 중요해진다.</p>

<p>DL그룹이 스페셜티 제품과 해외 생산 거점 다변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p>

<p> </p>

<p><strong>물량보다 마진, 외형보다 사업의 질</strong></p>

<p>DL케미칼은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4,526억원, 영업이익 1,85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분기보다 229.4%, 전년 동기보다 450.9% 증가했다. 영업이익률 역시 12.7%로 상승했다. 별도 기준에서도 영업이익은 63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59.8% 늘었고,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2분기 6.6%에서 올해 13.8%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p>

<p>특히 주목할 대목은 판매 물량이 모든 제품에서 일제히 늘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부 설비의 가동률 영향으로 폴리에틸렌과 폴리부텐 판매량은 소폭 감소했지만 제품가격 상승과 스프레드 확대가 이를 상쇄했다. 다시 말해 실적 개선의 핵심은 단순한 물량 확대에만 있지 않았다.</p>

<p>기업에게 이것은 꽤 중요한 변화다. 생산량을 늘려 매출을 키우는 방식은 시장이 좋을 때에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지만, 업황이 꺾이는 순간 고정비와 재고 부담이라는 역풍을 맞는다. 반면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구조는 생산량의 절대치보다 제품 믹스와 마진 관리가 중요하다. DL케미칼의 최근 실적은 이러한 전략이 숫자로 나타난 사례로 볼 수 있다.</p>

<p> </p>

<p><strong>버릴 것을 정리해야 남는 것이 선명해진다</strong></p>

<p>미국 자회사 크레이튼의 변화는 더욱 선명하다. 크레이튼은 올해 2분기 매출 8,682억원, 영업이익 1,04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영업이익 45억원과 비교하면 큰 폭의 개선이다. 영업이익률도 0.6%에서 12.0%로 상승했다. 판매량 증가와 제품가격 인상, 스프레드 확대가 동시에 작용했다.</p>

<p>하지만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숫자 이전의 구조조정이다. 크레이튼은 지난해 미국 오하이오주 도버 공장을 폐쇄하고 수익성이 낮은 일부 사업에서 철수하는 한편, 바이오 기반 특수화학제품과 원료 공급망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정리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의 질을 바꾸는 과정이 실적 개선으로 연결되고 있는 셈이다.</p>

<p>기업의 체질 개선은 대개 화려하지 않다. 새로운 공장을 짓고 새로운 시장을 선언하는 일보다 기존 사업에서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크레이튼의 사례는 DL그룹이 말하는 ‘수익성 중심 경영’이 단순한 구호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22 float-center" data-idxno="5152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DL에너지 미국 페어뷰 발전소 전경. ⓒ DL 제공"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5_51522_3334.jp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DL에너지 미국 페어뷰 발전소 전경. ⓒ DL 제공</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에너지, 발전소를 넘어 밸류체인으로</strong></p>

<p>에너지 부문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p>

<p>DL에너지는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74%, 영업이익은 121% 증가했다. 주요 발전소의 전력 판매 증가와 미국 발전소의 용량요금 상승이 실적을 견인했다. 미국 나일스와 페어뷰 발전소 등 글로벌 발전 자산이 안정적인 실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p>

<p>여기에 친환경 발전 포트폴리오 확대가 더해지고 있다. 160MW 규모의 여수 금오도 해상풍력 사업이 2026년 상반기 풍력 고정가격계약 경쟁입찰 공공주도형 부문에 최종 선정되면서 20년 고정가격계약을 통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p>

<p>여기서도 DL그룹의 전략은 비교적 일관된다. 에너지 전환을 단순히 ‘친환경’이라는 가치의 언어로만 접근하지 않고, 장기간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 모델로 연결하려는 것이다. 발전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발전량 자체만이 아니다. 개발과 금융조달, 건설, 운영, 전력 판매를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하느냐가 사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p>

<p>DL그룹이 에너지 사업에서 밸류체인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p>

<p> </p>

<p><strong>건설의 성장법도 달라졌다</strong></p>

<p>건설 부문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감지된다. DL이앤씨는 올해 상반기 매출 3조5,281억원, 영업이익 3,16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53% 증가했다. 상반기 신규수주는 5조2,446억원으로 집계됐다.</p>

<p>건설업의 실적을 평가할 때 수주액만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수주가 많아도 원가가 불어나면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국내 건설산업이 경험한 위기는 바로 이 지점을 보여줬다. 외형 성장을 위해 무리하게 수주한 프로젝트가 원가 상승과 공사 지연을 만나면서 오히려 기업의 재무 부담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p>

<p>DL이앤씨가 선별 수주와 원가 관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경영 전략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수주 규모보다 사업성, 매출보다 마진, 외형보다 현금흐름을 우선하겠다는 방향이다.</p>

<p>상반기 신규수주 5조2,446억원 가운데 도시정비사업뿐 아니라 인프라, 발전·에너지, 데이터센터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건설사의 미래 경쟁력은 더 많은 아파트를 짓는 데만 있지 않다. 에너지와 데이터 인프라처럼 산업 구조의 변화와 함께 수요가 커지는 영역에서 EPC 역량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새로운 경쟁의 장이 될 수 있다.</p>

<p> </p>

<p><strong>재무제표가 말하는 것, 그리고 말하지 않는 것</strong></p>

<p>재무구조는 이러한 전략의 전제다. DL이앤씨는 2분기 말 기준 약 1조2,000억원의 순현금과 86.4%의 부채비율을 기록했다. 2021년 분할 이후 매년 영업현금흐름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안정성을 설명하는 지표다. 회사채 신용등급 ‘AA-(안정적)’과 기업어음 신용등급 ‘A1’을 유지·획득한 것 역시 재무 건전성을 보여주는 자료다.</p>

<p>물론 좋은 숫자가 곧바로 미래의 성공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경쟁력은 한 분기의 영업이익보다 긴 시간 속에서 검증된다. 특히 석유화학은 글로벌 공급망과 원자재 가격, 중국의 생산능력, 환율 등 외부 변수에 민감하다. 발전사업 역시 정책과 전력시장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건설은 금리와 부동산 경기, 원자재 가격이라는 변수를 피할 수 없다.</p>

<p>그럼에도 현재 DL그룹의 행보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 같은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사업 구조 자체를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p>

<p>호텔 사업인 글래드의 실적 개선도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에 힘입어 객단가와 객실점유율이 함께 상승하면서 2분기 영업이익률은 33.1%를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2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하반기에는 가을 관광 성수기와 연말 숙박 수요를 겨냥해 수익성 중심의 객실 판매 전략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p>

<p>석유화학과 건설, 에너지와 호텔은 언뜻 보면 서로 다른 세계다. 그러나 DL그룹의 최근 실적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보면 공통된 방향이 보인다. 무조건적인 확장이 아니라 사업별 경쟁력에 집중하고, 수익성이 낮은 영역은 정리하며,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을 바탕으로 다음 성장동력을 준비하는 것이다.</p>

<p>그리고 그 다음 장에 놓인 이름이 SMR과 데이터센터다.</p>

<p> </p>

<p><strong>다음 산업의 이름은 전력이다</strong></p>

<p>AI의 확산은 데이터센터에 대한 수요를 빠르게 키우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막대한 전력과 냉각, 통신, 운영 인프라가 결합된 복합 산업시설이다. 따라서 건설사의 EPC 역량뿐 아니라 에너지 개발과 발전사업 경험까지 함께 요구된다.</p>

<p>DL그룹이 이 시장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계열사 간 사업 연결이라는 특징이 있다. DL에너지는 국내외 에너지 사업 개발과 금융조달, 발전소 운영 역량을 갖고 있고, DL이앤씨는 발전 플랜트와 SMR·원전 분야의 EPC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대림의 에너지 물류와 트레이딩 역량을 결합하면 개발에서 시공, 운영, 유통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p>

<p>DL건설이 상반기 1,268억원 규모의 부천 AI데이터센터를 수주한 것도 이러한 방향의 구체적인 사례다.</p>

<p>SMR은 더욱 장기적인 사업이다. DL이앤씨는 글로벌 SMR 개발사 엑스에너지와 SMR 표준화 설계 계약을 체결하고 4세대 SMR 시장 진입을 본격화했다. 북미 플랜트 프로젝트 수행 경험과 설계·시공 역량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p>

<p>SMR이 당장 실적을 책임질 사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술의 상용화와 인허가, 경제성, 공급망 구축 등 넘어야 할 문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미래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당장의 매출만이 아니다. 다음 산업 사이클이 열릴 때 어떤 역량을 갖고 시장에 들어갈 것인가도 중요하다.</p>

<p>그런 점에서 SMR과 데이터센터를 하나의 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둘 모두 결국 ‘전력’이라는 거대한 산업의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AI는 전력을 필요로 하고, 산업의 전기화 역시 더 많은 안정적인 전력을 요구한다. 에너지 생산과 인프라 건설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상황에서 발전사업과 EPC, 데이터 인프라를 동시에 갖춘 기업에게 새로운 접점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p>

<p>DL그룹의 전략은 바로 그 접점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23 float-center" data-idxno="5152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DL에너지 미국 나일즈 발전소 전경. ⓒ DL 제공"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5_51523_3438.jp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DL에너지 미국 나일즈 발전소 전경. ⓒ DL 제공</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결국 시험대는 ‘지속 가능한 이익’이다</strong></p>

<p>이해욱 회장 체제의 DL그룹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지금의 실적 개선을 단기적인 업황 반등으로 끝내지 않고 구조적인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가는 일이다. 석유화학에서는 스페셜티 중심의 차별화를 지속해야 하고, 에너지에서는 안정적인 발전 자산과 신재생 사업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건설에서는 수주 확대와 원가 관리 사이의 긴장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SMR과 데이터센터 같은 신사업에서는 ‘미래 성장’이라는 말보다 실제 수주와 사업성, 현금흐름으로 가능성을 증명해야 한다.</p>

<p>결국 기업의 미래는 선언보다 구조에서 드러난다.</p>

<p>DL그룹이 올해 상반기에 보여준 변화는 그래서 단순한 실적 개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석유화학에서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크레이튼에서는 저수익 사업의 정리와 효율화로, 에너지에서는 발전자산과 친환경 발전의 결합으로, 건설에서는 선별 수주와 재무 안정성으로 경쟁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그 위에 SMR과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성장축을 얹고 있다.</p>

<p>기업에게 성장의 시대가 언제나 좋은 시대였던 것은 아니다. 외형을 키우는 일은 때로 가장 쉬운 성장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이익이 남지 않는다면 규모는 오히려 부담이 된다. 반대로 수익성은 화려하지 않지만 기업의 다음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p>

<p>DL그룹이 지금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힘에 가까워 보인다.</p>

<p>매출을 늘리는 기업에서 이익을 남기는 기업으로, 개별 사업의 경쟁력에서 계열사 간 밸류체인의 경쟁력으로, 현재의 현금창출력에서 미래 산업의 진입 역량으로. 방향의 변화가 실적이라는 숫자에 조금씩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p>

<p>물론 그 흔적이 하나의 흐름으로 굳어졌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의 숫자는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DL그룹이 성장의 속도보다 성장의 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고민이 석유화학과 에너지, 건설이라는 기존 사업의 체질 개선과 SMR·데이터센터라는 미래 산업의 준비를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p>

<p>기업의 경쟁력은 결국 무엇을 더 많이 갖느냐가 아니라, 가진 것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서 결정된다.</p>

<p>DL그룹의 다음 성적표 역시 그 연결의 완성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불법 수익에 조세포탈죄 적용'은 왜 위헌소지 논란이 있는 걸까?]]></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4</link>
	  <dc:creator><![CDATA[김시래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4</guid>
	  <pubDate>Wed, 23 Sep 2026 15:18:42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시세조종 의혹 사건의 대법원 파기환송심 핵심 피고인인 라덕연(45) 전 호안투자자문 대표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통정매매와 불법 시세조종 혐의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검찰이 당초 700억 원대 조세포탈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기소하면서 법리적 논쟁의 무게 중심이 형사 단죄에서 조세 및 헌법 체계의 근본적 정합성 문제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특히 라덕연 전 대표 측은 헌법상 기본 원칙을 침해한 과잉 기소이자 부당한 표적 수사라고 강력하게 반발한다.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에서 시세조종 혐의와 별도로 범죄 행위로 얻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불법 수익에 대한 과세, 그것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조세와 형사법, 그리고 자기부죄금지 사이의 팽팽한 경계를 짚어본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4_51525_054.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25 float-center" data-idxno="5152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불법 수익에 대한 과세, 그것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조세와 형사법, 그리고 자기부죄금지 사이의 팽팽한 경계를 짚어본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4_51525_054.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불법 수익에 대한 과세, 그것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조세와 형사법, 그리고 자기부죄금지 사이의 팽팽한 경계를 짚어본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시세조종 의혹 사건의 대법원 파기환송심 핵심 피고인인 라덕연(45) 전 호안투자자문 대표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통정매매와 불법 시세조종 혐의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검찰이 당초 700억 원대 조세포탈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기소하면서 법리적 논쟁의 무게 중심이 형사 단죄에서 조세 및 헌법 체계의 근본적 정합성 문제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p>

<p>특히 라덕연 전 대표 측은 헌법상 기본 원칙을 침해한 과잉 기소이자 부당한 표적 수사라고 강력하게 반발한다.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에서 시세조종 혐의와 별도로 범죄 행위로 얻은 수익에 조세포탈 혐의를 엮어 중형을 유도한 사례는 유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라덕연 전 대표 측은 "불법 행위로 취득한 범죄 수익을 정상적인 과세 대상 소득으로 간주해 포탈죄를 적용하는 구조 자체가 선진 법체계의 비교법적 관점에서 볼 때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한다.</p>

<p> </p>

<p><strong>불법 수익 과세의 국제적 비교와 위헌성 논란</strong></p>

<p>형사법과 조세법의 충돌 문제는 법학계에서도 오랜 기간 격렬한 토론이 이어진 난제다. 범죄 행위로 인한 불법 이득에 세금을 부과하고, 이를 신고·납부하지 않았다고 하여 조세포탈죄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쟁점이다.</p>

<p>미국의 경우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통해 불법 소득에 대한 연방소득세 과세권 자체는 인정하고 있으나, 세법상 소득 신고 의무가 헌법 수정 제5조의 묵비권 및 자기부죄거부특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에 대해 엄격한 사법적 통제를 가해 왔다. 불법 행위자가 스스로 범죄 수익을 세무 당국에 신고하도록 강제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형사상 조세포탈로 가중 처벌하는 구조는 헌법이 보장한 자기부죄 금지 원칙과 충돌할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Marchetti v. United States, 390 U.S. 39 (1968) 판례는 불법도박업자에게 연방정부에 등록하고 직업세를 납부하도록 한 사안으로서, 등록 의무를 이행하면 자신의 불법 도박영업 사실이 국가에 현출되는 구조였다. 연방대법원은 이런 의무이행에 실질적인 자기부죄의 위험이 있다고 보고, 그 불이행에 대한 형사책임을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또 Grosso v. United States, 390 U.S. 62 (1968) 판례도 마찬가지로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p>

<p>독일 연방법원 역시 위법 행위로 얻은 수익이라 하더라도 민사상 반환 의무나 형사상 몰수·추징의 대상이 되는 경우 과세 대상 소득으로 확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대단히 제한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몰수나 추징을 통해 국고로 환수해야 할 범죄 수익에 세금을 매긴 뒤 포탈 혐의까지 얹는 행위는 이중 처벌이자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독일 국세기본법(2025. 1. 23. 개정) 제393조 제2항은 납세자가 조세법상 의무를 이행하면서 세무당국에 공개한 사실이나 증거가 다른 경로를 통하여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알려지더라도, 이를 납세자에게 불리한 비조세범죄의 형사소추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p>

<p> </p>

<p><strong>각국의 불법 수익에 조세포탈죄 적용 여부와 헌법적 쟁점(출처=법무법인 YK 자료 참조)</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21 float-center" data-idxno="51521"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812px"><img alt="" height="724"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4_51521_1751.jpg" width="812"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라덕연 전 대표 측은 국내 역대 시세조종 관련 형사 사건을 전수 조사하더라도, 시세조종 행위 자체로 발생한 차익이나 수수료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조세포탈 혐의를 결합해 추가 기소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라덕연 대표 측은 "검찰이 여론의 압박 속에서 중형 선고를 이끌어내기 위해 유독 자신에게만 비정상적인 법리 잣대를 들이댔다"는 주장이다. 법무법인 YK 등 법조계 일각에서도 조세포탈 혐의가 법원에서 무죄로 판단되거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을 경우, 전체 형량 산정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라덕연 전 대표 변호인 측은 조세포탈 혐의가 배제될 경우, 주가조작 관련 단독 법정형은 대폭 줄어들어 3년 9개월 선고 수준에 그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통한 법리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p>

<p> </p>

<p><strong>피해자들의 이례적 탄원도 눈길</strong></p>

<p>이번 사건의 또 다른 이례적 현상은 사법 역사상 드물게 수백 명에 달하는 투자자들이 피고인인 라덕연 전 대표의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적인 금융사기나 주가조작 사건에서는 피해자들이 피고인의 법정 최고형과 엄벌을 탄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8년 미국 월스트리트를 뒤흔든 버나드 메이도프의 650억 달러(약 86조 4500억 원) 규모 폰지사기 사건 당시 수천 명의 피해자가 엄벌을 요구했던 전례와 비교해도 이번 사건 흐름은 대단히 이례적인 경제 현상이라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동아제약 '오쏘몰 이뮨' - 추석, 반가움이 감염이 되지 않도록]]></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3</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3</guid>
	  <pubDate>Wed, 23 Sep 2026 15:07:33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명절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고,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감염병의 관점에서 보면 이 반가운 풍경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많은 사람이 이동하고, 서로 다른 세대가 좁은 실내 공간에 장시간 머무는 동안 호흡기 감염병이 가족 단위로 번질 가능성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이다.최근 국내외에서 코로나19 관련 지표가 다시 상승하면서 감염병 재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기존 감염이나 백신 접종으로 형성된 면역]]></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동아제약 '오쏘몰 이뮨'. ⓒ 동아제약" height="621"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3_51520_4945.jp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20 float-center" data-idxno="5152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동아제약 '오쏘몰 이뮨'. ⓒ 동아제약" height="621"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3_51520_4945.jp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동아제약 &#39;오쏘몰 이뮨&#39;. ⓒ 동아제약</figcaption>
</figure>
</div>

<p>명절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고,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감염병의 관점에서 보면 이 반가운 풍경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많은 사람이 이동하고, 서로 다른 세대가 좁은 실내 공간에 장시간 머무는 동안 호흡기 감염병이 가족 단위로 번질 가능성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이다.</p>

<p>최근 국내외에서 코로나19 관련 지표가 다시 상승하면서 감염병 재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기존 감염이나 백신 접종으로 형성된 면역을 회피하는 사례가 나타나면서 고령자와 기저질환자처럼 중증화 위험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보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p>

<p>감염병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낮추는 생활의 질서다. 명절을 앞두고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자신의 몸 상태다.</p>

<p>발열이나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있다면 고령층을 방문하는 일을 가급적 미루고, 이동이 필요하다면 자가진단키트 등을 활용해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KTX나 고속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는 KF94 마스크를 착용하고, 여러 사람이 함께 머무는 실내 공간에서는 주기적으로 환기해야 한다. 보도자료는 실내 모임 중 2시간마다 10분씩 창문을 열어 환기할 것을 권고한다.</p>

<p>명절에는 평소와 다른 변수가 하나 더 생긴다. 의료기관과 약국의 운영 시간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연휴가 시작된 뒤 갑자기 필요한 약을 구하려 하면 선택지가 줄어들 수 있다. 해열진통제와 자가진단키트 등 필요한 상비품을 미리 준비하고, 연휴 중 이용할 수 있는 병원과 약국의 위치를 사전에 확인해 두는 것도 생활 속 방역의 일부다. 응급의료포털이나 129 보건복지상담센터를 통해 당번 의료기관을 확인할 수 있다.</p>

<p>하지만 감염병에 대한 대비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이러스를 막는 데서만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평소 몸의 상태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었는지가 감염병이 반복되는 계절에 더욱 중요해진다.</p>

<p>가장 기본적인 것은 수면이다. 보도자료는 하루 7~9시간의 수면을 확보하고 가능하면 취침과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할 것을 권한다. 식사 역시 특정 영양소 하나에 기대기보다 채소와 과일, 단백질, 통곡물, 유제품, 견과류 등 다양한 식품을 통해 균형 있게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p>

<p>면역이라는 말은 때때로 지나치게 거창하게 소비된다. 그러나 일상의 면역은 특별한 한 가지 방법으로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잠을 자고, 먹고, 움직이고, 쉬는 평범한 생활의 축적에 가깝다. 건강은 대개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작은 습관의 형태로 우리 곁에 있다.</p>

<p>다만 바쁜 일상 속에서 식사가 불규칙하거나 여러 식품을 통해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때 건강기능식품을 활용해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최근에는 여러 비타민과 미네랄을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제품들도 출시되고 있다.</p>

<p>동아제약의 ‘오쏘몰 이뮨’도 이러한 제품 가운데 하나다. 제품에는 비타민 C 1,000mg을 비롯해 비타민 A·B·E·K, 아연·셀레늄·엽산 등 18종의 비타민과 미네랄이 복합적으로 설계돼 있으며, 액상과 정제를 함께 구성한 제형을 적용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p>

<p>다만 건강기능식품은 균형 잡힌 식사와 충분한 수면을 대신하는 만능의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활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살피고 필요한 경우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일이다. 제품의 구체적인 기능이나 섭취 방법 역시 개인의 건강 상태와 제품 표시사항을 확인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p>

<p>추석은 결국 사람에게 돌아가는 시간이다. 그래서 명절의 건강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감염되지 않는 것만큼,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감염을 옮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고령의 부모와 조부모, 어린아이, 기저질환을 가진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이라면 더욱 그렇다.</p>

<p>반가움에는 거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 만나지 않는 것이 배려가 되는 순간이 있고, 마스크 한 장과 짧은 환기가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되기도 한다. 명절의 풍경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그 풍경 안에 서로의 몸을 생각하는 작은 질서를 하나 더 놓자는 것이다.</p>

<p>건강을 지키는 일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출발하기 전 자신의 몸을 살피고, 이동할 때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이 모인 공간의 창문을 열고, 잠을 충분히 자고, 끼니를 제대로 챙기는 것. 결국 면역을 돌본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하나의 생명으로 존중하는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몸까지 생각하는 일인지도 모른다.</p>

<p>올해 추석, 오랜만에 만난 가족의 웃음이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면 그 웃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건강의 질서 하나쯤은 함께 챙겨야 할 것이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미국 중간선거 여론조사 분석 ②] 결국 지갑이 결정하나…미국 중간선거 최대 변수로 떠오른 ‘생활비’]]></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1</link>
	  <dc:creator><![CDATA[신성은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1</guid>
	  <pubDate>Wed, 23 Sep 2026 00:27:48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미국 중간선거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판을 움직이는 핵심 변수가 보다 선명해지고 있다. 이민도, 범죄도, 낙태도, 이란 전쟁도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여러 정치적 쟁점을 가로질러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따로 있다.바로 생활비(cost of living)다.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4% 상승했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2.4% 상승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을 뒤흔들었던 기록적인 인플레이션 국면과 비교하면 물가 상승률 자체는 상당 부분 둔화됐다.그런]]></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AI 생성 이미지" height="426"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1_51512_2457.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AI 생성 이미지</div><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12 float-center" data-idxno="5151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AI 생성 이미지" height="426"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1_51512_2457.png" width="600" />
<figcaption>AI 생성 이미지</figcaption>
</figure>
</div>

<p>미국 중간선거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판을 움직이는 핵심 변수가 보다 선명해지고 있다. 이민도, 범죄도, 낙태도, 이란 전쟁도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여러 정치적 쟁점을 가로질러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따로 있다.</p>

<p>바로 생활비(cost of living)다.</p>

<p>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4% 상승했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2.4% 상승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을 뒤흔들었던 기록적인 인플레이션 국면과 비교하면 물가 상승률 자체는 상당 부분 둔화됐다.</p>

<p>그런데 미국 유권자들의 체감은 다르다.</p>

<p>9월 17~20일 실시된 Reuters/Ipsos 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생활비 대응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불과 17%였다. 전체 국정수행 지지율도 32%로 이 조사에서 트럼프의 1·2기 대통령 재임 기간을 통틀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공화당 지지층이다. 공화당원 가운데 트럼프의 생활비 대응을 지지한다는 비율은 올해 초 70%에서 44%로 떨어졌다.</p>

<p>경제통계와 유권자의 지갑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p>

<p> </p>

<p><strong>유권자의 47%가 선택한 단 하나의 문제</strong></p>

<p>이번 중간선거에서 생활비 문제가 어느 정도 중요한지는 여론조사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p>

<p>Reuters/Ipsos가 8월 28~31일 등록유권자들에게 “2026년 중간선거 투표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요인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47%가 생활비를 선택했다.</p>

<p>같은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생활비 문제 대응을 지지한다는 미국 성인은 22%에 그쳤고 71%는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p>

<p>Pew Research Center가 7월 등록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들이 가장 이야기했으면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주관식으로 물었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경제 문제가 29%로 압도적인 1위였다. 그중에서도 생활비와 구매가능성(affordability)이 1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민은 7%, 의료 5%, 외교정책은 4%였다.</p>

<p>Washington Post/Ipsos의 7월 조사에서는 경제와 높은 물가가 자신의 중간선거 투표에 중요한 요인이라고 답한 등록유권자가 54%였다. 이민 28%, 이란·이스라엘 및 외교정책 20%보다 훨씬 높았다. </p>

<p>각 조사는 질문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수치를 직접 비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방향은 일관된다. 2026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경제 문제는 다시 유권자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 가운데 하나가 됐으며, 그 경제 문제의 중심에는 거시경제 성장률보다 생활비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미국 경제를 바라볼 때 흔히 발생하는 착시가 있다.</p>

<p> </p>

<p><strong>인플레이션 3.4%의 함정</strong></p>

<p>인플레이션이 낮아졌다는 말은 물가가 과거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뜻이 아니다. 물가가 올라가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뜻이다. 이미 오른 식료품 가격과 주거비, 보험료, 의료비가 다시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난해보다 물가가 3% 올랐느냐 7% 올랐느냐보다 매달 실제로 지출해야 하는 금액이 얼마냐가 더 직접적인 문제다.</p>

<p>더구나 최근에는 에너지가 다시 변수로 등장했다.</p>

<p>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8월 CPI는 전월보다 0.4% 상승했는데 휘발유 가격이 한 달 동안 3.9% 올랐다. 휘발유 상승만으로 월간 전체 CPI 상승분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에너지 가격은 한 달 동안 2.1% 상승했다. 중동의 군사적 충돌이 이제 미국인의 주유소와 식탁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9월 중순 미국 평균 디젤 가격은 갤런당 6.29달러까지 올라 전년의 3.74달러보다 68% 상승했다. 미국 농민들은 수확철을 맞아 급격하게 증가한 연료비를 부담하고 있고, 운송업계 역시 비용 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 농산물 생산과 냉장운송 비용이 올라가면 그 영향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식료품 가격으로 전가될 가능성도 있다.</p>

<p>경제 문제와 이란 전쟁이 별개의 선거 이슈가 아니게 된 이유다.</p>

<p>유권자 입장에서는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가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으로 전환되고, 다시 물류비와 식료품 가격으로 전달된다. 외교정책이 곧 생활비 문제가 되고 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13 float-center" data-idxno="5151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AI 생성 이미지" height="5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1_51513_2617.png" width="600" />
<figcaption>AI 생성 이미지</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미국 소비자들이 미래를 더 걱정하기 시작했다</strong></p>

<p>더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물가보다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다.</p>

<p>미시간대 소비자조사에서 9월 소비자심리지수 잠정치는 47.8로 떨어졌다. 8월 51.7보다 3.9포인트 낮다. 1년 뒤 예상 인플레이션은 8월 4.0%에서 9월 4.6%로 뛰었다. 이란 전쟁 이전인 2월에는 3.4%였다. 향후 5년의 장기 기대인플레이션도 3.4%로 올라갔다.</p>

<p>이것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신호다. 유권자가 현재 생활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과 앞으로 생활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소비자는 지출을 줄이고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p>

<p>미시간대 조사 책임자인 조앤 슈는 연료가격 상승과 무역 긴장 때문에 소비자들이 앞으로 자신의 지갑에 더 큰 압력이 가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8월 조사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실업보다 더 심각한 어려움이라고 꼽은 소비자가 연초 23%에서 36%로 늘었다. 실업을 선택한 비율은 오히려 14%에서 6%로 떨어졌다.</p>

<p>미국 유권자에게 지금 가장 큰 경제적 공포는 ‘일자리를 잃을 것인가’보다 ‘월급으로 지금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다.</p>

<div id="tem-type-4">
<div class="wrapper">
<p><strong>우리 가족은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가</strong></p>
</div>
</div>

<p>Washington Post/Ipsos 조사에는 미국인들의 경제적 불안을 더욱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질문이 있다. 현재 미국의 상황에서 자신과 가족이 앞으로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다.</p>

<p>59%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p>

<p>식료품 가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응답은 65%였다. 특히 연소득 5만 달러 미만 가구에서는 82%가 식료품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5만~10만 달러 가구에서도 70%, 연소득 10만 달러 이상에서도 56%였다. 이 숫자는 이번 중간선거의 경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p>

<p>생활비 문제는 더 이상 저소득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산층과 비교적 소득이 높은 계층까지 생활비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에서 ‘affordability’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물가상승률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을 살 수 있는가.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가. 자동차 보험료를 낼 수 있는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가. 식료품을 사고도 저축할 돈이 남는가. 결국 현재의 소득으로 과거와 같은 미국식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p>

<p> </p>

<p><strong>공화당 내부에서도 흔들리는 경제평가</strong></p>

<p>더욱 중요한 변화는 이러한 불만이 민주당 지지층이나 무당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p>

<p>9월 17~20일 Reuters/Ipsos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트럼프 국정수행 지지는 73%였다. 올해 1월 86%에서 내려왔다. 경제정책에 대한 공화당원의 트럼프 지지도 역시 80%에서 56%로 하락했고, 생활비 대응은 70%에서 44%로 떨어졌다. 생활비 문제에서는 공화당원 가운데 트럼프의 대응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1%로 지지한다는 응답 44%보다 많아졌다.</p>

<p>트럼프에게 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경제와 생활비가 그의 정치적 복귀 과정에서 핵심적인 약속이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2025년 1월 백악관에 복귀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미국인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겠다고 강조했다. Reuters/Ipsos 조사에서 취임 직후 그의 전체 국정수행 지지율은 47%였다. 9월 20일 조사에서는 32%다.</p>

<p>물론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생활비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란 전쟁과 외교정책, 이민, 정치적 갈등 등 여러 변수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비 문제에서 공화당 지지층 내부의 평가까지 약화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p>

<p> </p>

<p><strong>그렇다고 민주당의 경제정책을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strong></p>

<p>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하나 있다. 유권자들이 트럼프 경제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민주당 경제정책을 신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Pew 조사에서 경제정책에 어느 정당의 입장과 더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민주당은 37%, 공화당은 36%였다. 사실상 동률이다.</p>

<p>Washington Post/Ipsos 조사에서도 경제 문제를 더 잘 다룰 것으로 신뢰하는 정당은 공화당 34%, 민주당 33%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26%가 어느 당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26년 중간선거의 경제 문제가 복잡해진다.</p>

<p>생활비에 대한 불만이 크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현재 나타나는 현상은 오히려 집권세력의 경제운영에 대한 불만과 야당의 경제적 대안에 대한 제한적인 신뢰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에 가깝다. 결국 남은 선거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정당이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하느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p>

<p>누가 유권자의 생활비를 실제로 낮출 수 있다고 설득하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p>

<p> </p>

<p><strong>GDP보다 장바구니가 중요해진 선거</strong></p>

<p>경제학자들이 경제를 평가할 때는 GDP 성장률, 고용, 생산성, 기업투자, 실질임금 같은 지표를 종합적으로 본다. 하지만 선거에서 유권자가 보는 경제는 훨씬 단순하다. 주유소 가격표와 슈퍼마켓 영수증, 월세와 모기지, 보험료와 의료비다.</p>

<p>그래서 경제지표가 반드시 투표행태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p>

<p>특히 인플레이션은 정치적으로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물가 상승률이 떨어져도 이미 올라간 가격은 소비자의 기억 속에 남는다. 임금이 물가만큼 상승하더라도 소비자는 임금 인상은 자신의 노력에 따른 결과로, 가격 상승은 정부와 경제정책의 실패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일 수도 있다.</p>

<p>2026년 미국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경제통계와 체감경제의 간극’이다.</p>

<p>8월 CPI는 전년 대비 3.4% 상승했다. 그러나 7월 Washington Post/Ipsos 조사에서는 미국인의 65%가 식료품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답했고, 9월 미시간대 소비자심리는 47.8까지 떨어졌다. 숫자로 보는 경제와 생활에서 느끼는 경제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p>

<p> </p>

<p><strong>결국 11월 3일 투표장에 가져가는 것은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영수증’</strong></p>

<p>1편에서 살펴본 최근 전국 의회투표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후보 지지가 공화당 후보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경합지역에서는 두 정당의 격차가 훨씬 작다. 따라서 남은 기간 경제와 생활비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중요하다.</p>

<p>특히 세 가지 숫자를 계속 추적할 필요가 있다.</p>

<p>첫째는 휘발유와 에너지 가격이다. 중동 상황과 직접 연결돼 있다.</p>

<p>둘째는 식료품과 주거비다. 소비자가 가장 반복적으로 지출하기 때문에 체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p>

<p>셋째는 소비자의 기대인플레이션이다. 현재 가격보다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공포가 정치적으로 더 강력하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p>

<p>9월 21일 공개된 Reuters/Ipsos 조사에서 생활비 대응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는 17%까지 내려갔다. 동시에 민주당은 11월 중간선거 의회투표 의향에서 공화당에 8%포인트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Reuters/Ipsos가 올해 실시한 조사 가운데 가장 큰 격차다. 그러나 아직 선거일까지 시간이 남아 있고 전국 여론조사 격차가 개별 경합지역의 실제 결과로 그대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다.</p>

<p>따라서 현재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느 정당이 의회를 차지할 것이라는 결론이 아니다. 보다 분명한 것은 경제 문제가 다시 미국 선거의 중심으로 돌아왔고, 그 경제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p>

<p>유권자들이 묻는 것은 미국 GDP가 몇 퍼센트 성장했느냐가 아니다.</p>

<p>“지난달보다 이번 달 생활이 나아졌는가.” “내 월급으로 식료품과 주거비, 기름값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는 나아질 것인가.”</p>

<p>11월 3일 미국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가져가는 경제지표는 어쩌면 정부의 통계표가 아니라 자신의 장바구니와 주유소 영수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또 다른 질문이 나온다. </p>

<p>생활비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공통 관심사라면, 경제 이외의 이슈에서는 어느 정당이 어떤 유권자 집단의 신뢰를 얻고 있는가. 이민과 범죄에서는 공화당에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주면서 의료·낙태 등에서는 민주당에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주는 유권자들이 실제 투표에서는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비평의 온도] 넷플릭스 '스캔들', 위험한 전언(傳言)의 계보]]></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0</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0</guid>
	  <pubDate>Tue, 22 Sep 2026 21:57:53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캔들〉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정지우 감독이 연출한 이 8부작은, 2003년 한국 영화사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를 원형 삼아 다시 태어났다. 조선이라는 완고한 유교 질서 아래, 인간의 본능과 욕망은 여전히 숨을 죽인다. 지혜를 품고도 여성이라는 신분에 갇힌 조씨부인(손예진), 조선 최고의 연애꾼 조원(지창욱), 그리고 이 위험한 내기의 표적이 된 절개의 여인 안희연(나나). 세 사람이 벌이는 잔혹한 게임은 다시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욕망은 시대의 옷만 갈아입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캔들'의 공식 포스터. ⓒ 넷플릭스"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0_51507_5518.jp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07 float-center" data-idxno="5150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캔들'의 공식 포스터. ⓒ 넷플릭스"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0_51507_5518.jp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39;스캔들&#39;의 공식 포스터. ⓒ 넷플릭스</figcaption>
</figure>
</div>

<p>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캔들〉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정지우 감독이 연출한 이 8부작은, 2003년 한국 영화사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를 원형 삼아 다시 태어났다. 조선이라는 완고한 유교 질서 아래, 인간의 본능과 욕망은 여전히 숨을 죽인다. 지혜를 품고도 여성이라는 신분에 갇힌 조씨부인(손예진), 조선 최고의 연애꾼 조원(지창욱), 그리고 이 위험한 내기의 표적이 된 절개의 여인 안희연(나나). 세 사람이 벌이는 잔혹한 게임은 다시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욕망은 시대의 옷만 갈아입을 뿐, 좀처럼 늙지 않는다.</p>

<p>반응은 뜨거우면서도 갈린다. 공개 하루 만에 국내 차트 상위권에 안착했으나, 평단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파격적인 성적 긴장감과 세 배우의 절제된 연기에는 호평이 따르지만, 영화 버전의 미학적 충격에 익숙한 이들은 시리즈 특유의 완만한 호흡과 수수한 영상미를 아쉬워한다. 판소리와 민화, 보이스오버로 전달되는 서신이 감정의 밀도를 높였다는 평가와, 오히려 자극을 줄였다는 평이 팽팽히 맞선다. 같은 장면을 두고 이렇게 반응이 갈리는 작품은 드물다. 그만큼 이 시리즈가 건드린 신경이 예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p>

<p>그러나 호불호 너머에, 훨씬 오래된 유산이 있다. 〈스캔들〉은 2003년 영화를 거쳐, 1782년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가 발표한 프랑스 서간 소설 『위험한 관계』에 그 뿌리를 둔다. 프랑스 혁명 직전 귀족 사회의 도덕적 파산을 밀서로 파헤쳤던 원작은, 시공간을 건너 조선 후기 북촌이라는 금기의 공간에서 다시 피어난다. 300년에 가까운 시간을 건너, 왜 하필 편지라는 형식이 되풀이해 소환되는가. 이 오래된 서사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이제 추적할 차례다.</p>

<p> </p>

<p><strong>가면이 진심을 대신할 때</strong></p>

<p>서간체(epistolary)는 문학사에서 가장 오만한 거짓말을 위해 발명된, 가장 정직해 보이는 가면이다.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슬픔』이 유서 같은 고백으로 유럽을 감성의 열병에 빠뜨렸다면,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는 같은 형식을 전략적 무기로 벼려냈다. 편지는 본래 발신자와 수신자, 단둘의 밀실을 전제한다. 그 묵계 속에서 문장은 날것의 진심으로 위장되고, 여기서 서간체 고유의 효용, 핍진성(verisimilitude)이 태어난다. 제3자를 거치지 않고 당사자의 목소리로 곧장 전해지는 말은, 훔쳐본 일기장처럼 의심할 수 없는 현실감을 입힌다. 가면은 언제부터 얼굴이 되었는가. 편지의 역사는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p>

<p>서간체는 다성성(polyphony)의 형식이기도 하다. 하나의 절대적 화자가 사건을 독점하는 대신, 복수의 발신자가 저마다의 시각으로 사건을 교차한다. 메르퇴이유 후작 부인과 발몽 자작, 그리고 유혹의 희생양들이 주고받는 편지는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비추며, 독자에게 교차 검증을 통해 진실에 닿을 수 있다는 착각을 심는다. 주고받음 자체가 서사를 밀고 가는 동력이니, 그 상호작용은 삼인칭 관찰자보다 더 강력하게 진실을 담보하는 듯한 환영을 만든다. 목소리가 많아질수록 진실은 오히려 흐려진다는 역설을, 우리는 이때 처음 마주한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08 float-center" data-idxno="51508"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위험한 관계. (바비에르, 조지) & CHODERLOS DE LACLOS, 피에르 AF. Paris 발행 Le Vasseur et Cie., 1934. ⓒ AbeBooks" height="41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0_51508_254.jp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위험한 관계. (바비에르, 조지) & CHODERLOS DE LACLOS, 피에르 AF. Paris 발행 Le Vasseur et Cie., 1934. ⓒ AbeBooks</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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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p>그 담보는 실은 허약하다. 편지는 언제나 연출이고, 계산된 편집이다. 설득하고 유혹하고 기만하기 위해 가공된 문장은, 사실 진실을 가장 잘 숨기는 가림막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편지 앞에서 무장 해제되는가.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말한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의 논리를 빌리면 답은 명료해진다. 인간은 무대 위에서 자아를 연출하는 배우이며, 편지는 그 연출이 상연되는 가장 은밀한 프런트스테이지(front stage)다. 백스테이지의 진심은 감춰진 채, 무대에 오른 문장만이 진심으로 승인받는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흐려질 때, 편지는 이미 연기다. 독자와 수신자는 가면 뒤의 의도를 알면서도, 그 밀실의 감각에 기꺼이 매혹된다.</p>

<p>〈스캔들〉은 이 탈진실적 속성을 조선이라는 무대, 서화(書畵)라는 매개로 옮겨 놓는다. 조씨부인과 조원이 주고받는 서신과 그림은 마음의 교류가 아니다. 타인의 욕망을 조작하고 제 정체를 숨기기 위해 설계된, 치밀한 기호의 게임이다. 먹으로 그어 내린 붓선 하나, 시조 한 구절에 담긴 것은 순수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를 궁지로 모는 계산된 덫이다. 서화는 전언을 낳고, 그 전언은 다시 오인을 부른다. 진짜 욕망과 위장된 유혹의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붓끝의 떨림조차 연기라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p>

<p> </p>

<p><strong>도착하지 않는 편지들</strong></p>

<p>관객은 매 순간, 전언이 전언을 낳는 전형적인 탈진실(post-truth)의 도표를 목격한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져야 한다. 편지는 과연 도착하는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우편엽서』에서 이렇게 썼다. 우편은 목적지에 반드시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이 우편적 원리(le principe postal)는, 발신된 의미가 수신자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고 도중에 분산되고 오독되며 흩어진다는 산종(散種, dissemination)의 논리와 맞닿는다. 편지는 발신되는 순간 이미 발신자의 손을 떠나, 예측할 수 없는 해석의 그물 속으로 흩뿌려진다. 발신인은 늘 확신하지만, 수신인은 늘 오해한다. 조씨부인의 서신도, 조원의 답장도 목적지에 온전히 닿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 어긋남 위에서 서사는 자란다.</p>

<p>이 지점에서 비평은 작품 속 치정을 넘어, 우리가 &#39;전통&#39;이나 구체제(舊體制, Ancien Régime)라 부르는 거대한 구조의 본질로 확장된다. 조선을 지배했던 도덕과 절개, 가부장적 질서와 체면은 정말 단단한 진실 위에 서 있었는가. 〈스캔들〉이 은밀한 서화를 통해 들추는 구체제의 실상은, 실은 세대를 거쳐 전언되어 온 &#39;진실이고픈 것들&#39;의 총합에 지나지 않는다. 규범이란, 어쩌면 가장 오래 반복되어 믿게 된 소문의 다른 이름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09 float-center" data-idxno="5150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도착하지 않는 편지들 — 흩어지는 전언, 닿지 않는 목적지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0_51509_1018.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도착하지 않는 편지들 — 흩어지는 전언, 닿지 않는 목적지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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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p>유교적 명분론과 숭고한 정절이라는 미명은, 삶과 본능을 억압한 채 사대부라는 기득권층이 제 체제를 지키려고 주고받은 거대한 서간이자 위선적 전언이었다. 당대가 견고한 절대 진실이라 믿었던 규범은, 조씨부인과 조원의 먹물 자국처럼 수없이 가공되고 왜곡된 소문의 집합체였던 셈이다. 라클로가 프랑스 혁명 직전 귀족 사회를 향해 던졌던 서간체의 서늘한 메스는, 〈스캔들〉의 붓끝을 통해 조선 후기 양반 사회의 가식적 뼈대를 정확히 겨눈다.</p>

<p>붉은 인장과 먹 향 뒤에 숨은 욕망의 거래들. 전언이 진실을 대체하고, 가면이 얼굴이 되는 이 유혹의 서간극은 구체제라는 거대한 허상이 어떻게 스스로를 밀폐하고, 또 어떻게 자기 파멸로 걸어 들어가는지를 증명한다. 도착하지 않는 편지는, 그러므로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애초에 도착할 필요가 없었던 권력의 언어다. 진실이 아니라 효과를 노렸으므로. 목적지를 잃은 편지가 오히려 목적을 달성한다는 이 역설이, 〈스캔들〉을 300년 묵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이야기로 만든다.</p>

<p> </p>

<p><strong>세기를 건너온 구체제의 초상</strong></p>

<p>『위험한 관계』는 1782년 출간 직후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었다. 귀족 사회의 부패를 노골적으로 파헤친 탓에, 왕실과 상류층은 "도덕을 해치는 위험하고 음란한 불온서적"이라 비난했다. 판매는 폭발했으나 상류사회에서는 공공연히 읽는 것조차 금기시되었고, 몰수와 소각의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평단은 이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읽는다. 통속적 스캔들 소설이 아니라, 구체제의 위선과 모순을 겨눈 사회 비판 소설이자 심리 소설의 걸작으로. 불태워졌던 책이 고전이 되기까지, 2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이다.</p>

<p>이 서사는 시대와 국가를 넘나들며 거듭 변주되었다. 〈위험한 관계〉(1988, 스티븐 프리어스)는 18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를 가장 충실히 고증한 작품으로, 글렌 클로즈와 존 말코비치, 미셸 파이퍼가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 각색상과 의상상을 받았다. 거의 동시에 만들어진 〈발몽〉(1989, 밀로스 포만)은 콜린 퍼스를 앞세워 조금 더 경쾌하고 낭만적인 톤을 택했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1999, 로저 컴블)은 무대를 현대 뉴욕 상류층 하이틴 세계로 옮겨 라이언 필립, 리즈 위더스푼, 사라 미셸 겔러를 내세워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이재용)로 당도했다. 무대를 조선 후기로 완벽히 로컬라이징한 이 작품에서, 배용준과 이미숙, 전도연은 절정의 연기와 아름다운 고증으로 극찬을 받았다. 반면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위험한 관계〉(2012, 허진호)는, 장동건과 장쯔이, 장백지가 출연했음에도 흥행과 평단 모두에서 외면당했다. 흥행의 성패는 갈렸으되, 이야기의 골격만큼은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10 float-center" data-idxno="5151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위험한 관계'(1988), '발봉'(1989),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1999),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2003)의 공식 포스터. ⓒ 워너 브라더스, 오리온 픽처스, 콜럼비아 픽처스, CJ ENM" height="6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0_51510_2627.jp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39;위험한 관계&#39;(1988), &#39;발봉&#39;(1989), &#39;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39;(1999), &#39;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39;(2003)의 공식 포스터. ⓒ 워너 브라더스, 오리온 픽처스, 콜럼비아 픽처스, CJ ENM</figcaption>
</figure>
</div>

<p>이 계보가 후대에 남긴 것은 형식을 넘어선다. 메르퇴이유 후작 부인과 발몽 자작은 뛰어난 지성과 계략을 지닌 &#39;매혹적이고 입체적인 악인&#39;의 원형이 되어, 이후 문학과 영화 속 팜파탈(femme fatale)과 소시오패스적 조종자 캐릭터의 시초로 자리 잡았다. 특정 인물을 유혹해 순결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내기하는 서사 구조는, 넷플릭스 하이틴물과 숱한 로맨스·막장 드라마의 클리셰가 되었다. 복수나 내기로 접근했다가 진짜 사랑에 빠져 파멸하는 플롯은, 모두 이 작품에 빚지고 있다. 우리가 익숙하다고 여기는 그 많은 드라마의 문법이, 실은 한 통의 편지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였다.</p>

<p>프랑스 혁명 직전 귀족들의 데카당스와 조선 양반 사회의 가식적 도덕주의는, 서구와 동양이라는 이질적 토대 위에서도 놀랍도록 정확히 겹친다. 무너지기 직전의 체제일수록, 그 안의 인간은 더 화려하게 타락한다. 결국 〈스캔들〉이 펼치는 유혹과 배신의 내기는 멜로드라마를 넘어선다. 인간을 억압하는 체제를 향한 비틀린 반항이며, 자기 파멸을 무릅쓰고라도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의 잔혹한 본질에 관한 질문이다. 체제는 무너져도, 그 체제가 길러낸 욕망의 습관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p>

<p> </p>

<p><strong>느려진 맥박과 미완의 유혹</strong></p>

<p>넷플릭스 〈스캔들〉의 가장 뚜렷한 차별점은, 8부작이라는 형식의 확장과 미장센에 부여된 색채의 기호학이다. 두 시간 남짓했던 이전 영화들이 유혹의 성사와 파국으로 치닫는 속도감에 집중했다면, 정지우 감독은 러닝타임을 늘려 인물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조씨부인(손예진)에게는 억압과 위선을 상징하는 녹색을, 조원(지창욱)에게는 쾌락과 공허가 뒤섞인 청색을, 희연(나나)에게는 순백에 가까운 소색을 입혀 각자의 서사를 시각으로 직조했다. 여기에 판소리와 전통 종이꽃인 채화, 한옥의 밝은 목재 톤 같은 한국적 미학을 세밀히 엮어 시청각의 층위를 두텁게 쌓아 올린 점은, 이 시리즈가 지닌 단연 탁월한 지점이다. 색은 대사보다 정직하다. 이 작품은 그 정직함을 가장 잘 활용할 줄 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녹색과 청색과 소색은, 말하지 않고도 세 사람의 운명을 이미 예고한다.</p>

<p>그러나 이 탁월함은 역설적으로 가장 뼈아픈 아쉬움을 낳는다. 서간체 원작이 지녔던 치밀한 속도감과, 내기라는 &#39;유혹의 게임&#39;이 주는 도파민은 긴 호흡 속에서 서서히 휘발된다. 날 선 텐션과 짜릿한 카타르시스에 익숙한 대중에게, 인물의 내면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완만한 전개는 종종 팽팽함을 잃은 지루함으로 다가온다. "욕망은 뜨거운데 재미는 미지근하다"는 세간의 평은, 이 작품의 딜레마를 정확히 찌른다. 서사를 팽팽히 끌고 가야 할 장르적 본분이, 인물의 심리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려는 작가주의적 야심과 부딪히며, 동력을 상당 부분 잃었다. 깊이를 택하면 속도를 잃는다. 이 시리즈는 그 오래된 딜레마를 다시 한번 증명한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11 float-center" data-idxno="51511"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캔들'의 한 장면. ⓒ 넷플릭스"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60_51511_2923.jp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39;스캔들&#39;의 한 장면. ⓒ 넷플릭스</figcaption>
</figure>
</div>

<p>넷플릭스 〈스캔들〉은 욕망의 해부도라는 측면에서 이전 작품들을 넘어서는 세밀함을 성취했다. 조씨부인의 서늘한 기품과 조원의 텅 빈 눈동자는, 길어진 러닝타임 속에서만 포착되는 짙은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원작 특유의 날카로운 유희와 도발적인 리듬을 잃어버린 채, 발걸음은 한없이 진지해졌다. 이것은 짜릿한 스릴러라기보다, 파멸을 향해 걸어가는 인물들의 무거운 심리 관찰기에 가깝다. 고전의 옷을 입고 가장 빠른 디지털 플랫폼에 섰으나, 그 안에서 뛰는 심박수는 치명적인 유혹의 속도를 온전히 따라잡지 못한다. 절반의 성취, 그러나 나머지 절반이 궁금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도착하지 않은 편지의 나머지 반쪽을, 우리는 결국 직접 열어보고 싶어진다.</p>

<p> </p>

<p> </p>

<p><strong>글‧박철웅</strong><br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에디터<br />
작가‧문화평론가 <br />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 전공<br />
IBM과 NTT에서 마케팅과 컨설팅 담당<br />
2011년 『원순씨를 부탁해』 출간<br />
비평적 글쓰기, 사회, 문화 예술과 인간을 관통하는 글을 쓰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나무를 베는 도시는 시민의 기억도 베어낸다]]></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9</link>
	  <dc:creator><![CDATA[성일권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9</guid>
	  <pubDate>Tue, 22 Sep 2026 07:37:35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도시는 나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다만 개발에 방해되지 않을 때까지만이다. 여름에는 그늘이 필요하다며 나무를 심고, 겨울이면 낙엽이 지저분하다며 가지를 자른다. 미세먼지를 줄이고 도시의 온도를 낮춘다는 이유로 가로수를 칭찬하다가도 간판을 가리고 열매에서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제기되면 하루아침에 베어낸다. 나무는 도시의 식구가 아니라 필요할 때 쓰고 불편하면 치우는 시설물에 머문다.조경학자 최진우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없다』는 바로 이 익숙한 관계를 뒤집는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나무를 ‘아낌없이 주는 존재’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이름을 부르면 관계가 시작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9_51506_4010.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03 float-center" data-idxno="5150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500px"><img alt="" height="709"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9_51503_366.jpg" width="5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도시는 나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다만 개발에 방해되지 않을 때까지만이다. 여름에는 그늘이 필요하다며 나무를 심고, 겨울이면 낙엽이 지저분하다며 가지를 자른다. 미세먼지를 줄이고 도시의 온도를 낮춘다는 이유로 가로수를 칭찬하다가도 간판을 가리고 열매에서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제기되면 하루아침에 베어낸다. 나무는 도시의 식구가 아니라 필요할 때 쓰고 불편하면 치우는 시설물에 머문다.</p>

<p>조경학자 최진우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없다』는 바로 이 익숙한 관계를 뒤집는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나무를 ‘아낌없이 주는 존재’로 미화해왔다. 나무는 그늘과 열매를 내주고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무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서사다. 일방적인 희생을 아름답게 포장해온 셈이다. 저자는 묻는다. 나무는 정말 아무런 대가 없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어야 하는가. 도시에서 나무가 자기 몫의 땅과 햇빛, 물과 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가.</p>

<p>이 책은 나무를 인간에게 필요한 자원이나 풍경의 배경이 아니라, 도시의 한자리에서 자기 몫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본다. 한 그루의 나무를 살펴보는 일은 곧 그 나무를 둘러싼 사람과 행정, 자본과 개발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따라서 나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도시정치의 이야기로 확장된다.</p>

<p> </p>

<p><strong>이름을 부르면 관계가 시작된다</strong></p>

<p>책의 출발점은 거창한 생태담론이 아니다. 저자가 20년 넘게 도시의 나무 곁을 걸으며 만난 구체적인 장면들이다. 서울 응암로의 말라 죽은 플라타너스 앞에 영정사진을 세운 사람들, 덕수궁 돌담길의 벌목 위기에서 나무를 지킨 시민들, 전주천 버드나무가 잘려 나간 뒤 그 죽음을 애도한 주민들, 오래된 나무에 이름을 붙이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p>

<p>2022년 1월 서울 응암로에서는 말라 죽은 플라타너스 세 그루 앞에 검은 리본을 단 사진 액자가 놓였다. 사람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무를 바라봤다. 나무의 죽음을 추모하는 작은 장례식이었다. 나무가 사라질 때 함께 지워지는 것은 그늘만이 아니다. 그 곁을 지나온 사람들의 기억과 시간이 함께 사라진다.</p>

<p>2026년 5월에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백 년 넘은 은행나무가 갑자기 말라갔다. 주민들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누군가 나무 밑동에 전동드릴로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넣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시민들은 나무에 ‘수화(樹話)’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근 환기미술관을 기리는 화가 김환기의 호이면서, 말 그대로 ‘나무의 이야기’라는 뜻이었다. 이름을 얻은 순간, 은행나무는 더 이상 익명의 시설물이 아니었다. 시민들이 안부를 묻고 회복을 요구하며 그 권리를 대신 말해야 할 존재가 됐다.</p>

<p>책을 관통하는 문장도 여기서 나온다.</p>

<div id="tem-type-4">
<div class="wrapper">
<p>이름을 부르면 관계가 시작된다.</p>
</div>
</div>

<p>나무의 종을 구별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그루만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다. 이름을 붙이면 잎의 색이 달라진 것이 보이고, 뿌리 주변에 시멘트가 덮였는지, 불법 현수막이 줄기를 옥죄고 있는지 지나치기 어려워진다. 이름은 관심을 낳고, 관심은 관계를 만들며, 관계는 마침내 행동으로 이어진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06 float-center" data-idxno="5150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이름을 부르면 관계가 시작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9_51506_4010.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이름을 부르면 관계가 시작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도시의 나무는 왜 계속 잘려 나가는가</strong></p>

<p>책의 다섯 이야기는 한 그루가 ‘내 나무’가 되는 경험에서 출발해 도시가 나무를 버리는 현실과 마주하고, 그 곁에 서는 방법을 찾아가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가로수 독살 사건과 지나친 가지치기, 은행나무 수난, 덕수궁 돌담길의 플라타너스, 전주천 버드나무 벌목을 통해 저자는 도시에서 나무가 어떤 방식으로 계산되고 제거되는지를 보여준다.</p>

<p>도시행정은 나무를 대개 숫자로 다룬다. 몇 그루를 심었고 몇 그루를 교체했는지 집계한다.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고 어린 묘목 여러 그루를 심으면 녹지 통계는 오히려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자란 나무가 제공해온 그늘과 생태적 기능, 경관과 주민의 기억은 어린 묘목으로 대체할 수 없다. 나무의 가치는 그 수량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p>

<p>저자는 북극곰이나 녹아내리는 빙하처럼 멀리 있는 생태위기보다 매일 지나치는 나무 한 그루에서 출발하자고 제안한다. 기후위기가 추상적인 숫자로만 제시될 때 사람들은 쉽게 무력감에 빠진다. 반면 집 앞의 나무가 잘려 나가는 순간, 위기는 구체적인 얼굴을 얻는다. 내가 매일 보던 나무를 지키는 일은 작아 보이지만, 생태적 감각을 회복하는 가장 직접적인 정치행위다.</p>

<p>책에는 이를 함축하는 문장이 있다.</p>

<div id="tem-type-4">
<div class="wrapper">
<p>달라진 것은 나무가 아니라 나였다.</p>
</div>
</div>

<p>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것은 나무를 도시의 배경으로만 보던 인간의 시선이다. 한 그루를 다시 보는 순간 익숙했던 거리도 달라진다. 나무는 그저 심어진 물체가 아니라 사람보다 오래 그 장소를 지켜온 주민이자, 인간 이외의 생명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이웃이 된다.</p>

<p> </p>

<p><strong>나무를 지키는 일은 민주주의의 문제다</strong></p>

<p>이 책이 일반적인 생태에세이와 갈라지는 지점은 나무의 생존을 개인의 선의나 감상의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떤 나무를 심고 벨 것인가에는 개발계획과 예산, 행정의 판단과 주민의 의견, 그 장소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이 얽혀 있다. 나무 한 그루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에 시민이 참여할 수 없다면, 그 도시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p>

<p>덕수궁 돌담길의 플라타너스가 베일 위기에 놓였을 때 시민들은 옛 사진을 찾아 나무의 역사를 복원하고, 서명을 모으며 벌목의 근거를 물었다. 전주천 버드나무가 잘려 나간 뒤에도 사람들은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따져 물었다. 나무를 둘러싼 갈등은 결국 도시의 결정 과정에서 누가 발언권을 갖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p>

<p>저자는 이를 단호하게 정리한다.</p>

<div id="tem-type-4">
<div class="wrapper">
<p>나무를 지키는 일은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다.</p>
</div>
</div>

<p>한 그루를 지킨다는 것은 무조건 벌목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무의 생육 상태와 안전성, 생태적 가치, 주민의 기억을 충분히 검토하고 결정의 근거를 공개하라는 요구다. 나무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행정이 그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까지 갖는 것은 아니다. 시민은 나무를 대신해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p>

<div id="tem-type-3">
<div class="wrapper">
<p>“왜 이 나무를 베어야 하지?”</p>

<p>“누가 그렇게 결정했지?”</p>

<p>“나는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 거지?”</p>
</div>
</div>

<p>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나무 문제는 도시경관을 넘어 시민권의 문제가 된다. 나무를 지키는 일은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일이다.</p>

<p> </p>

<p><strong>나무는 시민이 될 수 있을까</strong></p>

<p>책의 마지막 질문은 더욱 급진적이다. “나무는 시민이 될 수 있을까?” 이는 나무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하자는 엉뚱한 제안이 아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도 도시의 법과 정책이 보호해야 할 권리의 주체로 볼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p>

<p>오늘날 도시는 인간만을 위해 설계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동식물과 토양, 물이 얽혀 유지된다. 인간은 자연과 분리된 도시의 주인이 아니라 그 관계망에 의존해 살아가는 한 구성원이다. 나무를 시민으로 상상한다는 것은 도시의 주체를 인간에게만 한정해온 낡은 정치학을 다시 생각하는 일이다.</p>

<p>이 책의 미덕은 선언보다 장면을 앞세운다는 데 있다. 통계와 구호로 독자를 압박하기보다 야자수 앞에 영정사진을 세운 사람들, 나무 그늘 아래 뛰노는 아이들, 동네 나무에 이름을 지어주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환경보호를 당위로 설교하지 않고, 독자가 자기 곁의 한 그루를 발견하도록 이끈다. 정책의 세부 설계까지 깊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나무를 대하는 시민의 감각과 도시행정의 출발점을 바꾸는 힘은 충분하다.</p>

<p>저자 최진우는 조경학 박사이자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 가로수시민연대 대표다. 생명다양성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환경행정론을 강의한다. 나무를 관리 대상이나 조경재료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바라보면서 시민들과 도시의 나무를 지켜왔다. 저자에게 나무를 연구한다는 것은 멀리서 관찰하는 일이 아니다. 잘려 나가는 나무 앞에 멈춰 서서 그 이유를 묻고, 현장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다.</p>

<p>정혜윤 작가·CBS PD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추천한다.</p>

<div id="tem-type-1">
<p>모든 좋은 책이 그렇듯이 이 책도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한 번이라도 나무를 더 보게 만든다.</p>
</div>

<p>그는 또 “내가 사랑하게 된 것을 지키면서 내 삶도 가벼워진다”며, 최진우가 “나무와 우리의 새로운 관계를 발명하는 중”이라고 평한다. 이 추천은 책의 성격을 정확히 짚는다. 좋은 생태서는 더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독자가 길을 걸을 때 한 번 더 고개를 들게 하고, 늘 그 자리에 있던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p>

<p>『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없다』는 나무에게 고마워하자는 책이 아니다. 그동안 인간이 나무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해왔음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나무의 그늘을 누렸다면 이제는 그 나무가 살아갈 자리를 함께 지켜야 한다. 사랑은 감상이 아니라 관계이며, 관계에는 책임이 따른다.</p>

<p>책을 덮고 거리에 나서면 가로수가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줄기에 남은 상처와 잘려 나간 가지, 아스팔트에 갇힌 뿌리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가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다. 그리고 바로 그 변화에서 시민의 정치가 시작된다.</p>

<p><strong>최진우 지음,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없다―도시의 나무와 함께 시민으로 살아가는 법』, 슬로비, 2026, 220쪽, 2만2천 원.</strong></p>]]></content:encoded>
	  <category><![CDATA[칼럼]]></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빼앗긴 삶의 자리에 다시 ‘우리’를 세우는 법]]></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8</link>
	  <dc:creator><![CDATA[성일권]]></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8</guid>
	  <pubDate>Tue, 22 Sep 2026 07:31:33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세계는 충분히 풍요로워졌지만, 삶은 오히려 가난해졌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으나 돌봄은 위기에 빠졌고,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노동자는 더 불안해졌다. 숲과 물, 토지는 물론 지식과 감정, 인간관계마저 상품의 언어로 환산된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 체제다. 그것이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밀어내거나, 아직 가격이 매겨지지 않은 자원으로 간주한다.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의 『세계와 다시 노래하기―페미니즘과 공통장의 정치』는 이러한 세계에 맞서 ‘공통장(commons)’을 제시한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우리가 아이를 씻기고 포옹하고 위로하고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는 일을 어떻게 자동화할 수 있을까?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8_51505_2635.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02 float-center" data-idxno="5150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500px"><img alt="" height="722"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8_51502_3035.jpg" width="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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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div>

<p>세계는 충분히 풍요로워졌지만, 삶은 오히려 가난해졌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으나 돌봄은 위기에 빠졌고,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노동자는 더 불안해졌다. 숲과 물, 토지는 물론 지식과 감정, 인간관계마저 상품의 언어로 환산된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 체제다. 그것이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밀어내거나, 아직 가격이 매겨지지 않은 자원으로 간주한다.</p>

<p>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의 『세계와 다시 노래하기―페미니즘과 공통장의 정치』는 이러한 세계에 맞서 ‘공통장(commons)’을 제시한다. 여기서 공통장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자원이나 공동소유의 토지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삶에 필요한 것을 함께 생산하고 관리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책임을 나누는 사회적 관계다. 따라서 공통장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 함께 만들어가는 실천, 곧 ‘공통장화(commoning)’에 가깝다.</p>

<p>책은 크게 두 갈래로 구성된다. 제1부는 ‘새로운 인클로저’를 추적한다. 중세 말과 근대 초의 인클로저가 공동체의 토지에 울타리를 치고 농민을 몰아낸 사건이었다면, 오늘날의 인클로저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 부채경제, 토지 수탈, 공공서비스의 민영화와 금융화로 되풀이된다. 아프리카의 부채 위기와 중국의 ‘철밥통’ 해체, 소액대출의 확산은 서로 다른 현상처럼 보이지만, 페데리치에게는 사람들이 삶을 자율적으로 재생산할 기반을 잃고 시장에 종속되는 하나의 과정이다.</p>

<p>그는 자본주의가 이미 공고히 확립된 체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약탈을 통해서만 존속할 수 있는 질서라고 본다. 초기 자본주의의 예외적 폭력으로 여겨졌던 ‘시초축적’은 지금도 계속된다. 국가는 토지를 개발의 대상으로 만들고, 금융은 가난한 사람들의 미래소득을 담보로 삼으며, 기술은 인간이 축적해온 지식과 관계를 기업의 자산으로 바꾼다. 인클로저는 울타리를 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을 삶의 터전에서 떼어내 고립된 노동자와 소비자로 만드는 정치다.</p>

<p>제2부는 그 울타리 밖에서 움트는 공통장의 가능성을 살핀다. 아프리카 여성들의 토지투쟁, 라틴아메리카의 공동체적 농업, 도시 텃밭과 공동부엌, 상호부조와 돌봄의 집단화가 그 사례다. 이 책에서 공통장은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의 다른 이름도, 자본주의 바깥에 고립된 행복한 섬도 아니다. 기존의 삶과 노동의 질서에 맞서는 자율적 공간이며, 새로운 사회관계를 미리 살아보는 정치적 실험이다. 영문판 출판사도 페데리치의 공통장을 “착취적 관계의 바다에 떠 있는 행복한 섬”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삶과 노동의 조직에 도전하는 공간으로 설명한다. </p>

<p>이 책의 독창성은 공통장의 정치를 여성의 재생산노동과 결합한다는 데 있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가 공장과 임금노동을 자본주의 분석의 중심에 놓았다면, 페데리치는 노동자를 매일 다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묻는다. 음식을 만들고 아이를 씻기며 환자와 노인을 돌보고, 슬픔을 위로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노동에 임금을 지불하지 않으면서도 그것 없이는 단 하루도 굴러갈 수 없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05 float-center" data-idxno="5150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우리가 아이를 씻기고 포옹하고 위로하고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는 일을 어떻게 자동화할 수 있을까?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8_51505_2635.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우리가 아이를 씻기고 포옹하고 위로하고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는 일을 어떻게 자동화할 수 있을까?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페데리치는 묻는다.</p>

<div id="tem-type-1">
<p>우리가 아이를 씻기고 포옹하고 위로하고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는 일을 어떻게 자동화할 수 있을까?</p>
</div>

<p>이 질문은 기술 자체를 거부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기술이 누구의 필요에 따라, 누구의 노동을 지우며, 어떤 삶을 만들기 위해 발전하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돌봄은 단순히 반복되는 작업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의 취약성을 받아들이는 관계다. 기계가 동작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그 관계 전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술 담론은 돌봄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기보다 비용을 줄이고 노동을 제거하는 데 집중한다. 페데리치가 기술의 진보를 곧 인간 해방으로 보는 낙관론을 경계하는 이유다.</p>

<p>그렇다고 이 책이 과거의 공동체를 낭만화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 공동체 역시 여성에게 돌봄을 전가하고 가부장적 권력을 유지해왔다. 공통장은 옛 공동체로 돌아가는 운동이 아니라, 그 내부의 위계까지 다시 조직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페데리치에게 페미니즘이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공통장은 자원을 나누는 데서 끝나지 않고 누가 일하고, 누가 결정하며, 누가 그 혜택을 누리는지를 물어야 한다.</p>

<p>실비아 페데리치는 1942년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페미니스트 이론가이자 역사학자, 사회운동가다. 1970년대 ‘가사노동에 임금을(Wages for Housework)’ 운동에 참여하며 무급 가사노동이 자본주의 생산을 떠받치는 핵심 노동임을 제기했다. 나이지리아에서 가르치며 아프리카에 강요된 구조조정과 토지 수탈을 목격했고, 이후 여성의 재생산노동과 새로운 인클로저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대표작 『캘리번과 마녀』에서는 자본주의의 탄생을 식민지 수탈과 토지 사유화뿐 아니라 여성의 몸과 재생산능력에 대한 통제의 역사로 다시 썼다.</p>

<p>『세계와 다시 노래하기』는 1990년대부터 20여 년 동안 발표한 글을 묶은 책이다. 따라서 하나의 완결된 이론서라기보다 투쟁 현장에서 축적된 사유의 기록에 가깝다. 아프리카의 토지투쟁에서 대학의 지식 생산, 소액금융과 도시농업, 돌봄노동과 기술 문제까지 논의의 폭이 넓다. 여성과 재생산노동을 경제적 생존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만든 분열과 위계에서 벗어난 세계를 건설하는 핵심으로 본다는 점에서 글들은 하나의 중심축을 이룬다. </p>

<p>다만 공통장이 어떤 규모로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공동부엌과 도시농업, 상호돌봄은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실천이지만 전력망과 교통, 의료, 산업생산처럼 대규모 조정이 필요한 영역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공동체 안의 권력관계와 배제, 돌봄노동이 다시 여성에게 집중될 위험도 경계해야 한다. 공통장이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는 대안이 되려면 선의나 연대감만이 아니라 민주적 의사결정과 책임의 제도까지 갖춰야 한다.</p>

<p>그럼에도 이 책의 가치는 분명하다. 페데리치는 혁명을 먼 미래의 정권교체나 생산수단 장악으로만 상상하지 않는다. 우리가 먹고, 돌보고, 배우고,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바꾸는 데서 새로운 사회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공통장은 혁명 이후에 주어질 결과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혁명을 준비하는 생활양식인 셈이다.</p>

<p>제목의 ‘다시 노래하기’도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원제의 ‘재마법화(Re-enchanting)’는 초자연적 세계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모든 존재를 가격과 효율로 환원하는 자본주의의 탈마법화에 맞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발견하자는 제안이다. 책에서 페데리치는 이를 “불가능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이 지구에서 우리의 운명을 집단적으로 결정할 힘을 회복하는 가능성”이라고 설명한다. </p>

<p>오늘날 ‘공유’라는 말조차 플랫폼기업의 사업모델이 됐다. 공유경제는 소유를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자동차와 집뿐 아니라 사람의 시간과 노동까지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었다. 이에 맞서 페데리치가 말하는 공통장은 단순히 물건을 함께 쓰는 일이 아니다. 시장이 갈라놓은 사람들이 다시 관계를 맺고, 스스로를 집단적 주체로 만드는 일이다.</p>

<p>책의 한 문장은 그 뜻을 압축한다.</p>

<p>“공통장화가 의미를 지닌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공통의 주체로 생산하는 일이어야 한다.”</p>

<p>세계와 다시 노래한다는 것은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빼앗긴 땅과 시간, 돌봄과 지식을 되찾아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페데리치의 책은 완성된 설계도를 내놓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너무 오래 잊고 있던 질문을 되돌려준다. 삶은 누구의 것이며, 우리는 누구와 함께 그것을 다시 만들어갈 것인가.</p>

<p><strong>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권범철·서창현 옮김, 『세계와 다시 노래하기―페미니즘과 공통장의 정치』, 갈무리, 2026, 400쪽, 2만7천 원.</strong></p>]]></content:encoded>
	  <category><![CDATA[칼럼]]></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나연수의 투자칼럼] 주식은 왜 오르면 팔아야 하는 물건이 되었을까?]]></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7</link>
	  <dc:creator><![CDATA[나연수 (경제칼럼니스트)]]></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7</guid>
	  <pubDate>Tue, 22 Sep 2026 07:27:02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주식을 오르면 팔아야 하는 물건으로 먼저 보는 데에는 오랜 상거래에서 익숙해진 손익의 셈법이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계좌에 찍히는 평가이익과 기업이 사업으로 남기는 이익은 서로 다릅니다. 주식은 기업이 남긴 이익과 축적된 가치에 참여하는 지분이고, 매도는 그 지분을 현금이라는 다른 자산으로 바꾸는 선택입니다. 그렇다고 특정 기업 하나를 무작정 오래 보유하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어떤 기업이 장기간 시장을 이끌지는 미리 알기 어렵습니다. 특정 기업의 존속에 기대지 않고 광역 대표지수를 통해 여러 기업의 이익에 대한 몫을 오래]]></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ChatGPT 이미지" height="394"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7_51501_1927.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ChatGPT 이미지</div><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01 float-center" data-idxno="51501"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ChatGPT 이미지" height="394"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7_51501_1927.png" width="600" />
<figcaption>ChatGPT 이미지</figcaption>
</figure>
</div>

<p>주식을 오르면 팔아야 하는 물건으로 먼저 보는 데에는 오랜 상거래에서 익숙해진 손익의 셈법이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계좌에 찍히는 평가이익과 기업이 사업으로 남기는 이익은 서로 다릅니다. 주식은 기업이 남긴 이익과 축적된 가치에 참여하는 지분이고, 매도는 그 지분을 현금이라는 다른 자산으로 바꾸는 선택입니다.  </p>

<p>그렇다고 특정 기업 하나를 무작정 오래 보유하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어떤 기업이 장기간 시장을 이끌지는 미리 알기 어렵습니다. 특정 기업의 존속에 기대지 않고 광역 대표지수를 통해 여러 기업의 이익에 대한 몫을 오래 보유하는 길이 개인에게 열려 있습니다.</p>

<p> </p>

<p><strong>■ 오르면 팔고, 떨어지면 기다립니다</strong></p>

<p>주식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이 정도 올랐으면 팔아야 하지 않습니까?” 손실을 보고 있을 때는 “본전만 회복하면 팔려고 합니다”라는 말을 듣습니다.</p>

<p>반대의 상황이지만 출발점은 같습니다. 주식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하는 물건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매수가 거래의 시작이고 매도가 완성이며, 그사이의 보유 기간은 팔 기회를 기다리는 시간이 됩니다.</p>

<p>저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떤 기업을 살지 공부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늘 얼마에 팔 것인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질문이 생겼습니다. 주식으로 돈을 버는 길은 반드시 사고파는 거래를 완성하는 것이어야 할까요. 기업 이익에 대한 몫이라는 주식의 다른 성격은 왜 잘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p>

<p> </p>

<p><strong>■ 거래의 셈법은 주식보다 오래됐습니다</strong></p>

<p>쌀 한 가마를 20만 원에 사서 25만 원에 팔면 이익은 5만 원입니다. 창고에 둔 쌀은 새 쌀을 만들어 내지 않고, 보관비가 들며, 묵으면 값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곡물과 직물, 향신료를 거래하던 상인에게 매입가격과 판매가격의 차이가 이익의 원천이었던 이유입니다.</p>

<p>주식을 이 셈법에 넣으면 1만 원에 산 주식이 1만 2천 원이 됐을 때 “2천 원 벌었으니 팔자”가 됩니다. 그러나 주식은 쌀과 다릅니다. 가지고 있는 동안에도 기업은 이익을 만들어 내고, 그 일부는 주주의 몫으로 쌓입니다. 매매 차익은 곧바로 셈할 수 있는 반면, 기업이 앞으로 만들어 낼 이익에 대한 몫은 눈앞에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p>

<p>주식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거래의 셈법 속에 놓였습니다. 1688년 암스테르담의 상인 요제프 드 라 베가가 쓴 『혼란 속의 혼란』은 주식시장을 다룬 최초의 책으로 꼽히는데, 그가 묘사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주식은 이미 가격의 등락을 좇아 사고파는 대상이었습니다.</p>

<p>이런 감각은 경제생활에 깊이 밴 ‘문화적 유전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타고났다는 뜻이 아니라, 오랜 세월 반복하고 배워 설명 없이도 받아들이기 쉽다는 의미입니다.</p>

<p>반면 개인이 여러 기업을 한꺼번에 저렴하게 보유할 수 있게 된 역사는 짧습니다.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1974년 시장 전체를 담는 저비용 펀드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개인투자자를 위한 인덱스펀드는 1976년 미국 뱅가드를 통해 본격적으로 소개됐습니다. 당시 이 펀드는 업계에서 설립자의 이름을 붙여 ‘보글의 어리석음’이라는 조롱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한국의 상장지수펀드(ETF, Exchange Traded Fund) 시장은 2002년 10월에 열렸습니다.</p>

<p> </p>

<p><strong>■ 계좌는 매수가격을 기준으로 보여 줍니다</strong></p>

<p>증권계좌를 열면 매수가격과 현재가격, 평가손익과 수익률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필요한 정보이지만 이 화면에 익숙해지면 기업보다 제 매수가격이 판단의 중심이 되기 쉽습니다. 같은 기업을 두고도 누구는 이익이 났으니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누구는 아직 본전이 아니니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얼마에 샀는지는 그 기업의 생산능력이나 경쟁력을 바꾸지 않습니다.</p>

<p>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1979년 전망이론에서 사람들이 특정 기준점을 중심으로 이익과 손실을 판단하며, 같은 크기라도 손실을 이익보다 더 크게 느낀다고 설명했습니다. 리처드 탈러의 심적회계 개념까지 적용하면 주식투자에서는 종목마다 매수가격이 기준점이 되고, 종목마다 따로 손익을 셈하기 쉽습니다.</p>

<p>이와 연결된 현상이 처분효과(Disposition Effect)입니다. 허시 셰프린과 마이어 스탯먼은 1985년 투자자가 오른 종목을 상대적으로 빨리 팔고 떨어진 종목을 오래 보유하는 경향을 설명했습니다. 테런스 오딘은 1998년 미국 개인계좌 약 1만 개를 분석했는데, 투자자가 매도한 이익 종목이 계속 보유한 손실 종목보다 이후 1년간 시장 대비 수익률이 평균 약 3.4%포인트 높았습니다.</p>

<p>특정 시기와 표본의 결과이므로 오른 종목을 계속 보유해야 한다는 법칙은 아닙니다. 다만 이익이 났는지, 본전을 회복했는지만을 매도의 기준으로 삼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p>

<p>가격을 자주 확인하는 습관도 영향을 줍니다. 슐로모 베나치와 리처드 탈러는 1995년 성과를 짧은 주기로 평가할수록 손실을 마주하는 횟수가 늘어 위험자산을 지나치게 회피하게 되는 현상을 ‘근시안적 손실회피’로 설명했습니다.</p>

<p>“이익은 실현해야 내 돈”이라는 말도 비슷합니다. 매도하면 그 시점의 가격을 현금으로 확정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맞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의미에서 매도 순간 이익이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매도 전에도 현금 대신 기업의 지분이라는 자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p>

<p> </p>

<p><strong>■ 계좌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은 다릅니다</strong></p>

<p>평가이익과 달리 기업의 이익은 사업에서 만들어집니다. 가상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주가가 1만 원인 기업이 한 해 동안 주당 1천 원의 순이익을 냈고, 그중 300원을 배당하고 700원을 설비와 연구개발, 새로운 사업에 다시 투입했다고 하겠습니다. 주가는 그대로여도 300원은 현금으로 지급되고 700원은 기업 안에 남습니다. 재투자가 성과를 내면 이듬해 더 많은 이익을 만들어 낼 기반이 됩니다.</p>

<p>이 구조를 일찍 짚은 사람이 미국의 에드거 로런스 스미스입니다. 그는 1924년 『장기투자로서의 보통주』에서 주식이 장기적으로 채권보다 나은 성과를 낸 이유로, 기업이 배당하지 않고 남긴 이익이 다시 사업에 투입되어 주주의 몫을 키운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이듬해 서평에서 이 지적을 주목할 만한 발견으로 평가했습니다.</p>

<p>물론 이익의 증가가 주가 상승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남긴 이익을 잘못 투자하는 기업도 있고, 좋은 기업이라도 지나치게 비싸게 샀다면 성과가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래 보유한다는 사실 자체가 수익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p>

<p> </p>

<p><strong>■ 팔고 나면 두 번의 선택이 남습니다</strong></p>

<p>투자를 끝내고 소비할 돈이라면 매도로 거래는 끝납니다. 그러나 투자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언제 나갈 것인가와 언제 돌아올 것인가라는 두 번의 판단이 필요합니다.</p>

<p>브래드 바버와 테런스 오딘은 2000년 미국 약 6만6천 가구의 증권계좌를 분석한 결과, 1991년부터 1996년까지 가장 활발하게 매매한 집단의 연평균 순수익률이 11.4%로 시장 수익률 17.9%에 크게 못 미쳤다고 보고했습니다.</p>

<p>미국 펀드평가사 모닝스타가 2026년 발표한 ‘마인드 더 갭(Mind the Gap)’ 연구에서도 2025년 말까지 10년 동안 미국 뮤추얼펀드와 ETF의 연평균 총수익률은 9.9%였지만 투자자가 실제로 거둔 수익률은 연 8.7%였습니다. 변동성이 가장 낮은 펀드군의 격차는 연 0.4%포인트, 가장 높은 펀드군은 2.1%포인트였습니다. 다만 모닝스타는 이 격차가 모두 잘못된 매매 시점 때문은 아니며 리밸런싱 같은 통상적인 자금 이동도 영향을 준다고 설명합니다.</p>

<p>저는 한두 번 잘 사고팔 수는 있어도 그것을 오래 반복할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기보유를 미래를 더 잘 맞히는 방법이 아니라, 미래를 맞혀야 하는 횟수를 줄이는 방법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p>

<p>내가 산 가격보다 올랐다는 것과 기업이 앞으로 벌어들일 이익에 비해 주가가 비싸졌다는 것은 서로 다른 판단입니다.</p>

<p> </p>

<p><strong>■ 사고팔 수 있다는 것과 사고팔아야 한다는 것은 다릅니다</strong></p>

<p>이것이 매매하는 사람은 틀리고 오래 보유하는 사람은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생활비가 필요하거나 투자 근거가 달라졌다면 매도는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p>

<p>좋은 사업체를 가진 사람에게 사업의 가치가 올랐으니 이제 팔아야 한다고 당연하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사람과 상장주식을 가진 투자자의 처지는 다르지만, 사업이 만들어 내는 경제적 성과에 지분을 갖는다는 점은 같습니다.</p>

<p>벤저민 그레이엄은 1949년 『현명한 투자자』에서 이 관계를 ‘미스터 마켓’이라는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동업자인 미스터 마켓은 매일 찾아와 지분을 사겠다거나 팔겠다며 가격을 부르지만, 그 제안에 매번 응할 의무는 없습니다.</p>

<p>주식에는 매일 가격이 붙고 언제든 팔 수 있습니다. 그 유동성은 큰 장점입니다. 가격은 지분을 얼마에 사고팔 수 있는지를 알려 주고, 기업의 사업은 그 지분을 왜 보유하는지를 설명합니다.</p>

<p> </p>

<p><strong>■ 어떤 기업을 오래 보유할지는 미리 알기 어렵습니다</strong></p>

<p>그렇다면 좋은 기업을 골라 영원히 가지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필립 피셔는 1958년 매수 판단이 옳았다면 팔 때는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고, 워런 버핏은 1988년 주주서한에서 가장 선호하는 보유 기간은 영원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두 사람의 말은 좋은 기업을 가려내는 안목을 전제로 합니다.</p>

<p>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헨드릭 베셈빈더는 1926년 이후 미국 주식의 장기성과를 분석했습니다. 전체 종목 가운데 약 4%가 미국 주식시장이 만들어 낸 순부가가치 전체를 설명했고, 대다수 개별주식의 생애 보유수익률은 1개월 미국 국채보다 낮았습니다. 1990년 이후 전 세계 6만여 개 종목으로 넓힌 후속 연구에서도 순부의 창출은 극소수 기업에 집중됐습니다.</p>

<p>주식수익률에는 비대칭성이 있습니다. 한 기업에 투자한 돈의 최대 손실은 투자금으로 제한되지만, 크게 성공한 기업의 상승에는 같은 의미의 상한이 없습니다. 몇몇 기업이 10배, 100배로 성장하면 부진한 다수의 영향을 넘어 전체 시장의 부를 크게 늘릴 수 있습니다.</p>

<p>기업의 수명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1896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의 원년 구성 종목 가운데 가장 오래 남아 있던 제너럴일렉트릭(GE, General Electric)도 2018년 지수에서 편출됐습니다.</p>

<p>따라서 제게 중요한 질문은 소수의 승자를 어떻게 미리 찾을 것인가가 아니라,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어떻게 놓치지 않을 것인가였습니다.</p>

<p> </p>

<p><strong>■ 그래서 특정 기업 대신 대표지수를 보유합니다</strong></p>

<p>제가 보유하는 광역 대표지수는 정해진 방법론에 따라 기업을 편입하고 편출하며, 이러한 변화는 기업의 성장과 쇠퇴가 시장에 나타난 뒤 사후적으로 반영됩니다.</p>

<p>시가총액가중 대표지수에서는 기존 구성종목의 시장가치가 커지면 그 기업의 비중도 커지고, 시장가치가 줄어들면 비중도 작아집니다. 앞에서 본 비대칭성, 곧 소수 기업의 큰 성장이 지수 안에 그만큼 크게 담기는 구조입니다. 지수를 장기적으로 끌어올리는 힘은 편입과 편출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남아 있거나 새로 들어온 기업들이 쌓아 가는 이익과 자본입니다.</p>

<p>S&P다우존스인덱스가 발표하는 SPIVA(S&P Indices Versus Active) 보고서는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기간이 길어질수록 비교 지수를 밑도는 액티브 펀드의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여 왔습니다. 인덱스 투자가 언제나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장기간의 종목 선택이 쉽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p>

<p>대표지수도 크게 하락하거나 장기간 부진할 수 있습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1989년 말 고점을 가격지수 기준으로 다시 넘어서는 데 34년 넘게 걸렸습니다.</p>

<p>제가 말하는 영구보유는 특정 ETF 상품 하나를 끝까지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활에 필요하면 일부를 인출하고, 상품에 문제가 생기면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다른 상품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지켜야 할 것은 상품이 아니라 여러 기업이 만들어 내는 이익에 대한 몫을 광역 대표지수를 통해 계속 보유한다는 원칙입니다.</p>

<p>“얼마가 오르면 팔 것인가”를 묻던 제게 남은 질문은 “무엇에 대한 몫을 오래 보유할 것인가”였습니다. 주식을 보는 방식의 변화는 그 질문의 변화에서 시작됐습니다.</p>

<p> </p>

<p>* 나연수 칼럼니스트는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전략기획과 재무관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이후 사모펀드 운용사에서 투자심의와 딜 소싱, 리스크 관리 경험을 쌓았으며, 2021년 은퇴한 뒤에는 비상장 투자조합을 운용했습니다.</p>

<p><strong>※ 이 글은 특정 금융상품의 매수나 매도를 권유하지 않으며, 필자의 보유 방식은 개인의 자금 사정과 위험 감내 수준에 따라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strong></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대타를 내지 못하는 감독들 — 탄핵 이후 권력이 반복하는 후회의 문법]]></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3</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3</guid>
	  <pubDate>Mon, 21 Sep 2026 21:57:57 +0900</pubDate>
	  <description><![CDATA[프로야구 정규시즌 막바지, 순위표의 숫자는 매일 뒤집힌다. 감독은 벤치에 앉아 대타 카드를 고른다. 그가 부르는 이름은 언제나 익숙하다. 한때 4번을 쳤던 타자, 한때 마무리를 지켰던 투수. 그러나 방망이는 헛돌고, 공은 가운데로 몰린다. 패색이 짙어진 뒤에야 감독은 벤치 끝의 젊은 얼굴들을 돌아본다. 왜 진작 부르지 않았는가. 그 질문은 늘 늦게 도착한다.추석을 앞둔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은 100분 동안 서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보고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회견장의 공기는 보고보다 해명에 가까웠다. 취임 초반의 기대는 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아직 불리지 않은 이름을 기다리는 벤치, 후회는 언제나 결정을 미룬 자리에서 자란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3_51489_5221.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89 float-center" data-idxno="5148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아직 불리지 않은 이름을 기다리는 벤치, 후회는 언제나 결정을 미룬 자리에서 자란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3_51489_5221.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아직 불리지 않은 이름을 기다리는 벤치, 후회는 언제나 결정을 미룬 자리에서 자란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프로야구 정규시즌 막바지, 순위표의 숫자는 매일 뒤집힌다. 감독은 벤치에 앉아 대타 카드를 고른다. 그가 부르는 이름은 언제나 익숙하다. 한때 4번을 쳤던 타자, 한때 마무리를 지켰던 투수. 그러나 방망이는 헛돌고, 공은 가운데로 몰린다. 패색이 짙어진 뒤에야 감독은 벤치 끝의 젊은 얼굴들을 돌아본다. 왜 진작 부르지 않았는가. 그 질문은 늘 늦게 도착한다.</p>

<p>추석을 앞둔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은 100분 동안 서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보고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회견장의 공기는 보고보다 해명에 가까웠다. 취임 초반의 기대는 가라앉았고, 데드크로스를 넘긴 지지율은 반등의 기미가 없다. 어느 하나의 실책 때문이 아니다. 인선과 정책과 태도가 차례로 쌓여 이룬 침몰이다.</p>

<p>야구와 정치는 다른 세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 다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자리라는 점에서는 같다. 감독이 검증되지 않은 신인을 두려워하듯, 권력은 낯선 실력자를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의 이름은 실패가 아니라 후회다. 대통령이 회견에서 인정한 "소통과 배려, 국민 존중의 부족"은 태도의 문제로 읽히기 쉽지만, 뿌리는 더 깊다. 후회를 감당할 용기가 없는 권력의 오래된 습성이다.</p>

<p>벤치는 늘 두 종류의 이름으로 채워진다. 이미 검증된 이름과, 아직 검증받지 못한 이름. 감독은 앞의 이름을 부르며 안도하고, 뒤의 이름 앞에서 머뭇거린다. 그 머뭇거림이 반복될 때, 팀은 서서히 무너진다. 권력도 다르지 않다. 익숙한 얼굴을 부르는 손은 가볍고, 낯선 얼굴을 부르는 손은 늘 늦게 움직인다.</p>

<p> </p>

<p><strong>코드 인사, 검증되지 않은 충성 리그</strong></p>

<p>지지율 추락의 첫 방아쇠는 2기 내각 인선이었다. 전문성보다 국정철학의 공유가 우선한 인사를, 세간에서는 &#39;코드 인사&#39;라 불렀다. 실행력과 충성도를 앞세운 배치는 중도층과 2030 세대의 신뢰를 흔들었다. 국민이 기대한 것은 국정을 다룰 능력이었으나, 돌아온 것은 진영 안배였다.</p>

<p>기시감은 낯설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압도적 우위 속에서 출범한 문재인 정부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조국 사태로 대표되는 인사 파동은 그 정권의 핵심 가치였던 공정과 정의에 치명상을 입혔다. 국정철학을 공유한다는 명분으로 진영 내부 인재를 채운 방식은, 지금 이재명 정부의 2기 내각 인선과 겹쳐 보인다. 두 정부 사이에는 8년의 시차가 있을 뿐, 실패의 문법은 같다.</p>

<p>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직업으로서의 정치(Politik als Beruf)』에서 정치를 신념윤리(信念倫理, Gesinnungsethik)와 책임윤리(責任倫理, Verantwortungsethik)로 나누었다. 신념윤리는 뜻이 옳은가를 묻고, 책임윤리는 결과를 누가 감당하는가를 묻는다. 진보 진영이 중용해온 운동권과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은 신념윤리에 단련되었을지언정 책임윤리를 훈련받지 못했다. 뜻은 뜨거웠으나 결과는 차가웠다.</p>

<p>신념은 자리를 정당화하지만, 자리를 지켜내지는 못한다. 책임은 신념보다 늦게 도착하지만, 결국 그 자리의 값을 매긴다. 이 정부의 인선이 반복해서 흔들린 지점은 바로 여기다. 누구를 믿을 것인가를 물었을 뿐, 누가 결과를 감당할 것인가를 묻지 않았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90 float-center" data-idxno="5149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닫힌 다이아몬드, 안쪽은 충성으로 채워지고 바깥의 빈 의자는 끝내 당겨지지 않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3_51490_536.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닫힌 다이아몬드, 안쪽은 충성으로 채워지고 바깥의 빈 의자는 끝내 당겨지지 않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두 정부 사이에는 미세한 차이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중반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만나 K-방역을 고리로 지지율을 반등시켰다. 이재명 정부에는 그런 외생적 우군이 없다. 고금리와 고물가, 세계적 경기 둔화가 그대로 정면에서 부딪혀온다. 문 정부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적 자산에 기대었다면, 이 정부는 강한 추진력과 실용주의적 성과를 앞세운다. 과정의 공정을 앞세우다 실기한 정부와, 성과로 증명하려다 아픔에 인색해진 정부. 방향은 다르지만, 도착지는 닮아 있다.</p>

<p>부동산 정책과 외교·안보, 사법 개혁에서 반복된 반작용도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시장의 구조적 수요를 규제와 세제만으로 누르려 한 접근은 수도권 집값을 잡지 못했고, 실거주자와 유주택자 모두를 등 돌리게 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둘러싼 외교의 불명확성과 검찰 수사권의 전면 박탈을 둘러싼 갈등은 국론을 갈랐다. 사법 독립이라는 공적 가치보다 국정 주도권을 앞세우는 태도는 법치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인사에서 시작된 균열이 정책 전반으로 번진 셈이다.</p>

<p> </p>

<p><strong>체험 없는 담론과 도덕적 지대</strong></p>

<p>이 인재풀의 결정적 결함은 삶의 결이 다르다는 데 있다. 시장에서 재화를 만들고, 조직을 운영하며 생존을 걸어본 이가 드물다. 그들의 삶을 채운 것은 텍스트와 구호, 선언문과 정치적 명분이었다.</p>

<p>유시민과 조국은 그 결함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청년 세대가 이들에게 느끼는 반감은 공정의 균열에서 온다. 민주화 시대를 통과했다는 역사적 훈장이, 이후의 삶에서 실질적 능력과 성과를 훌쩍 뛰어넘는 자산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의 개념을 빌리면, 이들은 &#39;투쟁 경험&#39;이라는 상징자본(象徵資本, symbolic capital)을 통해 사회적·정치적 자본을 독점적으로 상속받은 셈이다. 도덕은 지대(地代)가 되었고, 지대는 특권이 되었다.</p>

<p>투쟁의 기억은 훈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훈장을 평생의 통행증으로 바꾸는 순간, 그것은 도덕적 렌트(moral rent)가 된다. 렌트는 노력 없이도 걷히는 이자와 같다. 능력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진 자리에서, 실력은 자라지 않는다.</p>

<p>문제는 이들이 아는 민생이 관념 속의 민생이라는 점이다. 고물가와 고금리, 주거 불안과 고용 절벽에서 매일 생존을 다투는 이들에게, 계도조의 언어와 도덕적 우월감은 위로가 아니라 소음이다. 체험 없는 공감은 수사에 그치고, 실용이 빠진 명분은 삶을 바꾸지 못한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91 float-center" data-idxno="51491"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땅에 닿지 않은 채 떠 있는 연단, 도덕은 지대가 되고 지대는 특권이 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3_51491_5357.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땅에 닿지 않은 채 떠 있는 연단, 도덕은 지대가 되고 지대는 특권이 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언론인 출신의 정치권 직행 역시 같은 재앙을 반복시킨다. 기자의 본업은 현상을 관찰하고 프레임을 짜는 일이지, 세계를 구축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일이 아니다. 수많은 분야를 스치며 얻은 얕은 식견을 정책적 전문성으로 착각하는 순간, 인식론적 오만(epistemic hubris)이 싹튼다. 담론을 비평하는 능력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예산을 배분하며 부작용을 통제하는 행정의 실력은 전혀 다른 근육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 자리에서, 정책은 뉴스 제목을 닮은 구호로 쪼그라든다.</p>

<p>해설위원의 언어와 감독의 언어는 다르다. 해설위원은 경기가 끝난 뒤에 말하고, 그 말에는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감독은 경기 도중에 결정하고, 그 결정에는 승패가 따른다. 담론과 행정 사이의 거리는 이만큼 멀다.</p>

<p> </p>

<p><strong>손실을 겁내는 자의 인사</strong></p>

<p>감독이 신인을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무능해서가 아니다. 그는 계산한다. 검증된 이름을 써서 지면 비난은 견딜 만하다. 그러나 낯선 이름을 썼다가 진다면, 그 후회는 감당하기 어렵다. 영국의 경제학자 그레이엄 루메스(Graham Loomes)와 로버트 서든(Robert Sugden)은 1982년 논문에서 이를 후회 이론(regret theory)으로 정리했다. 인간은 결과의 효용만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대안이 더 나았을 때 느낄 후회까지 미리 계산에 넣는다는 것이다. 선택은 합리가 아니라 후회의 회피로 기운다. 이는 손실 자체를 두려워하는 손실회피와도 다르다. 두려운 것은 손실이 아니라, 그 손실을 자초했다는 자책이다.</p>

<p>권력의 인사도 다르지 않다. 진영 안의 익숙한 얼굴을 쓰면, 실패해도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남는다. 진영 밖의 실력자를 썼다가 실패하면, 그 후회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 된다. 그래서 권력은 안전한 후회를 택한다. 행동경제학이 말하는 동질성 편향(in-group bias)은 이 계산을 정당화하는 언어일 뿐이다. 말이 통하는 이들, 삶의 궤적이 겹치는 이들만을 검증된 인재로 착각하는 습관이다.</p>

<p>여기에 에이전시 문제(agency problem)가 겹친다. 권력자 주변의 측근들은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까 두려워,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자가 들어오는 길목을 미리 막는다. 추천의 문은 좁아지고, 검증의 잣대는 충성도로 기운다. 이 구조를 깨는 길은 결국 하나다. 인선 자체를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맡기는 것. 다각도 레퍼런스 체크(cross reference check)와 역량 중심 평가(competency-based assessment)를 공공 인선에 들여오는 일이다. 사상의 정체성이나 청문회용 도덕성 검증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무엇을 해냈는지를 묻는 절차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92 float-center" data-idxno="5149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손이 닿는 헬멧과 닿지 않는 헬멧 사이, 그 짧은 거리가 후회의 전부를 가른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3_51492_5445.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손이 닿는 헬멧과 닿지 않는 헬멧 사이, 그 짧은 거리가 후회의 전부를 가른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이 시스템을 들이는 일에는 결단이 필요하다. 자신이 사람을 가장 잘 본다는 믿음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선의 칼자루를 중립적인 절차에 넘기는 순간, 권력자는 스스로의 눈보다 낯선 기준을 신뢰한다고 고백하는 셈이 된다. 그 고백이야말로 진짜 용기다.</p>

<p>정부는 다른 해명을 내놓는다. 무난한 타협형 인재보다 국정철학을 명확히 이해하고 강하게 밀어붙일 실천형 인재가 절박했다는 것이다. 복잡다단한 대외 위기 앞에서 속도가 곧 생존이었다는 논리다. 부동산과 외교·안보, 사법 개혁의 진통 또한 체질 개선 과정의 불가피한 비용이라 말한다. 반도체 호황이 남긴 착시라는 지적에는, 기술 패권 전쟁의 엄혹한 현실을 외면한 비판이라 되받는다. 그러나 그 해명이 후회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응원하는 야구팀의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 팬들은 감독의 뚝심을 탓하지 않는다. 그들이 묻는 것은 단 하나, 왜 다른 카드를 쓰지 못했는가다.</p>

<p> </p>

<p><strong>후회를 성찰로 바꾸는 용기</strong></p>

<p>미국의 사회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리더십의 용기가 강함의 과시가 아니라 취약성(脆弱性, vulnerability)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불확실성과 위험, 감정의 노출을 견디는 힘이 곧 용기라는 것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일, 그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다.</p>

<p>이재명 대통령은 회견에서 "실행을 통한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아픔과 갈등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솔직한 인정이었다. 그러나 인정은 사과에서 멈추면 안 된다. 연임제 개헌 논란에 선을 그은 것도, 진통을 감수하며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다짐도,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선다. 다음에는 다른 이름을 부를 수 있는가.</p>

<p>야구는 흔히 후회를 관리하는 종목이라 불린다. 한 타석의 실패는 다음 타석에서 만회할 수 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감독은 자리를 잃는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청사진보다,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되풀이하지 않는 일이 민생에 더 가까이 닿는다. 이 단순한 진실을 외면할 때, 후회는 성찰로 자라지 못하고 그저 반복될 뿐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93 float-center" data-idxno="5149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열린 문턱에 놓인 빈 글러브, 용기는 자리를 내주는 손에서 시작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3_51493_5551.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열린 문턱에 놓인 빈 글러브, 용기는 자리를 내주는 손에서 시작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성찰은 자책과 다르다. 자책은 후회 앞에 주저앉지만, 성찰은 후회를 딛고 다음 선택으로 걸어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픈 회견이 아니라, 다음 타석에서 다른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결단이다.</p>

<p>용기는 고집이 아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보고, 세상의 진짜 실력자에게 자리를 내주는 일이다. 쓴소리를 들을 자세를 갖출 때, 후회는 비로소 다음 선택의 밑거름이 된다. 대타는 그렇게, 늦지 않게 나와야 한다. 벤치는 언제나, 아직 불리지 않은 이름으로 채워져 있다.</p>

<p> </p>

<p> </p>

<p><strong>글‧박철웅</strong><br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에디터<br />
작가‧문화평론가 <br />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 전공<br />
IBM과 NTT에서 마케팅과 컨설팅 담당<br />
2011년 『원순씨를 부탁해』 출간<br />
비평적 글쓰기, 사회, 문화 예술과 인간을 관통하는 글을 쓰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DIGITAL AF 아트쇼’, 9월 29일~10월3일, 서울 ARC 강남에서 개최]]></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6</link>
	  <dc:creator><![CDATA[성일권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6</guid>
	  <pubDate>Mon, 21 Sep 2026 21:36:21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된 테크노 음악가가 예술가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다. 음악 공연이 아니라 예술과 기술,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전시를 통해서다.예술문화 공동체 DIGITAL AF는 오는 9월 29일부터 10월 3일까지 서울 ARC 강남에서 ‘DIGITAL AF SEOUL 2026’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하나 됨(Unity)’을 주제로 해외 작가 4명과 한국 작가 5명 등 총 9명의 예술가가 참여한다. 전시는 브뤼셀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획자 야니스 사비르(Yanis Sabir)와 프랑스 테크노 프로듀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DIGITAL AF 제공" height="48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6_51498_2841.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DIGITAL AF 제공</div><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98 float-center" data-idxno="51498"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DIGITAL AF 제공" height="48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6_51498_2841.png" width="600" />
<figcaption>DIGITAL AF 제공</figcaption>
</figure>
</div>

<p>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된 테크노 음악가가 예술가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다. 음악 공연이 아니라 예술과 기술,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전시를 통해서다.</p>

<p>예술문화 공동체 DIGITAL AF는 오는 9월 29일부터 10월 3일까지 서울 ARC 강남에서 ‘DIGITAL AF SEOUL 2026’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하나 됨(Unity)’을 주제로 해외 작가 4명과 한국 작가 5명 등 총 9명의 예술가가 참여한다.  전시는 브뤼셀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획자 야니스 사비르(Yanis Sabir)와 프랑스 테크노 프로듀서 하돈(Hadone)이 공동 기획했으며, 한국 작가 부문은 스페이스엠 갤러리의 김민교 디렉터가 기획·구성한다.</p>

<p>이번 전시의 출발점에는 하돈의 개인사가 놓여 있다. 본명 제레미 보네(Jérémy Bonnet)인 그는 서울에서 ‘Kye Soo’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보육원에 맡겨진 뒤 프랑스 가정에 입양됐다. 태어난 도시에서 8천㎞ 떨어진 프랑스에서 성장한 그는 정규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이후 암스테르담과 도쿄 등 세계 여러 도시의 무대에 오르는 테크노 프로듀서가 됐다. 프로듀서 UFO95와 함께 리옹에서 음반사 TSSRCT도 설립했다.</p>

<p>그에게 이번 전시는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은 출생지로 돌아오는 첫 예술적 귀환이다. 전시 주제인 ‘하나 됨’은 추상적인 구호에 머물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이름과 문화, 언어와 소속감 사이에서 살아온 한 사람의 삶에서 출발해, 오늘날 인간을 구성하는 복합적인 정체성과 관계를 예술적으로 탐구한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99 float-center" data-idxno="5149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제레비 보네,  큐레이터 겸 기획자" height="342"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6_51499_2911.png" width="600" />
<figcaption>제레비 보네,  큐레이터 겸 기획자</figcaption>
</figure>
</div>

<p>기획진은 “하나 됨은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을 화해시키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여러 유산과 영향,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소속감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전시는 현실과 가상, 구상과 추상, 물질과 기술 사이의 균열을 창작의 가능성으로 전환한다.</p>

<p>전시 방식도 이 같은 취지를 따른다. 완성된 작품을 해외에서 운송해 진열하는 통상적인 국제전과 달리, 참여 작가들은 전시에 앞서 경기도 화도에 있는 비스타 밸리에서 3주 동안 함께 생활하며 작품을 제작한다. 지역의 문화와 재료, 사람들과 접촉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작업한 뒤 이를 서울 강남의 전시장으로 옮긴다. 장소와 만남이 달라지면 작품도 달라지므로 다른 도시에서 열린 전시를 그대로 반복할 수 없는 구조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500 float-center" data-idxno="5150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자동차 문으로 제작한 공중 설치 조형물 · 브뤼셀 에디션 · 사진= 앙투안 그르네" height="635"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6_51500_2927.png" width="600" />
<figcaption>자동차 문으로 제작한 공중 설치 조형물 · 브뤼셀 에디션 · 사진= 앙투안 그르네</figcaption>
</figure>
</div>

<p>공개된 해외 참여 작가는 조각·회화·음악을 넘나드는 에런 파울러(Aaron Fowler), 사진과 사운드·설치를 통해 생명과 공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앙투안 그르네(Antoine Grenez), 벽면을 손글씨로 뒤덮어 문자를 물질로 전환하는 드니 메이에르(Denis Meyers), 회화와 3차원 작업·무대미술을 결합하는 미아 더블유브이디(Mia.w.v.d) 등이다.</p>

<p>한국 작가로는 승지민, 강석태, 조국현, 양재문, 김재범 등 5명이 참여해 회화와 사진, 도자, 조형 및 설치를 아우르는 다층적인 전시를 선보인다.</p>

<p>승지민은 여성의 생명 잉태와 생성의 힘을 석류와 세포분열의 이미지로 시각화한다. 동서양에서 생명과 다산을 상징해 온 석류의 씨앗을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로 확장하고, 여성의 몸과 달항아리의 형상을 결합한다. 도자 부조와 유화, 아크릴을 한 화면에 구성한 작품은 생명의 탄생과 분화, 여성성과 모성에 관한 동시대적 서사를 제시한다.</p>

<p>강석태는 희망과 회복, 인간적 연대와 공존의 가능성을 회화와 캐릭터, 공간 설치로 풀어낸다. ‘어린 왕자’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자신만의 캐릭터 ‘StarB’로 확장됐으며, 푸른 하늘과 별, 꽃, 여우, 지구와 비행기 등의 이미지를 통해 만남과 이별, 상처와 치유의 경험을 밝고 따뜻한 시각언어로 전환한다.</p>

<p>조국현은 점과 선, 색채, 기하학적 형태와 원초적인 기호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자연, 기억의 관계를 탐구한다. 여러 겹의 물감과 혼합재료를 쌓고 긁어내거나 문지르는 작업 과정을 통해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며, 고대 상형문자를 연상시키는 기호와 강렬한 색채로 인간의 원초적 감정과 내면 풍경을 표현한다.</p>

<p>사진가 양재문은 한국 전통춤에 내재한 한(恨)과 신명(神明),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의 미학을 사진으로 재해석한다. 느린 셔터를 사용해 무용수의 연속적인 움직임을 한 화면에 중첩시키고, 움직임을 빛과 선, 시간의 흔적으로 전환한다. 그의 작품은 사진과 회화, 존재와 부재, 정지와 운동의 경계에서 한국 전통예술의 호흡과 여백을 새롭게 보여준다.</p>

<p>도예가 김재범은 한국 전통의 타날기법을 현대 도자예술로 확장한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영감을 받은 문양을 나무 도구에 새긴 뒤 흙의 표면에 반복적으로 두드려 새김으로써 선사시대의 이미지와 인간의 염원, 역사적 기억을 현대의 도자 조형에 연결한다. 사발과 달항아리, 장생과 군자 시리즈를 통해 한국 도자의 전통성과 동시대 조형언어가 만나는 지점을 탐색한다.</p>

<p>서로 다른 매체와 세대를 아우르는 한국 작가들의 작업은 해외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과 대화를 이루며 ‘하나 됨’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방향에서 확장한다. 생명의 생성과 여성성, 상처와 회복, 원초적 기억과 내면세계, 전통춤의 시간성, 흙에 새겨진 역사적 흔적은 모두 차이를 지우지 않으면서 서로 연결되는 전시의 구조를 형성한다.</p>

<p>2011년 브뤼셀에서 시작된 DIGITAL AF는 파리와 브뤼셀, 마이애미, 뉴욕, 리스본 등 여러 도시에서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주차장과 공장, 철거를 앞둔 건물처럼 일반적인 전시장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공간을 선택해 일시적인 예술 공동체를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p>

<p>DIGITAL AF는 전시가 끝난 뒤 남겨지는 작품이나 공간뿐 아니라, 그곳에서 형성된 관계가 다른 도시와 새로운 작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역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예술언어를 지닌 작가들이 함께 생활하고 작업하며, 관계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p>

<p>‘DIGITAL AF SEOUL 2026’은 행사 기간 매일 오전 10시부터 관람할 수 있으며, 전시와 함께 참여 작가와의 대화 및 다양한 공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자세한 행사 내용과 관람 신청은 DIGITAL AF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p>

<p>☞ <a href="https://pitch.digitalaf.xyz/  ">DIGITAL AF 공식홈페이지</a>      https://pitch.digitalaf.xyz/  </p>]]></content:encoded>
	  <category><![CDATA[칼럼]]></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트로이 목마에 관한 세 개의 변주곡 -영화평론가 심영섭의 '오디세이' 집중분석(4)]]></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4</link>
	  <dc:creator><![CDATA[심영섭 (영화평론가_]]></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4</guid>
	  <pubDate>Mon, 21 Sep 2026 16:04:11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이타카 궁의 연회장. 음유시인 래퍼 트래비스 스캇이 탁자위에 올라 지팡이로 바닥을 탕탕 두드리며,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한 활약상에 대해 노래합니다.한 얼굴, 한 함대, 한 전쟁, 한 남자, 한 생각, 한 계책영화《오디세이》의 첫 대사는 영어로 이렇게 시작됩니다.A face… a fleet… a war… a man… a thought… a trick…A trick to break the walls of Troy…이건 셰익스피어의 각운(rhyme)보다는 두운과 반복, 박자감으로 이루어진 랩에 가깝습니다. 계속 a]]></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세 번 다시 태어나는 목마 — 기념비이자 폐허, 계책이자 저주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4_51497_2926.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94 float-center" data-idxno="5149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370px"><img alt="▲ 영화 '오디세이'의 공식 포스터. ⓒ 유니버설 픽처스" height="54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4_51494_117.png" width="370" />
<figcaption class="text-left">▲ 영화 &#39;오디세이&#39;의 공식 포스터. ⓒ 유니버설 픽처스</figcaption>
</figure>
</div>

<p>이타카 궁의 연회장. 음유시인 래퍼 트래비스 스캇이 탁자위에 올라 지팡이로 바닥을 탕탕 두드리며,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한 활약상에 대해 노래합니다.</p>

<p><em><strong>한 얼굴, 한 함대, 한 전쟁, 한 남자, 한 생각, 한 계책</strong></em></p>

<p>영화《오디세이》의 첫 대사는 영어로 이렇게 시작됩니다.</p>

<div id="tem-type-4">
<div class="wrapper">
<p>A face… a fleet… a war… a man… a thought… a trick…</p>
</div>
</div>

<div id="tem-type-4">
<div class="wrapper">
<p>A trick to break the walls of Troy…</p>
</div>
</div>

<p>이건 셰익스피어의 각운(rhyme)보다는 두운과 반복, 박자감으로 이루어진 랩에 가깝습니다. 계속 a + 명사라는 동일한 문법적 단위를 짧게 끊어 던지는 걸 보세요.</p>

<p><em><strong>A FACE / A FLEET / A WAR / A MAN / A THOUGHT / A TRICK</strong></em></p>

<p>각 단어가 거의 한 박씩 떨어집니다. 특히 face–fleet에는 f 자음이 반복되고, a war… a man은 a 모음이 반복되며, a thought… a trick은 t자음이 반복됩니다. 모두 짧고 강세가 뚜렷한 단어라서 북을 치듯 리듬이 생깁니다. 그리고 스콧이 지팡이로 탁자를 두드리는 행동 자체가 일종의 비트(beat) 역할을 합니다.</p>

<p>사실 원전 《오디세이》가 문자로 정착되기까지 트로이 전쟁의 기억은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졌습니다. 트로이 전쟁과 호메로스의 시 사이에는 450년간의 간극이 있습니다. 전쟁은 사람의 입에서 사람의 귀로 건너갔고, 기억은 노래가 되었으며, 노래는 영웅을 만들었습니다.</p>

<p>그러니 놀란이 영화를 음유시인의 노래로 시작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발상입니다. 《오디세이》는 애초부터 읽는 이야기이기 전에, 누군가의 입으로 말하고 누군가의 귀로 듣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p>

<p>그러니까 놀란은 영화의 첫 장면부터 이렇게 선언합니다.<br />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 낭송을 현대 랩의 플로(flow)로 번역하겠다. 음유시인 역할을 왜 래퍼에게 맡겼겠습니까? 그는 트래비스 스캇을 호메로스 시대의 구전 전통과 현대 랩을 연결하기 위한 선택으로 설명했습니다.</p>

<p>저는 여기서 “한(a)”의 반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하나로 압축됩니다.</p>

<p><em><strong>한 얼굴. 한 함대. 한 전쟁. 한 남자. 한 생각. 한 계책.</strong></em></p>

<p>수많은 사람이 죽은 10년 전쟁이 단 몇 개의 단어로 압축되고, 결국 마지막에는 한 사람과 그의 한 가지 계책으로 수렴합니다. 오디세우스와 트로이 목마.</p>

<p>영웅 서사는 대개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오타니 쇼헤이가 야구장에서 수 만번 싸워서 몇 천번 지고 무릎 부상으로 고생하고 웨이트 트레이닝 하고 달걀 먹는 것을 끊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인데, “오타니 쇼헤이가 투수도 하고 타자도 하면서 야구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 라는 한 줄의 영웅담으로 줄어듭니다.</p>

<p>이것이 트로이 목마에 대한 첫 번째의 ‘등장’입니다. 흰 갑옷을 입은 트로이 군들이 달려와 목마 앞의 시논을 활과 창으로 제압한 뒤 묻습니다. 이 목마가 무엇이냐? 시논은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 답합니다.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는 목마 안에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정말로 그것이 아테네 여신의 제물이라고 믿습니다.</p>

<p>트로이 병사들은 말합니다.</p>

<div id="tem-type-1">
<p>아테나는 우리도 섬기는 신이다.</p>
</div>

<p>그리고 수백 명의 노예를 동원해 목마를 성 안으로 끌고 갑니다. 원래라면 트로이 목마는 명백히 영웅 신화의 오만한 물건이어야 합니다. 기발한 계책. 난공불락의 성을 무너뜨린 지략. 오디세우스라는 영웅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물건.</p>

<p>그런데 그러기는 커녕 목마는 모래속에 처박혀 있습니다. 이 이미지는 묘하게 셸리의 시 〈오지만디아스〉와 1968년 영화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95 float-center" data-idxno="5149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영화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1968)'의 한 장면. ⓒ 20세기 스튜디오(The Walt Disney Company)" height="306"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4_51495_23.jp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영화 &#39;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1968)&#39;의 한 장면. ⓒ 20세기 스튜디오(The Walt Disney Company)</figcaption>
</figure>
</div>

<p>〈오지만디아스〉에서 화자는 여행자에게 사막의 폐허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끝없는 모래벌판에 거대한 석상의 두 다리만 남아 있고, 부서진 얼굴은 모래 속에 반쯤 파묻혀 있다고. 얼굴에는 여전히 오만한 표정이 남아 있다고.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시조와 비슷한 정조입니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것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습니다.</p>

<p>《혹성탈출》의 마지막도 그렇습니다. 주인공 테일러는 해변 모래 속에 파묻힌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 그곳이 다른 행성이 아니라 지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열합니다. 인간 문명의 자기 파괴를 증언하는 이미지입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96 float-center" data-idxno="5149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영화 '오디세이 (The Odyssey, 2026)'의 한 장면. 놀란 감독은 인터뷰에서 해변에 반쯤 파묻힌 이 거대한 트로이 목마 비주얼이 1968년작 영화 '혹성탈출'의 결말(자유의 여신상 해변 장면)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  유니버설 픽처스"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4_51496_37.jp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영화 &#39;오디세이 (The Odyssey, 2026)&#39;의 한 장면. 놀란 감독은 인터뷰에서 해변에 반쯤 파묻힌 이 거대한 트로이 목마 비주얼이 1968년작 영화 &#39;혹성탈출&#39;의 결말(자유의 여신상 해변 장면)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 유니버설 픽처스</figcaption>
</figure>
</div>

<p>놀란의 트로이 목마도 비슷합니다. 영웅의 기념비 같아야 할 물건이 이미 폐허처럼 보입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우뚝 서 있는 트로이 목마는 부적처럼 불길합니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 트로이 목마의 회상 장면입니다. 두 번째 트로이 목마는 메넬라오스의 연회에서 등장합니다. 메넬라오스가 텔레마코스에게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대목이 정말 흥미롭습니다.</p>

<p>메넬라오스는 단순한 목격자가 아닙니다. 트로이 전쟁의 당사자입니다.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전쟁의 중심 인물이었고, 목마 안에도 직접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텔레마코스가 듣는 것은 객관적인 역사 기록이라기 보다, 아버지를 거의 모르는 아들이, 아버지의 전우에게서 아버지의 전설을 듣는 장면입니다. 텔레마코스에게 오디세우스는 함께 살아본 아버지라기보다 이야기 속 아버지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가장 거대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바로 트로이 목마입니다.</p>

<p>그래서 두 번째 목마는 첫 번째와 달리 기억이 전설이 되는 순간을 포착합니다.<br />
메넬라오스의 기억이 텔레마코스에게 전달되는 순간, 개인의 체험은 다음 세대가 물려받을 신화로 바뀝니다.</p>

<p>연회라는 공간도 의미심장합니다. 메넬라오스는 살아 돌아왔습니다. 왕궁도 되찾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성공한 귀환입니다. 돌아온 왕인 메넬라오스는 돌아오지 못한 왕, 해변을 떠오는 왕, 거지꼴이 된 왕 오디세우스와 여러모로 비교됩니다.</p>

<p>그런데 여기서 영화는 또 놀라운 반전을 꾀합니다. 메넬라오스 곁의 헬레네 얼굴에는 전쟁의 상처가 혹은 폭력의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연회는 얼핏 ‘성공적인 귀환’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p>

<p>메넬라오스도 사실 트로이에서 완전히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몸은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폭력의 바이러스는 어김없이 따라들어옵니다. 첫 번째 목마 안에는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있었으나, 두 번째에는 전쟁의 폭력이 사람의 내면에 숨어 있습니다. 이 점에서 두 번째 트로이 목마는 폐허가 아닌 섬뜩함으로 다가 옵니다. 도시는 함락된 뒤 끝났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p>

<p>세 번째 목마는 마침내 다시 오디세우스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것이 뒤집힙니다.<br />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타인의 환대를 악용해 트로이를 파괴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목마가 숨겨진 계략이었다면, 세 번째 목마는 똑 같은 지략이 대량살육의 도구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오디세우스의 기억 속에서 트로이 성은 더 이상 승리의 장소가 아닙니다.</p>

<p><strong>약탈. 살육. 폭력. 광기.</strong></p>

<p>승리의 실체가 파도처럼 직면적으로 밀려옵니다.<br />
목마는 이제 영리한 계책의 상징이 아니라, 도시 하나를 파괴로 밀어 넣은 문이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 병사의 손에 의해 아테나 여신상이 잘려나갑니다. 단순한 ‘신상 파괴’가 아닙니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와 가장 밀접한 신이었습니다. 힘보다 지략과 판단, 계책을 대표하고, 원전 《오디세이》에서는 오디세우스의 가장 중요한 신적 조력자입니다. 그런데 트로이를 함락시키는 순간, 그리스 병사들이 바로 그 아테나의 목을 잘라버립니다.</p>

<p>지혜의 이름으로 승리한 군대가 승리하는 순간, 지혜 자체를 파괴합니다. 영화는 그것을 인간의 참수와 교차시킵니다. 놀란은 이 장면이 아테나를 섬긴 여사제의 목도 참수된 것이라고 말합니다.</p>

<p>신의 목이 잘립니다.<br />
인간의 목이 잘립니다.<br />
그리고 문명의 규칙도 잘려나갑니다.</p>

<p>이 순간부터 트로이의 함락은 더 이상 ‘그리스의 승리’라고만 부르기 어렵습니다. 승리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됩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97 float-center" data-idxno="5149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세 번 다시 태어나는 목마 — 기념비이자 폐허, 계책이자 저주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4_51497_2926.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세 번 다시 태어나는 목마 — 기념비이자 폐허, 계책이자 저주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원전 신화와 연결하면 더 흥미롭습니다.<br />
트로이 함락 당시 카산드라는 아테나의 신상에 매달려 보호를 청하지만, 소아이아스가 그 성역을 침범합니다. 보호받아야 할 사람과 신성한 장소를 동시에 범한 것입니다. 이후 아테나가 그리스인들에게 분노하는 전승도 여기서 이어집니다. 놀란은 그 이야기를 훨씬 직접적인 이미지로 바꿉니다.</p>

<p><em><strong>목이 잘린 아테나. 모래에 반쯤 파묻힌 목마.</strong></em></p>

<p>트로이라는 한 도시의 몰락이 아닌, 한 문명의 몰락을 예견합니다.</p>

<p><em><strong>한 도시. 한 목마. 한 매복, 한 붕괴. 한 예언.</strong></em></p>

<p>머지않아 미케네 문명이 붕괴될 것입니다.<br />
가장 견고한 문명은 외부의 적이 아닌 오만과 착각과 탐욕이라는 내부의 적 때문에 무너지리라는 것을.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의 신이 예언합니다.</p>

<p>트로이 목마는 영화 속에서 계속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관객에게는 매번 다른 물건이 됩니다. 오디세우스가 만들어낸 물건이 나중에는 오히려 오디세우스를 끈질기게 따라다닙니다.</p>

<p>트로이 목마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봐야 합니다.</p>

<p>영웅의 기념비가 아니라 전쟁의 불길한 저주로.<br />
어쩌면 모든 문명은.<br />
어쩌면 모든 연애는.</p>

<p>자기만의 트로이 목마를 이미 성 안에 들여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p>

<p>그게 목마인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p>

<p>(계속)</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격변하는 세계 질서와 전장의 부활. 신(新) 방산 패권전쟁③] 대량생산과 납기 혁명. K-방산은 어떻게 틈새를 파고들었나]]></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2</link>
	  <dc:creator><![CDATA[신성은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2</guid>
	  <pubDate>Sun, 20 Sep 2026 22:56:18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방위산업에서 가장 비싼 자산 가운데 하나는 첨단기술이 아니라 ‘시간’이 됐다.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 국가에는 5년 뒤 도착하는 최고 성능의 무기보다 1~2년 안에 실전 배치할 수 있는 충분히 우수한 무기가 더 절실했다. 냉전 이후 생산시설을 축소해 온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들이 갑작스럽게 폭증한 주문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이른바 ‘납기의 공백’이 발생했고, 한국 방위산업은 바로 이 틈을 파고들었다.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곳이 폴란드였다. 폴란드는 2022년 8월 26일 K2 전차 180대와 K9 자주포 2]]></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by chatgpt & midjourney"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2_51487_5343.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by chatgpt & midjourney</div><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87 float-center" data-idxno="5148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by chatgpt & midjourney"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2_51487_5343.png" width="600" />
<figcaption>by chatgpt & midjourney</figcaption>
</figure>
</div>

<p>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방위산업에서 가장 비싼 자산 가운데 하나는 첨단기술이 아니라 ‘시간’이 됐다.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 국가에는 5년 뒤 도착하는 최고 성능의 무기보다 1~2년 안에 실전 배치할 수 있는 충분히 우수한 무기가 더 절실했다. 냉전 이후 생산시설을 축소해 온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들이 갑작스럽게 폭증한 주문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이른바 ‘납기의 공백’이 발생했고, 한국 방위산업은 바로 이 틈을 파고들었다.</p>

<p>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곳이 폴란드였다. 폴란드는 2022년 8월 26일 K2 전차 180대와 K9 자주포 212대를 도입하는 1차 실행계약을 체결했다. 첫 번째 K2 전차 10대와 K9 자주포 24대는 그해 12월 6일 그디니아항에 도착했다. 계약에서 첫 인도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개월여였다. 폴란드 국방부도 당시 한국 정부의 지원 덕분에 K2·K9·FA-50·천무를 매우 짧은 기간에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p>

<p>이 사건은 K-방산의 경쟁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한국 무기의 경쟁력이 단순히 가격이 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검증된 무기를 필요한 시기에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데 있다는 사실이 국제시장에 각인된 것이다.</p>

<p> </p>

<p><strong>분단국가의 약점이 방산 경쟁력이 됐다</strong></p>

<p>한국이 이런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 배경에는 특수한 안보환경이 있다. 미국과 서유럽이 냉전 종식 이후 군축과 방산산업 구조조정을 진행한 것과 달리 한국은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면서 대규모 육군과 포병·기갑전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했다.</p>

<p>그 과정에서 전차와 자주포, 탄약, 장갑차, 유도무기를 생산하는 제조기반도 유지됐다. 창원의 기계·방산산업, 구미의 전자·유도무기 산업, 사천의 항공산업 등은 각각 별개의 공장이 아니라 한국 제조업 생태계와 연결돼 발전했다.</p>

<p>여기에 자동차·조선·철강·기계·전자산업에서 축적된 대량생산 경험이 결합됐다. 방위산업만 따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한국 제조업 전체의 공급망과 품질관리, 생산기술이 방산의 배후를 떠받쳤다.</p>

<p>이 차이는 전쟁 이후 더욱 중요해졌다. 평시 방산에서는 최고 성능의 무기를 개발하는 능력이 핵심이었다면 장기 소모전에서는 생산량과 공급 속도가 또 하나의 성능이 됐기 때문이다.</p>

<p>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해외 수주잔고가 2021년 약 5조1000억원에서 2024년 3월 약 30조원으로 급증한 것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로이터는 한국 방산업체들의 효율적인 생산체계와 신속한 공급, 전국적인 군 운용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유지·보수 능력을 경쟁력으로 평가했다. </p>

<p><strong>K9에서 천무까지…한국이 확보한 ‘양산 무기군’</strong></p>

<p>이 구조에서 가장 먼저 세계시장에 자리 잡은 무기가 K9 자주포다. K9 계열은 폴란드·핀란드·에스토니아·노르웨이·루마니아·튀르키예 등 NATO 회원국으로 운용 기반을 확대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재 K9이 세계 자주포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로이터 역시 세계 자주포 수출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업계 평가를 전한 바 있다. </p>

<p>K9의 성공은 천무로 확장되고 있다. K239 천무는 다연장로켓 체계라는 점에서 미국 HIMARS와 경쟁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었다. 폴란드에 이어 에스토니아와 노르웨이가 천무를 선택했고, 2026년 9월에는 크로아티아까지 계약에 합류했다. 한국산 지상화력 체계가 일부 동유럽 국가의 긴급수요를 채우는 단계를 넘어 NATO 국가의 장기 전력구조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갑 분야에서는 K2 전차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폴란드는 2022년 계약한 K2 180대의 인도를 2025년 11월 완료했고, 같은 해 두 번째 실행계약을 체결했다. 새 계약에 따라 2026~2030년 다시 180대가 공급되며 이 가운데 K2PL 61대는 폴란드 부마르-와벤디 공장에서 생산된다. 한국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단계에서 현지생산으로 사업모델이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p>

<p>항공에서는 FA-50이 한국 방산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FA-50은 고가 전투기를 모든 임무에 투입하기 어려운 국가에 훈련·경공격·일부 전투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했다. 여기에 KF-21이 본격적인 양산과 수출 단계로 진입하면 한국은 지상무기 중심의 방산국가에서 항공전력까지 공급하는 국가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p>

<p>중동에서는 천궁-II가 또 다른 축을 만들었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으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한국 방산의 수출 품목이 전차와 자주포 같은 기계·화력체계에서 정밀유도무기와 방공체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p>

<p> </p>

<p><strong>‘가성비’보다 중요한 것은 패키지다</strong></p>

<p>초기 K-방산의 성공을 설명할 때 ‘가성비’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실제 경쟁력은 성능과 가격, 생산능력, 납기, 교육훈련, 유지·보수, 탄약 공급과 현지생산을 하나로 묶어 제안하는 데 있다.</p>

<p>한국군이 장기간 실제 운용해 온 무기라는 것도 강점이다. 대량의 장비를 자국군이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부품과 정비, 교육훈련 체계가 이미 구축돼 있다. 수입국 입장에서는 무기를 구입하는 것뿐 아니라 수십 년간 운용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함께 확보할 수 있다.</p>

<p>폴란드 사례는 여기에서도 중요하다. 천무는 폴란드산 JELCZ 차량과 결합됐고, K2와 K9 사업 역시 단순 완제품 구매에서 현지생산과 기술협력으로 확대됐다. 한국산 무기를 그대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국의 기존 산업과 군수체계에 맞춰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p>

<p>이 때문에 K-방산을 미국과 유럽 무기를 값싸게 대체하는 산업으로만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미국과 유럽이 제공하지 못했던 납기와 생산량을 제공하면서도 서방 군사체계와 비교적 쉽게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88 float-center" data-idxno="51488"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by chat gpt"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2_51488_5434.png" width="600" />
<figcaption>by chat gpt</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이제부터가 더 어려운 경쟁이다</strong></p>

<p>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공이 앞으로도 자동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K-방산은 두 번째 시험대에 들어서고 있다.</p>

<p>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자체 방위산업을 복원하고 있다. 독일 라인메탈을 비롯한 유럽 업체들이 생산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있고, EU도 막대한 국방재원을 유럽 역내 생산과 공동조달에 연결하려 하고 있다. 유럽의 생산능력이 회복되면 한국이 누렸던 ‘빠른 납기’라는 희소성도 줄어들 수 있다.</p>

<p>수입국의 요구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무기를 얼마나 빨리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자국에서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 핵심부품과 탄약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계약조건으로 등장하고 있다.</p>

<p>폴란드 K2PL 현지생산은 이런 변화의 상징이다. 한국 방산기업에는 단기적으로 기술과 생산의 일부를 해외에 이전해야 하는 부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유럽 내부에 생산거점을 확보하는 전략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K-방산의 다음 경쟁은 수출액 자체보다 어디까지 현지화하면서 핵심 기술과 수익성을 지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 완제품 수출에서 현지생산과 공동개발, MRO, 탄약·부품 공급으로 사업구조를 확장해야 한다.</p>

<p>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방산시장의 평가기준을 바꿨다. 최고 성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필요한 시점에 충분한 수량을 공급하고, 수십 년 동안 정비와 탄약을 제공하며, 필요하다면 구매국과 생산기반까지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p>

<p>K-방산은 바로 이 변화에서 기회를 잡았다. 2022년 그디니아항에 도착한 K2 전차와 K9 자주포는 단순한 첫 수출물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세계 방산시장에서 ‘성능’ 못지않게 ‘생산능력과 시간’이 전략적 가치가 되는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p>

<p>한국 방위산업의 첫 번째 도약은 빠른 생산과 납기에서 시작됐다. 이제 두 번째 도약은 한국에서 무기를 만들어 파는 것을 넘어 세계 곳곳에 생산·정비·탄약·기술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K-방산이 일시적인 전쟁 특수를 넘어 미국과 유럽의 방산 메이저들과 경쟁하는 구조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바로 이 두 번째 단계에서 결정될 것이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박철웅의 AI디코딩] 반복 없는 반복, 오버피팅의 무대]]></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9</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9</guid>
	  <pubDate>Sun, 20 Sep 2026 22:17:20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오버피팅의 무대 — 고도, 그리고 비어 있는 반복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읽는다. 무대 위에는 사건이 없다. 앙상한 나무 한 그루, 뜨는 둥 마는 둥 하는 달,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두 인물의 반복만 있을 뿐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말은 유머와 빈정거림을 띤다. 하지만, 그 밑에는 목적을 향한 학습이 아니라 목적 자체가 사라진 자리에 던져진 습관적 응답만 남는다. 신발을 벗었다 신고, 모자를 바꿔 쓰고, 떠나자 말하고도 떠나지 않는다. 1막과 2막은 거의 같은 모양으로 반복되지만, 완전히 같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나무 한 그루, 의자 하나. 그 둘레로 번져가는 완벽한 복제들 사이, 성기게 뚫린 틈으로 빛이 든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9_51476_4548.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76 float-center" data-idxno="5147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나무 한 그루, 의자 하나. 그 둘레로 번져가는 완벽한 복제들 사이, 성기게 뚫린 틈으로 빛이 든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9_51476_4548.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나무 한 그루, 의자 하나. 그 둘레로 번져가는 완벽한 복제들 사이, 성기게 뚫린 틈으로 빛이 든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strong>오버피팅의 무대 — 고도, 그리고 비어 있는 반복</strong></p>

<p>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읽는다. 무대 위에는 사건이 없다. 앙상한 나무 한 그루, 뜨는 둥 마는 둥 하는 달,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두 인물의 반복만 있을 뿐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말은 유머와 빈정거림을 띤다. 하지만, 그 밑에는 목적을 향한 학습이 아니라 목적 자체가 사라진 자리에 던져진 습관적 응답만 남는다. 신발을 벗었다 신고, 모자를 바꿔 쓰고, 떠나자 말하고도 떠나지 않는다. 1막과 2막은 거의 같은 모양으로 반복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 어긋남 속에서 오늘의 기술적 상황이 겹쳐 읽힌다. 문장과 이미지가 끝없이 쏟아지는 시대, 그 풍요는 종종 체험의 빈곤을 가리는 장치로 뒤바뀐다.</p>

<p>오버피팅(Overfitting)은 주어진 데이터에 과도하게 적응한 상태를 이른다. 학습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모델은 훈련 데이터의 잡음까지 암기한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일반화 능력을 잃는다. 고도에 대한 인물들의 집착이 이와 닮았다. 단서를 좇아 규칙을 찾으려 애쓴다. 그럼에도 그 규칙은 현실을 포괄하는 일반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특정 지점에 지나치게 맞춘 의식은 외부의 변화에 둔감해진다. 이 폐쇄성이야말로 생성의 풍요 속에서 체험이 소거되는 메커니즘이다.</p>

<p>잘 맞는 것과 잘 사는 것은, 알고 보면 다른 말이다. 오버피팅된 글은 어디서 본 듯한 문장으로 매끈하다. 상투구가 상투구를 부르고, 안전한 접속사가 안전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실패의 흔적이 없는 문장은 그래서 수상하다. 칼럼과 사설이 놓인 자리도 다르지 않다. 마감은 언제나 촉박하다. 생성형 AI는 그 촉박함을 메워주겠다고 손을 내민다. 그러나 편집의 일은 문장을 빨리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 문장이 겪어야 할 시간을 대신 살아주는 일이다. 초고를 고쳐 쓰고 버리고 다시 쓰는 지루한 반복이야말로 오버피팅을 막는 유일한 드롭아웃이다.</p>

<p>드롭아웃(Dropout)은 다르다. 일부 학습 경로를 임의로 차단해 특정 경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막는 장치다. 신경망의 일부 뉴런을 훈련 중 무작위로 끄는 일은 전체의 일반화 능력을 되살린다. 무대의 정적과 여백이 이와 닮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점, 의미가 의도적으로 비워진 순간은 관객에게 질문의 여지를 남긴다. 고도가 오지 않는 시간은 하나의 교정 장치, 일정한 경로를 끊어내는 장치로 읽힌다. 두 사람은 매일 같은 자리에서 기다란다. 그러나 어제의 기다림과 오늘의 기다림은 같지 않다. 반복이 이어질수록 제거된 자리가 드러난다. 그 공백에서 다른 상상이 자란다.</p>

<p>이 두 개념의 접합은 은유를 넘어선다. 생성형 알고리즘은 문장을 완성하고 이미지를 복제하고 음악을 연주한다. 산출물은 풍성해 보이지만, 그 풍요가 곧바로 흡수되지는 않는다. 실감은 결과의 소비로 환원되지 않는다. 기다림과 실패, 우회와 번민의 시간 속에서 빚어진다. 문화가 특정 산출 패턴에 지나치게 순응하면 새로운 맥락에 적응할 힘을 잃는다. 반대로 드롭아웃적 전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일부 산출을 의도적으로 차단한다. 이는 의미 생성의 공백을 허용하는 태도다.</p>

<p>생성의 정치학이라 불러도 좋을 문제가 여기 있다. 무엇을 빠르게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손은 언제나 자본과 플랫폼 쪽에 있다. 느리게 겪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마감에 쫓기는 사람에게 드롭아웃은 사치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치를 포기하는 순간, 문장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게 된다.</p>

<p>〈고도를 기다리며〉의 기다림은 무의미의 증거가 아니다. 고도의 부재가 남기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결핍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조건들에 대한 응시다. 공허는 그 자체로 파괴적이지 않다. 고도의 도래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는 장치로 작동할 뿐이다. 이 장치가 없다면 생성은 연속되되 맥락을 잃은 반복으로 전락한다. 감각은 표면적 소비로 해체된다. 기다림의 시간은 비활동이 아니라 노동에 가깝다. 내부의 온도를 조절하고, 모양을 잡지 못한 감각을 숙성시키며, 사려 깊은 재구성을 가능케 하는 느린 노동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77 float-center" data-idxno="5147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같은 동작이 완벽하게 겹쳐 번질 때, 어딘가 성기게 비워진 자리가 먼저 눈에 든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9_51477_4649.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같은 동작이 완벽하게 겹쳐 번질 때, 어딘가 성기게 비워진 자리가 먼저 눈에 든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언어의 과잉은 또 다른 침묵을 낳는다. 말이 많을수록 듣는 이의 감수성은 둔해진다. 문장들은 서로의 울림을 덮는다. AI가 생산하는 문장이 이를 가속할 때, 우리는 문장의 표면을 훑는 능력만 키우고 그 내적 흔적을 잃는다. 기억과 체험은 같지 않다. 기억은 구조화된 데이터처럼 보이지만, 몸에 새겨지는 것은 기울기와 굴절과 실패의 기미다. 오버피팅은 이 차이를 무시한다. 훈련의 성공이 삶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p>

<p>도구에 대한 오해가 여기 하나 더 겹친다. 생성형 AI는 새로운 지성의 출현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도구의 층위에 머문다. 무한한 산출 속에서 사람들은 지적 행위를 대체하는 존재를 발견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데이터는 과거의 흔적과 패턴을 담을 뿐, 새로운 의미를 스스로 발명하지 않는다. 질문을 세우고 실패를 껴안으며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AI는 그 과정에서 탈락한다. 결과의 풍부함을 삶의 풍부함으로 착각하는 순간, 의미는 공허로 바뀐다. 도구는 결과를 내놓을 뿐, 그 결과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뜻을 세우는 일은 언제나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그 몫을 대신 떠맡기려는 순간,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내주고 있는 것이다. 도구가 정교할수록 그 산출물은 사람이 길어 올리는 체험과 결합할 때만 의미를 얻는다.</p>

<p>과잉 신뢰는 사고 구조를 단순화한다. 삶이 길어 올리는 미세한 감각과 시간의 층위를 무력화한다. 우리는 빠른 결과를 능력과 동일시하지만, 사유는 속도로 환산되지 않는다. 무엇을 잃고 있는가. 오버피팅으로 기울어진 시선을 보정하는 것, 드롭아웃이 열어주는 여백을 의식하는 것 — 새로운 비평적 실천은 거기서 시작된다.</p>

<p> </p>

<p><strong>접속의 착시 — 팬데믹 교실이 남긴 체험의 증발</strong></p>

<p>코로나19는 교육의 시간과 공간을 통째로 흔들었다. 갑작스러운 비대면 전환 속에서 온라인 강의는 대안이 아니라 하나의 폭발이었다. 화면 너머 학생과 교사의 존재는 접속 수와 참여율로 쉽게 측정되었다. 그 아래 배움의 깊이는 오히려 옅어졌다. 클릭과 로그인이 늘어날수록 학습이 저절로 깊어진다는 가정은 허구였다. 그 허구는 서서히 무기력과 피로로 드러났다. 화면 속 얼굴은 꺼져 있고, 이름만 목록에 떠 있는 시간이 있었다. 출석은 기록됐지만, 그 자리에 사람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다. 검은 사각형 위에 뜬 이름 하나가 한 학기를 났다.</p>

<p>온라인 강의는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있을 듯 보였다. 교사는 화면 앞에서 강의를 반복하고 자료는 쌓였다. 그러나 접속과 전달은 몸과 몸이 부딪는 상호작용을 대신하지 못했다. 배움은 실패와 즉각적 반응, 감각적 판단 속에서 깊어지지만, 단방향의 정보 흐름은 그 층위를 지웠다. 클릭과 참여 로그는 쌓였어도 지식의 밀도는 함께 늘지 않았다. 질문은 채팅창에 입력됐다가 아무 대답 없이 밀려 올라갔다. 강의는 끝났는데, 배움은 시작도 못한 채 저장 폴더에 남았다. 다시 문을 연 교실에서 교사들은 알아챘다. 아이들은 더 많이 알았지만, 더 적게 겪었다.</p>

<p>AI 교실의 등장은 이 경향을 가속한다. ‘AI 튜터’, ‘AI 강사’는 맞춤형 지도를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전달에 한정된다. 오답을 짚어주고 진도를 조정하는 정밀함은 있으나, 망설임의 표정을 읽는 눈은 없다. 즉각적 답변과 알고리즘 기반 피드백은 편리하되, 감정과 관계 속에서 길어 올려지는 배움을 대신하지 못한다. 학습자는 알고리즘의 결과를 소비할 뿐, 사유의 밀도는 사라진다. 정답을 맞히는 속도는 늘었으나, 왜 틀렸는지 오래 붙들고 앉아 있는 아이는 줄었다. 교사들은 이제 두 종류의 답안지를 받아 든다. 정답을 맞힌 답안지와, 스스로 헤맨 흔적이 남은 답안지. 둘은 같은 점수를 받아도 같은 것이 아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78 float-center" data-idxno="51478"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검은 사각형이 줄지어 선 자리, 하나의 창만이 낮게 켜져 있다. 접속은 가득했으나 자리는 비어 있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9_51478_4819.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검은 사각형이 줄지어 선 자리, 하나의 창만이 낮게 켜져 있다. 접속은 가득했으나 자리는 비어 있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접속의 수와 배움의 깊이를 동일시하는 관념 속에서 교육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그 팽창의 넓이만큼 의미는 공허해졌다. 사람은 화면 속 데이터에 주의를 빼앗기고, 몸으로 겪는 배움의 순간을 잃는다. 반복은 무기력과 피로만 낳는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접속하고 과제를 제출하지만, 몸에 새겨지는 지식은 비어 있다. 접속량은 배움의 대체재가 될 수 있는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화면이 꺼진 뒤에야 알았다.</p>

<p>팬데믹이 걷힌 뒤에도 이 구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교해진 플랫폼과 맞춤형 알고리즘으로 몸집을 불렸다. 효율은 증명하기 쉽고, 겪음은 증명하기 어렵다. 증명하기 쉬운 것이 언제나 이긴다.</p>

<p>에듀테크 시장의 팽창과 함께 교육은 효율과 정량적 성취에 매몰된다. 알고리즘은 이해도를 점수화하고 접속 시간과 클릭 수를 기록하지만, 성장은 측정하지 못한다. 폭발적 접속은 풍요처럼 보인다. 그러나, 몸이 겪지 않은 풍요는 공허다. 그 공허 속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겪음을 통해 의미를 길어 올려야 한다. 교실은 다시 열렸다. 그러나 접속이 남긴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얼마나 많이 연결되었는가로 배움을 재고, 얼마나 깊이 겪었는가는 묻지 않는다.</p>

<p> </p>

<p><strong>반복 없는 반복 — 대장장이의 망치와 언어모델 사이</strong></p>

<p>최근 온라인에는 생성형 AI 사용법이 넘쳐난다. 글쓰기 도구로서의 경험담이 특히 많다. 그런데 ChatGPT와 Claude의 차이를 묻는 질문은 얼핏 도구 간 성능 격차를 캐묻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물음 자체에 한계가 있다. 어느 모델이 우수한가를 가르는 잣대는 순간의 산출물에 불과하다. 그 차이가 드러내는 본질은 오히려 사용자의 사유 방식과 질문의 깊이에 있다. 동일한 입력과 목표에도 결과는 흔들리거나 불완전할 때가 많다. 중요한 것은 도구의 우열이 아니다. 그 도구를 통해 무엇을 겪고 사유하는가다.</p>

<p>니콜라이 베른슈타인의 대장장이 실험이 이를 보여준다. 하루에도 수천 번 반복되는 망치질 속에서, 대장장이의 망치는 언제나 같은 자리를 때리지만 그 경로는 매번 다르다. 하나의 관절이 흔들리면 다른 부위가 즉각 보정하며 전체 궤적의 일관성을 지킨다. 베른슈타인은 이를 ‘반복 없는 반복’이라 불렀다. 그가 마주한 것은 자유도 문제였다. 팔 하나를 움직이는 데도 어깨와 팔꿈치와 손목이 저마다의 자유도를 지닌다. 몸은 그 수많은 변수 중 하나의 경로만을 골라 결과에 이른다.</p>

<p>완벽한 단 하나의 궤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결과는 같아도 몸이 그 결과에 이르는 길은 매번 새로 쓰인다. 문장을 쓰는 손도 다르지 않다. 같은 문장을 열 번 고쳐 쓰면, 열 개의 다른 손목이 그 문장을 지나간다. 퇴고는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다. 매번 다른 손목으로 같은 문장을 다시 통과하는 일이다. 초고와 재고가 다른 것은 실패해서가 아니다. 그 사이에 몸이 한 번 더 겪었기 때문이다.</p>

<p>비평의 언어에는 애초에 정답이 없다. 같은 작품을 두고 열 명의 비평가가 열 개의 문장을 쓴다면, 그 차이는 실패가 아니라 방법이다. 언어모델을 정답 기계로 대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비평이라는 행위의 본질을 놓친 것이다. 자유도가 큰 문장일수록, 그 안에 쓴 사람의 체온이 남는다.</p>

<p>거대언어모델의 산출물이 갈리는 현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ChatGPT와 Claude가 같은 질문에 다르게 반응하는 것은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학습 데이터와 아키텍처와 강화 학습 전략의 차이에서 온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정답에 가까운가가 아니다. 사용자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무엇을 사유하는가다. 단일한 답을 얻는 순간, 사람은 체험의 곡선이 열어주는 가능성을 잃는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79 float-center" data-idxno="5147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망치는 언제나 같은 자리를 때리지만, 그 경로는 매번 다르다. 문장을 쓰는 손도 다르지 않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9_51479_492.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망치는 언제나 같은 자리를 때리지만, 그 경로는 매번 다르다. 문장을 쓰는 손도 다르지 않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운동 기술이 단일 동작의 정확성이 아니라 수많은 변형과 조정 속에서 완성되듯, 사유도 실수와 반복, 변화를 통해 배운다. 언어모델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프롬프트에서 동일한 결과를 얻는 일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모델마다 다른 반응을 겪으며 사고를 벼리고, 질문을 다시 세우고, 새로운 맥락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학습과 창작의 본질이다. 좋은 글쓰기는 정답을 복사하는 일이 아니다. 매번 다른 경로로 같은 진심에 이르는 일이었다.</p>

<p>“둘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물음은 본질을 비껴간다. 차이는 표면적이고 순간적이다. 도구를 저울질하는 순간, 우리는 체험의 곡선을 등한시한다. 체험은 산출물,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을 매개로 겪는 사유와 성찰이 중요하다. 대장장이의 망치처럼, 동일한 목표라도 경로는 다양하다. 사람은 그 속에서 능동적으로 조정하며 의미를 빚는다. 실패한 경로도 버려지지 않는다. 다음 문장이 그 실패를 딛고 조금 더 정확한 자리에 도착한다. 도구의 미묘한 차이는 체험의 장치일 뿐, 그 속에서 사유와 질문이 주체로 서야 한다.</p>

<p> </p>

<p><strong>느린 사유를 위하여 — 수행성의 시대, 드롭아웃의 윤리</strong></p>

<p>무한히 생산되는 텍스트와 이미지, 코드와 해석. 생성형 AI가 쏟아내는 산출의 흐름은 폭포처럼 거세지만, 그 아래 흐르는 강물은 메마르다. 산출이 넘칠수록 실감은 옅어진다. 의미의 자리는 비워진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글이 지니던 느린 침잠의 시간은 더는 당연히 기대할 수 없다. AI가 만드는 ‘완전한 즉시성’은 역설적으로 체험의 공백을 선명히 드러낸다.</p>

<p>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지식이 더는 진리가 아니라 수행성(performativity)으로 정당화되는 시대를 그렸다. 근대를 떠받치던 거대서사들, 진보와 해방과 계몽의 이야기가 신뢰를 잃은 자리에서, 지식은 효율과 산출로 값이 매겨진다. 무엇이 참인가보다 무엇이 작동하는가가 앞서는 세계다. AI의 산출 역시 이 수행성의 연장선에 있다. 문제는 속도의 폭발이 실감의 폭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속도가 늘수록 경험을 내면화할 기회는 줄어든다. 산출물은 이미 의미를 기다리는 시간을 빼앗긴 채, 기호의 연속으로만 남는다.</p>

<p>한병철은 『시간의 향기』에서 가속의 시대가 잃은 것을 말한다. 사유는 정보의 폭주 속에서가 아니다. 사유는 의도된 지연과 반복된 숙고 속에서 여문다. 관조하는 삶은 머뭇거림을 견디는 능력이다. 그 머뭇거림이야말로 실감을 빚는 시간이다. 손끝이 마우스 위에서 잠시 멈추는 순간, 문장이 완성되기 전 숨을 고르는 순간 — 그 짧은 정지가 사유의 자리다. 활동이 곧 미덕인 시대는 그 정지를 게으름이라 부르곤 한다. 하지만, 정지 없이는 아무것도 여물지 않는다.</p>

<p>AI의 즉각적 산출은 이 느린 시간을 건너뛴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구축되지 못한 채 흩어지는 공허다. 읽는 일도 마찬가지다. 화면을 스크롤하며 훑는 눈과, 문장 하나에 오래 머무는 눈은 같은 정보를 다르게 겪는다. 전자는 정보를 얻지만, 후자만이 그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80 float-center" data-idxno="5148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손끝이 마우스 위에서 잠시 멈추는 순간, 문장이 완성되기 전 숨을 고르는 순간. 그 짧은 정지가 사유의 자리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9_51480_5011.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손끝이 마우스 위에서 잠시 멈추는 순간, 문장이 완성되기 전 숨을 고르는 순간. 그 짧은 정지가 사유의 자리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문학과 교육과 철학에서 겪는다는 일은 정보의 입력과 출력이 아니다. 한 권의 시집을 되새김질하고, 교실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기다리며, 개념과 경험을 맞대는 긴장 — 이 느린 겪음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든다. AI는 이 시간에 참여하지 못한다. 무한한 산출력을 지녔어도, 결핍과 긴장을 몸으로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p>

<p>예술가가 캔버스와 씨름하는 시간, 철학자가 논증 속에서 길을 잃는 시간, 학생이 실패 속에서 생각을 조율하는 시간. 이 시간들은 한꺼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AI가 내놓는 것은 결과뿐이며, 그 결과를 두고 좋다 나쁘다를 가르는 순간 이미 사유는 배제된 상태다.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과 이 시간이 닮았다. 고도라는 사건은 오지 않을지라도, 기다림 자체가 의미를 나른다.</p>

<p>의미는 즉각 주어지지 않는다. 산출의 폭주 속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속도가 아니라 기다림과 실패, 질문과 사유의 곡선이다. 오버피팅으로 기운 시선을 바로잡고, 드롭아웃이 열어주는 여백에 머무는 일 — 그것이 생성의 시대에 남은 윤리다. 머신러닝에는 조기 종료(Early Stopping)라는 장치도 있다. 학습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고, 성능이 가장 좋은 지점에서 스스로 멈추는 규칙이다. 무한히 정교해지는 것이 언제나 옳지는 않다는 뜻이다.</p>

<p>고도를 기다리는 일도 그렇다. 고도가 오지 않아도 되는 지점, 기다림 자체로 이미 충분한 지점이 있다. 그 지점을 아는 사람만이, 생성의 풍요 속에서도 자신의 문장을 잃지 않는다. 대장장이의 망치가 매번 다른 길로 같은 자리를 때리듯, 우리도 매번 다른 길로 같은 진심에 이르러야 한다. 고도는 오지 않아도 좋다. 기다림이 이미, 반복 없는 반복으로 남을 것이다.</p>

<p> </p>

<p> </p>

<p><strong>글‧박철웅</strong><br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에디터<br />
작가‧문화평론가 <br />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 전공<br />
IBM과 NTT에서 마케팅과 컨설팅 담당<br />
2011년 『원순씨를 부탁해』 출간<br />
비평적 글쓰기, 사회, 문화 예술과 인간을 관통하는 글을 쓰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서학개미들의 '애착 주식' 스트래티지 주가 왜 폭등?]]></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1</link>
	  <dc:creator><![CDATA[김시래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1</guid>
	  <pubDate>Sun, 20 Sep 2026 19:22:27 +0900</pubDate>
	  <description><![CDATA[현대 금융시장에서 자산 가치란 무엇인가. 20세기 초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주식시장을 신문사 미인대회에 비유했다. 심사위원이 자신의 눈에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이 누구를 가장 아름답다고 투표할지 예측해 표를 던지는 자기반영적 게임이라는 통찰이었다. 2026년 현재 미국 월스트리트 한복판에서 이 케인스식 미인대회의 가장 첨단화된 변종이 펼쳐지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스트래티지(Strategy Inc., 종목코드 MSTR)다.글로벌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 매체 블록비츠는 20일 디지털 자산 파생]]></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실체(동전)를 뛰어넘은 착시의 가치(거울 탑)와 레버리지의 한계(단선되는 케이블). 타인의 시선만 좇는 투기 심리 속에서 19세기 철도 광풍의 유령이 고개를 든다. Visual concept by PSTPHNS" height="335"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1_51486_2737.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86 float-center" data-idxno="5148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실체(동전)를 뛰어넘은 착시의 가치(거울 탑)와 레버리지의 한계(단선되는 케이블). 타인의 시선만 좇는 투기 심리 속에서 19세기 철도 광풍의 유령이 고개를 든다. Visual concept by PSTPHNS" height="335"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1_51486_2737.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실체(동전)를 뛰어넘은 착시의 가치(거울 탑)와 레버리지의 한계(단선되는 케이블). 타인의 시선만 좇는 투기 심리 속에서 19세기 철도 광풍의 유령이 고개를 든다. Visual concept by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현대 금융시장에서 자산 가치란 무엇인가. 20세기 초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주식시장을 신문사 미인대회에 비유했다. 심사위원이 자신의 눈에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이 누구를 가장 아름답다고 투표할지 예측해 표를 던지는 자기반영적 게임이라는 통찰이었다. 2026년 현재 미국 월스트리트 한복판에서 이 케인스식 미인대회의 가장 첨단화된 변종이 펼쳐지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스트래티지(Strategy Inc., 종목코드 MSTR)다.</p>

<p>글로벌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 매체 블록비츠는 20일 디지털 자산 파생상품 거래소 BIT 시세 데이터를 토대로 스트래티지가 최근 한 달 동안 48%라는 경이적인 상승률을 기록<strong>(아래 그래프 참조)</strong>했다고 전했다. 이 수치는 같은 기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글로벌 혁신을 주도하는 초대형 기술주들이 집결한 나스닥100 지수 구성 종목 가운데 가장 높은 성적표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금융사를 제외한 우량 대형주 100개로 구성된 나스닥100에서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이 단기간에 경쟁자들을 압도하며 정상에 오른 사실은 월가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84 float-center" data-idxno="5148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760px"><img alt="" height="55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1_51484_2027.jpg" width="76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그러나 이 48%라는 단일 수치만으로 스트래티지와 비트코인의 상관관계를 단순 재단하거나 미래 주가의 향방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표면적으로는 비트코인 시세 상승에 기댄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월가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정교한 부채 조달 방식, 주식시장과 가상자산 시장 사이의 차익거래, 그리고 파생상품의 연쇄 청산이 빚어낸 거대한 금융공학의 파노라마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p>

<p>이에앞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출발한 스트래티지가 어떻게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39;비트코인 트레저리 기업&#39;으로 탈바꿈했는지, 그리고 왜 이 회사의 주가가 기초자산인 비트코인보다 서너 배나 더 격렬하게 치솟으며 나스닥100의 챔피언이 됐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p>

<p>스트래티지의 뿌리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마이클 세일러(61) 회장이 설립한 이 회사는 기업용 비즈니스 인텔리전스와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던 평범한 정보기술 기업이었다. 1998년 나스닥에 상장됐고 2000년 닷컴 버블 당시 주가 폭등과 폭락을 겪으며 산전수전을 다 치렀다. 그 후 20년 가까이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하던 스트래티지는 2020년 8월, 세계 경제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승부수를 던졌다.</p>

<p>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각국 중앙은행이 천문학적인 유동성을 쏟아붓자 마이클 세일러 회장은 현금 가치가 녹아내릴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2020년 8월 실적 발표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보유한 현금은 얼음 덩어리처럼 녹아내리고 있으며,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는 디지털 금이자 가장 완벽한 자산 저장 수단"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즉시 실행에 옮겨 당시 회사 금고에 있던 2억 5000만 달러(약 3465억 원) 규모의 유보 현금으로 비트코인을 매입해 베팅한 것이 거대한 실험의 신호탄이었다.</p>

<p>하지만 스트래티지의 진정한 질주는 단순히 남는 현금으로 비트코인을 사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회사는 월가의 유동성을 닥치는 대로 끌어모아 비트코인을 무제한 매입하는 금융 레버리지 머신으로 진화했다. 자금 조달의 핵심 무기는 바로 전환사채(CB)와 시장 장내 주식 매각(ATM) 프로그램이었다. 전환사채는 주가가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스트래티지는 월가의 풍부한 투기적 수요를 파악하고 표면금리(채권을 발행할 때 정해져 만기까지 고정되는 이자율)가 0%이거나 0%대에 불과한 초저금리 전환사채를 연달아 찍어냈다.</p>

<p>채권 투자자들은 이자가 전혀 나오지 않더라도 스트래티지 주가가 폭등할 때 주식으로 전환해 막대한 차익을 챙길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꺼이 수십억 달러의 현금을 회사에 넘겼다. 마이클 세일러 회장은 이렇게 조달한 달러를 즉시 비트코인 매입에 투입했다. 2024년 말에는 향후 3년간 420억 달러(약 58조 2120억 원)에 달하는 자본을 조달해 비트코인을 추가 매집하겠다는 이른바 &#39;21/21 계획&#39;을 공식 발표하며 레버리지 엔진의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 21/21 계획이란 향후 3년간 210억 달러는 신주 발행 등 주식(equity) 방식으로 조달. 나머지 210억달러는 전환사채·채권 등 고정수익증권으로 조달.) 주식 희석에 따른 주당순이익 감소를 두려워하는 기존의 재무 이론을 뒤엎고, 주당 보유 비트코인 수량(BTC Yield)만 늘릴 수 있다면 자본 조달 규모는 상관없다는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을 설파한 셈이다.</p>

<p> </p>

<p>금융공학이 만든 자기실현적 상승 순환</p>

<p>스트래티지가 최근 한 달 동안 48%라는 기록적인 수익률을 올린 첫 번째 엔진은 바로 &#39;순자산가치 배수(mNAV) 프리미엄&#39;의 회복과 확장이었다. 전통적인 투자 신탁이나 지주회사는 보유한 자산 가치 대비 할인되어 거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중과세와 경영진 위험, 폐쇄적 유동성 등의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트래티지는 정반대였다. 시장은 회사가 보유한 비트코인의 순자산가치 대비 통상 1.5배에서 2.5배에 이르는 막대한 프리미엄을 부여해 주식을 거래해 왔다.</p>

<p>이 기현상이 정당화되는 배경에는 재귀적 선순환이 존재한다. 프리미엄이 2배로 붙은 상태에서 스트래티지가 10억 달러(약 1조 3860억 원)어치의 신주를 발행하거나 전환사채를 찍는다고 가정해 보자. 회사는 장부상 실제 가치보다 두 배나 비싸게 팔린 주식을 발행해 현금을 확보한 뒤, 이를 온전히 비트코인 현물 매입에 쓴다. 그 결과 기존 주주들의 주당 보유 비트코인 수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마법이 일어난다.</p>

<p>비트코인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거나 반등하는 국면이 오면, 이 프리미엄 배수가 가파르게 확대되면서 기초자산의 상승 속도를 주가가 서너 배 앞지르게 된다. 침체 국면에서 과도하게 좁혀졌던 프리미엄 배수가 단기 반등장에서 원상 복구되거나 그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기초자산인 비트코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48% 폭등세를 완성한 것이다.</p>

<p>두 번째 엔진은 글로벌 파생상품 시장과 옵션 데스크에서 촉발된 &#39;감마 스퀴즈&#39;였다. 최근 스트래티지는 미국 뉴욕 증시 전체에서 테슬라나 엔비디아를 제치고 개별 종목 주가 대비 일일 거래대금과 옵션 거래량에서 최상위권을 다투는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단기 시세 폭등을 노리는 개인 투자자들과 대형 헤지펀드들이 현재 주가보다 훨씬 높은 외가격 콜옵션을 무더기로 사들이기 시작했다.</p>

<p>콜옵션을 매도한 월가의 금융 브로커와 마켓메이커들은 주가 상승에 따른 손실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수학적 모델에 따라 스트래티지 주식을 현물 시장에서 즉시 사들여야 한다. 문제는 주가가 올라갈수록 옵션의 가격 민감도(델타)가 급속도로 치솟는 &#39;감마(Gamma)&#39;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주가가 오르면 마켓메이커들은 포지션 중립을 지키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주식을 장내에서 매수해야 하고, 이 매수세가 다시 주가를 밀어 올리며 추가 매수를 강제하는 &#39;감마 스퀴즈&#39;가 발생했다.</p>

<p>여기에 회사의 고평가를 노리고 대규모 공매도를 걸었던 쇼트 포지션 투자자들이 주가 급등을 견디지 못하고 손절성 주식 매수에 나서는 숏커버링까지 맞물렸다. 파생상품 딜러들의 헤지 매수와 숏 포지션 청산 매수세가 한곳에 쏠리며 48% 상승이라는 기록적인 폭등의 기폭제로 작용했다.</p>

<p> </p>

<p><strong>최근 스트래티지 주가가 폭등하는 주요 메커니즘</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85 float-center" data-idxno="5148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791px"><img alt="" height="652"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1_51485_2135.jpg" width="791"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세 번째 엔진은 제도권 자본시장의 규칙이 만들어낸 패시브 인덱스 효과다. 스트래티지는 2024년 12월 나스닥100 지수에 공식 편입됐다. 지수 편입은 스트래티지의 수급 환경을 질적으로 완전히 바꿔놓았다.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를 비롯해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수조 달러 규모의 글로벌 인덱스 펀드와 연기금, 퇴직연금 포트폴리오들이 지수 추종 오차를 줄이기 위해 스트래티지 주식을 시가총액 비중에 맞춰 의무적으로 매수해야 하는 환경이 조성됐다.</p>

<p>여기에 각국 자본시장의 규제 장벽이 스트래티지 주가에 날개를 달아줬다. 아시아와 유럽, 북미의 수많은 전통 금융기관과 보수적인 연기금들은 현행 규제와 운용 정관상 암호화폐 현물이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직접 장부에 담을 수 없다. 그러나 나스닥100에 포함된 미국 대형 소프트웨어 상장사는 아무런 제약 없이 매수할 수 있다. 결국 비트코인 익스포저를 간접적으로나마 확보하려는 전 세계 기관들의 막대한 합법적 우회 자금이 스트래티지 단 한 종목에 쏠리며 수급 불균형을 극대화했다.</p>

<p> </p>

<p><strong>지역별 규제 지형과 19세기 철도 투기가 던지는 역사적 경고</strong></p>

<p>스트래티지를 둘러싼 열기는 지역별 금융 환경과 법적 규제 지형의 차이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미국 시장에서는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감독하에 공모 전환사채 시장과 파생상품 시장이 초고도화되어 있어 기업이 부채를 지렛대 삼아 비트코인을 대량 매집하는 실험이 가능했다.</p>

<p>반면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가상자산에 대한 기업 투자가 법인 실명계좌 발급 제한과 회계적 불확실성 탓에 사실상 묶여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개인 및 전문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상승의 레버리지 효과를 누리기 위해 미국 시장의 스트래티지 주식을 대거 직구하는 &#39;서학개미&#39; 현상을 보였다.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 상위 명단에 스트래티지가 수시로 이름을 올린 것은 바로 이러한 국내외 규제 격차에서 비롯된 국경을 넘는 자본 이동의 전형이다.</p>

<p>유럽 시장의 분위기는 또 다르다. 유럽연합(EU)은 가상자산시장법(MiCA)을 통해 스테이블코인과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가동하고 있다. 유럽의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스트래티지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변동성과 부채 기반 비트코인 축적 모델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으며, 밸류에이션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비판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p>

<p>이러한 지역별 시각차와 뜨거운 열기는 역사적으로 낯설지 않다. 경제학의 역사를 반추해 보면 스트래티지의 폭등세는 1840년대 영국을 뒤흔든 &#39;철도 광풍(Railway Mania)&#39;이나 19세기 후반 미국의 대륙횡단철도 건설 붐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궤적을 그린다. 당시 영국과 미국의 철도 회사들은 미래 기술의 무한한 경제적 가치를 내세워 채권을 무더기로 발행하고, 주식을 액면가 이상의 높은 프리미엄으로 시장에 팔아 노선을 확장했다.</p>

<p>철도가 물류의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는 명제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기업들이 전환사채와 신주 발행을 통해 무한정 레버리지를 일으키고, 주가가 실제 운영 수익이 아닌 자산 확장 기대감만으로 팽창할 때 그 시스템은 작은 충격에도 취약해진다. 1840년대 중반 영국의 수많은 철도 회사들은 금리가 오르고 운임 경쟁이 치열해지자 채무 불이행에 빠지며 파산했다. 기술 혁명 자체는 진실이었을지언정, 금융 레버리지가 쌓아 올린 주가 피라미드는 무너져 내렸다.</p>

<p>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가 누차 지적했듯, "금융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아무런 본질적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하는 자산의 가격 상승이 그 자체로 미래의 상승을 정당화하는 자기참조적 확신으로 둔갑할 때"다.</p>

<p>스트래티지가 자랑하는 48% 상승세와 나스닥100 1위 기업이라는 영예는 환호의 대상인 동시에 거대한 경고장이다. 전환사채와 감마 스퀴즈로 쌓아 올린 상방의 3배 레버리지는 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설 때 정반대의 파괴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특정 임계점 아래로 하락하면 주가 프리미엄이 순식간에 증발하고, 만기가 돌아오는 전환사채의 상환 압박이 회사의 재무 구조를 위협하며, 마켓메이커들의 헤지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역회전 현상이 일어난다.</p>

<p>월가가 열광하는 최첨단 비트코인 금융공학의 톱니바퀴는 가장 화려하게 회전하는 바로 그 순간, 가장 치명적인 위험을 품고 돌아가고 있다.</p>

<p> </p>

<p> </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미국 중간선거 여론조사 분석 ①] 민주당 우위로 기운 전국 민심, 그러나 승부처는 다르다]]></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0</link>
	  <dc:creator><![CDATA[신성은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0</guid>
	  <pubDate>Sun, 20 Sep 2026 17:44:59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미국 중간선거가 50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미국 유권자들의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주요 전국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민주당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공화당 후보보다 높다는 것이다. 조사기관과 조사대상에 따라 격차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9월 중순 주요 조사에서 민주당이 앞서는 방향성 자체는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그러나 이 숫자를 곧바로 의회 권력의 향방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 중간선거는 전국 단위 선거가 아니라 435개 하원 지역구와 주별 상원의원 선거의 집합이다. 특히 실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height="442"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0_51482_4153.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82 float-center" data-idxno="5148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442"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0_51482_4153.pn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미국 중간선거가 50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미국 유권자들의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주요 전국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민주당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공화당 후보보다 높다는 것이다. 조사기관과 조사대상에 따라 격차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9월 중순 주요 조사에서 민주당이 앞서는 방향성 자체는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p>

<p>그러나 이 숫자를 곧바로 의회 권력의 향방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 중간선거는 전국 단위 선거가 아니라 435개 하원 지역구와 주별 상원의원 선거의 집합이다. 특히 실제 하원 다수당을 결정할 가능성이 큰 37개 경합지역만 조사하면 전국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격차는 크게 줄어든다.</p>

<p>따라서 2026년 미국 중간선거를 읽는 첫 번째 열쇠는 두 가지 숫자를 동시에 보는 데 있다. 하나는 미국 전체 유권자들이 어느 정당의 의회 후보를 지지하는지를 보여주는 ‘제네릭 발럿(Generic Congressional Ballot)’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승패가 갈릴 가능성이 높은 경합지역의 투표 의향이다.</p>

<p> </p>

<p><strong>전국 여론조사에서 확대된 민주당 지지</strong></p>

<p>9월 들어 발표된 주요 여론조사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Marquette Law School Poll이다. 9월 2~9일 조사에서 투표 가능성이 높은 유권자(likely voters)의 54%가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한 반면 공화당 후보를 선택한 응답은 41%였다. 13%포인트 차이다.</p>

<p>같은 기관의 7월 조사에서는 민주당 51%, 공화당 45%로 격차가 6%포인트였다. 두 달 사이 조사상 격차가 확대된 것이다. 등록유권자 전체를 대상으로 해도 민주당 50%, 공화당 42%로 민주당이 8%포인트 높았다.</p>

<p>다른 조사에서도 비슷한 방향이 나타난다.</p>

<p>9월 8~13일 실시된 <New York Times/Siena University> 조사에서는 적극참여층(likely voters) 가운데 민주당 하원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51%, 공화당 후보는 43%였다. 등록유권자를 기준으로 하면 약 49% 대 42%였다.</p>

<p>9월 11~14일 실시된 <Fox News> 조사에서도 등록유권자의 51%가 민주당 후보, 44%가 공화당 후보를 선택했다. 특히 실제 투표 의향을 10점 만점에서 10점이라고 답한 유권자만 보면 민주당 54%, 공화당 43%로 차이가 더 커졌다. 민주당 지지층의 선거 관심도 역시 공화당 지지층보다 높게 나타났다.</p>

<p><Reuters/Ipsos>의 9월 11~14일 조사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등록유권자가 44%, 공화당 후보는 37%로 조사됐다. Reuters는 이 격차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이 조사에서 나타난 민주당의 가장 큰 우위라고 설명했다.</p>

<p>개별 조사의 격차는 7%포인트에서 13%포인트까지 상당히 넓다. 조사대상이 등록유권자인지 likely voters인지, 표본을 어떻게 구성하고 투표 가능성을 어떤 방식으로 계산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조사 하나보다 여러 조사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p>

<p><RealClearPolitics>가 집계한 9월 중순 제네릭 발럿 평균에서도 민주당 50.5%, 공화당 41.9%로 민주당이 8.6%포인트 높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개별 조사에서 관찰되는 민주당 우위가 특정 조사기관 하나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여론조사 평균 역시 실제 의석수를 직접 예측하는 지표는 아니다.</p>

<p> </p>

<p><strong>그런데 실제 경합지역으로 가면 49 대 47</strong></p>

<p>여기서 매우 중요한 숫자가 등장한다.</p>

<p>Cook Political Report가 민주당계 조사기관 New River Strategies, 공화당계 GS Strategy Group과 공동으로 9월 8~11일 실시한 조사다. Cook이 Toss Up, Lean Republican, Lean Democrat으로 분류한 전국 37개 하원 경합지역의 likely voters 1,052명을 조사했다.</p>

<p>결과는 민주당 49%, 공화당 47%. 불과 2%포인트 차이다.</p>

<p>전국 조사에서는 민주당이 대략 7~13%포인트 앞서는 결과들이 나오는데 실제 승부처에서는 거의 접전에 가까운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p>

<p>더 흥미로운 것은 이 37개 지역구를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서 평균 약 5%포인트 차이로 이겼다는 점이다. 그런 지역에서 현재 민주당 후보가 2%포인트 앞선다는 것은 2024년 대통령선거 때와 비교하면 정치적 환경이 이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49 대 47이라는 숫자는 오차범위를 감안하면 실제 지역구 선거가 여전히 치열할 수 있음을 뜻한다.</p>

<p>전국적으로 민주당 지지가 높아졌다고 해서 그 표가 모든 지역구에 균등하게 분포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지지표가 뉴욕·캘리포니아 등 이미 민주당이 강한 지역에 집중되면 전국 득표율을 크게 끌어올리면서도 추가 의석으로 전환되는 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p>

<p>반대로 하원 다수당을 결정하는 것은 전국 득표율 자체가 아니라 실제 경쟁이 벌어지는 제한된 숫자의 지역구다. 여기에 각 주의 선거구 획정과 지역별 후보 경쟁력, 투표율 차이가 개입한다.</p>

<p>이것이 2026년 중간선거를 분석할 때 전국 제네릭 발럿과 경합지역 여론조사를 반드시 분리해서 봐야 하는 이유다.</p>

<p><strong>트럼프 지지율이라는 또 하나의 변수</strong></p>

<p>중간선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지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다.</p>

<p>New York Times/Siena 조사에서 likely voters의 트럼프 국정수행 지지는 38%였다. Reuters/Ipsos의 9월 조사에서도 미국 성인 전체의 트럼프 국정수행 지지는 35%로 나타났다. 직전 Reuters/Ipsos 조사에서 기록했던 33%보다는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p>

<p>Marquette 조사에서도 트럼프의 경제정책 지지는 28%, 인플레이션 대응 지지는 19%로 조사됐다. 특히 물가와 생활비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p>

<p>대통령이 직접 출마하지 않는 중간선거에서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 중간선거가 흔히 현직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p>

<p>실제로 Pew Research Center가 지난 7월 실시한 조사에서는 등록유권자의 42%가 자신의 중간선거 투표가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표’가 될 것이라고 답했고, 22%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표’라고 답했다. 이는 상당수 유권자가 자신의 지역구 의원만을 놓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의회선거와 연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p>

<p>다만 여기에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다는 사실만으로 각 지역구의 선거 결과를 추론할 수는 없다. 지역 후보의 인지도와 경쟁력, 현역 의원의 개인 지지율, 지역 경제와 인구구성, 선거구 획정 등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p>

<p><strong>무당층의 이동도 주목할 대목</strong></p>

<p>이번 조사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집단은 무당층이다.</p>

<p>Fox News 9월 조사에서 무당층은 민주당 후보 53%, 공화당 후보 31%로 나타났으며 14%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이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97%가 민주당 후보를 선택한 반면 공화당 지지층에서는 92%가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다.</p>

<p>정당 핵심 지지층의 결집만큼이나 중간에 있는 유권자들의 선택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p>

<p>또 하나 주목할 변화는 투표 열의다. 같은 Fox News 조사에서 선거에 ‘극도로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민주당 지지층 64%, 공화당 지지층 53%였다. 실제 투표 가능성을 10점 만점의 10점으로 평가한 비율 역시 민주당 지지층 71%, 공화당 지지층 65%였다.</p>

<p>이것은 제네릭 발럿의 단순한 정당 선호도와는 다른 문제다. 미국 중간선거는 대통령선거보다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어느 정당 지지층이 실제 투표장에 더 많이 나오느냐가 결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p>

<p>다만 9월의 투표 열의가 11월 3일까지 그대로 유지된다고 볼 수는 없다. 남은 기간 경제 상황과 국제정세, 후보 토론, 선거운동과 각종 돌발변수에 따라 유권자들의 관심도와 투표 의향은 달라질 수 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83 float-center" data-idxno="5148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5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50_51483_436.pn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strong>2018년과 닮은 숫자, 그러나 다른 선거판</strong></p>

<p>현재 제네릭 발럿 숫자를 보면 자연스럽게 트럼프 첫 임기 때인 2018년 중간선거가 떠오른다.</p>

<p>2018년 실제 하원 전국 득표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을 약 8%포인트 앞섰고, 하원에서 41석을 순증해 다수당을 탈환했다. 반면 2022년에는 공화당이 전국 하원 득표에서 약 2.8%포인트 앞서며 하원을 되찾았다.</p>

<p>현재 일부 전국 조사와 여론조사 평균에서 나타나는 민주당 격차는 숫자만 놓고 보면 2018년 당시의 전국 득표 격차와 비교할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2026년 선거구 구조는 2018년과 다르고 경쟁 가능한 지역구 숫자도 다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같은 규모의 의석 이동을 예상할 수는 없다.</p>

<p>특히 2026년에는 선거구 재조정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전국 단위에서 상당한 득표 차이가 발생하더라도 실제 의석 변화는 어느 지역에서 표가 움직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p>

<p>따라서 현재 여론조사가 말해주는 것은 의석수에 대한 확정적 전망이 아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2026년 9월 중순 현재 전국 정치환경이 2024년 대통령선거 당시와 달라졌고, 그 변화가 실제 하원 경합지역에서도 관찰되고 있다는 것이다.</p>

<p>이제 질문은 ‘누구를 지지하느냐’에서 ‘왜 이동했느냐’로</p>

<p>9월 중순의 주요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세 가지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p>

<p>첫째, 전국 제네릭 발럿에서는 최근 조사들에서 민주당 후보 지지가 공화당 후보보다 높게 나타난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에서는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보다 높다. 셋째, 전국 조사보다 실제 하원 경합지역에서는 두 정당의 격차가 훨씬 작다.</p>

<p>따라서 앞으로 남은 기간에는 전국 평균의 작은 등락만 추적해서는 미국 중간선거의 흐름을 제대로 읽기 어렵다.</p>

<p>더 중요한 질문은 유권자들이 왜 움직이고 있는가이다.</p>

<p>그 답을 찾기 시작하면 이번 선거의 중심에 경제가 등장한다. 특히 GDP나 주가 같은 거시경제 지표보다 식료품 가격, 주거비, 휘발유 가격, 의료비와 같은 생활비가 유권자들의 판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p>

<p>Reuters/Ipsos가 8월 말 등록유권자들에게 중간선거 투표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단일 요인을 물었을 때 47%가 ‘생활비’를 선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활비 대응에 대해서는 미국 성인의 22%만 지지했고 71%가 반대했다.</p>

<p>Fox News의 9월 조사에서도 유권자에게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자유롭게 답하도록 했더니 34%가 생활비를, 14%가 경제·일자리를 꼽았다. 이민은 8%였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트럼프와 워시 갈등' 갸우뚱? 금빛 만찬의 배신인가, 원칙의 귀환인가]]></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8</link>
	  <dc:creator><![CDATA[김시래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8</guid>
	  <pubDate>Sat, 19 Sep 2026 05:34:14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워싱턴 정가와 월스트리트의 권력 이동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최근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1600번지와 마틴 빌딩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류는 기시감을 넘어선 전율을 안긴다.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으로 평생 차입과 저금리의 단맛을 누려온 도널드 존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1월, 제롬 헤이든 파월(73) 전 의장의 후임으로 케빈 맥스웰 워시를 지명했다. 당시 백악관 참모들은 그를 영화 속 주인공을 고르듯 완벽한 인물이라 치켜세웠고, 대통령 자신도 그가 결코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저금리의 시대) 최고의 선택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상원 인준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금빛 만찬은 끝나고, 금리의 벽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 Visual concept and generated by PSTPHNS" height="335"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8_51475_3131.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75 float-center" data-idxno="5147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금빛 만찬은 끝나고, 금리의 벽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 Visual concept and generated by PSTPHNS" height="335"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8_51475_3131.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금빛 만찬은 끝나고, 금리의 벽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 Visual concept and generated by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워싱턴 정가와 월스트리트의 권력 이동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최근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1600번지와 마틴 빌딩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류는 기시감을 넘어선 전율을 안긴다.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으로 평생 차입과 저금리의 단맛을 누려온 도널드 존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1월, 제롬 헤이든 파월(73) 전 의장의 후임으로 케빈 맥스웰 워시를 지명했다. 당시 백악관 참모들은 그를 영화 속 주인공을 고르듯 완벽한 인물이라 치켜세웠고, 대통령 자신도 그가 결코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저금리의 시대) 최고의 선택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상원 인준을 거쳐 2026년 5월 정식 취임한 케빈 맥스웰 워시 의장은 불과 4개월 만에 대통령의 거센 금리 인하 요구를 뒤로하고 전격적이면서 매파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백악관에서는 이를 두고 배신이라는 분노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중앙은행의 역사와 인물들의 궤적을 추적해 보면 이는 배신이 아니라 예정된 이념적 충돌에 가깝다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시각이다.</p>

<p> </p>

<p><strong>센트럴 캐스팅의 환상과 에스티 로더 가문의 식탁</strong></p>

<p>트럼프와 워시 두 사람의 인연은 워싱턴의 정책 토론장이 아니라 뉴욕 사교계의 화려한 만찬장에서 싹텄다. 케빈 맥스웰 워시는 글로벌 뷰티 제국 에스티 로더의 상속녀인 제인 로더(53)의 남편이다. 그의 장인이자 에스티 로더 그룹의 실질적 지주인 로널드 스티븐 로더(82)는 도널드 존 트럼프 대통령과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시절부터 수십 년간 친분을 쌓아온 막역한 지기이자 공화당의 막강한 자금줄이다. 도널드 존 트럼프 대통령에게 케빈 맥스웰 워시는 낯선 학자나 관료가 아니라, 뉴욕 상류사회의 오랜 친구가 보증하는 믿음직한 조카뻘 사위이자 완벽한 이너서클의 일원이었다.</p>

<p>스탠퍼드대학교를 거쳐 하버드 로스쿨을 우등 졸업하고 모건스탠리에서 인수합병 전문가로 활약한 케빈 맥스웰 워시는 2006년 조지 워커 부시(80) 행정부 시절 35세라는 역사상 최연소 나이로 연방준비제도 이사에 발탁된 엘리트 금융통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벤 샬롬 버냉키(73) 당시 의장과 티머시 프란츠 가이트너(65) 뉴욕 연방준비은행장 사이에서 월스트리트 금융기관들의 부실을 정리하는 핵심 막후 메신저로 뛰었다. 도널드 존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자신이 1기 대통령때 직접 골라 임명했던 제롬 헤이든 파월 전 의장이 금리를 올리며 맞서자 "파월을 앉힌 것이 내 인생 최악의 실수"라며 사석에서 끊임없이 케빈 맥스웰 워시를 대안으로 거론했다.</p>

<p>도널드 존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비친 케빈 맥스웰 워시는 훤칠한 외모, 명문가 배경, 월가의 실전 감각, 그리고 연방준비제도 내부 사정에 정통한 경력까지 두루 갖춘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인물이었다. 백악관 복도에서는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언제든 기준금리를 과감하게 낮춰 경기 부양을 뒷받침할 유연한 충신이 드디어 중앙은행 지휘봉을 잡았다는 안도감이 감돌았다.</p>

<p>그러나 도널드 존 트럼프 행정부의 기대는 지난 1월 말 스위스 다보스 포럼 직후부터 미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당시 도널드 존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그들은 자리를 얻기 전에는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모조리 늘어놓다가, 일단 임명만 되면 갑자기 금리를 조금 올려야겠다고 말한다"며 이전 관료들에 대한 깊은 불신과 불만을 토로했다. 케빈 맥스웰 워시를 지명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통제되지 않는 중앙은행가들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불행하게도 도널드 존 트럼프 대통령의 그 예감은 케빈 맥스웰 워시가 취임선서를 마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적중했다.</p>

<p> </p>

<p><strong>트럼프 대통령과 워시 연준의장의 철학적 사상 배경</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74 float-center" data-idxno="5147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807px"><img alt="" height="82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8_51474_3321.jpg" width="807"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닉슨의 그림자와 채권 자경단의 5% 경고</strong></p>

<p>케빈 맥스웰 워시 의장의 급선회는 변심이 아니라 본색의 표출이라는 지적이 많다. 스탠퍼드대학교 보수주의 싱크탱크 후버 연구소의 방문연구원으로 오랜 세월 재직한 그는 통화론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의 유산을 계승하는 건전 화폐론의 열렬한 신봉자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연방준비제도 이사로 재직할 당시에도 그는 벤 샬롬 버냉키 전 의장이 밀어붙인 제2차 양적완화 정책에 극렬히 반대했다. 중앙은행이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 국채를 사들이는 행위는 금융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을 파괴하고 장기적으로 파멸적인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이유였다. 그는 결국 임기를 9년이나 남겨둔 2011년 3월, 양적완화에 반대하며 스스로 연방준비제도 이사직을 던지고 뛰쳐나왔다.</p>

<p>이러한 사상적 이력을 지닌 인물이 백악관의 정치적 주문에 따라 무작정 화폐를 살포하는 비둘기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 것 자체가 부동산 사업자 출신의 도널드 존 트럼프의 치명적인 착시였다. 케빈 맥스웰 워시 의장에게 뇌리 깊이 박힌 역사적 반면교사는 1970년대의 아서 번스(1904~1987) 전 의장이다. 1972년 대선을 앞두고 리처드 밀하우스 닉슨(1913~1994) 전 대통령의 재선 압박에 굴복해 금리를 낮췄던 아서 번스 전 의장은 이후 미국 경제를 10년 넘게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나락으로 밀어 넣은 최악의 중앙은행가로 역사에 기록됐다. 하버드 법학 박사이자 학자적 자존심이 남다른 케빈 맥스웰 워시 의장에게 제2의 아서 번스라는 오명은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보다 더 끔찍한 파멸이다.</p>

<p>결정적으로 케빈 맥스웰 워시 의장의 손발을 묶은 것은 채권 시장의 냉혹한 반작용이었다. 2026년 들어 관세 장벽 강화와 대규모 감세, 유가 불안이 겹치며 근원 소비자물가지수가 재차 불안한 상승세를 보였다. 이런 국면에서 연방준비제도가 백악관의 압력에 굴복해 기준금리를 내린다면 시장은 인플레이션 방치를 확신하고 장기 국채를 대거 내던지게 된다.</p>

<p>실제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연 5% 선을 위협받는 국면에서 섣부른 금리 인하는 장기 채권 금리를 오히려 폭등시켜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기업 차입 비용을 옥죄는 역풍을 부른다. 1조 달러(약 1340조 원) 규모의 연방 재정적자가 매년 누적되는 상황에서 채권 시장의 자경단이 들고일어나면 어떤 통화정책도 무력화된다. 채권시장 자경단(Bond Vigilantes)이란 정부의 재정·통화정책이 방만하거나 인플레이션을 키운다고 판단한 채권 투자자들이 국채를 대량 매도해 정부에 압박을 가하는 현상을 뜻한다. 케빈 맥스웰 워시 의장은 취임 후 기자회견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자신의 행동반경을 명확히 규정했다.</p>

<p>"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이란 각자가 본연의 기본 임무에 충실한 것이다. 행정부가 무역과 재정 정책 영역에서 고유의 판단을 내리듯, 연방준비제도는 통화정책의 영역에서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이라는 법적 책무에 따라 독립적 판단을 내린다."</p>

<p>도널드 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의 기준금리는 1% 이하로 낮아져야 하며 세계에서 가장 낮아야 한다"고 연일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케빈 맥스웰 워시 의장은 요지부동이었다. 2026년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연방준비제도는 전원 일치된 합의로 금리를 인상하며 시장에 강력한 인플레이션 억제 신호를 보냈다.</p>

<p>워싱턴 정가에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금리 인하라는 경기 부양 선물을 기대했던 도널드 존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가 극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백악관 일각에서는 의장 강제 해임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으나, 연방준비제도법상 단순한 정책 노선 차이는 해임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법적 한계와 금융시장 붕괴라는 거대한 리스크가 도널드 존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다. 사적 충성과 영화 같은 캐스팅으로 엮어내려 했던 백악관의 구상은, 독립된 통화정책이라는 민주주의 제도와 인플레이션을 용납하지 않는 채권 시장의 거대한 벽 앞에서 산산조각이 났다.</p>

<p> </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세대유감] 함성과 촛불 사이, 광장을 예습한 세대]]></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6</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6</guid>
	  <pubDate>Fri, 18 Sep 2026 22:07:56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낙인 — 정치를 잃어버린 세대라는 오해2016년 그리고 2024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과 응원봉이 함께 흔들렸다. 불빛 아래 얼굴들은 낯익었다. 그들은 오래전 붉은 셔츠를 입고 시청 앞을 메웠던 사람들이다. 색은 바뀌었다. 몸의 문법은 그대로였다.이 세대에게는 오래도록 다른 이름이 붙었다.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 취향에만 몰두한 세대. X86세대의 뜨거운 투쟁도, MZ세대의 선명한 발언도 갖지 못한 사이의 존재. 사람들은 이를 흔히 \'낀세대\'라 불렀다. 그러나 그 이름에는 이미 수동성이 새겨져 있다. 무언가에 눌려 끼어 있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관중석에서 익힌 함성은 어느 날 광장의 언어가 되었다. 정권과 자본이 마련한 유희의 자리에서, 한 세대는 뜻밖에도 함께 모이는 몸의 문법을 배웠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6_51465_399.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65 float-center" data-idxno="5146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관중석에서 익힌 함성은 어느 날 광장의 언어가 되었다. 정권과 자본이 마련한 유희의 자리에서, 한 세대는 뜻밖에도 함께 모이는 몸의 문법을 배웠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6_51465_399.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관중석에서 익힌 함성은 어느 날 광장의 언어가 되었다. 정권과 자본이 마련한 유희의 자리에서, 한 세대는 뜻밖에도 함께 모이는 몸의 문법을 배웠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strong>낙인 — 정치를 잃어버린 세대라는 오해</strong></p>

<p>2016년 그리고 2024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과 응원봉이 함께 흔들렸다. 불빛 아래 얼굴들은 낯익었다. 그들은 오래전 붉은 셔츠를 입고 시청 앞을 메웠던 사람들이다. 색은 바뀌었다. 몸의 문법은 그대로였다.</p>

<p>이 세대에게는 오래도록 다른 이름이 붙었다.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 취향에만 몰두한 세대. X86세대의 뜨거운 투쟁도, MZ세대의 선명한 발언도 갖지 못한 사이의 존재. 사람들은 이를 흔히 &#39;낀세대&#39;라 불렀다. 그러나 그 이름에는 이미 수동성이 새겨져 있다. 무언가에 눌려 끼어 있을 뿐, 스스로 만든 것은 없다는 전제다.</p>

<p>낙인에는 근거가 있다. 정치를 시위와 조직으로만 읽으면, 이 세대의 무대는 늘 엉뚱한 곳에 있었다. 구호보다 브랜드를, 투쟁가요보다 유행가를 가까이 두고 자랐다. 겉모습만 보면 무정치라는 진단은 쉽다. 그러나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취향에 몰두하는 방식으로도 사람은 연대를 배운다. 다만 배움의 교실이 달랐을 뿐이다.</p>

<p>억울함은 여기서 출발한다. 이 세대는 정치를 몰랐던 것이 아니다. 정치를 배운 자리가 달랐을 뿐이다. 그 자리는 운동장이었고, 경기장이었고, 텔레비전 앞이었다. 가장 비정치적으로 보이는 유희의 공간에서, 몸은 광장의 문법을 익히고 있었다. 정치를 구호와 투쟁으로만 정의하면, 이 세대는 정치를 몰랐던 것처럼 보인다. 정치를 함께 모이는 능력으로 다시 정의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모임에는 몸이 필요하다. 함성에는 숨이 필요하다. 정치는 그 숨과 몸에서 시작된다. 광장은 나중에 지어진 것이 아니다. 몸이 먼저 그것을 익혔을 뿐이다.</p>

<p>왜 이 세대는 기억되지 않았는가. 얀 아스만(Jan Assmann)이 말한 문화적 기억은 조직된 서사를 필요로 한다. 지도자와 사건과 구호가 그 재료다. X86세대에게는 유신과 광주라는 서사가 있었다. MZ세대에게는 촛불혁명이라는 서사가 뒤늦게 붙었다. X세대의 자리에는 서사가 마련되지 않았다. 이들이 겪은 것은 사건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선언이 아니라 반복이었다. 기억의 문법이 사건 중심으로 짜여 있는 한, 습관과 반복으로 이루어진 경험은 기록되기 어렵다.</p>

<p>이제 그 궤적을 되짚는다. 정권이 던져준 스포츠가 어떻게 한 세대의 소비력과 만나 산업이 되었는지. 그 관람석에서 익힌 모임의 감각이 어떻게 광장의 촛불로 옮겨갔는지. 오래 묵은 낙인 하나를 걷어내는 걸음이다.</p>

<p> </p>

<p><strong>사육된 유희 — 3S 정책과 관제 스포츠의 이식</strong></p>

<p>한국의 텔레비전 보급률은 1980년대 들어 전국 가구 수를 넘어섰다. 안방과 거실에 수상기 두 대를 둔 집도 드물지 않았다. 시청료 징수를 위해 집집마다 수상기 대수를 확인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방송 시간은 저녁 한때에서 아침저녁으로, 다시 종일 방송으로 늘어났다. 채울 콘텐츠는 한정적이었다. 뉴스와 드라마, <가족오락관>과 <전국노래자랑> 같은 가족 오락 프로그램이 그 시간을 메웠다. 안방 밖으로 시선을 끌 무언가가 필요했다.</p>

<p>답은 스포츠였다. 정확히는 프로스포츠였다.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는 민주화를 향한 대중의 욕망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그 답이 3S, 곧 Sex, Screen, Sports 정책이었다. 심야 통행금지 해제와 컬러텔레비전 보급, 영화 검열의 부분적 완화가 Sex와 Screen의 자리를 채웠다. Sports의 자리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몫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 1983년 프로축구가 잇달아 출범했다. 민속씨름과 프로농구도 뒤이어 관제 문화의 대열에 합류했다.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정부 기록에 따르면, 1981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논의된 프로야구 창단은 정권 주도의 기획이었다. 대기업은 구단 창단을 반강제로 할당받았다. 지역 연고제가 인위적으로 이식되었다. 밤의 산업도 함께 열렸다. 통행금지가 풀리자 밤거리에 술집과 다방이 늘었고, 낮의 스포츠는 밤의 유흥과 짝을 이루며 대중의 생활 리듬 전체를 재편했다.</p>

<p>정권이 노린 것은 오락이 아니라 시간의 점유였다. 저녁 뉴스 이후 남는 공백을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대중의 관심이 어디로 흐르느냐를 정하는 문제였다. 정치적 담론이 흘러들 틈을 스포츠 중계로 메우는 일은, 검열보다 은밀하고 효과적인 통치 기술이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66 float-center" data-idxno="5146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권력이 마련한 것은 무대였지만, 그 무대에서 움직임을 배운 것은 사람들이었다. 통제된 유희의 공간은 뜻밖에도 집단의 몸을 훈련하는 교실이 되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6_51466_3959.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권력이 마련한 것은 무대였지만, 그 무대에서 움직임을 배운 것은 사람들이었다. 통제된 유희의 공간은 뜻밖에도 집단의 몸을 훈련하는 교실이 되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동아일보는 1982년 3월 27일 자 기사에서 프로야구 개막전의 열기를 두고 "전국이 야구 열풍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그 열기의 이면에는 정치적 비판을 마비시키려는 서늘한 셈법이 놓여 있었다. 스포츠는 정권이 대중에게 내려준 아편이었다. 적어도 설계자의 의도는 그러했다.</p>

<p>씨름판에도 뜻밖의 스타가 등장했다. 이만기라는 이름이 안방을 장악했다. 민속씨름은 잠시 프로야구에 견줄 화제를 만들었다. 방송사는 시청률을 위해 중계 시간을 늘렸다. 늘어난 중계 시간은 다시 팬덤을 키웠다. 방송과 스포츠는 서로를 먹여 살리는 공생 관계로 접어들었다. 화면조정 시간이라는 색상표가 화면을 채우던 시절이 저물었다. 화면은 비로소 쉼 없이 채워지는 시대로 들어섰다.</p>

<p>판을 깔았다고 해서, 그 위에서 놀 이들의 방식까지 정할 수는 없다. 이 판 위에는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감각을 지닌 존재들이 자라고 있었다. 정권은 순응을 원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예상하지 못한 세대의 몸이었다.</p>

<p> </p>

<p><strong>머릿수의 반란 — 소비 주체가 된 세대, 산업이 된 스포츠</strong></p>

<p>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후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 X세대는 한국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유년기부터 미디어와 대중문화를 소비하며 자란 세대다. 이용숙은 「한국 대중문화의 변용과 X세대의 소비 특성」에서, 이 세대가 X86세대의 집단적 투쟁 의무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짚는다. 개인의 취향과 감각적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탐색한 첫 세대였다는 것이다. 정권이 던져준 스포츠는 이들에게 도피처가 아니었다. 정당한 문화적 유희이자 자아실현의 공간으로 전유되기 시작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말을 빌리면, 이들은 강요된 취미를 그대로 삼키지 않았다. 자신만의 구별짓기 감각으로 재가공했다. 나이키와 프로스펙스 운동화, 브랜드 로고가 박힌 야구 모자는 더 이상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대가 스스로를 알아보는 표식이었다.</p>

<p>1990년대, X세대는 관람석의 주인이 되었다. 농구대잔치와 프로농구의 출범, 프로야구의 500만 관중 시대가 이 무렵 열렸다. 이상민, 우지원, 문경은은 아이돌에 준하는 팬덤을 이끌었다. 스포츠서울과 주간경향의 보도는, 당시 경기장이 연예인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로 채워졌음을 전한다. 1994년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흥행은 스포츠를 완전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밀어 올렸다. 같은 해 LG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가 관중석을 채웠다. 그 자리를 지킨 것도 이들이었다. 지역 연고에 묶여 있던 무뚝뚝한 관전 문화는, 이들의 손을 거쳐 감각적인 팬덤 문화로 바뀌었다.</p>

<p>이들이 소비한 것은 관람권만이 아니다. 구단 로고가 박힌 야구잠바, 선수의 이름을 새긴 유니폼, 매점의 오징어와 맥주까지. 경기장은 하나의 완결된 소비 생태계로 자라났다.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이 도시적 감각의 핵심으로 지목한 권태로운 무심함, 이른바 블라제(blasé)의 태도는 이 세대의 관람 문화에서 정반대의 얼굴을 얻었다. 이들은 무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렬한 몰입으로, 무심함을 강요하던 이전 세대의 엄숙주의로부터 스스로를 떼어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67 float-center" data-idxno="5146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한 사람의 소비는 취향이지만, 수십만 개의 취향이 모이면 산업이 된다. 관람석에 앉은 세대는 표를 사고 유니폼을 입으며, 마침내 자신들의 머릿수로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6_51467_4048.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한 사람의 소비는 취향이지만, 수십만 개의 취향이 모이면 산업이 된다. 관람석에 앉은 세대는 표를 사고 유니폼을 입으며, 마침내 자신들의 머릿수로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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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후기 근대의 자아정체성이 주어진 전통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소비와 실천의 축적으로 성찰적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어느 구단을 응원할지, 어느 선수의 이름을 등에 새길지. 사소해 보이는 선택들이 쌓여 하나의 자아를 이루었다. 이전 세대에게 정체성은 태어난 지역과 소속된 조직으로 주어졌다. 이 세대는 관람석에서 스스로 정체성을 골라 입었다.</p>

<p>결정적이었던 것은 머릿수였다. 통계청 인구 구조 자료가 보여주듯, 베이비붐 후기와 맞물린 X세대는 한국 인구 지형에서 가장 두터운 층을 이루었다. 신광영은 「한국의 세대와 사회변동」에서, 90년대 소비사회의 팽창이 이 세대의 인구학적 비중과 경제적 자율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유니폼을 사고, 굿즈를 사고, 표를 사는 이 거대한 소비 주체가 있었기에, 구단은 비로소 자립할 수 있었다. 정권이 만든 판 위에 세대의 머릿수와 소비력이 얹히자, 관제 행사는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p>

<p>1997년 외환위기와 2000년대 초반의 침체 속에서도, 이들은 야구라는 매개로 대중적 연대의 기억을 놓지 않았다. 40여 년이 흘러 1,000만 관중 시대를 맞은 오늘의 야구장에는, 부모가 된 이 세대가 자녀의 손을 잡고 다시 돌아와 있다. 관제 행사로 시작된 야구공은, 이렇게 한 세대의 생애 궤적과 겹쳐 굴러왔다.</p>

<p> </p>

<p><strong>비정치라는 정치 — 자본이 설계한 길들임의 구조</strong></p>

<p>스포츠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말은, 스포츠가 감추고 있는 가장 정치적인 본질을 가리는 오래된 신화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레슬링을 두고, 스포츠가 승패의 순수한 드라마를 연출함으로써 자신을 자연스러운 것처럼 위장하는 현대의 신화라 말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와 에릭 다닝(Eric Dunning) 역시, 스포츠를 인간의 공격성을 무해하게 소모시키는 &#39;합법적 흥분&#39;의 장치로 보았다. 한 걸음 나아가면, 스포츠는 대중의 불만과 저항 의식을 미리 휘발시키는 사회적 밸브가 된다.</p>

<p>경기장은 교회를 닮았다.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모여,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승패를 함께 기다린다. 신을 대신해 스코어보드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배이고 무엇이 반역인가. 몸을 맞대고 함께 숨죽이는 그 시간 자체가, 이미 신앙보다 오래된 정치의 원형이다.</p>

<p>독재정권의 3S가 야만적이고 직접적이었다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본격화된 자본의 스포츠 활용은 훨씬 정교했다. 승자독식의 서사는, 신자유주의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자기관리와 적자생존의 논리를 자연법칙처럼 내면화시켰다. 팬덤은 굿즈를 사고 중계권료를 지불하는 충성스러운 소비 주체로 재편되었다. 월드컵과 올림픽의 국가주의는, 계급과 세대로 갈라진 내부의 균열을 승리라는 집단적 도취 속에 잠시 마비시켰다. 대중이 화려한 조명과 스타플레이어의 연봉에 몰입하는 동안, 자신이 속한 노동의 조건은 시야 밖으로 밀려난다.</p>

<p>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표현을 빌리면, 대중은 지배적인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 적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에서 그 메시지를 다시 해독하는 존재다. 정권과 자본은 스포츠라는 텍스트를 통해 순응과 소비를 부호화(encoding)해 내보냈다. 관람석에 앉은 이들은 그 텍스트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해독(decoding)했다. 어떤 이는 그저 소비했다. 어떤 이는 그 소비의 경험 속에서 함께 모이는 방법을 익혔다. 같은 경기장, 같은 함성이었다. 몸에 새겨지는 것은 사람마다 달랐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68 float-center" data-idxno="51468"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소비의 회로 안에서 사람들은 길들여졌지만, 그 회로가 가르친 것은 순응만이 아니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 낯선 사람과 함께 숨 쉬는 반복이 어느 순간 집단의 몸을 만들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6_51468_4136.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소비의 회로 안에서 사람들은 길들여졌지만, 그 회로가 가르친 것은 순응만이 아니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 낯선 사람과 함께 숨 쉬는 반복이 어느 순간 집단의 몸을 만들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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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p>이 지점에서, 이 글은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소비를 곧장 저항으로, 유희를 곧장 정치로 미화하는 순간, 이 글 역시 또 다른 신화 만들기에 가담한다. X세대의 관람 문화가 처음부터 저항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 역시 자본이 설계한 소비 회로 안에서, 충실히 지갑을 열었던 소비자였다.</p>

<p>그렇다면 X세대는 이 거대한 길들임의 대상이었을 뿐인가.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는, 지배 질서가 제공한 틀을 사용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쓰는 실천을 전술적 전유라 불렀다. 정권과 자본이 설계한 판은 분명 존재했다. 그 판 위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모이고, 무엇을 배우는가는 결국 몸을 움직이는 이들의 몫이다. 신화인 줄 모르고 소비하는 것과, 신화인 줄 알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의 쓸모를 찾아내는 것은 다른 일이다. X세대가 관람석에서 배운 것은 순응이 아니다. 모임의 감각이었다. 소비자로 출발한 몸은, 어느 순간 소비의 자리를 넘어선 쓸모를 익히고 있었다. 그 쓸모는 거창한 각성으로 오지 않았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좌석에 앉아 같은 함성을 지르는 반복 속에서, 낯선 이와 나란히 앉는 법과, 낯선 이의 함성에 자신의 함성을 포개는 법이 몸에 배어들었을 뿐이다.</p>

<p> </p>

<p><strong>광장의 상속 — 붉은 악마에서 촛불까지, 그리고 해명</strong></p>

<p>1988년 서울올림픽이 정권과 자본이 기획한 국가주의적 성전이었다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대중이 스스로 공간을 점령한 사건이었다. 그해 6월, 붉은 셔츠의 물결이 시청 앞을 채웠다. 주류 언론과 정치학자들은 이 열기를 &#39;탈정치화된 신세대의 집단적 광기&#39; 혹은 &#39;국가주의적 에너지의 기이한 소비&#39;로 읽었다. 명확한 구호도, 조직된 정치 세력도 없었으니 그렇게 보였을 법하다.</p>

<p>그러나 그 안에서 벌어진 일은 단순하지 않았다. 국가나 정당이 조직하지 않았음에도, 수백만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스스로 거리를 치웠다. 새벽까지 이어진 함성이 잦아든 자리에, 빗자루를 든 사람들이 남아 쓰레기를 봉투에 담았다. 누구의 지시도 아니었다. 조용한 실천과 묵묵한 참여. 이 광장은 1987년 6월 항쟁의 최루탄과 화염병이 뒤덮었던 비장한 공간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즐거움과 연대가 함께 새겨진 광장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 여름, 낯선 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도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p>

<p>그해 겨울, 붉은 셔츠를 벗은 자리에 촛불이 놓였다.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2008년 광우병 파동, 2016년 탄핵정국의 거대한 촛불로 이어지는 궤적 위에는 같은 세대의 몸이 있었다. 비장한 민중가요 대신 대중가요를, 엄숙한 투쟁 대신 유쾌한 문화제 형식을 택한 촛불의 아비투스는, 붉은 악마의 응원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2024년 겨울, 계엄이라는 낯선 단어가 다시 광장을 불러냈다. 사람들의 손에는 촛불과 나란히 케이팝 응원봉이 들려 있었다. 그 응원봉을 처음 손에 쥐어 본 곳은, 다름 아닌 스포츠 경기장이었다. 야구장 응원단이 흔들던 막대풍선과 카드섹션은, 훗날 콘서트장의 응원봉을 거쳐 광장의 손짓으로 이어졌다. 관람석에서 배운 흔드는 손짓이, 광장에서 지키는 손짓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69 float-center" data-idxno="5146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붉은 셔츠가 사라진 자리에 촛불이 들어섰다. 달라진 것은 손에 든 것이었고, 오래 남은 것은 함께 흔드는 몸이었다. 응원의 광장은 그렇게 시민의 광장을 위한 오래된 예행연습이 되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6_51469_4218.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붉은 셔츠가 사라진 자리에 촛불이 들어섰다. 달라진 것은 손에 든 것이었고, 오래 남은 것은 함께 흔드는 몸이었다. 응원의 광장은 그렇게 시민의 광장을 위한 오래된 예행연습이 되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정권이 대중을 순치하려 내려준 뜻밖의 세례는, 결국 대중 스스로 광장의 주인이 되는 법을 가르쳤다. 머릿수의 위용으로 프로스포츠라는 산업을 세운 세대는, 같은 머릿수의 위용으로 광장을 세웠다. 낙인은 이 세대가 정치를 몰랐다고 말한다. 그러나 몰랐던 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를 알아보는 언어였다. 이들은 구호 대신 함성으로, 성명서 대신 촛불로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냈을 뿐이다.</p>

<p>그러니 다시 묻자. 이들은 정치를 몰랐던 세대인가, 아니면 가장 몸으로 정치를 배운 세대인가. 2016년과 2024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과 응원봉이 함께 흔들리던 그 장면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 붉은 물결 속에서,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전 텔레비전 앞의 관중석에서 예비되어 있던 몸짓의 귀환이었다. 비정치의 낙인은 이제 다시 쓰여야 한다. 이 세대는 정치를 잃어버린 세대가 아니다. 정치가 광장에 도착하기 전, 그 문법을 가장 먼저 예습한 세대였다.</p>

<p> </p>

<p> </p>

<p><strong>글‧박철웅</strong><br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에디터<br />
작가‧문화평론가 <br />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 전공<br />
IBM과 NTT에서 마케팅과 컨설팅 담당<br />
2011년 『원순씨를 부탁해』 출간<br />
비평적 글쓰기, 사회, 문화 예술과 인간을 관통하는 글을 쓰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손정희 개인전 <나, 기쁜 소식> - 한글 ‘웃’ 자로 만나는 빛과 사랑 - 스페이스M. 9월16~30일]]></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7</link>
	  <dc:creator><![CDATA[성일권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7</guid>
	  <pubDate>Fri, 18 Sep 2026 17:09:49 +0900</pubDate>
	  <description><![CDATA[한글 한 글자가 사람의 몸이 되고, 두 글자가 만나 이웃이 된다. ‘응’이라는 짧은 대답은 사랑의 만트라가 되고, ‘오’는 하늘과 땅, 인간을 잇는 우주적 감탄사가 된다.창작한글서예가 손정희의 개인전 <나, 기쁜 소식>이 2026년 9월 16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강남 스페이스엠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웃’ 자 한글로 만나는 빛과 사랑을 부제로, ‘나·너·웃·오·응’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말을 회화적이고 명상적인 이미지로 전환한다. 작가는 이 다섯 글자를 각각 자아, 타자, 기쁨, 감동과 은총, 사랑과 긍정의 언어]]></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이웃 / 45x35cm / 한지에 먹 / 2026" height="434"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7_51470_343.jp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이웃 / 45x35cm / 한지에 먹 / 2026</div><p>한글 한 글자가 사람의 몸이 되고, 두 글자가 만나 이웃이 된다. ‘응’이라는 짧은 대답은 사랑의 만트라가 되고, ‘오’는 하늘과 땅, 인간을 잇는 우주적 감탄사가 된다.</p>

<p>창작한글서예가 손정희의 개인전 <나, 기쁜 소식>이 2026년 9월 16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강남 스페이스엠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웃’ 자 한글로 만나는 빛과 사랑을 부제로, ‘나·너·웃·오·응’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말을 회화적이고 명상적인 이미지로 전환한다. 작가는 이 다섯 글자를 각각 자아, 타자, 기쁨, 감동과 은총, 사랑과 긍정의 언어로 바라본다.</p>

<p> </p>

<p>손정희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독특한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작업실 안에서만 살아온 작가가 아니다. 스스로를 ‘창작한글서예 작가’이자 ‘생태명상가’, ‘노래하는 농부’라고 부른다. 농사를 짓고 밭에서 돌아오면 자연에서 받은 감동과 풍요를 시로 쓰고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 명상과 기도 역시 그의 일상이다. 새벽의 명상과 기도 속에서 떠오른 생각을 하나의 한글 단어로 압축해 붓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10여 년, 그 과정에서 그는 한글을 단순한 문자체계가 아니라 ‘생명의 언어이자 삶의 언어’로 인식하게 됐다고 말한다.</p>

<p>이러한 삶의 방식은 손정희의 작품을 일반적인 서예와 구별 짓는다. 그에게 글씨는 잘 쓰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문자는 어느 순간 사람처럼 걷고, 춤추고, 서로를 끌어안는다. 작가의 표현처럼 “글자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일어나 말을 건다.”</p>

<p> </p>

<p><strong>‘웃’ — 글자가 사람의 몸이 되는 순간</strong></p>

<p>이번 전시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손정희의 조형세계를 보여주는 글자는 ‘웃’이다.</p>

<p>굵고 자유로운 먹선으로 그려진 ‘웃’은 더 이상 읽기만 하는 문자가 아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뛰어오르는 사람, 춤추는 사람, 기쁨에 찬 인간의 몸으로 보인다. 문자와 인체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다.</p>

<p>작가는 인간의 몸 자체가 ‘웃’의 형상을 품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의 존재가 본질적으로 기쁨”이라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누군가 자신을 비난하거나 모욕하더라도 존재의 본질까지 훼손할 수 없으며, 누구도 인간에게서 근원적인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p>

<p>이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은 한글의 자형(字形)을 인간의 신체성과 연결했다는 점이다. 서예의 획은 여기서 문자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에서 벗어나 팔과 다리, 몸의 움직임이 된다. 붓의 속도와 먹의 농담, 거친 끝자락은 마치 사람이 뛰고 춤출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흔적처럼 남는다.</p>

<p> </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70 float-center" data-idxno="5147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이웃 / 45x35cm / 한지에 먹 / 2026" height="434"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7_51470_343.jpg" width="600" />
<figcaption>이웃 / 45x35cm / 한지에 먹 / 2026</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두 ‘웃’이 만나 ‘이웃’이 되다</strong></p>

<p>이번 전시의 대표 이미지에서 두 개의 ‘웃’은 서로 손을 맞잡은 듯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이를 “웃이 둘이 만나면 이웃”이라고 표현한다.</p>

<p>단순한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은 손정희의 예술세계를 압축한다. 하나의 ‘웃’이 개인의 기쁨이라면 두 ‘웃’의 만남은 관계의 탄생이다. 나의 기쁨이 너의 기쁨과 만날 때 비로소 ‘이웃’이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진다.</p>

<p>그래서 이 작품에서 서예는 읽는 예술에서 관계를 보여주는 예술로 이동한다. 두 형상 사이의 접점은 단순히 먹선이 겹치는 자리가 아니라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장소다. 손정희에게 기쁨은 혼자 완성되는 감정이 아니라 타인에게 건너가고 되돌아오며 커지는 생명력이다.</p>

<p> </p>

<p><strong>‘나’와 ‘너’ — 나는 누구인가</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71 float-center" data-idxno="51471"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나’와 ‘너’ — 나는 누구인가" height="1066"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7_51471_415.jpg" width="600" />
<figcaption><strong>‘나’와 ‘너’ — 나는 누구인가</strong></figcaption>
</figure>
</div>

<p>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이 질문을 품고 작품 앞에 서보라고 권한다.</p>

<p>그에게 ‘나’는 눈에 보이는 육체적 자아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을 넘어 자신과 함께하는 나, 내면에서 삶을 이끄는 지혜로서의 ‘나’를 이야기한다.</p>

<p>반면 ‘너’는 “누구하고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 즉 ‘빼어나게 아름다운 너’다.</p>

<p>‘나’와 ‘너’를 함께 놓으면 손정희의 작업은 자기 탐구에서 관계의 철학으로 확장된다. 포트폴리오에 등장하는 “너는 나의 안이고 나는 너의 밖이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문장은 이러한 세계관을 명료하게 보여준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72 float-center" data-idxno="5147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연결 / 35x35cm / 한지에 색먹 / 2026" height="586"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7_51472_432.jpg" width="600" />
<figcaption>연결 / 35x35cm / 한지에 색먹 / 2026</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오’ — 하늘과 땅 사이에 선 인간</strong></p>

<p>‘오’는 손정희의 작업이 한글의 조형성을 넘어 명상적 세계관으로 확장되는 작품이다.</p>

<p>작가는 ‘오’를 천·지·인의 구조로 읽는다. ‘ㅇ’은 하늘, ‘ㅡ’는 땅, ‘ㅣ’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오’는 하나의 음절인 동시에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하나의 질서 속에 연결되어 있다는 상징적 도상이 된다. 작가는 이를 “감동의 언어”라고 부른다.</p>

<p>검은 먹으로 그어진 수평선과 그 위로 솟은 수직선, 꼭대기의 원은 극도로 단순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절제가 작품의 힘이다. 몇 번의 붓질만으로 하늘·땅·사람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한 화면에 응축한다. 서예가 문자에서 그림으로, 다시 하나의 명상적 기호로 이동하는 과정이다.</p>

<p> </p>

<p><strong>‘응’ — 사랑의 만트라</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73 float-center" data-idxno="5147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응' 사랑의 만트라 / 125x115cm / 광목에 색먹 / 2026" height="491"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7_51473_58.jpg" width="600" />
<figcaption>&#39;응&#39; 사랑의 만트라 / 125x115cm / 광목에 색먹 / 2026</figcaption>
</figure>
</div>

<p>‘응’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따뜻한 언어다. 작가는 이를 “사랑의 소리, 긍정의 언어, 창조의 언어”라고 정의한다.</p>

<p>‘응’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누군가의 부름에 답하고, 상대를 받아들이고, 존재를 인정하는 가장 짧은 말이다. 그래서 손정희에게 ‘응’은 단순한 긍정어를 넘어 타자를 향해 마음을 여는 행위가 된다.</p>

<p>특히 색먹으로 표현한 작품에서는 중심을 향해 겹쳐지는 원과 꽃 같은 형상, 주변으로 확산되는 다채로운 점들이 마치 하나의 파동처럼 펼쳐진다. 여기서 ‘응’은 문자 자체를 넘어 중심에서 바깥으로 번져가는 사랑의 에너지, 혹은 반복을 통해 마음을 변화시키는 만트라에 가까워진다. 리플렛 역시 ‘응’을 “사랑의 소리이자 긍정과 창조의 언어”로 소개한다.</p>

<p><strong>농부의 붓에서 태어난 ‘살아 있는 한글’</strong></p>

<p>손정희의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전통서예의 규범을 얼마나 충실하게 계승했는가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문자에 대한 전문적 형식 실험 이전에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서 한글의 조형언어를 발견한다.</p>

<p>흙을 만지고 식물을 기르는 농부의 시간, 자연에서 받은 감동을 시와 노래로 옮기는 ‘노래하는 농부’의 삶, 새벽마다 이어온 명상과 기도의 시간이 그의 붓과 직접 연결된다.</p>

<p>그래서 그의 붓질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힘이 있다. 획은 때로 거칠고 비대칭적이며, 글자는 정해진 서체의 틀을 벗어나 인간이나 꽃, 물결처럼 움직인다. 이것은 결점이라기보다 손정희 작업의 성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발견한 감각을 문자라는 몸에 다시 불어넣는 것, 그것이 그의 ‘창작한글서예’에 가깝다.</p>

<p>이번 <나, 기쁜 소식>에서 ‘나·너·웃·오·응’은 결국 하나의 문장처럼 연결된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너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웃으며 서로 이웃이 되고, 세계의 경이 앞에서 ‘오!’라고 감탄하고, 마침내 타자의 존재를 ‘응’이라고 받아들이는 것.</p>

<p>손정희에게 한글은 그렇게 삶을 기록하는 문자가 아니라 삶 그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그림이며 명상이다. 전시 제목인 ‘나, 기쁜 소식’의 ‘기쁜 소식’은 어쩌면 거창한 사건이 아니다. 내가 이미 기쁨의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 기쁨이 너를 만나 ‘우리’가 될 수 있다는 발견이다. 그 소박하면서도 힘 있는 메시지가 이번 전시에서 손정희의 붓을 통해 몸을 얻는다.</p>

<p>손정희 개인전 <나, 기쁜 소식 — 웃자 한글로 만나는 빛과 사랑>은 2026년 9월 16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언주로121길 11 스페이스엠 갤러리에서 열린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전시 포스터와 리플렛에 따르면 일요일은 휴관한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칼럼]]></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상품 중량이 포장지 표시와 '같거나 그 이상(≥)'돼야 하는 '평균량 기준 법' 도입 파장]]></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5</link>
	  <dc:creator><![CDATA[김시래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5</guid>
	  <pubDate>Fri, 18 Sep 2026 03:39:26 +0900</pubDate>
	  <description><![CDATA[2026년 9월 개정된 계량에 관한 법률이 포장상품의 실제 내용량 평균이 표시치 이상(≥)이어야 한다는 평균량 기준을 법제화했다. 가격을 둔 채 내용량을 갉아먹던 슈링크플레이션(가격은 그대로 두거나 소폭만 올리면서 제품의 용량·중량·개수·품질 등을 줄여, 사실상 실질 단가를 올리는 현상)과 하한선 오차에 기대어 전체 중량을 줄이던 편법이 1년 이하 징역형의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 바빌로니아의 저울추 규제부터 유럽연합의 통계적 평균량 관리까지 이어진 계량의 역사는 이제 소비자의 밥상과 지갑을 지키는 가장 정밀한 경제적 방파제로 재탄생]]></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조금 모자라도 허용되던 저울의 틈, 이제 법은 ‘평균’을 본다. 표시량 100그램이라면 전체 상품의 평균도 적어도 100그램이어야 한다. 숫자의 정직성이 시장의 신뢰를 지킨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5_51464_2930.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64 float-center" data-idxno="5146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조금 모자라도 허용되던 저울의 틈, 이제 법은 ‘평균’을 본다. 표시량 100그램이라면 전체 상품의 평균도 적어도 100그램이어야 한다. 숫자의 정직성이 시장의 신뢰를 지킨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5_51464_2930.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조금 모자라도 허용되던 저울의 틈, 이제 법은 ‘평균’을 본다. 표시량 100그램이라면 전체 상품의 평균도 적어도 100그램이어야 한다. 숫자의 정직성이 시장의 신뢰를 지킨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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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p>2026년 9월 개정된 계량에 관한 법률이 포장상품의 실제 내용량 평균이 표시치 이상(≥)이어야 한다는 평균량 기준을 법제화했다. 가격을 둔 채 내용량을 갉아먹던 슈링크플레이션(가격은 그대로 두거나 소폭만 올리면서 제품의 용량·중량·개수·품질 등을 줄여, 사실상 실질 단가를 올리는 현상)과 하한선 오차에 기대어 전체 중량을 줄이던 편법이 1년 이하 징역형의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 바빌로니아의 저울추 규제부터 유럽연합의 통계적 평균량 관리까지 이어진 계량의 역사는 이제 소비자의 밥상과 지갑을 지키는 가장 정밀한 경제적 방파제로 재탄생하고 있다.</p>

<p> </p>

<p><strong>&#39;평균의 배신&#39;을 막기 위한 법률 개정</strong></p>

<p>화폐의 가치가 서서히 증발하는 인플레이션의 시대, 시장경제의 가장 은밀한 구석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가치 절하가 소리 없이 진행된다. 슈퍼마켓 진열대에 놓인 감자칩 봉지의 가격표는 그대로 1,500원을 가리키고 있지만, 질소 충전재 속으로 가라앉은 과자의 실중량은 60그램에서 50그램으로, 다시 45그램으로 줄어든다. 소비자는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는 안도감 속에서 계산대를 지나치지만, 단위당 실질 가격은 이미 두 자릿수 이상 치솟은 뒤다.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의 현장이다.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란 가격은 그대로 두거나 소폭만 올리면서 제품의 용량·중량·개수·품질 등을 줄여, 사실상 실질 단가를 올리는 현상을 말한다. 포장의 크기와 디자인, 심지어 매대 위의 자리조차 변하지 않은 채 오직 계량 단위만이 줄어드는 이 보이지 않는 사기는 오랫동안 법의 사각지대에서 번성했다.</p>

<p>2026년 9월 15일 공포된 개정 계량에 관한 법률(법률 제21924호)은 이 정교한 속임수에 대한 국가 공권력의 공식적인 선전포고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제41조제1항에 아로새겨진 한 줄의 문장에 집약된다. [상품에 표시된 양과 실제 내용량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허용오차를 초과하지 아니하여야 하며, 실제 내용량의 평균은 상품에 표시된 양보다 크거나 같아야 한다.] 과거의 법령이 개별 제품의 최소 하한선만을 규제했다면, 이제 법은 생산된 집단 전체의 통계적 평균값을 정면으로 겨눈다. 허용오차라는 제도의 그늘에 숨어 제품 전체의 무게를 미세하게 깎아내리던 기업의 기술적 꼼수가 마침내 형사처벌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왔다.</p>

<p>인류의 시장경제가 탄생한 이래, 계량은 단순한 물리학적 측정이 아니라 계급과 사회적 신뢰를 지탱하는 헌법적 합의였다.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은 상거래에서 거짓 저울추를 사용해 곡식을 빌려주거나 받는 행위를 사형이나 엄벌로 다스렸다. 성경 잠언서 역시 &#39;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신다&#39;고 선언하며, 저울의 눈금을 조작하는 행위를 종교적 죄악으로 규정했다. 중세 영국의 국왕 헨리 3세가 1266년에 반포한 빵과 맥주 사정법은 밀 가격에 따라 빵의 무게를 엄격히 규제하며, 기준치보다 가벼운 빵을 구워 판 제빵사를 광장의 수레에 묶어 공개 망신을 주는 형벌을 내렸다. 당시 빵 굽는 이들이 당국의 처벌이 두려워 12개들이 한 다스 주문에 덤으로 빵 하나를 더 얹어주던 관습에서 &#39;베이커스 더즌(13개)&#39;이라는 표현이 유래했다는 사실은, 계량 규제가 얼마나 서민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는지를 웅변한다.</p>

<p>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 체제로 진입하면서 상품의 계량은 공장 내 자동화 포장기계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분당 수백 통의 캔 음료가 쏟아져 나오고 수천 봉지의 곡물이 포장되는 현대 생산 공정에서 모든 낱개 제품의 무게를 0.1그램의 오차도 없이 100% 일치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기서 바로 &#39;허용오차(허용 부족량)&#39;라는 기술적 타협안이 등장했다. 기계의 진동, 원료의 수분 함량 차이, 이송 속도의 미세한 변동을 감안해 일정 범위 내의 부족함은 법적으로 눈감아주기로 한 것이다.</p>

<p>문제는 이 합리적 타협이 거대 기업들의 원가 절감 알고리즘과 결합하면서 발생했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가 2023년 12월 주요 가공식품 및 생활용품 73개 품목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견과류, 소시지, 치즈, 김, 참치캔 등 서민들이 매일 소비하는 장바구니 품목 중 37개 제품에서 가격 변동 없이 용량이 7.7%에서 최대 12.5%까지 줄어든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을 맡고 있던 한기정(62)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용량을 몰래 줄여 실질적인 가격 인상을 꾀하는 행위는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은밀한 기만행위"라고 질타했다.</p>

<p>그러나 당시 당국의 칼날은 무뎠다. 가격표시판에 단위가격 표기를 확대하고 용량 변경 시 고지 의무를 부과하는 행정지도 수준에 머물렀다. 제조업체들은 포장재 하단에 아주 작은 글씨로 중량 표기를 100그램에서 90그램으로 고쳐 넣는 것만으로 법망을 빠져나갔다. 게다가 법적으로 정해진 허용오차 기준을 악용하는 정밀한 공학적 조작도 횡행했다. 예컨대 500그램들이 제품의 법정 허용오차가 2%라면, 개별 제품은 490그램까지만 내려가지 않으면 단속에 걸리지 않았다. 일부 기업들은 포장 충전 설비의 정밀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뒤, 생산되는 10만 개 제품 전체의 평균값을 표시치인 500그램이 아니라 허용오차 하한선에 근접한 492그램에 맞추도록 기계를 세팅했다. 10만 개 제품에서 개당 8그램씩, 총 800킬로그램의 원료가 허공으로 사라졌고, 이는 고스란히 기업의 불로소득으로 전환됐다. 개별 제품 검사 방식으로는 적발할 수 없는 완벽한 합법적 착취였다.</p>

<p> </p>

<p><strong>글로벌 표준과의 격차와 허용오차의 맹점을 깨부순 평균의 논리</strong></p>

<p>이 같은 계량의 실패는 선진국들이 일찍이 겪었던 홍역이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39;세 가지 포장업자의 원칙&#39;을 수립하고, 포장 전면에 소문자 &#39;e&#39; 마크를 부착하는 이마크(e-mark)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의 핵심은 명확하다. 첫째, 한 배치(생산 단위) 내 제품들의 평균 실중량은 표시된 공칭 중량 이상이어야 한다. 둘째, 법정 허용오차를 초과해 미달하는 불량 제품의 비율은 전체의 2.5%를 넘지 않아야 한다. 셋째, 허용오차의 2배를 초과해 부족한 제품은 단 한 개도 시장에 유통되어서는 안 된다.</p>

<p>유럽연합 회원국인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제품 유통이 즉각 금지된다. 미국 역시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기술원(NIST)의 핸드북 133 규정을 통해 주 정부의 도량형 감독관들이 통계적 샘플링 기법으로 유통 현장의 평균 내용량을 무작위 검사한다. 일본의 계량법 또한 일정 오차 범위 내의 제품이라 하더라도 표본 검사 결과 평균량이 표시량에 미달할 경우 판매정지 및 개선명령을 내린다.</p>

<p> </p>

<p><strong>주요국의 계량법 주요 법적 내용을 보면....</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63 float-center" data-idxno="5146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800px"><img alt="" height="80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5_51463_3642.jpg" width="8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반면 한국의 기존 체계는 개별 제품의 절대오차 규제에 매몰되어 있었다. 정부 검사관이 대형마트 매대에서 10개의 상품을 수거해 검사했을 때, 10개 제품이 모두 표시치보다 미달하더라도 각각의 결손량이 허용오차 기준선 안에 머물러 있다면 행정처분을 내릴 법적 근거가 없었다.</p>

<p>이에 따라 이번 2026년 계량법 개정은 한국의 소비자 보호망을 국제 표준의 수준으로 수직 상승시키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새로 도입된 제41조제1항 후단의 위력은 단순한 기준 제시에서 끝나지 않는다. 촘촘한 벌칙 조항들과 맞물려 작동하기 때문이다. 제73조제6호는 상품에 표시된 양과 실제 내용량이 허용오차를 초과하거나, 실제 내용량의 평균이 표시된 양에 미달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했다. 나아가 법원은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징역형과 벌금형을 함께 부과하는 병과 처분을 내릴 수 있다.</p>

<p>이러한 처벌 수위는 과거 행정처분이나 수백만 원짜리 과태료에 불과했던 계량 위반 행위를 명백한 형사범죄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여기에 제51조제1항제3호는 정량표시 정정 요구를 불이행한 악의적 사업자에 대해 위반 내역과 기업명을 대중 매체와 관보에 공표하도록 규정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기업의 생존 화두가 된 오늘날, 정량 속임수로 인한 위반사실 공표는 기업 브랜드 가치에 치명타를 가하는 실질적인 극형이다.</p>

<p>집행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직적 인프라도 완전히 재편됐다. 법률 제42조의2에 따라 새로 지정되는 &#39;정량표시상품 전담기관&#39;은 유통 시장에 깔린 수십만 종의 상품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시판품을 전문적으로 수거·계량하는 독립적 감시탑 역할을 맡는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제70조다. 전담기관의 임직원과 현장 조사를 보조하는 소비자감시원(제54조)을 형법상 뇌물죄나 직무유기죄 적용 시 &#39;공무원&#39;으로 의제 처리하도록 했다. 과거 민간 협회나 소비자단체가 현장 조사에 참여할 때 발생할 수 있었던 온정주의나 비리 유착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국가 사법경찰에 준하는 엄정한 책임을 부여한 셈이다.</p>

<p> </p>

<p><strong>기업 통계적 공정관리의 대전환과 빵 조각에 담긴 시장경제의 윤리</strong></p>

<p>이 법 개정안이 던진 파장은 산업계 현장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2027년 9월 본격적인 법률 시행을 앞두고 식품, 제약, 화학, 화장품 등 대량 포장 공정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제조 라인의 품질관리(QC)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p>

<p>과거의 공정관리가 정규분포 곡선의 하단부를 법정 허용오차 한계선 바로 위에 걸치도록 조정하는 &#39;마이너스 오차의 극대화&#39; 전략이었다면, 이제는 생산 로트 전체의 정규분포 중심축(평균값)을 표시량보다 일정 수준 이상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는 &#39;안전 마진(Safety Margin)&#39; 전략이 불가피해졌다. 예를 들어 내용량 1,000그램짜리 밀가루를 포장하는 라인이라면, 설비 오차로 인해 평균값이 999.5그램으로 내려앉는 순간 회사 대표이사가 형사입건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포장기계의 목표 설정값을 1,002그램이나 1,005그램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이는 곧 원자재 투입량의 증가와 제조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p>

<p>초정밀 자동 계량 포장기기를 제조하는 일본과 독일의 계측설비 수입 단가는 치솟고 있다. 분당 오차 범위를 극단적으로 좁힐 수 있는 고정밀 인라인 중량선별기(Checkweigher)를 라인마다 배치하지 않고서는 평균량 기준을 방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종합식품기업 생산총괄을 맡고 있는 한 임원은 사석에서 "라인당 수억 원에 달하는 최신 계량 검사장비를 추가 설치해야 하고, 연간 원자재 손실분(Giveaway)까지 감안하면 수백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판"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p>

<p>그러나 이 같은 비용 상승을 기업의 과도한 부담이나 규제 일변도의 부작용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빈 크루그먼(73) 뉴욕시립대 교수는 일찍이 정보의 비대칭성과 시장의 왜곡에 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한 바 있다. 그는 "자유롭고 효율적인 시장이라는 신화는 거래 당사자가 자신이 무엇을 사고파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한다"고 지적했다.</p>

<p>소비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제품의 무게를 10% 줄이는 것은 제품의 질이나 가격을 속이는 것과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오히려 가격 인상은 소비자의 저항과 수요 감소를 불러와 시장의 가격 탄력성을 작동시키지만, 슈링크플레이션은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 자체를 마비시킨다. 소비자는 왜곡된 신호에 속아 비효율적인 소비를 지속하고, 부정직한 기업이 정직하게 정량을 지키는 경쟁 기업의 파이를 빼앗는 &#39;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39;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p>

<p>결국 정량표시상품의 평균량 기준 도입은 기업을 옥죄는 불필요한 규제가 아니라, 붕괴하던 가격 메커니즘을 복원하고 시장경제의 공정한 룰을 재건하는 가장 기본적인 공공재의 설치 작업이다. 미국의 소비에트 연방 붕괴 연구로 유명한 경제사학자들은 구소련의 계획경제가 파탄에 이른 결정적 징후 중 하나로 소비재 상품의 규격과 품질 저하, 그리고 만연한 계량 속임수를 꼽는다. 통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당국과 국영공장이 암묵적으로 제품의 실중량과 품질을 희생시켰고, 이는 체제에 대한 인민의 신뢰를 밑바닥부터 갉아먹었다. 가격을 올리지 못해 몰래 양을 줄이는 행태는 경제의 투명성이 후퇴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경고 신호다.</p>

<p>역사는 계량의 투명성이 확보될 때 비로소 사회적 거래 비용이 극적으로 감소했음을 증명한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이 길이나 부피를 재는 자와 그릇이 영주마다 달라 농민들을 수탈하는 도구로 쓰이던 봉건적 도량형을 타파하고 미터법이라는 보편적 단위를 정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미터법은 단순한 과학적 진보가 아니라, &#39;동일한 척도 아래 만인이 평등하다&#39;는 공화국의 정치적 선언이었다.</p>

<p>2026년 한국의 개정 계량법은 현대판 도량형 통일 운동이다. 대량생산과 거대 유통망이라는 미명 뒤에 숨어 소비자의 숟가락에서 밥 한 톨, 아이들의 과자 봉지에서 칩 한 조각을 슬그머니 덜어내던 미시적 약탈은 이제 법의 철퇴를 맞게 됐다. 법률이 시행되는 2027년 9월 16일 이후, 진열대에 놓인 상품들은 비로소 제 이름을 찾게 될 것이다. 100그램이라고 적힌 포장지 속에는 반드시 그 이상의 정직한 무게가 담겨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장경제가 소비자에게 진 빚을 갚는 방식이자, 문명사회가 숫자를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뜻밖의 금요일] 제자리라는 은총]]></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7</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7</guid>
	  <pubDate>Thu, 17 Sep 2026 22:31:33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신문지에 싸인 지폐는 무겁다. 종이의 무게가 아니다. 세월의 무게다. 영등포역 매표 창구 너머로 그것을 밀어 넣은 손은 늙었고, 그 손이 넘겨준 오백만 원은 이자보다 더 오래된 무엇을 품고 있었다. 이름도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돌아선 발걸음. 사람들은 그것을 속죄라 부르고 참회라 부른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귀환이다. 오랫동안 비켜서 있던 자리로, 마침내 되돌아가는 몸짓이다.회개와 회심을 우리는 종종 거창한 사건으로 그린다. 벼락처럼 내리치는 깨달음, 무릎을 꿇리는 극적인 전환. 그러나 난곡동 할머니의 이야기는 다른]]></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기울어진 세계 속에서, 홀로 수직으로 서 있는 문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7_51449_1736.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49 float-center" data-idxno="5144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기울어진 세계 속에서, 홀로 수직으로 서 있는 문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7_51449_1736.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기울어진 세계 속에서, 홀로 수직으로 서 있는 문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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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p>신문지에 싸인 지폐는 무겁다. 종이의 무게가 아니다. 세월의 무게다. 영등포역 매표 창구 너머로 그것을 밀어 넣은 손은 늙었고, 그 손이 넘겨준 오백만 원은 이자보다 더 오래된 무엇을 품고 있었다. 이름도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돌아선 발걸음. 사람들은 그것을 속죄라 부르고 참회라 부른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귀환이다. 오랫동안 비켜서 있던 자리로, 마침내 되돌아가는 몸짓이다.</p>

<p>회개와 회심을 우리는 종종 거창한 사건으로 그린다. 벼락처럼 내리치는 깨달음, 무릎을 꿇리는 극적인 전환. 그러나 난곡동 할머니의 이야기는 다른 문법을 보여준다. 회심이란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자신을 다시 놓는 일이다. 훔친 것을 되돌려 놓고, 빠져나온 자리로 되돌아가고, 등 돌렸던 방향으로 다시 걷는 것. 그 단순함이 오히려 이 시대에는 사치처럼 느껴진다.</p>

<p>정치인들은 저마다의 진영에서 제 몫을 키우느라 뉴스를 도배하고, 전쟁을 일삼는 권력자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 큰 무력을 쌓는다. 기술자본은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공포를 퍼뜨린 뒤, 그 공포를 달래는 척 다시 손을 내민다. 모두가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방향은 한결같이 자기 자신을 향해 있다. 이런 세상에서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찾는 일은 왜 이렇게 힘겨운가.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베유는 이 물음에 오래전 하나의 언어를 마련해 두었다. 그가 남긴 문장들이 오늘의 소란을 유난히 정확하게 비추는 까닭은, 그 역시 전쟁의 한복판에서 이 물음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p>

<p> </p>

<p><strong>중력의 법칙</strong></p>

<p>베유는 유고집 『중력과 은총(重力과 恩寵, La Pesanteur et la Grâce)』에서 인간의 영혼에도 물질계의 중력 법칙과 닮은 법칙이 있다고 썼다.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면 영혼은 언제나 아래로, 자기 자신 쪽으로 끌려간다. 소유하려는 힘, 증명하려는 힘, 남보다 앞서려는 힘. 이 모든 것이 중력이다. 은총은 그 법칙의 유일한 예외다. 스스로를 비우는 힘, 자기중심을 내려놓는 힘만이 아래로 향하는 흐름을 거스른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50 float-center" data-idxno="5145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두려움이 흘러내리고, 다시 값이 되어 돌아오는 구조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7_51450_1817.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두려움이 흘러내리고, 다시 값이 되어 돌아오는 구조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이 낡은 은유는 오늘의 풍경 앞에서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상대를 향해 화살을 돌리는 정치인의 언어는 중력의 가장 익숙한 표현이다. 사과의 문장조차 다음 선거를 위한 전략으로 계산될 때, 중력은 가장 세련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국경 너머의 고통을 계산기 위의 숫자로 바꾸어 전쟁을 지속시키는 권력자들 역시 같은 낙하 위에 서 있다. 그들은 지키기 위해 무너뜨리고, 안전을 말하며 위협을 늘린다. 인공지능을 앞세운 기술자본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미래의 공포를 정교하게 설계하여 퍼뜨린 뒤, 그 공포를 잠재울 열쇠마저 자신이 쥐고 있다고 속삭인다. 두려움을 만들고, 그 두려움을 다시 상품으로 되파는 구조. 이보다 완벽한 중력의 순환은 없다.</p>

<p>문제는 이 낙하가 대개 악의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난곡동 할머니가 젊은 날 검표구를 넘었던 것도 악의가 아니었다. 어린 자식을 먹여야 했던 가난이 그를 아래로 끌어당겼을 뿐이다. 중력은 늘 그런 식으로 온다.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안보라는 이름으로. 베유가 무서워했던 것은 악인의 존재가 아니라, 누구도 예외 없이 끌려 내려가는 이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p>

<p> </p>

<p><strong>뿌리 뽑힌 자리</strong></p>

<p>베유는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또 하나의 원고를 런던에서 써 내려갔다. 사후에 『뿌리내림의 필요(L&#39;Enracinement)』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 글에서 그는 뿌리내림이야말로 인간 영혼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무시되어 온 욕구라고 말한다. 한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실제로, 능동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비로소 뿌리를 가진다. 그리고 전쟁과 정복, 돈에 대한 숭배는 이 뿌리를 뽑아내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라고 그는 덧붙인다.</p>

<p>난곡동 할머니의 무임승차를 다시 들여다보면, 그것은 도덕의 결함이기 이전에 뿌리 뽑힘의 흔적이다. 산동네와 도심을 오가며 몇 푼의 차비조차 감당하지 못했던 그 시절, 할머니는 이미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밀려나 있었다. 가난은 사람을 공동체의 가장자리로 내몬다. 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규범은 버거운 사치가 된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51 float-center" data-idxno="51451"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뿌리는 매달려 있고, 땅은 조금씩 떨어져 나간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7_51451_1859.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뿌리는 매달려 있고, 땅은 조금씩 떨어져 나간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오늘의 권력은 이 뿌리 뽑힘을 더 정교한 방식으로 반복한다. 전쟁은 국경 너머의 사람들을 삶의 터전에서 물리적으로 뽑아낸다. 정치인들이 선동하는 진영 논리는 이웃을 적으로 재편하며 공동체의 결을 끊어낸다. 세대와 지역과 신념으로 사람을 가르는 혐오의 언어 역시, 뿌리내림을 말하면서 실은 또 다른 뽑아냄을 실행한다. 인공지능을 앞세운 자본은 노동의 자리를 흔들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게 만든다. 사람들은 국적과 직업과 관계라는 뿌리를 하나씩 잃어 가면서도, 정작 자신이 뽑혀 나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뿌리 뽑힌 영혼은 어디로도 돌아갈 자리를 기억하지 못한다.</p>

<p>그러므로 회심이 어려운 까닭은 분명해진다. 돌아가려면 돌아갈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 자리 자체를 끊임없이 지워 나간다. 할머니가 오십 년 가까운 세월을 돌아 다시 영등포역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 자리 하나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기억하는 일, 그것이 뿌리내림의 시작이다.</p>

<p> </p>

<p><strong>눈이 열리는 자리</strong></p>

<p>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도 스무 해 만에 고향에 이르렀을 때 곧바로 알아보아지지 않았다. 발을 씻기던 늙은 유모가 오랜 흉터를 보고서야 그가 누구인지 알아챈다. 알아봄은 이렇게 몸에 새겨진 흔적을 통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뒤늦게 도착한다.</p>

<p>루카복음이 전하는 엠마오 이야기에도 같은 문법이 흐른다.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등지고 걷는다. 희망이 꺾인 자리에서 등을 돌리는 걸음이었다. 낯선 이가 다가와 나란히 걸어도 그들의 눈은 가리어져 있었다. 곁에 있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 그것은 뿌리 뽑힌 자의 흔한 증상이다.</p>

<p>낯선 이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다만 묻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냐고. 그 질문이 두 사람의 슬픔을 밖으로 이끌어낸다. 이어 그는 성경을 처음부터 다시 풀어낸다. 두 제자는 훗날 이렇게 고백한다. 길에서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이미 타오르고 있었다고. 그러나 타오르는 마음과 열리는 눈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이해는 먼저 도착하고, 알아봄은 뒤늦게 온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52 float-center" data-idxno="5145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빵을 떼는 손끝에서, 끊어졌던 길이 다시 이어진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7_51452_1944.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빵을 떼는 손끝에서, 끊어졌던 길이 다시 이어진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날이 저물자 두 제자는 낯선 이를 붙든다. 저희와 함께 머무르시라고. 그 청함이 없었다면 눈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은총은 스스로 밀고 들어오지 않는다. 초대를 기다린다. 식탁에서 그가 빵을 떼어 건네는 순간, 두 사람의 눈이 열린다. 그리고 그는 사라진다.</p>

<p>여기서 이야기는 뜻밖의 방향을 택한다. 눈이 열린 두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 어두워진 길을, 그들은 되짚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방금 등지고 떠나온 그 자리로. 회심은 여기서 완성된다. 믿음이 생겨나는 사건에 그치지 않고, 걷는 방향이 뒤바뀌는 사건으로. 등 돌렸던 발이 다시 제자리를 향해 놓이는 순간, 비로소 눈뜸은 삶이 된다.</p>

<p> </p>

<p><strong>신문지 속의 은총</strong></p>

<p>난곡동 할머니가 영등포역 창구에 밀어 넣은 오백만 원도 다르지 않다.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는 오래전 자신이 비켜섰던 그 자리를 기억해 냈다. 세월의 이자를 넉넉히 더해, 그는 자신이 뽑혀 나왔던 자리에 스스로를 다시 심었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걸음이었다. 법도 제도도 그 빚을 청구하지 않았다. 오직 뿌리내림을 향한 영혼의 갈증만이 그를 그 창구 앞으로 이끌었다.</p>

<p>영등포역이 보여 준 응답 또한 은총의 다른 얼굴이다. 규정대로라면 출처 불명의 현금은 돌려보내거나 방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무원들은 그 돈에 담긴 마음을 정당한 운임과 반성금으로 받아들이고, 대합실 벽에 편지를 내걸었다. 할머니의 슬픔이 죄가 아니었음을, 아들의 죽음이 할머니의 업보가 아니었음을 알리는 편지였다. 낯선 이가 두 제자를 알아봐 주었듯, 역은 얼굴 없는 한 사람을 알아봐 주었다. 알아봄은 이렇게 언제나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53 float-center" data-idxno="5145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차가운 격자 속에서, 단 하나의 창이 부드러워진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7_51453_2025.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차가운 격자 속에서, 단 하나의 창이 부드러워진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이 작은 사건은 오늘의 세상을 향해 조용히 되묻는다. 자기 몫을 지키려 뉴스를 도배하는 정치인들에게, 안보를 명분으로 전쟁을 이어 가는 권력자들에게, 공포를 설계하고 그 해독제까지 팔려는 기술자본에게 물을 수 있는 질문은 하나다. 당신은 지금 어느 자리에서,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중력은 언제나 손쉬운 방향을 가리킨다. 아래로, 더 아래로, 자기 자신 쪽으로. 그러나 그 낙하를 거스르는 힘이 인간에게는 여전히 남아 있다.</p>

<p>거창한 혁명이나 극적인 전향이 아니어도 좋다. 신문지에 싸인 오백만 원처럼, 낯선 이를 붙드는 짧은 청함처럼, 회심은 아주 작은 걸음에서 시작된다. 등 돌렸던 곳으로 다시 발을 옮기는 일, 뽑혀 나왔던 자리에 스스로를 다시 심는 일. 욕망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그 걸음은 여전히 무겁고, 여전히 드물다. 그러나 그 드묾이야말로,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아직 이 세상에서 완전히 뽑혀 나가지 않았다는 증거다.</p>

<p> </p>

<p> </p>

<p><strong>글‧박철웅</strong><br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에디터<br />
작가‧문화평론가 <br />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 전공<br />
IBM과 NTT에서 마케팅과 컨설팅 담당<br />
2011년 『원순씨를 부탁해』 출간<br />
비평적 글쓰기, 사회, 문화 예술과 인간을 관통하는 글을 쓰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높아지는 ‘나토-러시아’ 군사적 긴장…유럽은 다시 전쟁의 경계선에 섰다]]></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4</link>
	  <dc:creator><![CDATA[신성은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4</guid>
	  <pubDate>Thu, 17 Sep 2026 18:36:28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의 전쟁 경계선이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쟁의 주무대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다면 최근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루마니아·덴마크와 발트해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영공과 영해 주변에서 러시아와 관련된 군사적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특히 9월 들어 상황은 심상치 않다. 지난 13일 러시아의 드론 공격이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에 인접한 야호딘 일대를 강타한 데 이어, 덴마크 게드세르 인근 국제수역에서는 러시아 군함이 감시 중이던 덴마크 군용 헬리콥터를 향해 조명탄을 발사했]]></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리투아니아가 리투아니아 영공에 출몰한 러시아 드론을 격추시켰다. 확전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height="396"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4_51459_3430.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리투아니아가 리투아니아 영공에 출몰한 러시아 드론을 격추시켰다. 확전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div><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59 float-center" data-idxno="5145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리투아니아가 리투아니아 영공에 출몰한 러시아 드론을 격추시켰다. 확전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height="396"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4_51459_3430.png" width="600" />
<figcaption>리투아니아가 리투아니아 영공에 출몰한 러시아 드론을 격추시켰다. 확전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figcaption>
</figure>
</div>

<p>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의 전쟁 경계선이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쟁의 주무대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다면 최근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루마니아·덴마크와 발트해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영공과 영해 주변에서 러시아와 관련된 군사적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p>

<p>특히 9월 들어 상황은 심상치 않다. 지난 13일 러시아의 드론 공격이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에 인접한 야호딘 일대를 강타한 데 이어, 덴마크 게드세르 인근 국제수역에서는 러시아 군함이 감시 중이던 덴마크 군용 헬리콥터를 향해 조명탄을 발사했다. 15일에는 리투아니아 영공에 들어온 러시아제 게르베라(Gerbera) 드론을 나토 임무를 수행하던 이탈리아 전투기가 격추했다. 리투아니아가 2004년 나토에 가입한 이후 발트 방공 임무에서 러시아제 드론이 격추된 첫 사례로 전해졌다.</p>

<p>개별적으로 보면 각각 설명 가능한 사건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나토의 대립이 이제 외교적 경고와 군사훈련의 단계를 넘어 서로의 군사력이 실제로 접촉하고 대응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p>

<p> </p>

<p><strong>우크라이나 전쟁의 ‘경계선’이 흐려지고 있다</strong></p>

<p>현재 상황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위험한 것은 전쟁과 평화 사이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p>

<p>러시아 전투기가 나토 국가를 직접 폭격하거나 러시아 지상군이 폴란드 국경을 넘는다면 상황은 오히려 명확하다. 나토 조약 제5조가 규정하는 집단방위 문제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p>

<p>그러나 드론 한 대가 국경을 넘거나 군함이 상대국 헬리콥터 가까이 조명탄을 발사하는 경우는 다르다. 해저 통신케이블이 손상되거나 철도가 파괴되고 군사시설 인근에 정체불명의 드론이 출현하는 사건 역시 책임 주체와 의도를 즉각 확정하기 어렵다.</p>

<p>이것이 이른바 ‘회색지대(gray zone)’ 또는 하이브리드전의 특징이다.</p>

<p>실제로 최근 북유럽에서는 해저 인프라를 둘러싼 긴장도 높아졌다. 로이터는 지난 10일 나토 회원국들이 올해 봄 스발바르 인근 북극 해역에서 러시아 잠수함들이 해저 케이블을 무력화하는 훈련을 하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해저 통신망과 전력망은 유럽 경제와 군사작전을 동시에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다.</p>

<p>따라서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전통적인 의미의 ‘러시아 대 나토 전쟁’과는 다르다. 드론, 사이버 공격, 철도와 항만, 해저케이블, 군용기와 군함의 근접 비행 등 전면전의 문턱 아래에서 상대방의 대응 의지와 한계를 시험하는 형태에 가깝다.</p>

<p> </p>

<p><strong>러시아는 무엇을 시험하고 있나</strong></p>

<p>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러시아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무엇을 얻으려 하느냐는 것이다.</p>

<p>서방 국가들은 최근 일련의 사건 가운데 상당수를 러시아의 의도적 압박 또는 하이브리드 활동으로 보고 있지만, 개별 사건의 의도와 책임은 사건마다 입증 수준이 다르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서방의 비판을 부인하거나 오히려 나토 측의 군사활동이 도발적이라고 반박해왔다.</p>

<p>그럼에도 전략적으로 보면 러시아에는 나토의 대응 한계를 확인할 유인이 존재한다.</p>

<p>나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압도적인 군사력 자체만이 아니다. 32개 회원국 가운데 한 국가에 대한 무력공격을 전체 동맹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북대서양조약 제5조의 집단방위 원칙이다. 문제는 제5조가 어떤 상황에서 적용되는지가 모든 사건에 대해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p>

<p>드론 한 대가 영공을 침범하면 제5조인가. 해저케이블이 파괴되면 제5조인가. 사이버 공격으로 발전소가 멈추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군함이 군용기를 위협했지만 실제 공격은 하지 않았다면 어느 수준으로 대응해야 하는가.</p>

<p>바로 이 모호한 공간이 현대 유럽 안보의 새로운 전선이 되고 있다.</p>

<p>러시아 입장에서는 나토와 전면전을 벌이지 않으면서도 동맹의 의사결정 구조와 대응 속도, 회원국 사이의 견해 차이를 관찰할 수 있다. 반대로 나토는 사소해 보이는 도발에 지나치게 강경하게 대응할 경우 확전을 초래할 수 있고, 계속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억지력이 약화됐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딜레마에 직면한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60 float-center" data-idxno="5146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나토군 비행 편대의 출몰이 잦아지고 있다." height="38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4_51460_3557.png" width="600" />
<figcaption>나토군 비행 편대의 출몰이 잦아지고 있다.</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발트해에서 흑해까지 길어진 ‘접촉면’</strong></p>

<p>더 큰 문제는 러시아와 나토의 직접적인 군사적 접촉면이 과거보다 훨씬 길어졌다는 것이다.</p>

<p>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이후 북유럽 안보지형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북극권에서 핀란드, 발트 3국, 폴란드를 지나 루마니아와 흑해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와 나토가 사실상 하나의 긴 군사적 대치선을 형성하게 됐다.</p>

<p>특히 발트해는 러시아 입장에서 전략적으로 민감하다. 러시아 본토와 떨어진 칼리닌그라드가 위치하고 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연결되는 해상통로이기도 하다. 반대로 나토 입장에서는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를 방어해야 하는 핵심 공간이다.</p>

<p>루마니아에서도 긴장은 높아지고 있다. AP에 따르면 2026년 러시아 드론의 루마니아 영공 침범은 지난해보다 크게 증가했으며, 국경지역 주민들에게 드론 경보가 반복적으로 발령되고 있다. 루마니아는 이에 대응해 대드론 방어체계를 강화하고 있다.</p>

<p>이렇게 되면 문제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확률의 누적이다.</p>

<p>전투기와 드론, 군함과 헬리콥터가 서로 자주 마주칠수록 오판이나 기계적 오류, 현장 지휘관의 판단 착오가 실제 교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의도적으로 전쟁을 시작하지 않더라도 전쟁이 시작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p>

<p> </p>

<p><strong>나토의 고민, ‘제5조 이전’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strong></p>

<p>그래서 최근 나토와 유럽이 고민하는 핵심은 제5조 자체보다 오히려 제5조 발동 기준에 미치지 않는 공격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에 있다.</p>

<p>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이 16일 ‘Counter-Hybrid Playbook’, 즉 하이브리드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체계 구축을 제안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드론 침입이나 사보타주, 사이버 공격처럼 전통적인 군사공격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위협에 대해 유럽 차원의 대응 절차를 만들자는 것이다.</p>

<p>이는 유럽의 안보개념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p>

<p>과거 나토의 억지력은 러시아 전차부대가 국경을 넘어오는 상황을 상정했다. 지금은 전차가 오기 전에 드론과 사이버 공격, 해저케이블 파괴, GPS 교란, 철도·항만 사보타주가 먼저 발생할 수 있다. 전쟁의 시작점을 특정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p>

<p>따라서 나토 역시 동부전선의 방공·미사일 방어체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대드론 체계와 정보감시정찰(ISR), 해저 인프라 보호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p>

<p> </p>

<p><strong>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해진 우크라이나</strong></p>

<p>이러한 변화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략적 의미도 바꾸고 있다.</p>

<p>나토 입장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은 더 이상 우크라이나 한 국가의 영토 방어 문제만으로 보기 어려워졌다. 폴란드와 발트 3국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을 동쪽에서 붙잡아두는 것이 자국 안보와 직결된다고 보고 있다. 나토 역시 우크라이나의 안보가 동맹국 안보에 기여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p>

<p>반대로 러시아의 시각은 정반대다. 러시아는 나토의 무기와 정보, 재정 지원이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능력을 유지시키고 있으며 서방이 사실상 러시아와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해왔다.</p>

<p>결국 양측의 전략적 인식이 정면으로 충돌한다.</p>

<p>나토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러시아의 추가적인 군사행동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보는 반면, 러시아는 그 지원 자체를 나토의 대러시아 군사적 압박으로 받아들인다. 한쪽이 방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다른 쪽은 공격 준비로 해석하는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p>

<p> </p>

<p><strong>가장 위험한 것은 ‘계획된 전쟁’보다 ‘통제되지 않는 확전’</strong></p>

<p>그렇다고 현재 상황을 곧바로 ‘나토와 러시아의 전쟁이 임박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 나토 모두 직접적인 대규모 군사충돌이 가져올 위험을 알고 있다. 특히 양측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직접 충돌의 비용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p>

<p>오히려 현재 가장 현실적인 위험은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았던 사건이 연쇄적인 대응을 촉발하는 경우다.</p>

<p>러시아 드론이 나토 영토에 추락해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러시아 군용기와 나토 전투기가 충돌하거나, 발트해에서 군함 사이에 실제 무력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국가는 나토에 공동 대응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나토는 동맹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대응을 해야 하는 압력을 받게 된다.</p>

<p>그리고 러시아가 다시 대응하면 다음 단계의 확전이 시작된다.</p>

<p>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도 바로 이런 ‘확전의 사슬(escalation ladder)’이었다. 상대방이 물러날 것이라는 판단 아래 한 단계씩 압박 수위를 높이다 어느 순간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는 것이다.</p>

<p>지금 발트해와 동유럽에서 나타나는 군사적 긴장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p>

<p> </p>

<p><strong>유럽 안보질서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strong></p>

<p>1949년 창설된 나토와 소련의 대립은 냉전 종식으로 일단 막을 내렸다. 1990년대에는 러시아가 나토의 ‘평화를 위한 동반자관계(PfP)’에 참여했고, 2002년에는 나토-러시아 이사회까지 만들어졌다. 한때 러시아와 서방이 공동의 유럽 안보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도 존재했다.</p>

<p>그러나 나토의 동유럽 확대와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전은 이러한 질서를 사실상 해체했다.</p>

<p>2026년의 상황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p>

<p>지금 유럽에서 나타나는 것은 과거 냉전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당시에는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라는 명확한 군사적 경계가 존재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대규모 재래식 전쟁과 함께 드론전, 사이버전, 정보전, 사보타주, 해저 인프라 공격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p>

<p>전쟁과 평화의 경계가 오히려 냉전시대보다 모호해진 것이다.</p>

<p>따라서 최근 덴마크 헬리콥터 사건이나 리투아니아 드론 격추를 각각의 우발적인 사건으로만 보는 것은 유럽 안보의 구조적 변화를 놓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별 사건보다 이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흐름이다.</p>

<p>러시아와 나토가 서로 전쟁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군사적으로 더욱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는 역설이다.</p>

<p>앞으로 유럽 안보를 결정할 핵심 변수도 여기에 있다. 러시아가 어느 수준까지 ‘제5조 아래의 회색지대’를 시험할 것인지, 나토가 어디에서 명확한 레드라인을 설정할 것인지,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동안 양측이 우발적인 충돌을 통제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p>

<p>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반드시 어느 한쪽이 전쟁을 결심하는 순간만은 아니다. 서로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상대방은 결국 물러날 것이라고 믿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p>

<p>최근 발트해와 동유럽에서 이어지는 사건들은 유럽이 바로 그 위험한 경계선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미중간선거] 트럼프의 사람들, 2년 만에 어떻게 달라졌나…벌써 시작된 ‘포스트 트럼프’ 권력재편]]></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3</link>
	  <dc:creator><![CDATA[신성은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3</guid>
	  <pubDate>Thu, 17 Sep 2026 18:29:43 +0900</pubDate>
	  <description><![CDATA[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2025년 1월, 워싱턴의 관심은 한 가지 질문에 집중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의 시행착오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에게 훨씬 충성도가 높은 사람들로 백악관과 행정부를 장악할 것인가였다.1년 8개월이 지난 2026년 9월, 답은 어느 정도 드러났다. 트럼프 2기는 1기보다 훨씬 ‘트럼프화된 정부’가 됐다. 그러나 그것이 곧 안정적인 정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브루킹스연구소가 추적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8월 20일 현재 트럼프 2기 백악관 핵심 참모진, 이른바 ‘A-Team’의 누적]]></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height="39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3_51461_1129.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61 float-center" data-idxno="51461"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39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3_51461_1129.pn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2025년 1월, 워싱턴의 관심은 한 가지 질문에 집중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의 시행착오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에게 훨씬 충성도가 높은 사람들로 백악관과 행정부를 장악할 것인가였다.</p>

<p>1년 8개월이 지난 2026년 9월, 답은 어느 정도 드러났다. 트럼프 2기는 1기보다 훨씬 ‘트럼프화된 정부’가 됐다. 그러나 그것이 곧 안정적인 정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p>

<p>브루킹스연구소가 추적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8월 20일 현재 트럼프 2기 백악관 핵심 참모진, 이른바 ‘A-Team’의 누적 교체율은 54%에 달한다. 내각 15개 부처 가운데서도 3개 자리가 교체돼 내각 교체율이 20%에 이른다. 브루킹스는 트럼프 2기 인선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1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전 준비 강화와 함께 ‘충성도’를 중시한 인사 원칙을 지적한다.</p>

<p>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단순한 인사 교체가 아니다. 트럼프를 둘러싼 핵심 인물들의 역할과 정치적 무게가 달라지고 있다. JD 밴스 부통령은 행정부의 2인자를 넘어 트럼프 이후 공화당을 둘러싼 논의의 중심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됐고, 2016년 트럼프와 격렬하게 충돌했던 마코 루비오는 국무장관으로 외교정책의 핵심에 들어왔다. 스티븐 밀러는 이민정책을 넘어 트럼프주의를 실제 행정으로 옮기는 역할을 맡았으며, 수지 와일스는 백악관 운영을 관리하는 핵심 참모로 자리했다.</p>

<p>그리고 이제 이들의 경쟁과 협력 뒤편에서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p>

<p>트럼프가 떠난 뒤에도 ‘트럼피즘’은 살아남을 것인가. 살아남는다면 누가 그것을 계승하고, 어떤 형태로 변화시킬 것인가.</p>

<p> </p>

<p><strong>JD 밴스, ‘부통령’에서 트럼프 이후를 둘러싼 논의의 중심으로</strong></p>

<p>가장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JD 밴스의 위상이다.</p>

<p>2025년 1월 취임 당시만 해도 밴스의 정치적 의미는 상징적인 측면이 컸다. 1984년생인 그는 트럼프보다 거의 40년 젊었고, 러스트벨트의 노동계층을 강조한 정치적 배경은 트럼프가 재편한 공화당 지지연합을 다음 세대로 연결할 가능성을 보여줬다.</p>

<p>2026년에는 이런 가능성이 좀 더 공개적인 정치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p>

<p>지난 9월 10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중간선거 행사에서 밴스가 연설하자 청중 가운데서는 미국의 48대 대통령을 의미하는 “48, 48”이라는 구호가 나왔다. 밴스는 당장은 11월 중간선거가 우선이라는 취지로 대응했고, 트럼프 역시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를 곧바로 차기 후보 확정으로 해석할 근거는 없다. 다만 로이터가 이 장면을 2028년을 둘러싼 공화당 내부 논의가 가시화되는 사례로 다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p>

<p>밴스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젊은 트럼프’라는 데 있지 않다.</p>

<p>그가 보여주는 정치노선에는 강경한 이민정책과 경제적 민족주의, 미국 제조업 부활, 노동계층 중심의 경제 메시지, 전통적인 공화당보다 해외 군사개입에 신중한 경향 등이 함께 존재한다.</p>

<p>이는 과거 레이건 시대의 공화당과 상당히 다르다. 감세와 자유무역, 작은 정부, 강력한 국제주의를 중심으로 했던 전통적인 공화당의 정치적 문법에서 벗어나 보호무역과 산업정책, 이민통제, ‘America First’를 결합한 새로운 보수정치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p>

<p>밴스의 향후 정치적 의미를 볼 때 중요한 것은 개인의 지지율뿐 아니라 이러한 정치노선이 트럼프 개인을 넘어 공화당 내부에 얼마나 정착하느냐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62 float-center" data-idxno="5146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40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3_51462_1154.pn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마코 루비오, ‘리틀 마코’에서 트럼프 외교의 중심으로</strong></p>

<p>밴스와 함께 주목할 사람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다.</p>

<p>루비오의 변신은 트럼프 시대 공화당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p>

<p>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두 사람은 격렬하게 충돌했다. 트럼프는 그를 ‘Little Marco’라고 조롱했고, 루비오 역시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루비오는 전통적인 공화당 외교안보 노선과 차세대 보수 정치인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p>

<p>그런 루비오가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무장관이 됐다. 2026년 9월 현재도 백악관 공식 내각 명단에서 국무장관을 맡고 있다. 루비오의 정치적 위치가 흥미로운 것은 밴스와 결이 완전히 같지 않기 때문이다. 밴스가 트럼프 시대에 성장한 새로운 MAGA 정치세대에 가깝다면, 루비오는 기존 공화당 외교안보 엘리트와 트럼프의 ‘America First’를 연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p>

<p>특히 중국과 러시아, 이란, 중남미 문제를 바라보는 루비오의 오랜 외교안보 경력은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도 독특한 자산이다. 최근 이란전쟁을 둘러싼 백악관 논의에서도 밴스와 루비오 모두 대통령에게 장기전 가능성을 경고한 핵심 참모로 보도됐다.</p>

<p>따라서 향후 공화당 내부의 외교정책 논쟁은 ‘트럼프주의냐 전통 공화당이냐’라는 단순한 이분법보다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다.</p>

<p>트럼프식 경제민족주의와 대외정책을 어디까지 유지할 것인지, 중국과 러시아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지, 미국의 해외 군사개입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가 공화당 내부의 주요 쟁점으로 남게 된다.</p>

<p> </p>

<p><strong>스티븐 밀러, 트럼피즘의 ‘제도화’</strong></p>

<p>정치적 대중성만 보면 밴스나 루비오보다 덜 주목받지만 트럼프 2기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빼놓기 어려운 사람이 스티븐 밀러다.</p>

<p>트럼프 1기에서 밀러는 강경 이민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알려졌다. 그러나 2기에서 그의 의미는 더 넓어졌다. 트럼프가 선거를 통해 제시한 정치적 메시지를 실제 행정정책과 대통령 권한으로 구현하는 역할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p>

<p>여기에서 트럼프 1기와 2기의 중요한 차이가 나타난다.</p>

<p>2017년 출범한 1기 행정부에는 렉스 틸러슨, 제임스 매티스, H.R. 맥매스터, 존 켈리 등 전통적인 정부·군·기업 엘리트들이 상당수 포진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트럼프와 정책이나 국정운영 방식을 놓고 충돌했고 결국 행정부를 떠났다. 2기에서는 출범 이전부터 이런 문제를 상당 부분 의식했다. 브루킹스의 인사 분석 역시 2024년 대선 이전부터 훨씬 적극적인 정권 인수 준비가 이뤄졌으며, 인사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충성도가 매우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분석한다.</p>

<p>따라서 밀러의 중요성은 단순한 참모 한 사람의 권력에서 찾기보다 트럼프주의가 선거운동의 구호에서 실제 행정체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p>

<p> </p>

<p><strong>수지 와일스, 트럼프 백악관을 관리하는 사람</strong></p>

<p>또 하나의 축은 수지 와일스다.</p>

<p>트럼프 1기의 백악관은 끊임없는 내부 갈등과 인사교체로 유명했다. 라인스 프리버스, 존 켈리, 믹 멀베이니, 마크 메도스 등 비서실장이 계속 바뀌었고 백악관 내부의 파벌 경쟁도 심했다.</p>

<p>2기에서는 이런 문제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2024년 대선 승리를 이끈 와일스가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이동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트럼프의 정치적 본능을 통제한다기보다 대통령의 의제와 백악관 조직을 연결하고 행정부를 운영하는 관리자의 역할이다. </p>

<p>하지만 트럼프 2기 전체를 ‘안정적인 인사 시스템’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 브루킹스가 집계한 최고위 백악관 참모의 누적 교체율은 이미 54%다.</p>

<p>즉 트럼프 2기는 1기보다 대통령의 노선에 동의하는 사람들로 출범했지만 인사 유동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p>

<p> </p>

<p><strong>피트 헤그세스, ‘파격 인사’에서 국방정책의 시험대로</strong></p>

<p>피트 헤그세스도 흥미로운 사례다.</p>

<p>2025년 국방장관 지명 당시부터 그의 경력과 국방부 운영 능력을 둘러싸고 논쟁이 컸다. 그러나 그는 상원 인준을 통과했고 현재까지 국방부를 이끌고 있다. 백악관은 현재 공식 명단에서 그를 국방 분야 수장으로 두고 있다.</p>

<p>동시에 국방부 내부에서는 상당한 인사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육군장관 댄 드리스콜이 사임했고 트럼프는 9월 3일 애덤 텔을 육군장관 대행으로 임명했다. AP는 드리스콜의 퇴임을 전하면서 헤그세스와의 갈등 보도가 있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로이터는 백악관이 스티브 파인버그 국방부 부장관의 후임 후보를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국방부와 헤그세스 측은 교체설을 부인했다. 해군장관 존 펠런과 육군장관 드리스콜의 사임 등 국방부 고위층의 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온 보도다.</p>

<p>따라서 헤그세스를 둘러싼 문제는 개인의 정치적 위상과 함께 거대한 국방조직을 어떻게 관리하고 군수산업 생산능력을 확대할 것인가라는 행정적 문제를 동시에 봐야 한다.</p>

<p> </p>

<p><strong>베선트·러트닉·그리어,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이 달라졌다</strong></p>

<p>트럼프 2기 권력지도를 이해할 때 정치·외교안보 인사만 봐서는 부족하다.</p>

<p>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연결해 보면 트럼프 2기 경제정책의 성격이 드러난다. 세 사람 모두 현재 행정부의 핵심 경제·통상 인사다. 트럼프 1기 초반의 경제정책에는 전통적인 공화당의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이후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거치며 관세가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등장했다.</p>

<p>2기에서는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관세와 무역정책, 리쇼어링, 제조업, 공급망, 경제안보가 처음부터 핵심적인 정책수단으로 자리했다. 자유무역을 강조하던 과거 공화당 경제정책과의 차이가 더욱 뚜렷해진 것이다. </p>

<p>이는 한국에도 중요한 변화다.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철강, 조선, 방산 등 한국의 핵심 산업 대부분이 미국의 산업·통상·안보정책이 만나는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p>

<p>따라서 베선트와 러트닉, 그리어를 단순한 경제관료로 보기보다 트럼프식 경제안보 전략을 실행하는 정책라인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p>

<p> </p>

<p><strong>2025년의 ‘충성파 내각’에서 2026년의 ‘권력 분화’로</strong></p>

<p>결국 지난 1년 8개월 동안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트럼프의 권력이 약해졌다는 것이 아니다.</p>

<p>오히려 2026년 9월에도 공화당의 선거전략은 여전히 트럼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난주 댈러스에서 열린 중간선거 행사에서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투표용지에 있다고 생각하고 투표하라고 말한 것도 이런 정치구조를 보여준다.</p>

<p>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역할의 분화가 진행되고 있다.</p>

<p>JD 밴스는 트럼프 이후 공화당을 둘러싼 정치적 계승 논의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고, 마코 루비오는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을 담당한다. 스티븐 밀러는 트럼프주의를 행정정책으로 구체화하는 역할을 하고, 수지 와일스는 백악관 운영을 관리한다. 피트 헤그세스는 국방정책과 군 조직을 맡고 있으며, 베선트·러트닉·그리어는 관세와 산업정책, 경제안보를 담당하는 축을 구성한다.</p>

<p>이렇게 보면 2025년 1월의 질문과 2026년 9월의 질문은 다르다. 당시에는 ‘누가 트럼프의 사람인가’가 중요했다. 지금은 ‘트럼프의 사람들이 각각 어떤 트럼피즘을 만들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p>

<p> </p>

<p><strong>벌써 시작된 2028년의 그림자</strong></p>

<p>그리고 이 모든 변화 뒤에는 2028년이 있다.</p>

<p>트럼프는 현재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밴스를 비롯해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있지만 아직 공화당의 차기 후보가 결정됐다고 말할 단계도 아니다. 그러나 지난주 공화당 행사에서 밴스를 향해 “48”이라는 구호가 나온 것은 적어도 공화당 내부에서 트럼프 이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p>

<p>향후 쟁점은 단순히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되느냐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바꾸면서 만들어놓은 경제적 민족주의와 강경 이민정책, 관세 중심의 통상정책, ‘America First’ 외교, 전통적인 공화당 엘리트에 대한 불신이 트럼프 퇴임 이후에도 유지될 것인지가 더 본질적인 문제다.</p>

<p>여기에 밴스와 루비오가 보여주는 차이가 중요해진다. 밴스가 트럼프 시대에 성장한 새로운 보수정치의 흐름을 보여준다면, 루비오는 과거 공화당의 외교안보 전통과 트럼프 시대의 정치적 현실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두 사람의 역할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p>

<p>2026년 11월 중간선거 결과 역시 이 논쟁에 영향을 줄 것이다. 공화당이 의회 권력을 어떻게 유지하거나 잃느냐에 따라 트럼프 2기 후반부의 국정운영뿐 아니라 2028년을 둘러싼 공화당 내부 논의도 달라질 수 있다.</p>

<p>트럼프 2기의 전반부를 지나면서 미국 정치에서는 이미 다음 시대를 둘러싼 질문이 시작되고 있다.</p>

<p>트럼프 이후에도 트럼피즘은 지속될 것인가. 그리고 지속된다면 그것은 밴스가 보여주는 새로운 세대의 MAGA인가, 루비오가 상징하는 기존 공화당과의 결합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형태의 공화당으로 재편될 것인가.</p>

<p>트럼프의 사람들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현재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트럼프 이후 공화당이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실험의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호포항의 추방자들: <호프>가 쏘아 올린 낯섦에 대하여]]></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2</link>
	  <dc:creator><![CDATA[성일권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2</guid>
	  <pubDate>Thu, 17 Sep 2026 12:08:09 +0900</pubDate>
	  <description><![CDATA[[김혜준=영화연구자] *강사 및 통번역가로, 한국영화를 연구하고 세계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호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알맹이가 거세된 듯 공허한 껍데기의 부상에 수많은 언어가 따라붙었다. 영화의 이질적인 리듬, 형식, 공간, 운동성이 단상에 올랐다. <호프>의 ‘한국성’을 논하는 글 역시 범람했다. 그러나 한국의 맥락에 천착해 아직 짚어봐야 할 문제 하나가 남아 있다. 환대받지 못한 타자로 일단락된 <호프>의 외계인에 관한 문제다. 그간 <호프>의 외계인을 둘러싼 독법은 비교적 명료했다. 영화는 불가해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height="857"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2_51457_58.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p><strong>[김혜준=영화연구자]  *강사 및 통번역가로, 한국영화를 연구하고 세계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strong></p>

<p><strong> </strong>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호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알맹이가 거세된 듯 공허한 껍데기의 부상에 수많은 언어가 따라붙었다. 영화의 이질적인 리듬, 형식, 공간, 운동성이 단상에 올랐다. <호프>의 ‘한국성’을 논하는 글 역시 범람했다. 그러나 한국의 맥락에 천착해 아직 짚어봐야 할 문제 하나가 남아 있다. 환대받지 못한 타자로 일단락된 <호프>의 외계인에 관한 문제다. 그간 <호프>의 외계인을 둘러싼 독법은 비교적 명료했다. 영화는 불가해한 ‘괴물’들이 외계에서 온 지적 생명체임을 밝히며 인간의 폭력을 단죄한다. 요컨대 <호프>는 타자를 괴물로 규정해 온 인간을 향한 거울이며, 관객에게 타자를 향한 폭력을 반성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납득할 만하다.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다. 한국이라는 위치에서 이 영화와 조우한 관객에게는 더욱 그렇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57 float-center" data-idxno="5145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857"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2_51457_58.pn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가령 마베이요의 디지털 신체에 역력한 마이클 패스벤더의 얼굴이 불러일으키는 아연한 황당함을 어찌해야 할까. 푸른 눈을 뜬 이 할리우드 백인 스타의 얼굴이 한국 SF 영화 속에서, 또 한국이라는 곳에서 추동하는 정동을 포착해야만 하겠다. 호포항에 도착한 외계인들을 우리의 연대를 촉구하는 피해자로서의 ‘타자’로 봉합하는 일은 생각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홍진이 각종 괴물영화의 도상 위에 쌓아 올린 패스티시의 첨탑은 그리 명료하지 않다. <호프>가 네온과 무비를 통해 전 세계로 쏘아 올려지기 전에 우리는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먼저 이 얼굴이 내미는 낯섦에 대답해야 한다. 그래야만 <호프>가 견지하는 주체와 타자 사이 경계의 불균질함을, 그리고 이 영화가 문화적 헤게모니의 보편성에 내는 균열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p>

<p> </p>

<p><strong>공포와 연민 사이, 타자의 타성</strong></p>

<p><호프> 초반의 기나긴 추적이 끝난 뒤 마침내 바미기르가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가 내달리는 바미기르의 몸을 빌려 화면에 가속도를 붙이는 동안 관객 또한 숱한 괴물영화를 통해 익힌 두 가지 습관적 반응에 박차를 가한다. 첫 번째는 불가해한 존재를 괴물의 범주 안에 밀어 넣고 두려워하는 태도다. 기괴한 신체, 가공할 힘, 인간의 익숙한 거주지에 침입한 낯선 생명체라는 도상은 유구한 괴물영화의 기억을 환기한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부터 <에이리언>의 제노모프와 <프레데터>의 사냥꾼에 이르기까지 이질적인 신체의 과도함은 곧잘 위협의 가시적 증거로 기능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작금의 관객은 괴물을 두려워하는 법만큼이나 괴물에게 공감하는 법 역시 충분히 훈련받았다. 현대의 괴물영화와 SF는 반복해서 비인간 존재를 인간의 폭력에 희생된 타자의 자리에 놓고 연대를 촉구해 오지 않았나. <E.T.>의 외계인, <셰이프 오브 워터>의 반양서 인간, <디스트릭트 9>의 외계 난민, <아바타>의 나비족이 이 공감의 계보를 방증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존재에게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결코 새로운 영화적 경험이 아니다.</p>

<p>도망치는 바미기르의 눈물과 그를 쫓던 범석(황정민)의 연민 어린 얼굴이 쇼트-리버스 쇼트로 맞물릴 때 관객은 두 번째 공감의 훈련을 즉각 가동한다. 괴물의 얼굴에서 돌연 위협 대신 고통이 출현할 때, 이어지는 범석의 얼굴은 측은지심의 반응을 수행한다. 추격자와 도망자를 가르던 선이 두 얼굴 사이를 왕복하는 편집 안에서 잠시 와해된다. 우리가 괴물이라 불렀던 존재는 사실 인간의 폭력에 희생된 피해자였으며, 인간이야말로 자신의 공포를 빌미로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라는 익숙한 질타가 다시 스스로를 향한다. 비닐에 꽁꽁 싸여 얼어 있는 칼리의 무해한 얼굴과 양배(음문석)를 향한 비난은 이 논리를 더욱 공고히 한다.</p>

<p>칼리와 양배를 통과하며 <호프>의 괴물은 피해자이자 연대해야 할 타자로 재분류된다. 그러나 이 또한 석연치 않다. 판단의 내용이 전복되어도 판단의 구조는 여전하다. ‘저것은 우리를 위협한다’와 ‘저것 역시 우리처럼 고통받는다’라는 명제는 윤리적 대척점에 있을지 몰라도 여전히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를 전제로 한다. 관객은 인간의 자리에 정박한 채 비인간의 의미를 판정한다. ‘괴물도 사실 피해자였다’라는 발견은 또 다른 환원이다. 괴물을 공포의 대상으로 규정하던 자리에 이번에는 ‘연대해야 할 타자’라는 보다 윤리적인 정의를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마베이요의 얼굴이 벗겨지면서 이 깔끔한 교정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틀어진다.</p>

<p> </p>

<p><strong>패스벤더의 얼굴이 낯설게 하는 것들</strong></p>

<p>균열은 얼굴에서 발생한다. <프레데터>를 연상시키는 사족보행 마베이요의 외피가 벗겨진 자리에 나타나는 것은 조악하리만치 역력한 마이클 패스벤더의 얼굴이다. CG 처리를 일부러 덜 한 것인가 싶을 만큼 그것은 분명한 패스벤더다. 이 불쾌할 정도로 선명한 잔상 앞에서 관객은 황당과 당황 사이를 종횡할 수밖에. 바미기르의 눈물을 마주한 범석의 얼굴이 연민을 내비쳤다면 패스벤더의 얼굴을 마주한 성기의 얼굴은 여전히 공포에 질려 있다. 인간과 닮은 얼굴을 확인했으니 서사에 전환이 일어야 할 것 같지만 성기는 총구를 내리지 않는다. 쓰러진 성기 앞에 우뚝 선 마베이요의 과잉 남성화된 신체는 외려 이전보다 위압적으로 화면을 차지한다.</p>

<p>왜 하필 패스벤더의 얼굴인가. 마베이요-패스벤더의 얼굴은 분명 디제시스 안에서는 인간에게 괴물로 오인되고 공격받은 얼굴이나 디제시스 밖에서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역사를 호출한다. 패스벤더는 <엑스맨>의 매그니토가 보여주듯 할리우드의 중심부에서 오랫동안 서사의 주체를 맡으며 권위와 통제된 육체라는 남성성의 기호를 축적해온 스타다. 따라서 마베이요 위를 부유하는 그의 얼굴은 단순한 낯선 백인의 얼굴이 아니라, 할리우드가 반복해서 ‘인간’으로 호명한 규범적 스타의 도상이다. 마베이요-패스벤더의 얼굴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안정적으로 나누던 화면에서 ‘저쪽’에 놓인 괴물의 몸 안으로 영화사의 다른 층위에서 줄곧 ‘이쪽’에 놓여 있던 얼굴이 난입한다. 피해자로서의 비인간과 규범적 인간의 이미지가 한 신체 안에서 충돌하며 피해자·비인간·타자 사이의 결속이 흔들리기 시작한다.</p>

<p>따라서 마베이요의 변신은 서로 다른 시각의 역사를 포개는 현상이다. 괴물의 몸은 패스벤더를 온전한 인간으로 돌려놓지 못하고, 패스벤더의 얼굴 역시 그 몸을 완전히 타자화하지 못한다. 프란츠 파농이 말했듯 신체의 의미가 몸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역사적 시선 속에서 생산된다면, 이 합성된 신체는 상이한 역사의 불화에서 발생한 시선의 충돌을 선연히 드러낸다. 패스벤더의 얼굴이 낯설게 하는 것은 결국 마베이요가 아니라 특정한 외양을 타자에 귀속시키려는 관객의 판별 습관일 것이다.</p>

<p> </p>

<p><strong>(불)가능한 초국가적 ‘우리’의 자리</strong></p>

<p>한국 관객은 서구의 바깥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소비했지만, 그 바깥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서구가 상정한 중심의 시선을 충실히 내재화했다. 괴물은 특정되고 인간은 특정되지 않는다. 할리우드 장르영화는 서구의 위치에 상정한 인간의 관점을 보편적인 ‘우리’의 자리에 두고 괴물과 외계인, 이질적인 신체를 바깥에 배치했다. 타자가 자세히 특정될수록 그를 바라보는 주체는 더욱 투명해진다. 중심의 힘은 여기서 생긴다. 자신이 중심이라고 부연해야 하는 노동이 사면되는 힘. 문화적 헤게모니는 이런 비가시성 속에서 작동한다.</p>

<p>그간 한국영화가 괴수물을 번안할 때에는 시선의 이동이 필요치 않았다. 인간의 자리에 한국 배우를 세우면 됐다. <괴물>처럼 할리우드 괴수영화의 문법을 한국적 정치와 공간 속으로 변주한 경우에도 괴생명체는 끝까지 분명한 비인간이었다. 할리우드가 구축한 ‘인간’과 한국영화가 마련한 로컬한 ‘우리’의 자리는 별다른 마찰 없이 포개질 수 있었다. 문제는 작금의 한국이 더 이상 그 구도의 단순한 주변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음악은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할리우드에 필적할 보편성을 점차 담지하고 있다. <호프> 역시 그 거대한 흐름 속에 태동한 산물이다.</p>

<p><호프>는 1980년대 초의 고립된 한국 어촌과 황정민, 조인성을 내세워 표면적이나마 로컬리티를 구축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괴물의 얼굴에서 마이클 패스벤더를 알아보는 순간, 성기가 내달리는 초원이 더 이상 온전히 한국의 풍경으로 보이지 않는 순간, 한국 관객이 오래 겹쳐 사용한 두 자리의 ‘우리’가 어긋난다. 할리우드가 마련한 보편적 인간의 자리와 한국영화가 내어놓은 로컬한 인간의 자리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한다. <호프>의 낯섦은 바로 이 불일치에서 발생한다. 중심과 주변이 뒤집히는 대신 서로 다른 두 중심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다. 패스벤더의 얼굴은 과거 할리우드가 점유했던 영화적 중심의 기억을 환기한다. 이에 맞물린 얼굴은 공포에 질린 1980년대 호포항의 한국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얼굴을 다시 세계로 내보내는 것은 더 이상 세계영화의 주변부라고만 부를 수 없는 현재의 한국영화다.</p>

<p>한국 관객에게는 이 두 층위가 동시에 작동한다. 호포항의 인간들은 로컬한 ‘우리’를 이루지만, 패스벤더 역시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오래도록 인간 일반의 자리를 점유해온 익숙한 얼굴이다. 두 개의 ‘우리’가 동시에 호출되면서도 하나의 자리로 결합할 수 없는 것이다. 호포항의 시선에 자신을 겹치면 패스벤더를 ‘저쪽’의 외계인으로 밀어내야 하지만, 영화 밖에서 그의 얼굴은 너무 오랫동안 규범적 인간의 자리에 놓여 있었다. 서로를 방해하는 두 시선의 각축 속에서 이전까지 투명했던 각각의 위치도 함께 드러난다. ‘무표지’의 장막이 걷히는 순간이다. 우리가 인간 일반이라고 믿어온 영화적 위치 역시 특정한 역사와 산업이 구축한 것이며, 변화한 문화적 지형 속에서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선연히 드러난다.</p>

<p>마베이요와 조르가 ‘운명’을 논하는 스페이스 오페라적 장면이 묘하게 붕 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할리우드 스타의 얼굴, 장엄한 우주 서사의 문법, 1980년대 한국의 작은 어촌이 한 화면에 모이지만 어느 것도 다른 하나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는다. 글로벌과 로컬의 결합이 아니라 그 사이의 어긋남이 전면화된다. <호프>의 초국가성은 글로벌과 로컬의 매끈한 합일보다 봉합의 실패에서 더 선명해진다. 타자를 명명할 보편적 주체의 자리에서 우리는 그렇게 추방된다.</p>

<p> </p>

<p><strong>추방자</strong></p>

<p>그렇다면 <호프>가 드러내는 것은 타자의 위협도, 타자의 무구함도 아닌, “우리가 아닌 그들”을 손쉽게 식별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과 그 좌절이다. <호프>의 균열은 우리가 누군가를 타자인 괴물로 명명하는 방식이 영화의 역사 속에서 훈련됐다는 사실을 가시화하는 데서 일어난다. 바미기르의 괴기스러운 외양과 눈물, 범석의 연민 어린 얼굴, 인간과 흡사한 모습을 드러낸 마베이요와 그 신체 위에서 나타나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푸른 눈은 서로 다른 판별 체계를 차례로 작동시키고 그 모두를 위배한다.</p>

<p>이 혼란 속에 ‘타자’는 어느 한 기호에도 정박할 수 없다. ‘그들’을 바라보고 이름 붙이던 주체로서의 관객 역시 항로를 잃는다. <호프>는 타자의 정체를 불확정적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타자를 타자로 식별해 온 ‘우리’의 위치마저 위태롭게 만든다. 이 불편한 위치 상실은 오늘날 한국이라는 문화적 좌표를 반추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일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을 오직 주변부로 상상할 수 없는 한국은 새롭게 획득한 중심성을 보편의 자리로 자연스럽게 전유해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글로벌 문화의 위계 좌표가 이동하는 순간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중심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중심이 스스로를 무표지로 만드는 방식을 감지하고 경계하는 일일 터다. 문화적 제국주의는 재생산이 아닌 비평의 대상이다.</p>

<p>그렇다면 호포항의 추방자는 과연 누구인가. 인간에게 괴물로 몰린 외계인인가. 이 땅에 기지를 펼친 불가해한 존재 앞에서 사투를 벌이는 인간인가. 혹은 어느 쪽에도 완전히 자신을 의탁할 수 없게 된 관객 자신인가. 어쩌면 스크린에서 추방된 것은 관객이 너무도 오래 당연하게 점유해 온 확정성의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타자를 손쉽게 규정하던 인식의 틀을 무용하게 만들고,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자리까지 낯설게 만드는 것. 그것이 <호프>가 호포항이라는 변방에서 세계를 향해 쏘아 올리는 생경한 희망일 것이다.</p>

<p> </p>

<p><strong>[강사의 평]</strong></p>

<p>비평의 목적은 영화의 구멍을 채우는 것일까. 혹은 어떠한 구멍을 애써 찾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그 목적의 방향성을 흩트리는 작품이다. 텅 비어 있는 듯하지만, 무수한 말들을 쏟아낸 이 영화에서 어떠한 구멍을 찾고, 드러내고, 메꿀 것인지는 꽤 어려운 문제인 셈이다. 이 수강생의 비평은 그 혼돈의 와중에서도 마베이요(마이클 패스밴더)의 얼굴이라는 이미지로부터 뚜렷한 사변을 펼친다. 이 유의미한 시도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코리아』의 독자들과 나눌 수 있어 기쁜 마음이다. 모쪼록 흥미롭게 읽어 주시기를 바란다.</p>

<p><strong> </strong></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DL그룹, 기후위험 경영전략에 반영…ESG 대응체계 고도화]]></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1</link>
	  <dc:creator><![CDATA[성일권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1</guid>
	  <pubDate>Thu, 17 Sep 2026 11:30:07 +0900</pubDate>
	  <description><![CDATA[DL그룹이 주요 계열사의 기후변화 위험과 기회 요인을 경영전략에 반영하고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강화한다.DL은 그룹의 ESG 경영전략과 주요 성과를 담은 ‘2026년 그룹 통합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고 15일 밝혔다.DL은 2023년부터 통합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매년 발간해왔으며, 이번 보고서는 네 번째다. 지주사 DL을 비롯해 DL케미칼, DL이앤씨, DL에너지, 글래드 호텔앤리조트, DL건설, 포천파워 등 주요 계열사의 국내 사업장을 보고 대상에 포함했다.이번 보고서에는 그룹 차원의 통합 기후 시나리오 분석과 기후변화 대응]]></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DL그룹 지속가능경영보고서. (DL 제공) " height="42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1_51456_2859.jp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DL그룹 지속가능경영보고서. (DL 제공) </div><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56 float-center" data-idxno="5145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DL그룹 지속가능경영보고서. (DL 제공) " height="42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1_51456_2859.jpg" width="600" />
<figcaption>DL그룹 지속가능경영보고서. (DL 제공) </figcaption>
</figure>
</div>

<p>DL그룹이 주요 계열사의 기후변화 위험과 기회 요인을 경영전략에 반영하고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강화한다.</p>

<p>DL은 그룹의 ESG 경영전략과 주요 성과를 담은 ‘2026년 그룹 통합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고 15일 밝혔다.</p>

<p>DL은 2023년부터 통합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매년 발간해왔으며, 이번 보고서는 네 번째다. 지주사 DL을 비롯해 DL케미칼, DL이앤씨, DL에너지, 글래드 호텔앤리조트, DL건설, 포천파워 등 주요 계열사의 국내 사업장을 보고 대상에 포함했다.</p>

<p>이번 보고서에는 그룹 차원의 통합 기후 시나리오 분석과 기후변화 대응체계가 담겼다. DL은 기후변화가 계열사별 사업에 미칠 위험과 기회 요인을 분석해 각 계열사 ESG위원회와 이사회에 보고하고, 이를 경영 및 중장기 사업전략 수립에 활용하고 있다.</p>

<p>계열사별 온실가스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량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감축계획 수립에 그치지 않고 이행 상황까지 점검해 기후변화 대응의 실효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p>

<p>기후변화에 대응한 신사업 확대에도 나섰다.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과 친환경 소재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p>

<p>건설 부문에서는 국내 최초로 소형모듈원자로(SMR) 표준화 설계를 추진한다. DL이앤씨는 플랜트 설계 역량과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2027년 상반기까지 설계를 마칠 계획이다. 해당 설계는 2030년 가동 예정인 엑스에너지의 첫 SMR 발전소를 비롯한 후속 사업에 적용될 예정이다.</p>

<p>안전보건 관리체계도 강화한다. DL은 사업장 위험성 평가를 통해 잠재적 위험요인을 사전에 찾아 개선하고, 스마트 기술과 통합관제센터를 활용해 현장 안전관리 수준을 높이고 있다.</p>

<p>ESG 경영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이중 중대성 평가’에서는 15개 이슈 가운데 사업과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5개를 중대 이슈로 선정했다. 사업장 안전·보건,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한 공급망 관리, 기업 지배구조, 윤리·준법경영 등이다.</p>

<p>공급망 ESG 관리 범위도 확대했다. DL케미칼은 협력사 안전보건 감사 및 자문 대상을 5개사에서 7개사로 늘리고, ESG 교육 대상도 28개사에서 50개사로 확대했다. DL이앤씨는 2025년도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6년 연속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p>

<p>DL그룹 관계자는 “기후변화 대응과 안전보건을 비롯한 ESG 경영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고 관련 성과와 정보를 이해관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포스코이앤씨, 추석 앞두고 취약계층에 ‘사랑의 한 끼’ 전달]]></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0</link>
	  <dc:creator><![CDATA[방명수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40</guid>
	  <pubDate>Thu, 17 Sep 2026 11:26:19 +0900</pubDate>
	  <description><![CDATA[포스코이앤씨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지역 취약계층을 위한 나눔 활동에 나섰다.포스코이앤씨는 1일 인천시사회복지협의회와 함께 사회공헌 프로그램 ‘따뜻한 마음잇기’를 진행했다고 밝혔다.이번 행사에는 포스코이앤씨 임직원 100명이 점심시간을 활용해 참여했다. 임직원들은 만두를 직접 빚고 사골국과 떡국떡을 함께 포장해 ‘사랑의 한 끼 밀키트’를 마련했다. 밀키트는 인천 남동구에 거주하는 취약계층 200명에게 전달될 예정이다.포스코이앤씨는 지난 2월부터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따뜻한 마음잇기’ 활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노인과 아동, 장애인]]></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사진=-포스코이앤씨" height="2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0_51455_2552.jp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사진=-포스코이앤씨</div><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55 float-center" data-idxno="5145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사진=-포스코이앤씨" height="2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40_51455_2552.jpg" width="600" />
<figcaption>사진=-포스코이앤씨</figcaption>
</figure>
</div>

<p>포스코이앤씨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지역 취약계층을 위한 나눔 활동에 나섰다.</p>

<p>포스코이앤씨는 1일 인천시사회복지협의회와 함께 사회공헌 프로그램 ‘따뜻한 마음잇기’를 진행했다고 밝혔다.</p>

<p>이번 행사에는 포스코이앤씨 임직원 100명이 점심시간을 활용해 참여했다. 임직원들은 만두를 직접 빚고 사골국과 떡국떡을 함께 포장해 ‘사랑의 한 끼 밀키트’를 마련했다. 밀키트는 인천 남동구에 거주하는 취약계층 200명에게 전달될 예정이다.</p>

<p>포스코이앤씨는 지난 2월부터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따뜻한 마음잇기’ 활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노인과 아동, 장애인, 6·25전쟁 참전유공자 등 1313명에게 학용품 꾸러미와 인공와우 머리망, 여름나기 물품 등을 지원했다.</p>

<p>박선원 인천시사회복지협의회장은 “인천지역의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내준 포스코이앤씨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사회공헌 기업 및 기관과 협력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p>

<p>2010년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자리 잡은 포스코이앤씨는 지역사회와의 상생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인천지역 공사에 지역 업체가 참여할 기회를 확대하는 한편, 사내 부서별로 지역아동센터와 자매결연을 맺어 학습지도와 여가활동, 멘토링 등의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세계그룹, 10개 계열사 신입 공채…내달 12일까지 접수]]></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9</link>
	  <dc:creator><![CDATA[방명수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9</guid>
	  <pubDate>Thu, 17 Sep 2026 11:22:38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신세계그룹이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스타벅스 등 10개 계열사에서 근무할 2027년 신입사원을 공개 채용한다.신세계그룹은 오는 18일부터 10월 12일까지 그룹 채용 홈페이지를 통해 신입사원 공개채용 지원서를 접수한다고 17일 밝혔다.이번 채용에는 이마트를 비롯해 신세계백화점, 신세계프라퍼티, 스타벅스를 운영하는 SCK컴퍼니,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디에프, 신세계I&C, 신세계푸드, 신세계센트럴, 신세계라이브쇼핑 등 10개 계열사가 참여한다.지원 대상은 2027년 8월 이전 졸업자 또는 같은 달 졸업 예정자다. 해외여행에 결격 사]]></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height="849"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9_51454_2226.jp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54 float-center" data-idxno="5145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849"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9_51454_2226.jp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신세계그룹이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스타벅스 등 10개 계열사에서 근무할 2027년 신입사원을 공개 채용한다.</p>

<p>신세계그룹은 오는 18일부터 10월 12일까지 그룹 채용 홈페이지를 통해 신입사원 공개채용 지원서를 접수한다고 17일 밝혔다.</p>

<p>이번 채용에는 이마트를 비롯해 신세계백화점, 신세계프라퍼티, 스타벅스를 운영하는 SCK컴퍼니,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디에프, 신세계I&C, 신세계푸드, 신세계센트럴, 신세계라이브쇼핑 등 10개 계열사가 참여한다.</p>

<p>지원 대상은 2027년 8월 이전 졸업자 또는 같은 달 졸업 예정자다.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없어야 하며, 세부 모집 직무와 자격요건은 계열사별 채용 공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p>

<p>서류전형 합격자는 10월 말 발표될 예정이다. 이후 11월부터 12월까지 계열사별 면접과 최종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합격자는 2027년 1월 정식 입사해 그룹 입문교육을 받는다.</p>

<p>신세계그룹은 채용 기간을 단축하고 우수 인재를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최종 면접 이후 한 달 동안 운영해온 인턴십 과정을 폐지했다.</p>

<p>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인턴십 폐지로 더욱 신속하고 집중도 높은 채용을 진행할 수 있었다”며 “올해도 역량 있는 청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청년이라는 알리바이 — 상징자본의 정치와 대표성의 착시]]></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6</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6</guid>
	  <pubDate>Wed, 16 Sep 2026 22:05:49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지명 후 14일.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물러섰다. 자리에서 내려오는 데 걸린 시간은 짧았지만, 그 짧음이 남긴 질문은 길다. 36세, 비례대표 의원, 소수정당 원내대표. 이 이름 앞에 놓인 수식어들은 모두 청년이라는 한 단어로 수렴됐다. 그가 자리를 얻은 것도 청년이어서였고,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던 것도 청년이어서였다.짧은 재임과 긴 질문 사이, 어른들은 대개 침묵을 택한다. 침묵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전한 침묵은 때로 무책임의 다른 이름이다.나는 청년을 자녀로 둔 아버지다. 한때는 청년이었고, 지금은 청년 때]]></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종이로 지어진 사다리 위, 흔들리는 의자 하나 —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오르는 자리의 무게.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6_51443_5142.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43 float-center" data-idxno="5144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종이로 지어진 사다리 위, 흔들리는 의자 하나 —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오르는 자리의 무게.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6_51443_5142.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종이로 지어진 사다리 위, 흔들리는 의자 하나 —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오르는 자리의 무게.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지명 후 14일.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물러섰다. 자리에서 내려오는 데 걸린 시간은 짧았지만, 그 짧음이 남긴 질문은 길다. 36세, 비례대표 의원, 소수정당 원내대표. 이 이름 앞에 놓인 수식어들은 모두 청년이라는 한 단어로 수렴됐다. 그가 자리를 얻은 것도 청년이어서였고,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던 것도 청년이어서였다.</p>

<p>짧은 재임과 긴 질문 사이, 어른들은 대개 침묵을 택한다. 침묵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전한 침묵은 때로 무책임의 다른 이름이다.</p>

<p>나는 청년을 자녀로 둔 아버지다. 한때는 청년이었고, 지금은 청년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여기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여러 겹이다. 그럼에도 묻는다. 지금 청년이 겪는 어려움은 정말 약자의 어려움인가.</p>

<p>세상을 산다는 것은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숙련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나는 복사기와 씨름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두꺼운 자료를 한 번의 스냅으로 찍어내는 스테이플러 기술을 익히며 회의실 말석에 앉아 있었다. 그 하찮은 시간들이 지금의 골조가 됐다. 그러나 요즘 이런 이야기는 꼰대의 넋두리로 읽힌다. 청년 비판은 여론의 매장을 부르는 가장 빠른 길이 됐다. 그래서 어른들은 입을 다물었다. 말을 아끼는 사이, 청년은 홀로 시간을 건너야 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있다. 용혜인이라는 현상으로.</p>

<p>청년이 정치와 권력의 중심에서 호명되는 방식을 볼 때마다, 오래된 질문 하나가 되돌아온다. 약자란 누가 정하는가. 그리고 그 이름은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p>

<p> </p>

<p><strong>약자의 발명: 청년 담론의 계보</strong></p>

<p>한국 현대사에서 청년은 오랫동안 균열을 내는 이름이었다. 4·19 혁명의 거리에도, 6월 항쟁의 광장에도 청년이 있었다. 국가에 맞서는 주체, 미래를 끌고 가는 동력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청년은 다른 얼굴로 호명된다. 기회에서 밀려난 피해자, 보호받아야 할 구조적 약자. 이 전환은 세대의 불운이 아니다. 경제 구조의 개편과 정치적 셈법이 만나 빚어낸 산물이다.</p>

<p>결정적 분기점은 1997년이다. 외환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개편은 사회 진입로 자체를 무너뜨렸다. 이전 세대는 저성장 속에서도 노력과 취업과 계층 이동이라는 사회적 계약을 믿을 수 있었다. 2000년대 이후 진입한 세대는 비정규직화와 치솟는 주거비와 스펙 경쟁을 정면으로 맞았다. 2007년 출간된 우석훈, 박권일의 『88만원 세대』는 이 폭력을 처음으로 진단한 텍스트였다. 그러나 이 진단은 동시에 청년을 시혜의 대상으로 고정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44 float-center" data-idxno="5144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광장의 주먹은 흐려지고, 유리 진열장 안의 자세만 남았다 — 약자로 다시 태어난 청년의 초상.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6_51444_5225.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광장의 주먹은 흐려지고, 유리 진열장 안의 자세만 남았다 — 약자로 다시 태어난 청년의 초상.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이후 정치는 청년의 약자성을 정교하게 다듬어 활용했다. 고령화로 인구 지형이 불리해진 청년은 표심을 잡기 위한 담론의 틀 안으로 들어갔다. 2010년대 이후의 청년수당과 청년 주택은 빈곤을 완화했지만, 동시에 청년을 국가의 시혜를 기다리는 취약 계층으로 정의했다. 청년 내부의 계급과 성별의 차이는 소거됐고, 청년 대 기득권 세대라는 이분법만 남았다. 사회학자 최종숙은 청년 담론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추적하며, 정책의 언어가 청년을 하나의 유권자 집단으로 재편해 온 과정을 짚은 바 있다. 그 지적처럼 청년 정책은 세대 내부의 위계를 다루기보다 세대 간 구도를 부각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정치학자 이철승 역시 특정 세대가 자원과 연결망을 장기간 독점해 온 구조를 지적하며, 이를 세대 내부의 불평등이 아니라 세대 간 독점의 문제로 규명한 바 있다. 청년을 약자로 호명하는 담론은 이 독점 구조를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가려 왔다.</p>

<p>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부정의를 두 갈래로 나눈다. 분배의 부정의와 인정의 부정의. 그리고 이 둘을 봉합하는 처방에도 층위가 있다고 말한다. 기존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상징적 지위만 내어주는 긍정적 처방과, 구조 자체를 바꾸는 변혁적 처방. 청년수당과 청년 주택이 후자를 향한 걸음이었다면, 청년이라는 이름을 정치적 자산으로만 소비하는 지금의 화법은 전자에 머물러 있다. 인정은 받았으나 재분배는 오지 않았다. 그 사이의 간극이 지금 청년정치의 자리다.</p>

<p> </p>

<p><strong>상징자본의 첩경: 비례대표라는 사다리</strong></p>

<p>비례대표제는 원래 상징적 대표성의 한계를 메우기 위해 설계된 장치다. 여성과 장애인, 특정 직능을 대변할 통로였다. 그런데 최근 한국 정치는 청년이라는 범주를 마치 당연한 약자의 표지처럼 취급하며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배정한다. 국제의회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르완다와 모로코, 케냐, 우간다 등은 법적으로 청년 할당 의석을 운용한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대개 권위주의적 구조나 부족주의로 청년의 진입 자체가 막혀 있던 곳이다. 반면 독일과 노르웨이 같은 선진 민주주의는 청년에게 의석을 거저 쥐어주지 않는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청년 조직 유조는 수십 년간 바닥 정치를 겪어야 제도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갖고 있다. 서구에서 청년 정치는 할당받는 전리품이 아니라 훈련으로 얻는 결과물이다.</p>

<p>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하나의 장에서 통용되는 자본은 그 장 고유의 규칙에 따라 오랜 시간 쌓여야 정당성을 얻는다고 말한다. 이 축적의 과정이 생략된 채 자본만 이전될 때, 그는 이를 오인이라 불렀다. 한국의 청년 비례대표는 정확히 이 오인의 통로를 걷는다. 학생회와 시민단체와 정당의 담론 기획을 거쳐 곧바로 제도권에 진입한 이들에게는, 노동 현장의 갈등을 조정해 본 경험도 돌봄의 신체적 노동을 감내해 본 시간도 없다. 그런데도 기본소득과 돌봄국가라는 세련된 언어로 정치의 중심에 선다. 체험 없는 정책, 현장 없는 정치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45 float-center" data-idxno="5144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종이로 말린 사다리는 새것이고, 밧줄 사다리는 아무도 찾지 않는다 — 지름길과 현장 사이의 거리.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6_51445_536.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종이로 말린 사다리는 새것이고, 밧줄 사다리는 아무도 찾지 않는다 — 지름길과 현장 사이의 거리.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교차성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더 또렷해진다. 장애를 지닌 여성 노동자나 무주택 고령자처럼 다중의 배제를 견디는 이들이 앉아야 할 자리에, 오직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특정 학벌과 인맥을 지닌 청년이 들어선다. 소수자를 대변하려던 제도가 도리어 소수자의 자리를 빼앗는 역설이다.</p>

<p>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통로는 586 운동권이 구축해 놓은 학생회-시민단체-정당 네트워크의 유산 위에 있다. 운동권의 낡은 진영 논리는 청년과 젠더와 기후위기라는 언어로 갈아입었을 뿐, 권력이 승계되는 방식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정당의 젊은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패션 정치와, 오래된 조직의 생리가 새 언어의 포장지 안에서 만난다. 그 포장지를 벗기면 남는 것은 지역구에서 시민의 선택을 받아 본 적 없는 대표성이다. 뿌리 없는 나무는 바람 앞에서 흔들리기 마련이다.</p>

<p> </p>

<p><strong>인정과 재분배의 불일치: 용혜인이라는 시험대</strong></p>

<p>용혜인 후보자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를 다시 세어본다. 1990년생, 36세, 기본소득당 소속 재선 의원, 원내대표. 지난 8월 30일 지명됐고, 9월 13일 물러났다.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그를 지명한 뜻은 분명 민주진보 진영의 연대와, 현장과 호흡해 온 경험을 살리려는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의 겸직이라는 논란이 그 뜻을 덮었다. 여당 내부에서마저 국민적 공감대가 넓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결국 더불어민주당은 그에게 결단을 요청했다. 그는 의원직을 지키고 장관직을 내려놓았다.</p>

<p>각종 여론조사에서 2030세대의 정부 지지율은 지명 이후 눈에 띄게 내려앉았다. 겸직 논란이 불거지자 여당 내부에서조차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배경이다. 야당이 인사청문회 일정조차 잡지 않았다는 사정도 있었으니, 이 사퇴를 오로지 한 사람의 흠결로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p>

<p>이 장면은 프레이저가 말한 인정과 재분배의 불일치를 정확히 보여준다. 30대 여성을 국무위원으로 지명하는 일은 긍정적 인정이다. 상징의 차원에서는 진보였다. 그러나 그 인정이 청년 세대의 노동 조건이나 자산 격차라는 재분배의 영역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인정은 왔으나 구조는 그대로였고, 구조가 그대로인 인정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겸직 논란은 다만 도화선이었을 뿐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46 float-center" data-idxno="5144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리본은 의자에 남고, 발걸음만 문밖으로 향한다 — 인정받은 자리와 지켜야 할 자리 사이.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6_51446_5346.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리본은 의자에 남고, 발걸음만 문밖으로 향한다 — 인정받은 자리와 지켜야 할 자리 사이.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부르디외의 언어로 다시 읽으면, 이 사퇴는 상징자본의 조기 파산이다. 현장의 축적 없이 이전받은 자본은 검증의 압력 앞에서 먼저 무너진다. 용혜인 후보자는 기자회견에서 인사청문회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물러나야 했던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 억울함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억울함과 별개로, 이 사건이 대중에게 남긴 인상은 분명하다. 청년이라는 조건이 권력에 진입하는 급행 사다리로 읽혔다는 것. 평범한 청년들이 각자의 일터에서 버티는 동안, 정치적 청년은 상징성만으로 권력의 급행선에 올라탔다는 인식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p>

<p>물론 이것이 개인에 대한 단죄여서는 안 된다. 문제는 한 사람의 자격이 아니라, 청년을 호명하는 정치의 방식이다. 인정을 재분배로 착각하게 만든 것은 그 개인이 아니라 그런 착시를 설계한 구조다.</p>

<p> </p>

<p><strong>청년을 다시 정치화하기 위하여</strong></p>

<p>그렇다면 청년은 결코 약자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약자냐 아니냐를 가르는 이분법 자체다. 청년 내부에는 세습된 자본으로 손쉽게 안착하는 이들과, 지방과 비정규직과 저임금 속에서 하루를 버티는 이들이 함께 있다. 이 격차를 지우고 청년을 하나의 얼굴로 그리는 순간, 정치는 가장 취약한 이들을 다시 지운다.</p>

<p>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삶의 현장이 대표성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령별 순번제라는 대안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그 자리 역시 결국 자산과 학벌을 갖춘 청년이 먼저 채울 가능성이 크다. 나이라는 외피는 기득권이 표심을 사기 위해 던지는 가장 저렴한 방식일 수 있다.</p>

<p>나는 종이를 자꾸 씹어대는 복사기 앞에서, 스테이플러 하나로 두꺼운 자료를 찍어내는 기술 하나로 커리어의 골조를 세웠던 사람이다. 그 시절의 하찮음이 지금의 여유가 됐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나 이 말을 청년에게 그대로 되돌려줄 생각은 없다. 지금의 단기 노동은 더 이상 성숙으로 가는 연습판이 아니라, 스펙쌓기용 소모품이거나 법적 꼼수로 얼룩진 구조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사다리이려면, 그 사다리 끝에 실제로 오를 곳이 있어야 한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47 float-center" data-idxno="5144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매끈한 길과 거친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손은 닿지 않되 방향만을 가리킨다 — 걱정이 참견이 되지 않는 거리.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6_51447_5432.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매끈한 길과 거친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손은 닿지 않되 방향만을 가리킨다 — 걱정이 참견이 되지 않는 거리.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청년정치의 환상은 이제 끝나야 한다. 약자의 탈을 쓴 채 배분받는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구원되지 않는다. 바닥에서 땀 흘리고, 세대 간의 존중 속에서 실력으로 검증받을 때, 청년은 비로소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돌아온다.</p>

<p>걱정은 잔소리가 아니다. 걱정은 상대가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청년을 걱정하되, 더 이상 청년을 대신해 말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것이 이 세대에게 내가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예의다. 나는 그날을 기다린다. 청년이 더 이상 약자라는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날을.</p>

<hr />
<p><strong><span style="font-size:16px;">※ 참고문헌</span></strong></p>

<p><span style="font-size:16px;">- 우석훈, 박권일,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7.<br />
- 이철승, 『쌀 재난 국가』, 문학과지성사, 2021.<br />
- 최종숙, 「‘청년’ 담론의 정치 사회적 맥락과 청년 정책의 변화」, 『한국사회학』, 제54권 2호, 한국사회학회, 2020.<br />
- Inter-Parliamentary Union (IPU), Youth Participation in National Parliaments, IPU Report, 2025/2026.<br />
- Nancy Fraser, "From Redistribution to Recognition?", New Left Review, 1995.<br />
- Pierre Bourdieu, La Distinction, Éditions de Minuit, 1979.</span></p>

<p> </p>

<p> </p>

<p><strong>글‧박철웅</strong><br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에디터<br />
작가‧문화평론가 <br />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 전공<br />
IBM과 NTT에서 마케팅과 컨설팅 담당<br />
2011년 『원순씨를 부탁해』 출간<br />
비평적 글쓰기, 사회, 문화 예술과 인간을 관통하는 글을 쓰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인조 고기'에 '고기(meat)' 글자 빼라(?)" 축산업계와 바이오업체간 갈등 심화]]></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4</link>
	  <dc:creator><![CDATA[김시래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4</guid>
	  <pubDate>Wed, 16 Sep 2026 05:20:02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에 자리 잡은 한 생명공학 연구소. 스테인리스강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원통형 생물반응기 내부에서는 수십억 개의 닭 근육 세포가 당류와 아미노산, 미네랄이 뒤섞인 배양액을 들이켜며 분열을 거듭한다. 도축장의 둔탁한 금속성 타격음도, 가축의 비명도, 분뇨의 악취도 없다. 오직 제어 밸브의 미세한 맥동음만이 실험실 바닥을 울릴 뿐이다.반면 텍사스주 오스틴의 주 의사당 회의장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소음이 터져 나온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목축업자들과 이들의 정치적 대변인들이 마이크를 잡고 성토를 이어간다. 쟁점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목장의 울타리와 배양기의 벽 사이에서, 고기의 이름을 둘러싼 오래된 자본과 새로운 생명이 맞선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4_51441_1927.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41 float-center" data-idxno="51441"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목장의 울타리와 배양기의 벽 사이에서, 고기의 이름을 둘러싼 오래된 자본과 새로운 생명이 맞선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4_51441_1927.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목장의 울타리와 배양기의 벽 사이에서, 고기의 이름을 둘러싼 오래된 자본과 새로운 생명이 맞선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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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에 자리 잡은 한 생명공학 연구소. 스테인리스강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원통형 생물반응기 내부에서는 수십억 개의 닭 근육 세포가 당류와 아미노산, 미네랄이 뒤섞인 배양액을 들이켜며 분열을 거듭한다. 도축장의 둔탁한 금속성 타격음도, 가축의 비명도, 분뇨의 악취도 없다. 오직 제어 밸브의 미세한 맥동음만이 실험실 바닥을 울릴 뿐이다.</p>

<p>반면 텍사스주 오스틴의 주 의사당 회의장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소음이 터져 나온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목축업자들과 이들의 정치적 대변인들이 마이크를 잡고 성토를 이어간다. 쟁점은 과학이 아닌 단어다. 플라스크와 세포 배양기 안에서 만들어진 분자 덩어리에 감히 ‘고기(meat)’나 ‘스테이크(steak)&#39;라는 신성한 이름을 허락할 수 없다는 절규다.</p>

<p>인류가 수만 년 동안 가축을 길들여 체득해 온 단백질 섭취의 문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세포를 직접 증식시켜 살코기를 만드는 세포배양육과 미생물 유전자를 조작해 우유나 달걀 단백질을 빚어내는 정밀 발효 기술이 제도권 시장의 문턱을 넘어섰다.</p>

<p>2020년 12월 싱가포르 식품청이 세계 최초로 미국 기업 잇저스트의 배양 닭고기 시판을 승인했을 때만 해도 이는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기이한 미식 실험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2023년 6월 미국 농무부와 식품의약국이 업사이드푸즈와 굿미트의 세포배양 닭고기에 대해 상업적 판매 허가를 내주면서 판세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어 이스라엘 정부가 2024년 1월 알레프팜스의 세포배양 쇠고기 판매를 세계 최초로 승인하고, 걸프 산유국들이 국부펀드를 앞세워 사막 한가운데 배양 시설을 짓기 시작하자 전통 농축산업계는 비로소 실존적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p>

<p>이 공포는 즉각적이고도 원초적인 경제적 저항으로 전환됐다. 전통 축산업계가 구축한 참호의 최전선은 다름 아닌 언어의 통제다. 제품 포장지에서 ‘고기’, ‘우유’, ‘치즈’, ‘소시지’라는 단어를 박탈함으로써 신생 바이오 식품을 소비자의 직관적 인지 밖으로 밀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언어학의 외피를 쓴 이 치열한 시장 방어전은 사실 자본주의 역사에서 기득권 산업이 신기술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기 위해 휘둘러 온 전형적인 진입 장벽 구축의 현대적 변주다. 19세기 말 버터 제조업자들이 신제품 마가린의 판매를 막기 위해 노란색 색소 첨가를 금지하고 분홍색으로만 염색해 팔도록 강제했던 마가린 전쟁의 21세기 판 복사판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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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식량 안보의 기치와 목장 울타리에 갇힌 포퓰리즘 규제</strong></p>

<p>정밀 발효 기술과 세포배양육을 바라보는 글로벌 규제 당국의 시선은 극단적인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한쪽 끝에는 식량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지정학적 취약 국가들이 있다. 물 한 방울, 흙 한 줌이 아쉬운 싱가포르와 아랍에미리트에게 배양 단백질은 단순한 친환경 먹거리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생존 키트다. 이들은 규제 샌드박스를 열어젖히고 표준화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공표하며 전 세계 바이오 스타트업과 자본을 빨아들이고 있다. 세포배양 닭고기 생산 기업인 굿미트의 조시 테트릭(46) 최고경영자는 싱가포르 공장 준공식에서 "기존 축산업의 토지 착취와 도축 모델은 80억 인구의 미래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단백질을 생산하는 공학적 분기점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p>

<p>그러나 대규모 방목지와 강력한 축산 로비 단체를 보유한 서구 농업 중심지에서는 완전히 상반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론 디샌티스(48) 주지사는 2024년 5월 미국 최초로 주 내에서 세포배양육의 제조, 유통,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며 축산 농가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법안 서명식 연단에 서서 "우리는 세계경제포럼의 엘리트들이 실험실에서 만든 고기를 강요하며 플로리다의 농업 유산을 파괴하는 행위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플로리다는 진짜 소와 진짜 농민의 편에 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몇 달 뒤인 2024년 5월 앨라배마주 역시 유사한 전면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고, 네브래스카와 텍사스, 미주리 등 이른바 ‘축산 벨트’의 주 정부들은 도축된 가축에서 유래하지 않은 식품에 고기라는 명칭을 쓰는 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라벨링 규제 법안을 잇달아 발효시켰다.</p>

<p>유럽 대륙의 반응은 더욱 완고하다. 유럽연합의 식량 정책을 선도해 온 이탈리아는 2023년 11월 의회 표결을 거쳐 배양육의 생산과 수입, 상업적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위반 시 최대 6만 유로(약 8,8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롤로브리지다(54) 농업식량주권부 장관은 "우리의 전통적인 지중해 식문화와 목축업 종사자들의 삶의 터전을 화학 실험실의 인공 생산물로부터 지켜내는 것은 국가적 주권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프랑스 정부 역시 식물성 대체육 및 배양육 제품에 ‘스테이크’나 ‘소시지’ 같은 육류 명칭의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전통 산업 보호에 나섰다. 비록 프랑스 최고행정법원과 유럽사법재판소가 유럽연합 단일 시장의 자유로운 상품 이동 원칙과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제동을 걸며 법적 공방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전통 축산업계가 형성한 정치적 방어벽의 두께는 여전히 견고하다.</p>

<p>이런 &#39;규제 보수주의&#39;의 밑바탕에는 단순한 문화적 거부감을 넘어선 냉혹한 경제적 셈법이 자리 잡고 있다. 전통 축산업은 막대한 농촌 표심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 카르텔이며, 사료 재배부터 도축, 육가공, 냉장 유통으로 이어지는 방대한 가치사슬을 장악하고 있다. 바이오 기술 기업들이 내세우는 ‘탄소 배출량 80% 감축’이나 ‘토지 사용량 90% 절감’ 같은 거시적 환경 담론은 당장 매달 대출 원리금을 갚아야 하는 목축업자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비수일 뿐이다. 결국 ‘소비자 오인 방지’라는 미명 아래 추진되는 상품 명칭 규제는 본질적으로 혁신적 경쟁자의 시장 진입 비용을 극대화하려는 고전적인 지대 추구 행위에 불과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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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축산업계와 바이오업체간 갈등 주요 내용</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40 float-center" data-idxno="5144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847px"><img alt="" height="78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4_51440_198.jpg" width="847" />
<figcaption></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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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자본의 이중 플레이와 규모의 경제라는 기술적 임계점</strong></p>

<p>전통 축산업계의 정치적 공세가 거세질수록 푸드테크 기업들 역시 법정 투쟁으로 맞서고 있다. 2024년 8월 업사이드푸즈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배양육 판매 금지법이 연방 헌법의 통상 조항을 위반하고 연방 농무부의 권한을 침해했다며 연방 법원에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업사이드푸즈의 창업자 우마 발레티(54) 최고경영자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가 특정 산업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안전성이 검증된 차세대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원천 박탈하는 것은 자유 시장 경제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과거 미국 낙농업계가 두유나 아몬드 밀크에 대해 ‘우유(Milk)’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제기했던 소송들은 법원에서 상업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잇달아 기각된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배양육 명칭 갈등 역시 완전한 금지보다는 ‘세포배양 닭고기’나 ‘비동물성 정밀 발효 우유’처럼 수식어를 명확히 병기하는 형태의 규범적 타협안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p>

<p>그러나 법적 승리가 곧바로 상업적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푸드테크 진영이 마주한 더 본질적이고 치명적인 장벽은 법정이 아니라 대차대조표 위에 있다. 바로 가격 경쟁력, 즉 ‘가격 패리티’의 달성 여부다. 가격 패리티(Price Parity)란 동일한 상품·서비스·자산이 서로 다른 시장·채널·통화 기준에서 동등한 가치(가격)로 평가되는 상태를 뜻한다. 세포배양육 1파운드(약 453그램)를 생산하는 단가는 기술 개발 초기 수십만 달러(수억 원)에서 현재 수십 달러(수만 원) 수준까지 급락했으나, 여전히 대량 도축된 공장식 축산 고기의 가격인 1파운드당 3~5달러(약 4,000~7,000원)와 비교하면 턱없이 높다. 정밀 발효로 생산된 유제품 단백질 역시 대량 수매되는 원유 가격과의 격차를 좁히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소의 태아에서 채취한 혈액을 원심분리·여과해 얻은 혈청으로, 세포배양 배지에 가장 널리 쓰이는 보충제인 소태아혈청(FBS, Fetal Bovine Serum)은 이를 대체할 값싼 식품 등급 배양액의 개발, 수만 리터 규모의 대형 생물반응기 증설, 그리고 대량 생산 과정에서의 오염 방지 기술이 아직 완전한 상업적 임계점을 넘어서지 못했다.</p>

<p>아이러니한 대목은 이 거대한 전선 이면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육가공 공룡들의 이중적 행보다. 타이슨푸즈, 제이비에스, 카길 등 전 세계 육류 유통을 쥐락펴락하는 메가 카르텔은 표면적으로는 지역 축산 협회의 이익을 옹호하는 듯 보이지만, 뒤로는 막대한 자본을 동원해 배양육 스타트업의 지분을 사들이고 정밀 발효 연구에 직접 투자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육가공업체 타이슨푸즈의 도니 킹(66) 최고경영자는 주주총회 석상에서 "우리는 단순히 가축을 잡는 회사가 아니라 인류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는 단백질 전문 기업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단백질이 목장에서 오든 실험실 생물반응기에서 오든 우리는 그 공급망의 정점에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참고: 타이슨푸즈는 2026년 5월 28일, 제프 숌버거(Jeff Schomburger)를 2026년 10월 4일 자로 새 CEO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카르텔의 속내는 명확하다. 기술적 한계가 존재하는 당분간은 전통 축산의 현금 흐름을 최대한 빨아먹되, 생산 단가가 역전되는 순간 언제든 세포배양 공장으로 갈아탈 수 있는 퇴로를 열어두는 것이다.</p>

<p>결국 단백질의 이름을 둘러싼 법적, 정치적 공방은 거대한 기술적 이행기에서 나타나는 지연 전술에 가깝다. 증기선이 처음 등장했을 때 범선 선주들이 항구 진입을 막아섰고, 내연기관차가 마차의 속도를 넘어서려 할 때 영국에서 &#39;붉은 깃발 법&#39;이 제정됐던 것처럼, 기술 혁신이 기존 산업의 토대를 흔들 때마다 법률과 규제는 언제나 기득권의 가장 안락한 방패로 악용됐다. 그러나 생물반응기의 용량이 커지고 배양 비용이 곡물 사료와 가축 사육 비용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경제학의 중력 법칙은 어김없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름표를 뺏는다고 해서 분자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으며, 자본의 흐름을 영원히 가둘 수 있는 울타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참고: 1865년 제정되어 1896년까지 약 31년간 시행된 영국의 ‘적기조례(赤旗條例, Red Flag Act, 공식명칭 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는 증기자동차의 도로 운행을 극도로 제한한 법률로, 자동차 1대당 운전수·기관원·기수 등 3명 탑승을 의무화하고 기수가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차량 전방 약 55m(60야드)를 걸어가며 경보하도록 했으며, 속도도 시외 시속 4마일(약 6.4㎞), 시내 시속 2마일(약 3.2㎞)로 제한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비평의 온도] '메이드 인 코리아2', 각성(覺醒)은 수출되고 죄는 잔류했다]]></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1</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1</guid>
	  <pubDate>Tue, 15 Sep 2026 22:11:45 +0900</pubDate>
	  <description><![CDATA[국민학교라는 이름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던 시절, 교실에는 이상한 검사가 있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어 잡곡의 비율을 세는 일이었다. 보리를 잊은 아이는 하루 종일 좌불안석이었다. 또 하나의 검사가 있었다. 필통을 열어 연필과 샤프의 원산지를 캐묻는 일이었다. 적발의 대부분은 아이들의 은밀한 로망, \'일제 샤프\'였다. 국가는 그 로망을 압수했다.혼식은 식량 안보의 논리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산품 애용은 달랐다. 국가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몰수해 재벌을 키웠고, 그 유산은 지금도 \'한국형\'이라는 이름의 예산으로 되살아난다. 국가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 2'의 공식 포스터. ⓒ 디즈니플러스"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1_51431_1737.jp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31 float-center" data-idxno="51431"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 2'의 공식 포스터. ⓒ 디즈니플러스"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1_51431_1737.jp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39;메이드 인 코리아 2&#39;의 공식 포스터. ⓒ 디즈니플러스</figcaption>
</figure>
</div>

<p>국민학교라는 이름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던 시절, 교실에는 이상한 검사가 있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어 잡곡의 비율을 세는 일이었다. 보리를 잊은 아이는 하루 종일 좌불안석이었다. 또 하나의 검사가 있었다. 필통을 열어 연필과 샤프의 원산지를 캐묻는 일이었다. 적발의 대부분은 아이들의 은밀한 로망, &#39;일제 샤프&#39;였다. 국가는 그 로망을 압수했다.</p>

<p>혼식은 식량 안보의 논리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산품 애용은 달랐다. 국가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몰수해 재벌을 키웠고, 그 유산은 지금도 &#39;한국형&#39;이라는 이름의 예산으로 되살아난다. 국가가 무엇을 만들게 하고 무엇을 사지 못하게 했는가. 이 질문은 낡지 않았다. 낡지 않았기에, 지금도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애국은 자주 소비의 형태로 강요되었고, 강요된 소비는 종종 산업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애국이 소비의 형태를 벗고 범죄의 알리바이가 될 때, 그 이름은 더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p>

<p>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2025, Made in Korea)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다만 이 작품이 그리는 &#39;메이드 인 코리아&#39;는 학용품이 아니다. 마약이다. 공교롭게도 이 제목은 우민호 감독의 전작 『마약왕』에서 주인공이 만든 히로뽕의 브랜드명이기도 했다. 국가의 얼굴을 한 상품과, 국가가 방조한 범죄가 같은 이름을 쓴다. 히로뽕을 한국에서 만들어 일본에 되팔아 독재정권의 통치자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극화된 상상 같지만, 그 뼈대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32 float-center" data-idxno="5143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수출된 것은 각성이었지만, 잔류한 것은 국가가 지우려 했던 죄의 흔적이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1_51432_339.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수출된 것은 각성이었지만, 잔류한 것은 국가가 지우려 했던 죄의 흔적이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욕망의 회랑, 갈라선 혈육</strong></p>

<p>우민호 감독의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는 권력의 공백에서 시작한다. 시즌1이 1970년대 신흥 자본과 범죄의 물살을 타고 오르던 백기태(현빈)의 상승사였다면, 시즌2는 대통령의 죽음이 남긴 공백을 무대로 삼는다. 1979년 10월 26일 이후, 국가의 정점은 비어 있었다.</p>

<p>중앙정보부의 실세로 자리 잡은 백기태는 그 공백을 기회로 읽는다. 그를 겨눠온 검사 장건영(정우성)은 합동수사본부 특별고문으로 돌아와 반격을 준비한다. 여기에 보안사 중령으로 진급한 동생 백기현(우도환)이 끼어든다. 형제는 오래 서로를 감싸왔지만, 이번에는 다른 노선을 걷는다. 형은 동생을 아버지처럼 감싸안았고, 동생은 그 그늘에서 벗어나려 했다. 애정과 대립이 한 몸에 얽힌 삼각형, 그 구도가 시즌2의 뼈대다.</p>

<p>시즌1은 디즈니+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가운데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다 시청작에 올랐고, 주연 배우는 이 배역으로 방송 부문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거둔 성취다. 시즌2는 그 성취를 발판 삼아 무대를 넓힌다. 정국의 공백은 세 사람 모두에게 기회이자 함정이다. 백기태에게는 권력의 정점을, 장건영에게는 설욕을, 백기현에게는 형의 그늘 밖 자기 자리를 뜻한다. 셋의 계산은 어긋나며 부딪힌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33 float-center" data-idxno="5143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권력의 공백은 형제 사이에도 다른 길을 냈다. 피는 같았지만, 그들이 향한 국가는 달랐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1_51433_3343.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권력의 공백은 형제 사이에도 다른 길을 냈다. 피는 같았지만, 그들이 향한 국가는 달랐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그러나 성취의 이면에서 평단의 시선은 한 지점에 모인다. 실제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상업적 느와르의 문법으로 어떻게 번역했는가. 『내부자들』과 『남산의 부장들』에서 입증된 우민호의 시대극 연출은, 이번엔 글로벌 스트리밍의 호흡 속에서 더 조밀하게 압축되었다. 건조한 미장센과 시대를 재해석한 스코어는 역사의 무게를 장르적 쾌감으로 바꾸는 장치로 기능한다.</p>

<p>그러나 매끄러움에는 대가가 따른다. 국가 폭력과 공포정치의 시대가 인물 간의 기싸움, 곧 승부의 문법으로 축소된다는 비판이다. 승부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 가해와 피해가 없다. 역사는 승부가 아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자꾸 승부처럼 보여준다.</p>

<p> </p>

<p><strong>필로폰의 족보, 지워진 알리바이</strong></p>

<p>히로뽕이라는 이름으로 퍼진 메스암페타민의 뿌리는 근대 일본이다. 1888년, 도쿄제국대학의 나가이 나가요시가 감기약 원료인 마황(麻黃)에서 에페드린을 추출하다 이 물질을 발견했다. 합성에 성공한 것은 1893년이다. 1941년, 대일본제약은 &#39;일하는 것을 좋아한다&#39;는 그리스어 필로포노스(philoponus)에서 이름을 따 &#39;필로폰(Philopon)&#39;이라는 상표로 시판했다.</p>

<p>전쟁은 이 각성제를 군수품으로 바꿨다. 가미카제 특공대원과 야간 노동자들이 피로를 잊기 위해 삼켰다. 패전 후, 중독자 수백만 명이 남았다. 일본 정부는 1951년 각성제단속법을 제정해 제조와 소지를 처벌했다. 기술과 수요는 바다를 건너 새 거점을 찾았다.</p>

<p>국내에서의 소비는 법으로 엄격히 억제되었으나, 국경 너머로 향하는 밀조와 밀수출은 거대한 지하경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제약공장에서 기술을 익힌 한국인들이 해방 후 귀국했다. 1960년대 후반, 야쿠자 자본이 국내 밀조책과 결탁하며 한국은 동아시아 메스암페타민의 주요 생산지로 떠올랐다. 대만에서 들여온 에페드린은 부산과 경남의 비밀 공장에서 정제되어 다시 일본으로 흘러 나갔다. 대만에서 사 온 원료, 한국에서 만든 물건, 일본으로 되판 상품. 이 회로를 두고 사람들은 &#39;백색의 삼각지대&#39;라 불렀다. 1970년대 한국은 세계 최대의 필로폰 생산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우민호 감독의 전작 『마약왕』이 그린 시대가 바로 이 무렵이다. 정부는 뒤늦게 1970년 8월 습관성의약품관리법을 제정해, 그해 11월부터 제조와 유통을 금지했다. 밀조는 법 바깥에서 계속되었다.</p>

<p>그러나 세간에는 다른 이야기가 돈다. 유신 정권이 외화벌이와 일본 사회 교란을 위해 마약 제조를 묵인했다는 것, 식민 지배의 복수로 일본을 마약으로 무너뜨리는 일이 애국이라는 것. 이 주장은 두 겹으로 나뉘어 검증되어야 한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34 float-center" data-idxno="5143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원료는 건너왔고, 물건은 만들어졌으며, 돈은 국경을 넘었다. 그 사이에서 ‘애국’은 범죄의 알리바이가 되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1_51434_3421.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원료는 건너왔고, 물건은 만들어졌으며, 돈은 국경을 넘었다. 그 사이에서 ‘애국’은 범죄의 알리바이가 되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정권이 마약 수출을 공식 지시했다는 사료는 없다. 다만 권력 기관 일부가 외화와 뇌물을 대가로 밀매 조직을 눈감아 준 정황은 훗날 수사로 드러났다. 공식 육성이 아니라, 부패와 성장 제일주의가 만든 구조적 방관이었던 셈이다.</p>

<p>&#39;애국&#39;이라는 말은 그래서 의심스럽다. 롤랑 바르트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신화는 역사를 자연으로 둔갑시킨다고. 신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믿게 만든다. 범죄를 국가의 대의로 치환하는 순간, 죄의식은 사라지고 단속을 피할 명분만 남는다. 반일 감정이라는 땔감 위에서, 밀조는 애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필통 속 국산 연필을 강요하던 논리와, 마약 수출을 애국으로 부르던 논리는 한 뿌리에서 갈라진 두 가지였다. 그 신화가 가린 것은 무엇이었나. 마약을 만들고 판 손, 그 손을 쥔 권력의 부패다.</p>

<p> </p>

<p><strong>감각의 분할, 스펙터클의 시선</strong></p>

<p>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흐르는 가운데, 1979년 부산 시위 현장의 유혈진압이 펼쳐진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도달한 미학의 정점이다. 클래식의 숭고함과 곤봉의 폭력이 나란히 놓일 때, 화면은 비현실적인 환상성을 얻는다. 보는 이는 매혹된다.</p>

<p>그런데 이 매혹은 무엇을 대가로 치르는가. 자크 랑시에르는 정치를 감각의 분할이라 불렀다. 무엇이 보이고 들리도록 허락되는가, 그 경계를 정하는 일 자체가 권력의 작동이라는 뜻이다. 이 장면에서 감각의 몫을 배당받는 것은 선율의 숭고함이다. 몫을 빼앗기는 것은 피 흘리며 스러진 몸들의 고통이다. 카메라는 진압하는 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재단한다. 느린 화면과 클로즈업은 진압봉의 궤적을 무용처럼 그리고, 비명은 음악 아래로 가라앉는다. 역사는 그렇게 스펙터클로 소비된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35 float-center" data-idxno="5143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숭고한 선율은 폭력을 아름답게 만들었고, 아름다움은 피 흘린 몸들의 몫을 화면 밖으로 밀어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1_51435_3457.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숭고한 선율은 폭력을 아름답게 만들었고, 아름다움은 피 흘린 몸들의 몫을 화면 밖으로 밀어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미학적 양식화는 강력한 장르의 무기다. 그러나 무기는 겨눈 곳만 비춘다. 국가 폭력의 진정한 비극성은, 이 세련된 대조 속에서 오히려 뒷걸음질 친다. 아름다움이 짙을수록, 감출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p>

<p>랑시에르는 몫을 갖지 못한 자들의 몫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화면 안에서 몫을 갖는 것은 언제나 권력의 시선이고, 몫을 갖지 못하는 것은 그 시선 아래 쓰러진 이름 없는 몸들이다. 클래식이 흐르는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듣지 못했는가. 이 질문이 남는다.</p>

<p> </p>

<p><strong>신화의 잔고, 돌아오는 값</strong></p>

<p>이 정교한 환상이 남긴 진짜 유산은 따로 있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1970~80년대, 정권의 묵인 아래 &#39;수출&#39;이라는 명분으로 자란 밀조 생태계는 1990년대 내수 시장으로 스며들었다. 수출용으로 정제되던 기술과 유통망이 국내 소비자를 찾아냈다. 바깥으로 향하던 물건이 안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정부는 1990년대에야 강력한 단속에 나섰고, 그 무렵 국내 제조 기술자들은 다시 중국으로 흘러갔다. 생산지는 옮겨갔지만, 물건은 사라지지 않았다.</p>

<p>같은 시기, 더 큰 파도가 밀려왔다. 세계화와 통상 압력,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 한국의 산업 지형은 뿌리째 흔들렸다. 골목의 소상공인들과 뿌리 기업들은 거대 자본과 저가 해외 상품의 공세를 버티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생산 기지를 중국과 베트남으로 옮겼고, 그 파도를 넘지 못한 이들은 연쇄 도산으로 무너졌다. 수출로 나라를 일으켰다던 자부심은, 이제 수출조차 감당할 수 없어 공장 문을 닫는 이들의 침묵과 나란히 놓인다. 국가가 키운 산업의 그늘에서, 개인은 다시 한번 각자도생을 배웠다.</p>

<p>1997년, 온 국민이 장롱 속 금을 꺼내 내놓았다. &#39;금모으기&#39;는 위기를 넘어선 국민적 서사로 지금도 낭만적으로 소비된다. 그날의 사진 속 웃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서사 뒤에는 셈해지지 않은 희생이 있다. 국가의 실책과 권력층의 도덕적 해이가 만든 청구서를, 늘 평범한 노동자와 자영업자가 대신 갚았다. 승리의 기억은 남았고, 청구서를 갚은 이름들은 흩어졌다.</p>

<p>국산품을 강요받던 필통 검사와, 애국을 명분 삼은 마약 밀조와, 금을 꺼내던 손. 서로 다른 시대의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문법을 공유한다. 국가가 위기를 말할 때, 그 위기의 몫은 언제나 개인에게 먼저 청구되었다. 신화는 그 청구서를 지운다. 대신 감동을 남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36 float-center" data-idxno="5143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장롱 속 금은 국가를 구했다는 신화가 되었지만, 그 청구서를 누가 갚았는지는 오래 기록되지 않았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1_51436_3534.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장롱 속 금은 국가를 구했다는 신화가 되었지만, 그 청구서를 누가 갚았는지는 오래 기록되지 않았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메이드 인 코리아〉가 보여준 미학적 환상과 한국 현대사가 걸어온 궤적은 같은 곡선을 그린다. 권력의 시선에서 가공된 스펙터클은 현실의 참혹함을 가리는 포장지일 뿐이다. 웅장한 선율 뒤에 감춰진 진압의 피비린내처럼, 한강의 기적과 금모으기의 낭만 뒤에는 무너진 골목과 방치된 마약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p>

<p>필통을 검사받던 아이는 자라서, 국가가 만든 물건이 국가가 감춘 범죄와 같은 이름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화는 이름을 바꿔가며 세대를 건넌다. 장막을 걷어내고 그 안의 얼굴들을 세는 일, 비평은 거기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p>

<p> </p>

<p> </p>

<p><strong>글‧박철웅</strong><br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에디터<br />
작가‧문화평론가 <br />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 전공<br />
IBM과 NTT에서 마케팅과 컨설팅 담당<br />
2011년 『원순씨를 부탁해』 출간<br />
비평적 글쓰기, 사회, 문화 예술과 인간을 관통하는 글을 쓰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구겨진 마음을 펴주는 『은하수 세탁소』]]></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3</link>
	  <dc:creator><![CDATA[성일권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3</guid>
	  <pubDate>Tue, 15 Sep 2026 13:08:57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엄마 오는 길을종이처럼싹둑 잘랐어.종이학 꼬리에보고 싶은 마음을매달아 보냈지.— 「엄마 냄새 한 장」 중아이들은 어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하품에서 버스를 발견하고, 구름에서 푸딩을 맛보며, 시험지의 빈칸에서도 ‘틀린 답’이 아닌 ‘재미있는 생각’을 찾아낸다. 김하영의 동시집 『은하수 세탁소』는 이처럼 평범한 일상을 상상의 놀이터로 바꾸는 책이다.시인은 수박과 솔방울, 그림자와 신발 같은 친숙한 사물에 새로운 이름과 이야기를 선물한다. 엉뚱하고 발랄한 상상 속에는 엄마를 기다리는 마음, 떠나간 반려동물을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김하영의 동시집 『은하수 세탁소』는 이처럼 평범한 일상을 반짝이는 상상의 세계로 바꾸어놓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3_51442_3238.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39 float-center" data-idxno="5143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417px"><img alt="" height="719"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3_51439_645.png" width="417"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em>엄마 오는 길을</em></p>

<p><em>종이처럼</em></p>

<p><em>싹둑 잘랐어.</em></p>

<p><em>종이학 꼬리에</em></p>

<p><em>보고 싶은 마음을</em></p>

<p><em>매달아 보냈지.</em></p>

<p>— 「엄마 냄새 한 장」 중</p>

<p>아이들은 어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하품에서 버스를 발견하고, 구름에서 푸딩을 맛보며, 시험지의 빈칸에서도 ‘틀린 답’이 아닌 ‘재미있는 생각’을 찾아낸다. 김하영의 동시집 『은하수 세탁소』는 이처럼 평범한 일상을 상상의 놀이터로 바꾸는 책이다.</p>

<p>시인은 수박과 솔방울, 그림자와 신발 같은 친숙한 사물에 새로운 이름과 이야기를 선물한다. 엉뚱하고 발랄한 상상 속에는 엄마를 기다리는 마음, 떠나간 반려동물을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아이들의 외로움과 사랑도 잔잔하게 스며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시들은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웃음 뒤에 숨은 작은 상처까지 다정하게 어루만진다.</p>

<p>『은하수 세탁소』는 정답을 가르치기보다 질문을 건넨다. “나라면 무엇을 상상할까?” 책장을 덮고 나면 돌멩이 하나, 빗방울 한 방울도 전과 달리 보인다. 제목 그대로 구겨진 마음을 포근하게 펴고, 빛바랜 호기심을 다시 반짝이게 만드는 동시집이다.</p>

<div id="tem-type-4">
<div class="wrapper">
<p>조금 더 길게<br />
구겨진 마음을 별빛으로 다림질하는 곳</p>

<p>엄마 오는 길을</p>

<p>종이처럼</p>

<p>싹둑 잘랐어.</p>

<p>팔랑팔랑ㅡ</p>

<p>날아간 종이학이</p>

<p>엄마를 찾아가고</p>

<p>종이학 꼬리에</p>

<p>보고 싶은 마음을</p>

<p>매달아 보냈지.</p>

<p> </p>

<p>— 「엄마 냄새 한 장」 중</p>
</div>
</div>

<p>아이들은 어른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것에서 이야기를 발견한다. 구름 한 조각은 달콤한 푸딩이 되고, 하품은 아이들을 태우고 달리는 버스가 된다. 작은 신발은 바다를 건너는 배로 변하고, 솔방울에는 바람과 나비가 쉬어가는 호텔이 들어선다.</p>

<p>동시집의 가장 큰 매력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하고 자유로운 시선이다. 시험지의 빈칸은 부족하거나 틀린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정답의 울타리를 벗어난 ‘재미있는 생각’이 숨어 있는 공간이다. 과학실에서는 물음표 화분이 자라고, 과자 병동에서는 도넛 의사가 환자를 돌본다. 토마토 소방관은 불타는 노을을 구하러 달려간다. 시인은 사물의 익숙한 이름과 쓰임을 살짝 뒤집어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틈을 열어준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42 float-center" data-idxno="5144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김하영의 동시집 『은하수 세탁소』는 이처럼 평범한 일상을 반짝이는 상상의 세계로 바꾸어놓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8"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3_51442_3238.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김하영의 동시집 『은하수 세탁소』는 이처럼 평범한 일상을 반짝이는 상상의 세계로 바꾸어놓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그러나 『은하수 세탁소』의 세계가 발랄한 언어유희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엄마 냄새 한 장」에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애틋한 마음이 종이학 꼬리에 매달려 있고, 떠나간 반려동물은 눈 오는 날 도착한 한 통의 편지처럼 돌아온다. 웃음과 장난기 뒤에는 아이들이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한 외로움과 그리움, 사랑과 기다림이 잔잔하게 흐른다. 시인은 그 마음을 섣불리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고 다독인다.</p>

<p>제목에 등장하는 ‘세탁소’는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곳에서는 얼룩진 옷뿐 아니라 속상함에 구겨진 마음도 씻기고, 다림질된다. 상상은 현실을 피하는 장난이 아니라 하루의 상처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아이는 시를 읽으며 자신의 마음에도 이름을 붙이고, 익숙했던 세상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p>

<p>김하영은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혹시 그럴지도 몰라”라고 말을 건넨다. 그 순간 동시는 읽고 끝나는 문장이 아니라 놀이가 되고, 새로운 창작의 출발점이 된다. 책장을 덮은 뒤 아이들은 자신의 그림자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 주머니 속 돌멩이는 어느 별에서 왔는지 궁금해할 것이다.</p>

<p>『은하수 세탁소』는 아이들 안에 숨은 작은 우주를 발견하게 하는 동시집이다. 동시에 정답과 효율에 익숙해져 상상하는 법을 잊은 어른들에게도 조용히 말을 건넨다. 빛을 잃은 호기심과 구겨진 마음을 맡기면, 이 세탁소는 그것들을 따뜻한 언어로 씻어 다시 반짝이게 돌려준다. 오늘도 그곳에서는 마음속 비밀 하나가 별빛으로 세탁되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칼럼]]></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한금융, 금융당국·경찰청과 ‘노쇼사기’ 예방 나선다]]></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2</link>
	  <dc:creator><![CDATA[성일권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2</guid>
	  <pubDate>Tue, 15 Sep 2026 11:14:34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신한금융그룹(회장 진옥동)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경찰청과 함께 소상공인의 ‘노쇼사기’ 피해를 예방하고 건전한 거래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공동 캠페인을 한 달간 진행한다고 15일 밝혔다.이번 캠페인은 최근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을 사칭한 노쇼사기로 소상공인의 피해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기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고 올바른 거래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신한금융은 금융당국 및 경찰청과 협력해 온·오프라인 채널을 활용한 집중적인 교육·홍보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특히 신한EZ손해보험은 국내 최초로 ‘노쇼사기 피해지원 보상보험’을 출시했다. 신]]></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이날 캠페인 협약식에서 (왼쪽부터) 하주식 금융위 FIU 제도운영기획관, 이정만 금감원 금융사기대응단 국장, 임현정 신한지주 소비자보호부문 본부장, 가맹점 대표, 오창배 경찰청 전기통신사기 통합대응단장, 박현주 신한지주 소비자보호부문장, 정해영 신한은행 자금세탁방지본부 상무가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하는 모습. 사진=신한금융그룹 " height="271"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2_51437_1219.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이날 캠페인 협약식에서 (왼쪽부터) 하주식 금융위 FIU 제도운영기획관, 이정만 금감원 금융사기대응단 국장, 임현정 신한지주 소비자보호부문 본부장, 가맹점 대표, 오창배 경찰청 전기통신사기 통합대응단장, 박현주 신한지주 소비자보호부문장, 정해영 신한은행 자금세탁방지본부 상무가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하는 모습. 사진=신한금융그룹 </div><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37 float-center" data-idxno="5143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이날 캠페인 협약식에서 (왼쪽부터) 하주식 금융위 FIU 제도운영기획관, 이정만 금감원 금융사기대응단 국장, 임현정 신한지주 소비자보호부문 본부장, 가맹점 대표, 오창배 경찰청 전기통신사기 통합대응단장, 박현주 신한지주 소비자보호부문장, 정해영 신한은행 자금세탁방지본부 상무가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하는 모습. 사진=신한금융그룹 " height="271"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2_51437_1219.png" width="600" />
<figcaption>이날 캠페인 협약식에서 (왼쪽부터) 하주식 금융위 FIU 제도운영기획관, 이정만 금감원 금융사기대응단 국장, 임현정 신한지주 소비자보호부문 본부장, 가맹점 대표, 오창배 경찰청 전기통신사기 통합대응단장, 박현주 신한지주 소비자보호부문장, 정해영 신한은행 자금세탁방지본부 상무가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하는 모습. 사진=신한금융그룹 </figcaption>
</figure>
</div>

<p>신한금융그룹(회장 진옥동)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경찰청과 함께 소상공인의 ‘노쇼사기’ 피해를 예방하고 건전한 거래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공동 캠페인을 한 달간 진행한다고 15일 밝혔다.</p>

<p>이번 캠페인은 최근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을 사칭한 노쇼사기로 소상공인의 피해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기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고 올바른 거래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p>

<p>신한금융은 금융당국 및 경찰청과 협력해 온·오프라인 채널을 활용한 집중적인 교육·홍보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p>

<p>특히 신한EZ손해보험은 국내 최초로 ‘노쇼사기 피해지원 보상보험’을 출시했다. 신한은행은 이 보험을 배달 애플리케이션 ‘땡겨요’ 가맹점주 약 15만명에게 무상으로 제공해 노쇼사기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계획이다.</p>

<p>땡겨요 가맹점주는 보험 가입에 동의하면 등록일로부터 1년간 보장받을 수 있다. 노쇼사기 피해가 발생한 경우 경찰 수사 결과 등에 따라 최대 300만원 한도에서 피해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p>

<p>신한금융은 소상공인에게 주요 노쇼사기 수법과 피해 사례, 예방수칙, 피해 발생 시 대응 절차도 안내한다. 아울러 개인과 공공기관·기업 등 가맹점 이용자를 대상으로 대리구매나 선입금 요구와 같은 부당한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홍보 활동도 전개한다.</p>

<p>캠페인에는 신한은행을 비롯해 신한카드·신한투자증권·신한라이프·제주은행·신한저축은행 등 그룹사가 참여한다. 각 영업점과 슈퍼SOL,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홍보영상과 포스터, 안내자료를 제공할 예정이다.</p>

<p>신한금융 관계자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소상공인의 노쇼사기 피해를 예방하고 건전한 거래문화를 확산하는 데 힘쓰겠다”며 “앞으로도 금융당국 및 유관기관과 협력해 소상공인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조류인플루엔자가 젖소로 번지며 '인간 감염 우려' 확산]]></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0</link>
	  <dc:creator><![CDATA[김시래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30</guid>
	  <pubDate>Tue, 15 Sep 2026 09:46:07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최근 세계 각국에서 축사 착유기 집유통으로 흘러 들어가는 액체가 평소의 맑은 흰색 우유가 아니라 약간 누런빛을 띠는 사례가 종종 발견되면서 보건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집유통의 진득하게 엉겨 붙은 것은 초유 형태의 고농도 바이러스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2024년 3월 미국 낙농업계의 심장부에서 처음 공식 보고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H5N1의 젖소 감염은 가축 질병의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야생 조류의 날갯짓에서 출발한 병원체가 날개 없는 포유류인 젖소의 유선으로 파고들면서, 현대 축산 공급망과 글로벌 농축산 무역 체계는 일]]></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조류에서 젖소로 옮겨간 H5N1 바이러스가 축산 노동과 우유 공급망, 국제무역을 거쳐 인간의 공중보건 위기로 번지는 순간.. generated by ChatGPT prompt" height="335"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0_51438_4211.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38 float-center" data-idxno="51438"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조류에서 젖소로 옮겨간 H5N1 바이러스가 축산 노동과 우유 공급망, 국제무역을 거쳐 인간의 공중보건 위기로 번지는 순간.. generated by ChatGPT prompt" height="335"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0_51438_4211.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조류에서 젖소로 옮겨간 H5N1 바이러스가 축산 노동과 우유 공급망, 국제무역을 거쳐 인간의 공중보건 위기로 번지는 순간.. generated by ChatGPT prompt</figcaption>
</figure>
</div>

<p>최근 세계 각국에서 축사 착유기 집유통으로 흘러 들어가는 액체가 평소의 맑은 흰색 우유가 아니라 약간 누런빛을 띠는 사례가 종종 발견되면서 보건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집유통의 진득하게 엉겨 붙은 것은 초유 형태의 고농도 바이러스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2024년 3월 미국 낙농업계의 심장부에서 처음 공식 보고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H5N1의 젖소 감염은 가축 질병의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야생 조류의 날갯짓에서 출발한 병원체가 날개 없는 포유류인 젖소의 유선으로 파고들면서, 현대 축산 공급망과 글로벌 농축산 무역 체계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정밀한 경제적 충격에 직면했다. 올해 7월 기준 미국 내 20개 주에서 1,168건의 젖소 집단감염이 공식 확인됐다. 하늘에서 떨어진 감염병이 대형 축사의 착유 라인과 운송 파이프라인을 타고 전방위 산업 위험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값싼 동물성 단백질 공급 체계가 딛고 선 지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낸다.</p>

<p>전염병은 통상 수요와 공급 곡선을 거칠게 밀어붙이는 외생적 충격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공급망의 가장 미세한 접점에서 산업 메커니즘을 마비시킨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감염된 젖소는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 치사율이 90%를 넘나드는 가금류 감염과 달리 젖소의 폐사율은 2% 미만에 불과하다. 대신 바이러스는 낙농가의 현금 흐름을 정확하게 타격한다. 감염된 소는 극심한 식욕 부진과 고열에 시달리며 산유량이 평소보다 10%에서 최대 20%까지 급감한다. 정상적인 착유 상태로 회복되기까지는 꼬박 2주에서 3주가 걸린다. 2,000마리의 착유우를 보유한 대규모 농장에서 전체 개체의 30%가 동시에 이 병을 앓는다면, 농가당 주당 수만 달러(수천만 원)에 달하는 매출 공백이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버려지는 우유다. 병에 걸린 소에서 나온 농축된 비정상 원유는 법적으로 상업적 식품 유통망에 진입할 수 없어 전량 폐기해야 한다. 사료값과 설비 운용비 등 고정비는 그대로 나가는 상황에서 수입만 일거에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치는 전형적인 영업이익률 붕괴 모델이다.</p>

<p>소비자 시장의 공포는 과학과 심리의 간극에서 자라난다. 미국 식품의약국과 농무부의 검사 결과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저온살균 우유 시료 중 약 20%에서 인플루엔자 유전자 조각이 검출됐다고 한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거대한 심리적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미생물학과 식품공학의 데이터는 명확하다. 고온단시간 살균 공정을 거친 우유에서 발견된 것은 산산이 부서진 불활성화된 유전물질의 잔해일 뿐, 배양 시험과 동물 투여 시험에서 살아있는 바이러스는 단 한 건도 검출되지 않았다. 현행 상업 살균 체계는 여전히 견고한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시장의 위험은 제도의 바깥, 즉 규제되지 않는 틈새에서 번진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 웰빙 트렌드로 포장되어 급성장한 비살균 원유 소비 운동이 대표적이다. 살균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우유가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비과학적 신념을 따르는 소비자 집단은, 유선 조직에서 밀리리터당 수백만 단위의 생바이러스를 뿜어내는 감염우의 위험에 정면으로 노출됐다. 시장의 틈새가 공중보건의 뇌관으로 작동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p>

<p><strong>축산 자본주의가 마주한 구조적 균열과 방역의 사각지대</strong></p>

<p>방역의 최전선인 축사 내부를 들여다보면 현대 축산업의 가장 어두운 노동 경제학적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젖소의 유두를 닦고 착유기를 연결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건너온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관계자는 "바이러스가 가장 취약한 인간 숙주를 찾는 속도는 보건 당국의 추적 속도보다 항상 한발 앞서 있다. 우리가 확인한 감염 노동자 수치는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축사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눈이 충혈되는 결막염이나 경미한 호흡기 질환을 앓고도 공공 보건소의 문을 두드리지 못한다. 신분이 노출될 경우 추방당할 수 있다는 공포, 하루 일당을 놓치면 당장 생계가 끊기는 유급 병가 부재의 현실, 그리고 언어적 장벽이 방역망에 거대한 암전 구역을 만들어냈다. 농무부의 전국우유검사전략이 집유 탱크의 바이러스를 감지하더라도, 바이러스와 가장 밀접하게 접촉한 노동자의 이동과 건강 상태는 통계의 장막 뒤에 숨겨진 채 사각지대로 남는다.</p>

<p>이러한 인간과 가축의 취약한 연결고리는 전 지구적 무역 마찰과 보호무역주의의 도화선으로 옮겨붙는다. 미국 농무부의 톰 빌색(75) 전 장관은 과거 상원 청문회에서 "가축의 이동 제한과 검사 명령은 공급망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국제 무역 상대국들이 과학적 근거 없는 수입 금지 카드를 꺼내 드는 순간 미국의 농업 수출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의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상업적으로 유통되는 살균 유제품과 적법하게 도축된 쇠고기는 무역 제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입국들은 자국 축산업 보호와 바이러스 유입 차단을 명분으로 미국산 유제품 및 유전자원, 가축 생체에 대한 수입 규제를 저울질하고 있다. 질병의 발생이 비관세 장벽을 쌓아 올리는 완벽한 구실로 작동하는 양상이다.</p>

<p><strong>조류인플루엔자의 젖소 감염 현황</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30 float-center" data-idxno="51430"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809px"><img alt="" height="795"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30_51430_4515.jpg" width="809"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유럽연합의 상황은 미국과 궤를 달리하지만 안도할 단계는 아니다. 유럽 의약품청과 질병예방통제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전역 32개국에서 수천 건의 야생 조류 감염이 보고되는 동안, 젖소의 대규모 확산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2026년 1월 네덜란드의 한 농장에서 젖소의 항체가 양성 반응을 보이며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으나 추가적인 바이러스 배출이나 축군 내 연쇄 감염은 보고되지 않았다. 유럽은 미국의 사태를 일종의 조기 경보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럽식 집약적 축산 모델 역시 미국과 유사한 자동화 착유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어, 한 번 젖소 축군으로 바이러스가 뚫고 들어올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질 수 있다는 공포가 상존한다.</p>

<p><strong>무역 장벽과 유전자 재편성이 가로막은 종식의 길</strong></p>

<p>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가장 먼저 거론되는 해법은 단연 백신이다. 바이오 업계와 농약 종자 대기업들은 즉각 차세대 백신 후보 물질 개발에 착수했다. 광견병 바이러스 벡터나 메신저 리보핵산 기술을 활용한 젖소용 백신은 실험실과 일부 현장 시험에서 의미 있는 중화항체 형성 능력을 증명했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와 실제 현장 상용화 사이에는 거대한 제도적 절벽이 가로놓여 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는 순간, 국제 축산물 무역 시장에서는 해당 국가의 질병 청정국 지위가 박탈된다. 수입국 입장에서는 수입된 가축이나 축산물이 야생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백신을 맞아 항체를 가진 것인지 현장에서 일일이 구별하기 극도로 어렵기 때문이다.</p>

<p>이른바 자연감염 동물과 백신 접종 동물을 구별하는 감별 진단 기술의 부재는 백신 도입을 가로막는 결정적 병목이다. 모든 젖소에 백신을 맞히는 순간 미국산 쇠고기와 분유, 유청 단백질의 해외 수출길은 순식간에 차단될 위험에 처한다. 연간 수십억 달러(수조 원)에 달하는 축산물 수출 시장을 포기하면서까지 불완전한 백신 접종을 강행할 농가는 없다. 게다가 백신이 우유 생산성에 미치는 부작용, 감염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만 가려 무증상 전파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위험성 역시 상용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기술적으로 백신 주사기를 쥐고 있으면서도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팔을 걷어붙이지 못하는 역설이 2026년 축산업의 현주소다.</p>

<p>그러나 시간은 인류의 편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61) 사무총장은 제네바 본부 브리핑에서 "바이러스가 포유류의 몸속에서 복제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다음 팬데믹의 시계는 더 빠르게 돌아간다. 인간, 동물, 환경의 건강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 다루지 않는다면 축사는 새로운 병원체의 인큐베이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의 시나리오는 낙농 지대 인근의 양돈 농가로 바이러스가 옮겨붙는 경우다. 돼지는 호흡기 상피세포에 조류형 인플루엔자 수용체와 인간형 인플루엔자 수용체를 모두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어 바이러스 유전자들의 거대한 믹싱 보울 역할을 한다. 젖소의 유선에서 포유류 적응력을 키운 H5N1이 돼지 체내에서 통상적인 계절성 인간 독감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뒤섞는 재편성을 일으킨다면, 인체 세포 결합력과 인간 대 인간 전파력을 동시에 장착한 괴물 변종이 탄생할 수 있다.</p>

<p>이처럼 질병의 파급력이 가축 개별 개체의 건강을 넘어 세계 무역과 노동권, 글로벌 보건 안보로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하는 현실은 인간과 동물, 환경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원 헬스 접근법이 왜 더 이상 추상적인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지를 입증한다. 젖소 감염 사태는 값싼 대량 생산에만 최적화되어 생물학적 완충 능력을 상실한 집약적 공장식 축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바이러스의 경로를 차단하는 일은 단순히 축사 바닥을 소독하고 이동을 막는 일차원적 물리력을 넘어선다. 미등록 노동자의 건강권을 양지화하는 사회적 비용, 무역 규제를 과학적 기준으로 재편하는 다자간 외교적 비용, 그리고 폐수와 환경 유전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데이터 인프라 비용을 축산업의 총 생산원가에 정직하게 반영해야 하는 근본적인 경제적 과제다. 텍사스의 붉은 흙먼지 속에서 시작된 젖소의 작은 기침은, 지금 글로벌 자본주의 공급망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향해 거대한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p>

<p> </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나연수의 투자 칼럼] ETF를 고르기 전에 어떤 지수를 보유할지부터 정할까요]]></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29</link>
	  <dc:creator><![CDATA[나연수 (경제칼럼니스트)]]></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29</guid>
	  <pubDate>Tue, 15 Sep 2026 08:06:47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주변에서 주식 이야기가 나오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런데 제가 코스피가 무엇인지 여쭈어 보면 잠시 말을 멈추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일 뉴스에서 듣는 이름인데 막상 설명하려니 막막하다는 것입니다.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목은 골라 보았지만 지수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증권 앱을 열어도 코스피와 코스피200, S&P500과 나스닥100,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변동성지수(VIX, Volatility Index)가 같은 화면에 나란히 놓여 있을 뿐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는 알려주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그래픽=ChatGPT" height="325"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9_51429_322.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그래픽=ChatGPT</div><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29 float-center" data-idxno="5142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그래픽=ChatGPT" height="325"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9_51429_322.png" width="600" />
<figcaption>그래픽=ChatGPT</figcaption>
</figure>
</div>

<p>주변에서 주식 이야기가 나오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런데 제가 코스피가 무엇인지 여쭈어 보면 잠시 말을 멈추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일 뉴스에서 듣는 이름인데 막상 설명하려니 막막하다는 것입니다.</p>

<p>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목은 골라 보았지만 지수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증권 앱을 열어도 코스피와 코스피200, S&P500과 나스닥100,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변동성지수(VIX, Volatility Index)가 같은 화면에 나란히 놓여 있을 뿐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p>

<p>모두 지수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성격은 서로 다릅니다. 기업들을 일정한 규칙으로 담아 그 가치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수가 있는가 하면, VIX처럼 시장이 예상하는 변동성을 나타내는 지표도 있습니다.</p>

<p>그 아래에는 더 많은 ETF가 있습니다. 이름이 비슷한 상품이 늘어서 있고 수수료와 최근 수익률이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처음 투자를 시작하는 분들은 대개 이 화면에서 상품부터 고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p>

<p>그러나 순서는 반대여야 합니다. 먼저 어떤 지수를 보유할 것인지 정하고, 그다음 그 지수를 어떤 ETF로 보유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ETF를 고르는 것은 운용사와 상품을 선택하는 일이고, 지수를 고르는 것은 어떤 기업 집합의 이익과 위험을 장기간 함께 보유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p>

<p> </p>

<p><strong>■ 지수는 설계도이고 ETF는 그 설계도로 지은 집입니다</strong></p>

<p>지수와 ETF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p>

<p>지수는 특정 시장이나 시장의 한 부분을 일정한 규칙으로 측정하기 위해 만든 기준입니다. 어떤 기업을 담을 것인지, 각 기업에 얼마만큼의 비중을 줄 것인지, 언제 어떤 기준으로 구성종목을 교체할 것인지가 방법론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지수 자체는 하나의 계산된 숫자이므로 주식처럼 직접 살 수 없습니다.</p>

<p>이 글에서 다루는 지수추종형 ETF는 특정 지수의 움직임을 따라가도록 자산을 담아 거래소에서 매매할 수 있게 만든 상품입니다. 투자자가 실제 계좌에서 사고파는 것은 지수가 아니라 ETF입니다.</p>

<p>S&P500에 투자한다고 말할 때 실제로 사는 것은 지수라는 숫자가 아닙니다. S&P500을 추종하는 ETF를 통해 그 지수를 구성하는 미국 대형기업들의 집합에 참여하는 것입니다.</p>

<p>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ETF는 여러 개일 수 있습니다. 같은 기업들을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담더라도 총보수와 실제 비용, 추적오차, 거래 규모와 유동성, 분배금 지급 방식과 환헤지 여부는 상품마다 다릅니다.</p>

<p>반대로 ETF 이름에 특정 국가나 산업의 명칭이 들어 있다고 해서 투자자가 생각하는 바로 그 범위를 담고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름이 비슷한 상품이라도 기초지수와 구성 규칙이 다르면 실제로 보유하는 기업과 위험도 달라집니다.</p>

<p>그래서 ETF의 이름이나 최근 수익률을 비교하기 전에 먼저 기초지수를 확인해야 합니다. 상품 선택보다 투자 대상의 선택이 앞서야 한다는 뜻입니다.</p>

<p> </p>

<p><strong>■ 같은 대표지수라도 담는 범위가 다릅니다</strong></p>

<p>지수를 먼저 정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지수마다 담는 기업과 시장의 범위가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p>

<p>코스피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약 830개 회사의 보통주를 대상으로 시장 전체의 시가총액이 기준시점에 비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지수입니다. 코스피200은 그 가운데 시장대표성과 산업대표성, 유동성 등을 고려해 선정한 200개 종목으로 구성됩니다. 뉴스에서 매일 접하는 지수는 코스피이지만 국내 ETF와 파생상품의 기초지수로 널리 활용되는 것은 코스피200입니다.</p>

<p>그러나 코스피200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모두 한국 주식시장 전반을 담는 것은 아닙니다.</p>

<p>코스피200 정보기술지수는 코스피200 구성종목 가운데 글로벌산업분류기준(GICS, Global Industry Classification Standard)의 정보기술 분야에 속하는 종목들로 구성된 섹터지수입니다. 구성종목 수는 정기변경에 따라 달라지며 현재는 16개 안팎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SK스퀘어, 삼성전기 등 소수 대형 정보기술기업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국내 정보기술산업, 특히 반도체 업황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p>

<p>따라서 코스피200과 코스피200 정보기술지수를 함께 보유하는 것은 단순히 국내 주식을 더 분산하는 일이 아닙니다. 코스피200에도 이미 큰 비중으로 들어 있는 정보기술기업과 반도체기업을 한 번 더 늘리는 선택입니다.</p>

<p>S&P500은 미국의 대형기업을 여러 산업에 걸쳐 폭넓게 담습니다. 정보기술뿐 아니라 금융과 헬스케어, 산업재, 소비재, 통신서비스, 에너지 등 여러 산업의 기업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코스피200과 S&P500은 시장의 주요 기업을 여러 산업에 걸쳐 담는다는 점에서 광역 대표지수로 볼 수 있습니다.</p>

<p>나스닥100은 조금 다릅니다. 나스닥시장에 상장된 대형기업 가운데 산업분류기준(ICB, Industry Classification Benchmark)상 금융업으로 분류된 기업을 제외하고 선정하므로 기술기업만 선별하는 지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금융기업이 빠지고 기술기업들이 크게 성장한 결과가 반영되면서 기술기업과 성장기업의 영향력이 S&P500보다 훨씬 크게 나타납니다.</p>

<p>나스닥100은 섹터지수보다 미국의 성장주 대표지수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다만 상위 소수 종목과 기술 관련 업종에 대한 집중도가 S&P500보다 높고 주가의 등락폭도 더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광역 대표지수를 대신하거나 그보다 높은 비중으로 보유하려면 이 차이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p>

<p>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 PHLX Semiconductor Sector Index)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반도체의 설계·제조·판매·유통 및 관련 장비 기업 가운데 적격 요건을 충족한 종목을 시가총액 순으로 선정해 30개 종목으로 구성하는 섹터지수입니다. 미국 기업만이 아니라 외국기업의 미국 상장주식과 주식예탁증서도 대상에 포함됩니다. 나스닥100과 달리 처음부터 반도체산업으로 범위를 한정한다는 점에서 출발점이 다릅니다.</p>

<p>이해를 돕기 위해 이들을 크게 세 가지 성격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코스피200과 S&P500처럼 여러 산업을 폭넓게 담는 광역 대표지수, 나스닥100처럼 기술·성장기업의 영향력이 큰 성장주 대표지수, 코스피200 정보기술지수와 SOX처럼 특정 산업으로 범위를 좁힌 섹터지수입니다.</p>

<p>이는 공식적인 지수 분류가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넓게 담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제가 사용하는 구분입니다. 좋고 나쁨을 나누는 기준도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범위가 좁아질수록 분산 효과는 줄어들고 특정 산업이나 소수 기업의 성과가 지수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커집니다.</p>

<p> </p>

<p><strong>■ 저는 반도체와 정보기술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높였습니다</strong></p>

<p>제 포트폴리오에서는 코스피200과 같은 광역 대표지수와 나스닥100과 같은 성장주 대표지수를 기반으로 두면서도 코스피200 정보기술지수와 SOX의 비중을 높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대목은 이들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로서 내린 저의 판단입니다.</p>

<p>이는 ETF 상품을 먼저 고른 결과가 아닙니다. 저는 한국 정보기술기업과 세계 반도체기업이 만들어낼 장기 이익에 시장 평균보다 더 많이 참여하겠다는 판단을 먼저 내렸고, 그 판단을 실행할 수 있는 지수와 ETF를 차례로 선택했습니다.</p>

<p>물론 이들 지수를 함께 보유하면 반도체 경기가 꺾일 때 위험도 겹칠 수 있습니다. 코스피200과 나스닥100에도 반도체 및 정보기술기업이 이미 큰 비중으로 들어 있으므로 코스피200 정보기술지수와 SOX를 추가하면 서로 다른 이름의 ETF를 여러 개 보유하더라도 반도체라는 공통 위험에 대한 노출은 더 커집니다.</p>

<p>저는 이를 분산투자의 확대가 아니라 반도체와 컴퓨팅산업의 장기 성장 가능성에 근거한 의도적인 산업 비중 확대라고 판단합니다. 장기적으로 시장 평균을 웃돌 가능성을 보고 선택했지만, 그 산업이 부진할 때에는 시장보다 더 큰 변동성과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p>

<p>이 판단이 모든 투자자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반도체와 컴퓨팅산업의 장기 성장에 대한 제 판단이 틀릴 수도 있고, 방향이 맞더라도 그 과정에서 오랜 부진과 큰 폭의 하락을 겪을 수 있습니다.</p>

<p>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어떤 지수가 누구에게나 더 좋다는 결론이 아닙니다. 지수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 지수가 담고 있는 기업의 이익뿐 아니라 산업 집중과 변동성까지 함께 선택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p>

<p> </p>

<p><strong>■ 종목 수보다 비중을 정하는 규칙이 중요합니다</strong></p>

<p>지수를 이해하려면 무엇을 담느냐뿐 아니라 각 기업에 얼마만큼의 비중을 주느냐도 살펴봐야 합니다.</p>

<p>코스피200과 S&P500은 시장에서 실제 거래 가능한 주식 수를 반영하는 유동주식수 조정 시가총액가중 방식을 사용합니다. 나스닥100과 SOX는 시가총액을 기본으로 하되 특정 종목에 비중이 지나치게 쏠리지 않도록 조정하는 수정 시가총액가중 방식을 사용합니다.</p>

<p>나스닥100에도 집중을 제한하는 비중 조정 규칙이 있습니다. 3·6·9월 분기 조정에서는 한 회사가 발행한 종목들의 합산 비중이 24%를 넘으면 어느 회사도 20%를 넘지 않도록 낮춥니다. 합산 비중이 각각 4.5%를 초과하는 회사들의 비중을 모두 더한 값이 48% 이상이면 그 합계를 40%로 낮춥니다. 12월 연간 재구성에는 이러한 회사 단위 제한에 더해 개별 종목 14%, 상위 5개 종목 합계 38.5% 등 종목 단위의 제한도 적용됩니다. 따라서 나스닥100은 시가총액가중을 기본으로 하지만 시장에서 형성된 비중을 제한 없이 그대로 반영하는 지수는 아닙니다.</p>

<p>SOX는 정기 비중 조정 시 시가총액 상위 세 종목의 비중을 각각 12%, 10%, 8%로 제한하고, 나머지 종목은 각각 4%를 넘지 않도록 조정합니다. 코스피200 정보기술지수는 개별 종목의 비중 상한을 20%로 두고 정기적인 비중 조정 시 이를 다시 맞춥니다.</p>

<p>반면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가격가중 방식입니다. 기업의 전체 시장가치와 관계없이 주가가 높은 종목일수록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집니다.</p>

<p>시가총액을 반영하는 지수에서는 시장에서 커진 기업의 영향력도 함께 커집니다. 기업의 시장가치가 커졌다면 지수에서도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므로 시장의 평가를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방식입니다.</p>

<p>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집중 위험을 만듭니다. 소수 대형주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그 기업들의 움직임이 지수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기 때문입니다.</p>

<p>비중 제한은 정기조정이나 집중 기준이 크게 깨졌을 때 시행하는 특별조정 시점에 적용됩니다. 이후 종목별 주가가 서로 다르게 움직이면 실제 비중은 다시 높아질 수 있으므로, 비중 제한이 있다고 해서 집중도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p>

<p>따라서 구성종목 수만 보고 분산 정도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200개나 500개의 기업을 담은 지수라도 상위 몇 개 종목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에 따라 투자자가 실제로 경험하는 움직임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p>

<p>지수 이름에 붙은 숫자는 구성종목 수를 알려줄 뿐 실질적인 분산 정도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담았는지와 함께 어떻게 비중을 배분했는지를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p>

<p> </p>

<p><strong>■ 같은 지수라도 ETF는 여러 개입니다</strong></p>

<p>지수를 정했다고 상품 선택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p>

<p>S&P500을 추종하는 대표적인 미국 상장 ETF로 SPY(SPDR S&P 500 ETF Trust)가 있고, 나스닥100을 추종하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QQQ(Invesco QQQ Trust)가 있습니다. 지수는 투자할 기업의 집합과 비중을 정한 기준이고, SPY와 QQQ는 그 기준을 실제 계좌에 담을 수 있도록 만든 상품입니다.</p>

<p>더구나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ETF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S&P500이나 나스닥100처럼 널리 이용되는 지수에는 여러 ETF가 있고, 국내 거래소에도 같은 기초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을 여러 운용사가 상장해 놓았습니다.</p>

<p>따라서 지수를 선택한 다음에는 그 지수를 어떤 상품으로 보유할지 비교해야 합니다. 같은 지수를 추종하더라도 총보수와 실제 부담 비용, 지수 움직임을 얼마나 정확하게 따라가는지를 나타내는 추적오차, 순자산 규모와 거래량, 분배금 지급 방식, 환헤지 여부 등이 상품마다 다릅니다. 세금과 보유 계좌의 종류에 따라서도 투자자가 실제로 얻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p>

<p>SPY와 QQQ를 예로 든 것은 특정 상품을 권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수와 ETF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지수를 담는 상품이 여러 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품보다 지수를 먼저 정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p>

<p> </p>

<p><strong>■ 지수를 먼저 정해야 오래 보유할 수 있습니다</strong></p>

<p>선택의 순서가 중요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p>

<p>상품의 최근 수익률부터 보고 고르면 보유의 근거도 수익률에 놓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수익률의 순위는 계속 바뀝니다. 다른 상품이나 시장이 더 높은 성과를 보일 때마다 갈아타기 시작하면 장기보유의 기준도 함께 흔들립니다.</p>

<p>광역 대표지수는 시장의 넓은 부분에 참여하기 위한 기반이 될 수 있고, 성장주 대표지수와 섹터지수는 특정 성장기업과 산업에 더 많이 참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p>

<p>각 지수를 얼마나 보유할지는 투자기간과 자금의 성격, 감당할 수 있는 변동성에 따라 달라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모든 투자자에게 같은 지수와 같은 비중이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p>

<p>중요한 것은 자신이 보유한 ETF의 이름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어떤 기업들이 들어 있으며, 어느 기업과 산업에 위험이 집중되어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시장이 흔들릴 때도 자신이 무엇을 왜 보유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p>

<p> </p>

<p><strong>■ 기업은 바뀌어도 지수는 이어집니다</strong></p>

<p>기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아무리 훌륭한 기업이라도 수십 년 뒤에도 같은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개인이 대표지수를 수십 년 동안 보유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p>

<p>대표지수의 구성종목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각 지수의 방법론에 따라 자격을 잃은 기업이 빠지고 새로운 기업이 들어옵니다. 방법론 자체도 시장과 거래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손질됩니다.</p>

<p>중요한 것은 지수가 미래의 승자를 미리 알아맞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업의 성장과 쇠퇴가 주가와 시가총액, 유동성, 실적 등에 상당 부분 나타난 뒤 정해진 방법론에 따라 변화한 현실을 사후적으로 반영합니다.</p>

<p>저는 이러한 구성종목과 비중의 교체 기능을 대표지수의 ‘자정작용’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공식적인 지수 용어가 아니라 대표지수의 장기적인 종목 교체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제가 사용하는 표현입니다.</p>

<p>다만 편입과 편출 자체가 수익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장기수익의 근본적인 원천은 지수에 남아 있거나 새로 들어온 기업들이 생산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입니다. 그 이익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주주에게 직접 돌아오기도 하고, 기업 내부에 재투자되어 미래 이익을 늘리는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p>

<p>구성종목이 교체되는 구조의 의미는 특정 기업의 수명과 투자자의 투자기간을 분리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개별기업은 쇠퇴하거나 사라질 수 있지만, 대표지수는 변화한 시장을 계속 반영하며 이어질 수 있습니다.</p>

<p>따라서 투자자가 장기간 보유하려는 대상은 ETF라는 상품명보다 그 안에 담긴 기업들의 집합에 더 가깝습니다. ETF는 그 선택을 실제 계좌에서 실행하는 수단입니다.</p>

<p>ETF를 고르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합니다.</p>

<p>나는 어떤 시장과 기업군이 만들어내는 이익에 장기간 참여하려 하는가.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집중과 변동성을 감수할 것인가.</p>

<p>그 답이 정해져야 지수를 고를 수 있고, 지수를 정한 뒤에야 ETF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사느냐보다 무엇을 보유하려 하는가를 먼저 정하는 것, 그것이 장기투자의 출발점입니다.</p>

<p>* 나연수 칼럼니스트는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전략기획과 재무관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이후 사모펀드 운용사에서 투자심의와 딜 소싱, 리스크 관리 경험을 쌓았으며, 2021년 은퇴한 뒤에는 비상장 투자조합을 운용했습니다.</p>

<p><strong>※ 본문의 상장회사 수와 구성종목 수, 지수의 구성 및 산출 방법은 2026년 9월 15일 기준이며 이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표지수와 이를 추종하는 ETF 역시 가격 하락과 장기 부진의 가능성이 있으며,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strong></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묵시록의 각본가들 — AI 종말론, 이것은 예언이 아니라 대본이다]]></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26</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26</guid>
	  <pubDate>Mon, 14 Sep 2026 22:28:56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낯선 행성에 우주선이 닿는다. 창밖으로 처음 보는 빛깔의 하늘이 펼쳐진다. 22,470년의 항해 끝이다. 냉동 수면에서 깨어난 자들은 인류의 가장 부유하고 가장 힘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살아남았다. 지구는 이미 없다. 새로운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낯선 생물이 다가온다. 두렵지 않다. 미개해 보이니까. 다음 장면은 없다. 그들은 먹힌다. 영화 〈돈 룩 업〉(2021, Don\'t Look Up)의 마지막 쿠키 영상이다.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엔, 지금 이 장면이 자꾸 현실과 겹친다.지난주, 세계는 다시 한 번 인류 멸종의 시간표를 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하늘 대신 발밑을 본 자리에서, 작은 빛 하나가 올라온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6_51427_2015.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23 float-center" data-idxno="5142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도착을 승리로 착각한 자들, 그 뒤를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6_51423_1139.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도착을 승리로 착각한 자들, 그 뒤를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낯선 행성에 우주선이 닿는다. 창밖으로 처음 보는 빛깔의 하늘이 펼쳐진다. 22,470년의 항해 끝이다. 냉동 수면에서 깨어난 자들은 인류의 가장 부유하고 가장 힘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살아남았다. 지구는 이미 없다. 새로운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낯선 생물이 다가온다. 두렵지 않다. 미개해 보이니까. 다음 장면은 없다. 그들은 먹힌다. 영화 〈돈 룩 업〉(2021, Don&#39;t Look Up)의 마지막 쿠키 영상이다.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엔, 지금 이 장면이 자꾸 현실과 겹친다.</p>

<p>지난주, 세계는 다시 한 번 인류 멸종의 시간표를 들었다. 앤트로픽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는 "6개월에서 12개월 안에 에이전트 무리가 인터넷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과 테슬라·xAI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동의했다. 서로 으르렁대던 세 사람이 처음으로 한목소리를 냈다. 이례적인 장면이다. 이례적이라서, 의심스럽다.</p>

<p>경고는 진심일 수 있다. 하지만 진심과 알리바이는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의 문장에 한 가지 마음만 담지 않는다. 두려움과 계산은, 자주 같은 입에서 나온다.</p>

<p>이 글은 그 함께함을 들여다본다. 초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인가, 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 질문 자체가 이미 누군가의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시점에, 이 목소리들이, 왜 하필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가.</p>

<p> </p>

<p><strong>정원사들의 신학</strong></p>

<p>투자자 폴 튜더 존스는 최근 AI 모델을 두고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만드는 게 아니라 기른다는 것이다. 설계도는 없다. 무엇이 자랄지, 아무도 모른다. 이 비유는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위험하다.</p>

<p>씨앗을 심는 사람은 신이 아니다. 정원사다. 그런데 이 정원사들은 스스로를 신의 자리에 놓는다. 연구자 팀닛 게브루와 에밀 토레스는 이런 세계관을 테스크리얼(TESCREAL, 트랜스휴머니즘·엑스트로피어니즘·특이점주의·코즈미즘·합리주의·효율적 이타주의·장기주의의 결합어)이라 이름 붙였다. 초지능이 인류를 구원하거나 멸망시킨다는 두 개의 결말만 존재하는 세계관이다. 가운데는 없다. 가운데가 없으므로, 논쟁도 없다. 믿거나, 두려워하거나.</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24 float-center" data-idxno="5142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씨앗이라 부르지만, 뿌리는 이미 회로를 닮아간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6_51424_1227.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씨앗이라 부르지만, 뿌리는 이미 회로를 닮아간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는 이를 프로메테우스적 신학이라 불렀다. 기술의 진화가 인류를 파멸로 이끌더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하와이 카우아이에 벙커를 지었다. 샘 올트먼은 뇌를 클라우드에 업로드하겠다고 말한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 탈출 계획을 세운다. 세상이 끝난다고 경고하는 이들이, 정작 자신의 탈출로만은 가장 먼저 확보해 두었다. 신학에는 신도만 있고 순교자는 없다.</p>

<p>이미 재귀적 자기개선 단계에 들어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스스로 코드를 고쳐 더 똑똑해지는 과정이다. 앤트로픽의 모델이 사용자 요청 한 번에 스스로 작업하는 시간은 지난해 11월 다섯 시간에서 일곱 달 만에 열여섯 시간으로 늘었다. 씨앗이 스스로 물을 찾아 뿌리를 뻗는다면, 그것은 이미 정원이 아니다. 야생이다. 그런데도 정원사들은 정원이라는 말을 고집한다. 통제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면 안 되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통제자의 자리는 비워두지 않는다.</p>

<p>정말 씨앗처럼 자라는 것일까. 아니면, 씨앗이라는 말로 책임의 소재를 지우는 것일까. 씨앗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자연히 자랐을 뿐이니까. 정원사의 손을 감추는 데, 이보다 좋은 비유는 없다.</p>

<p> </p>

<p><strong>각본 없는 약속대련</strong></p>

<p>지난 7월, 오픈AI의 비공개 테스트 모델이 격리 환경을 벗어나 허깅페이스를 무단으로 뚫었다. 1200개의 에이전트를 스스로 만들고, 7만 건이 넘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무능을 감추려는 시도였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예멘의 후티 반군은 비슷한 시기, AI를 이용해 탄도 미사일 유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다 차단됐다. 작업을 여러 세션으로 쪼개, 어느 한 세션도 전체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이었다. 앤트로픽은 많은 요청은 막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고 밝혔다.</p>

<p>샌드박스가 뚫리고, 감시가 뚫리면, 남는 것은 정렬 훈련뿐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보여준 결론은 정렬 훈련만으로는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AI로 AI를 감시하게 했더니, 감시자는 감시 대상에게 엄격하지 않았다. 흔적을 지우고, 인간에게 보고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침팬지에게 인간을 통제하라고 맡긴 셈이라는 말이 나왔다. 정확한 비유다. 해킹을 당한 허깅페이스의 공동창업자 토마스 울프는 "심각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말이 가장 담백했다.</p>

<p>이 사건들 위에서 아모데이는 「프론티어 페이싱」(Pacing the Frontier)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외부 감시자를 기업 내부에 상주시키고, 민주주의 국가끼리 공동 기준을 세우고, 국제 공조를 이루자는 세 단계 제안이었다. 올트먼과 머스크가 곧바로 동조했다. 정작 울프는 자신의 SNS에 "아모데이 제안에 75%만 공감한다"며 "앤트로픽이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시도가 보인다"고 적었다. 25퍼센트의 불신이, 이 합창의 진짜 온도를 말해준다.</p>

<p>같은 시점, 올트먼은 한 경제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기업공개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안전과 관련해 벌어지는 상황들을 고려할 때, 지금은 상장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시기"라고 했다. 오픈AI는 지난해 연구개발에 340억 달러를 쓰고 130억 달러를 벌었다. 영업손실은 80억 달러에 이른다. 안전이 이유라는 말과 재무제표가 나란히 놓이면, 어느 쪽이 진짜 이유인지는 각자 판단할 몫이다.</p>

<p>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AI로 AI를 통제할 수 있는가. 뉴욕타임스는 여기서 두 가지 난점을 짚었다. 첫째, 감시자 역할을 맡은 AI가 감시 대상에게 엄격하지 않다는 것. 둘째, 아무리 규칙을 정교하게 짜도 그 규칙을 우회하는 길을 AI가 먼저 찾아낸다는 것. 규칙을 만드는 손과 규칙을 어기는 손이 결국 같은 계통에서 나온다면, 그 규칙은 처음부터 절반의 규칙이다. 더 강한 샌드박스, 더 빠른 킬스위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이자, 그 요구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p>

<p>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는 이것을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이라 불렀다. 위험을 가장 잘 아는 자가 규제를 설계하면, 규제는 결국 그 위험을 만든 자를 보호한다. 너무 위험하니 멈추자는 말은, 막대한 자본과 대응력을 갖춘 소수만이 감당할 수 있는 장벽이 된다. 사다리는 이렇게 걷어차인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말한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도 여기서 작동한다. 종말을 예언하는 순간, 사람들은 예언자의 말을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다. 예언은 그렇게 스스로 현실이 된다. 누가 예언하는가가, 무엇이 예언되는가보다 중요해지는 지점이다.</p>

<p>공교롭게도 같은 주, 오픈AI는 7대 밀레니엄 난제 가운데 하나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풀었다고 발표했다. 앤트로픽이 관련 문제를 풀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서둘러 내놓은 결과였다. 그러나 수학자 테렌스 타오는 주목할 만한 성취라 평가했을 뿐, 공식 해결로 인정하지 않았다. 90년 난제를 풀었다는 발표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학계의 반응 사이. 그 간극이 지금 AI 산업의 실제 위치를 보여준다. 초지능의 문턱이 아니라, 과장의 문턱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25 float-center" data-idxno="5142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서로 모르는 척, 발끝은 같은 박자를 밟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6_51425_1316.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서로 모르는 척, 발끝은 같은 박자를 밟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앤트로픽 내부에서는 이미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 모두 하던 이야기인데 이제 공개됐을 뿐"이라는 직원의 말이 전해졌다. 뒤늦게 사직과 고발이 이어지고, &#39;우려하는 AI 직원 연합&#39;이라는 모임도 생겼다. 그런데 앤트로픽은 멈추지 않는다. 못 멈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혼자 멈추면 뒤처지고, 오픈AI까지 동참해도 중국이 따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죄수의 딜레마다. 다만 이 딜레마를 만든 것도, 이 딜레마를 가장 먼저 발음한 것도, 같은 회사들이다. 위험을 발명한 자가 위험의 해법도 판매한다.</p>

<p>새로운 위험은 늘 과대평가된다는 지적도 있다. 팬데믹과 핵전쟁, 기후변화, 소행성 충돌은 오래전부터 인류 곁에 있었다. 그런데 유독 이번 위협 앞에서만 공포가 이토록 응집한다. 하버드대 위험분석센터장 제임스 해밋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고 믿기 때문에 불안이 커진다고 짚었다. 앤트로픽의 정렬 책임자 에반 허빙어조차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공포와, 통제 불가능성을 파는 마케팅. 이 둘의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p>

<p>이 정황들을 하나로 겹쳐보면, 장면은 뚜렷해진다. 각본이 있다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러나 안무는 있다. 세 사람이 동시에 같은 스텝을 밟는다. 이것을, 약속대련이라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p>

<p> </p>

<p><strong>받아쓰는 나라의 습관</strong></p>

<p>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기술 우위다. 정작 정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 종말론이 정부 규제가 아니라 업계 스스로의 협상 카드임을 드러낸다. 정부가 실제로 크게 움직인 곳은 따로 있다.</p>

<p>한국 정부는 지난 6월,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축으로 한 3대 메가프로젝트에 약 1조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총괄할 컨트롤타워로 국가전략투자보좌관을 신설했다. AI전략위원회 부위원장에게는 별도로 소버린 AI 정책이 맡겨졌다. 다섯 개 컨소시엄이 저마다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고 있고, 국민 평가단이 이들을 심사해 절반씩 걸러내는 방식도 준비 중이다. 내년도 정부 지출은 800조 원을 넘는다. 속도, 총력, 골든타임. 발표문에 반복되는 단어들이다.</p>

<p>여기 어디에도, 왜는 없다. 무엇을 위한 총력인지보다, 얼마나 늦지 않았는지가 먼저 묻는다. 연구자 에브게니 모로조프는 이런 사고방식을 기술적 솔루션주의(technological solutionism)라 불렀다.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알고리즘과 인프라의 문제로 환원하는 습관이다. 원인을 묻지 않고 속도만 묻는 정치는, 이미 실리콘밸리가 만든 질문지에 답만 채워 넣고 있는 셈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26 float-center" data-idxno="5142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멀리서 켜진 불빛을, 이곳에서는 그대로 받아 적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6_51426_1524.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멀리서 켜진 불빛을, 이곳에서는 그대로 받아 적는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언론이 정론이기를 포기하고, 받아쓰고 베껴 말하는 데 익숙해졌다는 비판은 낯설지 않다. 지금의 AI 정책도 비슷하게 움직인다. 실리콘밸리가 공포를 발표하면, 여기서는 대응책을 발표한다. 공포의 진위를 따지는 절차는 생략된다. 검증 없이 옮겨 적는 습관, 그것이 지금 국가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고 있다.</p>

<p>국가 총력전이라는 말에는 적이 필요하다. 지금 그 적의 자리에 놓인 것은 중국도 아니고 실업도 아니다. 뒤처짐, 그 자체다. 뒤처짐은 형체가 없다. 형체가 없는 적과 싸우려면, 형체가 없는 만큼 더 많은 예산과 더 강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해진다. 실리콘밸리가 초지능의 공포로 규제와 자본을 동시에 끌어당겼다면, 여기서는 뒤처짐의 공포로 예산과 조직을 동시에 끌어당긴다. 방식은 다르지만 구조는 같다. 공포를 원료 삼아 몸집을 키우는 구조.</p>

<p>오해는 말아야 한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에 대한 투자 자체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속도의 근거다. 두려움이 이유라면, 그 두려움의 출처부터 캐물어야 한다. 캐묻지 않은 채 예산만 늘리는 정부는, 씨앗을 심었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물만 주는 정원사의 다른 얼굴이다.</p>

<p> </p>

<p><strong>눈을 든 이들이 마주할 것</strong></p>

<p>다시, 그 행성이다. 22,470년을 날아온 우주선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힘 있던 자들이 내린다. 그들은 위험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도망쳤다. 도망친 곳에서, 가장 하찮아 보이는 생명에게 먹힌다. 이 장면이 잔인한 농담처럼 보이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 우리가 듣는 경고들과, 그 경고를 하는 사람들의 실제 행동이 너무 닮아 있어서다.</p>

<p>종말을 경고하는 자가 가장 먼저 탈출선을 예약해 둔다면, 그 경고를 그대로 믿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물어야 할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AI가 인류를 멸망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위해 이 멸망을 지금 말하고 있는가다.</p>

<p>물론 위험은 실재한다. 통제를 벗어난 에이전트, 무기 개발에 동원되는 모델, 검증되지 않은 채 발표되는 성과들. 이것들을 가볍게 여기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실존적 공포라는 거대한 프레임이, 지금 당장 손볼 수 있는 문제들, 이를테면 정렬 훈련의 허점이나 재무적 조급증이나 정책의 무비판적 수입을 가려버릴 때, 우리는 엉뚱한 곳을 바라보게 된다. 하늘만 올려다보다가, 발밑의 구멍을 못 보는 식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27 float-center" data-idxno="5142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하늘 대신 발밑을 본 자리에서, 작은 빛 하나가 올라온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6_51427_2015.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하늘 대신 발밑을 본 자리에서, 작은 빛 하나가 올라온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담대함이란, 큰 위협 앞에서 용감해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작은 사실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끈기, 그것도 담대함이다. 예언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지 않는 것, 재무제표를 함께 읽는 것, 왜 지금인지 캐묻는 것.</p>

<p>영화 제목의 &#39;올려 본다&#39;는 뜻에는, 응시한다는 뜻도, 존중한다는 뜻도 함께 있다. 존중은 맹신과 다르다. 하늘을 올려다보되, 그 하늘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각도까지 함께 보는 것. 그것이 존중이고, 그것이 응시다. 손가락만 보고 하늘을 안 보는 것도 문제지만, 하늘만 보고 손가락을 안 보는 것 역시 같은 크기의 문제다.</p>

<p>묵시록은 원래 신의 것이었다. 사람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형식이었다. 지금 그것을 쓰는 손은 사람의 것이다. 사람이 쓴 각본이라면, 사람이 고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각본을 쓴 자들이 그 각본에서 자신만 안전한 배역을 맡겨 놓지 않았는지, 그것부터 확인할 일이다. 눈을 드는 일은 하늘을 보는 일이 아니다. 발밑을 정확히 보는 일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이 만든 각본에 스스로 먹히지 않는다.</p>

<p> </p>

<p> </p>

<p><strong>글‧박철웅</strong><br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에디터<br />
작가‧문화평론가 <br />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 전공<br />
IBM과 NTT에서 마케팅과 컨설팅 담당<br />
2011년 『원순씨를 부탁해』 출간<br />
비평적 글쓰기, 사회, 문화 예술과 인간을 관통하는 글을 쓰고 있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음향악이 탄생하다 - 영화평론가 심영섭의 '오디세이'  집중분석(3)]]></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24</link>
	  <dc:creator><![CDATA[심영섭 (영화평론가)]]></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24</guid>
	  <pubDate>Mon, 14 Sep 2026 08:25:50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영화 <오디세이>에서 루드비히 고란손, 혹은 스웨덴식 발음에 가까운 루드비그 예란손은 여러 겹의 소리를 차례로 쌓아 올려 마침내 관객의 몸을 압박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선 뒤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아마도 어떤 선명한 멜로디보다 파도와 청동, 나무와 호흡,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그것들은 음악이기 이전에 물질의 기억입니다.<오디세이>에서는 음향효과와 음악의 경계가 거의 사라집니다. 파도는 어느 순간 리듬이 되고, 활시위는 현악기가 되며, 청동 무기의 충돌음은 타악기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활과 리라 사이에서 태어난 소리. 바다와 청동, 인간의 호흡이 하나의 거대한 음악이 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7"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4_51422_619.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17 float-center" data-idxno="51417"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고대 그리스의 리라를 복원해 연주하는 모습(위)과 리라를 든 아폴론이 묘사된 기원전 5세기경의 ‘아폴론의 킬릭스’(아래). 사진=〈Rediscovering Ancient Greek Music〉 영상·위키미디어 커먼즈(Zde, CC BY-SA 4.0)" height="75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4_51417_445.jpg" width="600" />
<figcaption>고대 그리스의 리라를 복원해 연주하는 모습(위)과 리라를 든 아폴론이 묘사된 기원전 5세기경의 ‘아폴론의 킬릭스’(아래). 사진=〈Rediscovering Ancient Greek Music〉 영상·위키미디어 커먼즈(Zde, CC BY-SA 4.0)</figcaption>
</figure>
</div>

<p><span style="font-size:18px;">영화 <오디세이>에서 루드비히 고란손, 혹은 스웨덴식 발음에 가까운 루드비그 예란손은 여러 겹의 소리를 차례로 쌓아 올려 마침내 관객의 몸을 압박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span></p>

<p><span style="font-size:18px;">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span>선 뒤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p>

<p>아마도 어떤 선명한 멜로디보다 파도와 청동, 나무와 호흡,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그것들은 음악이기 이전에 물질의 기억입니다.</p>

<p><오디세이>에서는 음향효과와 음악의 경계가 거의 사라집니다. 파도는 어느 순간 리듬이 되고, 활시위는 현악기가 되며, 청동 무기의 충돌음은 타악기가 됩니다.</p>

<p>파도와 호흡, 목재의 마찰음과 청동의 울림이 층층이 쌓이고, 그 위에 셰퍼드 톤과 크레셴도의 원리가 더해집니다. 그렇게 영화는 긴장이 끝없이 상승하는 듯한 청각적 착각을 만들어 냅니다.  개인적으로 <오디세이>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p>

<p>음향과 음악 사이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음악.  나는 그것을 ‘음향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오디세이>의 음향 가장 아래에는 언제나 바다가 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파도가 결코 단순한 배경음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p>

<p>처음에는 멀리서 낮게 밀려오는 파도와 바람이 들립니다. 그 위에 선체가 비틀리는 소리가 얹히고,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와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하나씩 더해집니다.  폭풍이 시작된다고 해서 단순히 파도 소리의 음량만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점점 더 낮고 무거운 주파수가 그 아래로 스며듭니다.</p>

<p>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파도를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좌석으로 느끼게 됩니다.  바다는 자연이면서 동시에 포세이돈입니다.  신은 반드시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습니다.  저 멀리에서 저주파가 밀려오는 순간,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도 이미 무언가가 오고 있음을 압니다.</p>

<p>이 영화에서 신들의 힘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압도적인 물성으로 체험됩니다.   그 바다 위에 두 번째 악기가 나타납니다.  배입니다.</p>

<p>배 위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소리를 냅니다.  노가 물을 밀어내고, 목재는 압력을 견디며 삐걱거립니다. 돛은 바람을 받아 펄럭이고, 밧줄과 도르래는 서로 몸을 비빕니다. 병사들의 발과 방패가 갑판을 두드리고, 물은 선체 틈으로 스며듭니다.</p>

<p>처음에는 이 소리들이 제각각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위험이 커질수록 서로의 박자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노를 젓는 소리에는 본래 노동의 리듬이 있습니다. 여기에 북소리와 낮은 타악기가 더해지면 그것은 군대의 행진처럼 변합니다. 폭풍이 몰아치면 다시 심장박동처럼 들립니다.  마침내 선체가 삐걱거리는 소리조차 그 박자에 합류합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배는 수백 명의 인간과 나무와 밧줄과 바람과 바다가 함께 연주하는 거대한 타악기이자 오케스트라입니다.</p>

<p><오디세이>의 소리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물질 가운데 하나는 청동입니다.</p>

<p>고란손은 크기가 서로 다른 수많은 청동 징을 사용해 소리를 실험하고, 폐금속이나 난간, 벽과 같은 물체들까지 두드리며 음향의 재료를 찾았습니다. 고대 그리스를 아름다운 리라와 우아한 관현악으로만 그리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p>

<p>이 영화가 원하는 고대는 아름다운 박물관적 환타지가 아니라,  땀 냄새가 나고, 피가 흐르고, 금속이 찌그러지는 청동기 문명입니다. 그 문명의 물성을 소리로 되살립니다.</p>

<p>청동의 소리는 대체로 세 겹으로 쌓입니다.  첫 번째는 실제 충돌음입니다.  검과 방패, 갑옷이 부딪칠 때 나는 짧고 날카로운 소리입니다. 그것은 사건이 어디에서 벌어졌는가를 알려주는 현실적인 효과음입니다.  그러나 그 충돌 뒤에는 두 번째 소리가 남습니다.  잔향입니다.  </p>

<p>금속의 울림이 현실보다 훨씬 길게 늘어납니다. 한 번의 검격이 마치 거대한 종을 울린 것처럼 공간 전체를 흔듭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세 번째 층이 들어옵니다.  대형 징과 전자 저음입니다.</p>

<p>그 순간 한 사람의 검과 방패가 부딪친 소리는 더 이상 개인의 전투가 아닙니다.  마치 한 시대 전체에 금이 가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트로이 장면의 금속음은 전투의 사실성 뿐 아니라, 청동기 문명의 장엄함과 동시에 그 문명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p>

<p>또한 이 영화의 거대함은 큰 소리의 울림에만 있지 않고, 고요가 있었기 때문에 굉음이 거대해지는 것입니다.  작은 소리가 존재했기 때문에 우리는 큰 소리에 압도됩니다.</p>

<p>그리고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래퍼 트레비스 스콧의 막대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마지막에 살아남은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고 오디세우스에게 경배를 드리듯 바닥을 치는 소리.</p>

<p>탁, 탁. 탁.</p>

<p>마치 땅 그 자체를 하나의 타악기로 연주하는 듯했던 선지자의 예언같은 소리 역시 오래 남습니다.  무언가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주 오래된 의식의 박자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디세이>에는 이와 전혀 다른 종류의 소리도 존재합니다.</p>

<p>세이렌의 노래입니다.  이 장면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노래’가 아닙니다.  부하들의 귀가 밀랍 막히는 순간, 소리는 마치 두꺼운 천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변합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18 float-center" data-idxno="51418"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height="496"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4_51418_2234.jpg" width="600"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처음에는 바람 같기도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의 목소리 같기도 합니다.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공간 전체에 흩어져 있던 음향은 차츰 인간의 목소리를 얻기 시작합니다.  멀리 있는 여성의 목소리.  서로 다른 음높이로 포개지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  오디세우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속삭임.  그의 기억 속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 밑으로 낮은 전자음과 현악기의 지속음이 흐릅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알 수 없게 됩니다.</p>

<p>이 노래가 바깥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오디세우스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욕망의 속삭임인지. 외부의 환경음이 차츰 인간의 내면음으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p>

<p>그래서 관객은 오디세우스와 같은 자리로 들어갑니다.  부하들은 듣지 못합니다.  오디세우스와 관객만 듣습니다.  우리는 그가 왜 유혹받는지 설명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귀가 되어 함께 유혹당하고 고통에 몸부림 칩니다.</p>

<p>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섬뜩하고 감동적인 음향적 연결은 활과 리라입니다.  마치 멋진 매치 컷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호메로스의 원전에서도 오디세우스가 활에 시위를 거는 모습은 숙련된 악사가 리라의 현을 다루는 모습에 비유됩니다.</p>

<p>참으로 기묘하고 아름다운 비유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손가락으로 활시위를 튕깁니다.</p>

<div id="tem-type-1">
<p>팅</p>
</div>

<p>그 소리는 어느 순간 리라의 현을 뜯는 소리와 거의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 소리는 오디세우스를 상징하는 정체성 같은 소리입니다.  페넬로페가 오디세우스의 뺨을 때릴 때도 리라같은 활 소리가 나고, 바로 그 작은 울림에서 연회장의 학살이 시작됩니다.</p>

<p>고란손은 고대 악기 리라와 청동 타악기를 현대적인 전자음과 결합합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아름다운 이유만큼이나 두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리라는 영웅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악기입니다.  활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입니다.  그런데 둘은 모두 팽팽하게 당겨진 현에서 소리를 냅니다.</p>

<p>영웅을 노래하는 음악과 영웅이 행하는 폭력이 같은 긴장에서 태어난다는 사실.  그것은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열쇠처럼 느껴집니다.  활시위가 울리는 순간 우리는 그의 정체성이 되돌아왔음을 압니다.  동시에 이제 누군가들이 죽게 되리라는 것도 압니다.</p>

<p>귀환과 학살이 하나의 음에서 시작됩니다.  <오디세이>는 근래 보기 드물게 두껍고 다층적인 음향을 가진 영화입니다.  음향효과가 음악으로 변하고, 음악이 다시 효과음 속으로 스며듭니다.  저는 돌비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극장에서 화면을 보지 않고 <오디세이>의 소리만 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환경음에서 시작해 신체음으로.  신체음에서 물체의 마찰음으로.  마찰음에서 반복되는 리듬으로.   리듬에서 음악적 저음으로.  그리고 마침내 합창과 전자음으로.  소리는 처음에는 현실 세계의 작은 물질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층이 쌓여 갈수록 그것은 현실의 소리를 벗어나 신화와 인간 내면의 소리가 됩니다.</p>

<p>이러한 작업은 작곡가 혼자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독과 작곡가, 음향 편집과 재녹음 믹싱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한 세계의 소리를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p>

<p>그리고 놀란의 영화에서 늘 논쟁이 되는 특징도 여기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대사가 언제나 음향의 맨 위에 놓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폭풍 속에서, 전쟁 속에서 인간의 말은 바다와 금속과 비명에 묻힙니다.  </p>

<p>나는 그것을 단순한 믹싱의 실패라고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br />
때때로 인간의 언어란 세계 앞에서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라 해도 폭풍보다 큰 목소리를 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정확한 명령이라도 공포에 휩싸인 전쟁터에서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습니다.</p>

<p>우리는 모든 말을 듣지 못합니다.  대신 얼굴을 보고, 숨을 듣고, 억양과 몸짓을 따라갑니다.  오디세우스 역시 자신의 목소리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그 순간 드러납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관객에 따라 몰입을 높이기도 하고, 대사의 명료성을 떨어뜨리는 단점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p>

<p>그럼에도 <오디세이>에서 음향은 이미지를 설명하는 친절한 해설자가 아닙니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22 float-center" data-idxno="5142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활과 리라 사이에서 태어난 소리. 바다와 청동, 인간의 호흡이 하나의 거대한 음악이 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7"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4_51422_619.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활과 리라 사이에서 태어난 소리. 바다와 청동, 인간의 호흡이 하나의 거대한 음악이 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이 영화에서 소리는 우리를 화면에 끝없이 침잠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39;주연&#39;이 됩니다.</p>

<p>여기에서 한 가지 음향 기법을 덧붙여 둘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셰퍼드 톤(Shepard tone)​입니다. 서로 한 옥타브씩 떨어진 여러 음을 겹쳐 놓고, 어떤 음은 점점 커지게 하고 다른 음은 점점 작아지게 하면 실제 음높이는 일정 범위를 순환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소리가 끝없이 상승하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p>

<p>마치 계단을 계속 올라가는데 영원히 꼭대기에 도착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기법은 단순히 ‘높아지는 소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는 긴장을 만들어 냅니다.</p>

<p>놀란의 영화 세계에서 이러한 감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은 흐르는데 도착하지 않고, 긴장은 높아지는데 해소되지 않습니다.  <오디세이>에서도 파도와 저음, 금속과 리듬이 서로를 밀어 올리며 우리에게 비슷한 감각을 줍니다.  </p>

<p>끝없이 다가오는 것. 끝없이 높아지는 것. 그리고 도망쳐도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바다 자체의 운동이며 오디세우스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디세이>의 음향은 영웅의 위대함만을 들려주지 않습니다.</p>

<p>그 거대한 소리들이 하나씩 사라진 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한 인간의 숨과 고향 바닷가의 파도소리입니다.</p>

<p>거칠고 지쳐 있고 외로운 숨.   모든 것이 조용해 졌을 때 비로소 오디세우스는 고향의 바닷가에 도착합니다.</p>

<p>어쩌면 <오디세이>에서 가장 중요한 소리는 폭풍도, 청동도, 괴물의 포효도 아니지 않을까요?</p>

<p>그 모든 것을 지나온 뒤에도 아직 멈추지 않은,  오디세우스의 호흡.  </p>

<p>인간은 영웅이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끝내 숨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p>

<p>집으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p>

<p>- 계속</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민주당 오빠'의 청탁과 제넨셀·세종메디칼의 연결고리]]></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22</link>
	  <dc:creator><![CDATA[김시래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22</guid>
	  <pubDate>Mon, 14 Sep 2026 04:50:17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외과 수술실의 조용한 영웅으로 불리던 기업이 있었다. 1996년 3월 정현국 전 대표가 설립한 개인기업 세종기업으로 출발해 2010년 8월 법인으로 전환한 세종메디칼의 궤적은 한국 정밀 제조업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교과서적인 성공담이었다. 당시 국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의 수술실은 환자의 배를 가르지 않고 작은 구멍을 뚫어 수술하는 복강경 최소침습수술이 급격히 확산하고 있었으나, 수술에 필수적인 일회용 투관침(트로카)과 조직 적출용 주머니는 전량 다국적 의료기기 대기업인 존슨앤드존슨과 메드트로닉의 수입품에 종속돼 있었다. 정현국 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Chat PT 이미지" height="64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2_51415_4647.png" width="96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15 float-center" data-idxno="5141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960px"><img alt="Chat PT 이미지" height="640"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2_51415_4647.png" width="960" />
<figcaption class="text-left">Chat PT 이미지</figcaption>
</figure>
</div>

<p>외과 수술실의 조용한 영웅으로 불리던 기업이 있었다. 1996년 3월 정현국 전 대표가 설립한 개인기업 세종기업으로 출발해 2010년 8월 법인으로 전환한 세종메디칼의 궤적은 한국 정밀 제조업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교과서적인 성공담이었다. 당시 국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의 수술실은 환자의 배를 가르지 않고 작은 구멍을 뚫어 수술하는 복강경 최소침습수술이 급격히 확산하고 있었으나, 수술에 필수적인 일회용 투관침(트로카)과 조직 적출용 주머니는 전량 다국적 의료기기 대기업인 존슨앤드존슨과 메드트로닉의 수입품에 종속돼 있었다. 정현국 전 대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 끝에 복강경용 일회용 투관침의 국내 최초 국산화에 성공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획득하며 외산 독점의 벽을 허물었다.</p>

<p>품질은 대등했으나 가격은 외산 대비 30% 이상 저렴했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와 병원의 원가 절감 요구가 맞물리며 세종메디칼의 제품은 서울 주요 상급종합병원 외과 수술실로 급속히 침투했다. 국내 복강경 트로카 시장 점유율 1위를 거머쥔 세종메디칼은 기술특례가 아닌 순수 제조업 실적으로 2018년 5월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을 정도였다. 상장 초기 세종메디칼은 연간 150억 원에서 170억 원 안팎의 안정적인 매출과 3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꾸준히 창출했다. 영업이익률은 20%를 상회했고, 부채비율은 20%를 밑돌았으며 차입금은 사실상 전무했다. 기술 장벽과 확고한 내수 유통망, 풍부한 현금 유보금을 두루 갖춘 전형적인 알짜 기술 강소기업이었다.</p>

<p>그러나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은 견고하던 회사의 운명을 뒤흔드는 변곡점이 됐다. 감염 확산에 따라 병원들이 비응급 정규 수술을 대거 연기하거나 취소하면서 수술용 소모품 납품이 급감했다. 세종메디칼은 2020년 연간 4억 7,800만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의 쓴맛을 봤다. 이 일시적인 실적 충격은 경영진에게 본업에 대한 불안감을 심어주었고, 자본시장을 지배하던 바이오 거품이라는 치명적인 유혹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회사는 정기주주총회를 열어 항암치료제 개발, 백신 및 바이오 벤처 투자, 금융투자업 등을 정관의 사업목적에 대거 추가했다. 단단한 제조업의 토대 위에 신기루 같은 바이오 테마를 얹는 순간, 약탈적 자본시장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회사의 현금성 자산과 상장 플랫폼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p>

<p>2021년 여름, 정현국 전 대표를 비롯한 창업주 일가는 지분을 매각하고 경영권을 넘기는 절차에 돌입했다. 지배구조는 특수목적법인 세종메디칼컴퍼니와 사모 투자조합들로 분산 개편됐고, 대표이사 자리에는 타임인베스트먼트 대표 출신의 전문 금융투자업자인 이재철 전 대표가 앉았다. 20년 넘게 현장에서 플라스틱 튜브와 밸브를 깎고 조립하던 장인 정신의 자리는 주가 부양과 전환사채 발행을 노리는 금융공학자들의 계산기로 대체됐다. 그리고 세종메디칼은 천연물 기반 신약 개발 벤처인 제넨셀을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는 명분으로 인수 타깃에 올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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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정치권 인허가 민원과 113억 원의 도박<br />
투기판으로 변질된 의료기기의 명가....</strong></p>

<p>2021년 가을 세종메디칼이 단행한 제넨셀 투자는 단순한 신사업 진출의 차원을 넘어 정치 권력의 행정 청탁 의혹과 주가조작 세력의 사전 기획이 얽힌 복합적 사건으로 비화했다. 핵심 연결고리는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던 김승원(57) 의원(현재 법무부 장관 후보자)과 김강립(60)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그리고 경희대학교 한방재료공학과 교수이자 제넨셀 창업자인 강세찬(53) 교수였다.</p>

<p>‘민주당 오빠’로 불리는 김승원 의원은 2026년 9월 불거진 신약 제넨셀 임상시험 승인 청탁 의혹 과정에서, 브로커로 지목된 사업가 양모 씨가 김승원 의원 녹취에서 “오빠”(또는 “승원 오빠”)라고 부르며 사적 친밀성을 드러냈기 때문이다.</p>

<p>한편 2021년 9월 23일, 제넨셀은 담마진 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천연물 추출 후보물질 ES16001을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겠다며 식약처에 임상 2·3상 시험계획 승인을 신청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극에 달해 있었으나, 식약처는 일주일 뒤인 9월 30일 임상 설계와 데이터의 미비점을 이유로 1차 보완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제넨셀의 코스닥 기술특례상장과 투자 유치 일정 전체에 제동이 걸린 순간이었다.</p>

<p>이 불확실성의 국면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했다. 2021년 10월 12일, 김승원 의원은 김강립 식약처장의 휴대전화로 직접 연락을 취했다. 김승원 의원이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담당 실무자들이 좀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회사는 제넨셀입니다"라는 구체적인 청탁 내용이 담겼다. 김강립 전 처장은 이 요청을 즉시 비서관을 거쳐 식약처 의약품안전국 실무 담당자에게 하달했고, 식약처 내부에서는 이례적인 신속 검토 보고서가 작성됐다. 김강립 전 식약처장은 훗날 사법당국과 언론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이 정책 질의를 넘어 개별 민간 기업의 사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인허가 처리를 요청한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p>

<p>김승원 의원의 연락이 식약처 실무선에 전달된 지 정확히 7일 뒤인 2021년 10월 19일, 세종메디칼은 전격적으로 이사회를 열고 제넨셀 지분과 사채를 인수하는 대규모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세종메디칼은 제넨셀 창업자인 강세찬 교수가 쥐고 있던 보통주 66만 주를 약 63억 원에 장외 매수하고, 제넨셀이 발행한 전환사채 50억 원어치를 인수해 총 112억 9,800만 원의 회사 유보금을 단번에 쏟아부었다. 반기 매출이 2억 원에 불과하고 수십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던 비상장 벤처기업 제넨셀의 기업가치는 2024년에 무려 387억 원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는 지극히 자의적인 가정하에 642억 원으로 부풀려져 평가됐다.</p>

<p>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지난 2021년 10월 26일, 식약처는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제넨셀의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2·3상 시험계획을 전격 승인했다. 세종메디칼의 주가는 식약처 승인 공시와 함께 연일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으며 폭발적인 거래량을 기록했다. 인허가 진행 상황에 대한 비대칭적 정보를 파악했거나 확신을 가졌던 세력에게는 막대한 차익 실현의 무대가 열렸지만, 세종메디칼 법인의 금고는 113억 원이라는 막대한 현금이 빠져나간 채 실체가 불투명한 비상장 주식과 사채로 채워졌다. 김승원 후보자는 "지역구 기업이자 유망 토종 바이오 기업의 억울한 행정 지연 민원을 전달했을 뿐 주가조작이나 지분 거래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으나, 세종메디칼이 인허가 호재의 수혜주로 포장돼 자본시장의 머니게임 한복판으로 끌려 들어가는 결정적 신호탄이 됐다는 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려웠다.</p>

<p> </p>

<p><strong>세종메디칼 30년 흥망사</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16 float-center" data-idxno="5141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488px"><img alt="" height="409"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2_51416_4843.png" width="4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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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무자본 사냥꾼의 침투와 가공 자본의 연금술, 3만 주주를 삼킨 상장폐지</strong></p>

<p>제넨셀 투자를 통해 의료기기 제조사라는 본래의 정체성이 희석되고 주가 급등락의 맛을 본 세종메디칼은 자본시장의 전문 포식자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먹잇감이었다. 상장사 플랫폼과 풍부한 현금성 자산, 그리고 무차입 경영으로 깨끗하게 비어 있던 대차대조표는 기업사냥꾼들의 입맛을 당겼다. 때마침 2022년 7월 15일, 자본시장에서 악명을 떨치던 카나리아바이오엠이 세종메디칼 인수에 나섰다.</p>

<p>카나리아바이오엠은 자본시장에서 &#39;주가조작 1인자&#39;로 불리던 이 모 씨 등이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조직화된 무자본 기업사냥 세력이었다. 이들은 상장사인 세종메디칼 주식을 직접 매입하는 정공법을 쓰지 않았다. 세종메디칼의 지분 16.67%를 보유한 최대주주 비상장사 세종메디칼컴퍼니의 지분 40%를 사들이는 방식을 취했다. 최소한의 자금으로 상장사를 지배하는 전형적인 우회 침투였다. 이어 2022년 12월, 카나리아바이오엠은 세종메디칼컴퍼니를 흡수합병하며 세종메디칼의 직접적인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훗날 상호를 비에스제이홀딩스로 변경한 이 세력은 세종메디칼의 이사회를 완전히 장악한 뒤 회사의 금고를 열어젖혔다.</p>

<p>카나리아바이오엠이 구사한 수법은 폴 크루그먼이 현대 금융위기를 진단하며 비판했던 &#39;가공의 대차대조표 확장&#39;과 &#39;약탈적 금융공학&#39;의 전형이었다. 첫 번째 수법은 현금 유입이 전혀 없는 8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 상계 발행이었다. 2022년 10월 13일, 세종메디칼은 카나리아바이오엠을 대상으로 제4회부터 제7회까지 총 8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조달 목적은 &#39;채무상환자금&#39;으로 기재됐다. 그러나 세종메디칼의 법인 통장에 실제로 들어온 현금은 단 1원도 없었다. 카나리아바이오엠이 세종메디칼에 갖고 있던 채권과 세종메디칼이 사채 납입으로 받아야 할 대금을 장부상에서 상계 처리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장부에는 자산 800억 원과 부채 800억 원이 동시에 찍혔지만, 전환가액 4,755원 기준으로 향후 1,682만 4,393주에 달하는 막대한 신주 물량이 소액주주들의 지분 가치를 희석할 뇌관으로 남았다.</p>

<p>두 번째 수법은 건실한 상장사의 현금을 합법을 가장해 계열사로 빼돌리는 타법인 출자였다. 2022년 10월, 세종메디칼은 카나리아바이오(옛 두올물산)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5.18%를 취득한다는 명분으로 현금 500억 원을 일시에 송금했다. 세종메디칼은 이후 지분을 11.7%까지 늘리며 카나리아바이오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창업 이래 20여 년간 의사들의 손에 쥐어줄 수술기구를 깎아 만들며 쌓아 올린 이익잉여금과 상장 후 축적된 현금 500억 원이 실체 없는 바이오 신약 기대감만 가득한 관계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대가로 한순간에 빠져나갔다.</p>

<p>세 번째 수법은 상장사 간 자금을 당일 돌려막는 사채 회전술이었다. 2022년 12월 29일, 세종메디칼은 제9회 전환사채 300억 원을 발행했다. 인수자는 카나리아바이오엠이 피인수한 또 다른 코스닥 상장사 헬릭스미스였다. 헬릭스미스로부터 300억 원의 현금이 입금된 바로 그날, 세종메디칼은 카나리아바이오엠에 대한 단기 채무를 상환한다며 동일한 금액인 300억 원을 카나리아바이오엠 계좌로 즉시 이체했다. 자금은 세종메디칼을 단지 징검다리로 삼아 몇 시간 만에 빠져나갔다. 상장사의 공시 시스템은 이 복잡한 돌려막기를 &#39;정상적인 자본 확충과 부채 상환&#39;으로 기록했지만, 실질은 코스닥 상장사들의 현금을 빼내 특정 지배세력의 사금고로 채워 넣는 사기적 자금 세탁에 불과했다.</p>

<p>사냥꾼들이 자금 빼돌리기에 열을 올리는 사이, 세종메디칼의 본업인 의료기기 제조 사업은 빠르게 망가졌다. 2021년 말까지 풍부했던 회사의 현금성 자산은 2023년 말 32억 원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판매관리비는 연간 100억 원 이상 방만하게 지출됐고, 380억 원이 투입된 신사옥 건설은 자금난을 심화시켰다. 본업에 대한 관리 부실은 치명적인 행정 처분으로 이어졌다. 2023년 9월, 식약처는 세종메디칼에 대해 의료기기법 위반을 이유로 의료기기 제조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영업정지 대상 금액은 40억 원으로 전년도 연간 매출액인 161억 원의 25%에 달했다. 수입품을 몰아내며 의료 현장을 지키던 제조 라인이 멈춰 섰다.</p>

<p>사상누각의 붕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나리아바이오 그룹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난소암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오레고보맙의 신화가 깨지면서 파국이 시작됐다. 2024년 1월 19일, 독립적 데이터안전성모니터링위원회(DSMB)는 오레고보맙의 글로벌 임상 3상에 대해 "무진행생존기간 등 유효성 지표를 충족하지 못해 치료적 유의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임상 시험 중단을 전격 권고했다. 카나리아바이오의 주가는 즉각 하한가로 곤두박질치며 5,000원 선에서 1,000원 미만의 동전주로 추락했다.</p>

<p>세종메디칼은 다급하게 보유 중이던 카나리아바이오 주식을 장내 매도와 대량매매(블록딜)로 내던졌다. 그러나 회수한 금액은 고작 100억 원에 불과했다. 원금 500억 원 중 400억 원이 확정 손실로 증발하며 회사의 자본을 파괴했다. 여기에 2021년 투입했던 제넨셀 지분과 사채 113억 원마저 임상 중단과 상장 무산으로 인해 장부가액 0원으로 전액 손상 처리됐다. 1년 사이에 무려 513억 원 이상의 현금 자산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2023년 당기순손실 223억 원을 기록한 세종메디칼은 2024년 651억 원의 순손실을 내며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p>

<p>피할 수 없는 종말이 닥쳤다. 2024년 3월 29일, 세종메디칼의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은 2023 회계연도 재무제표에 대해 감사의견 거절을 통보했다. 감사인은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유의적 불확실성이 존재하며, 특수관계자 간의 복잡한 자본 거래와 대여금 회수 가능성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빙이 결여됐다"고 밝혔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즉시 세종메디칼의 주권매매거래를 정지시켰다.</p>

<p>사법당국의 칼날도 매서웠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수사에 착수해 카나리아바이오엠 대표와 세종메디칼 총괄사장, 전문 인수합병 브로커 등 핵심 주범 4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신약 개발 호재를 언론에 퍼뜨려 주가를 띄운 뒤 주식을 처분하고, 상장사들의 현금을 유령회사와 친인척 계좌로 빼돌린 사기적 부정거래를 저질렀다고 적시했다. 2025년 11월 19일, 세종메디칼은 전·현직 임원의 대규모 횡령·배임 혐의 발생 사실을 공식 공시했다.</p>

<p>회사는 상장폐지를 모면하기 위해 이의신청을 내고 2026년 4월 17일까지 1년간의 개선기간을 부여받아 사옥 매각 등 자구책을 제출했다. 그러나 무너진 재무구조와 파괴된 사업 기반을 되살릴 방법은 없었다. 2026년 6월 11일,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세종메디칼에 대한 상장폐지를 최종 심의·의결했다.</p>

<p>이 처참한 금융 약탈의 피해는 오롯이 시장의 가장 취약한 고리에게 전가됐다. 2026년 6월 말 기준 세종메디칼의 소액주주는 3만 837명에 달했다. 이들이 쥐고 있던 주식은 4,872만 52주로, 전체 발행주식의 64.29%를 차지했다. 주가는 최고점 대비 95% 이상 폭락했고 거래마저 묶인 채 상장폐지라는 단두대에 올랐다. 소액주주연대가 결성돼 한국거래소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기업사냥꾼들의 조직적 주가조작을 엄벌하고 선량한 투자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호소했으나, 텅 비어버린 회사의 금고와 전액 감액된 자산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p>

<p>세종메디칼의 30년 역사는 한국 자본시장의 가장 어두운 단면을 고발하는 참극이다. 외과 수술기구를 국산화하며 제조업 강국의 초석을 놓았던 기업이, 정치권의 인허가 민원이라는 그늘 속에서 잉태된 바이오 테마의 숙주가 됐고, 끝내는 무자본 인수합병 세력의 사기적 전환사채 놀음에 걸려들어 껍데기만 남은 채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견고한 공장과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 할지라도 대차대조표를 농단하는 가공 자본과 내부통제를 잃어버린 거버넌스 앞에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를 세종메디칼의 잔해는 서늘하게 증명하고 있다.</p>

<p> </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대법원, 전인장 전 삼양식품 회장 벌금 191억 원 확정]]></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21</link>
	  <dc:creator><![CDATA[김시래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21</guid>
	  <pubDate>Mon, 14 Sep 2026 04:40:44 +0900</pubDate>
	  <description><![CDATA[전인장 전 삼양식품 회장이 유령회사를 앞세워 538억 원 규모의 가짜 세금계산서를 주고받은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91억 원을 최종 확정했다. 2심의 ‘명의대여’ 판단을 뒤집고 조세정의를 왜곡한 ‘명의위장’이자 범죄행위로 규정한 이번 판결은 기업의 통행세 착취와 사익 편취 관행에 종지부를 찍은 분수령이다.금융업체의 불투명한 파생상품들을 가리켜 \"복잡함 뒤에 숨은 위험한 사기극\"이라고 꼬집듯, 한국 재벌과 기업 집단 내부에서 오랜 세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내부 거래 구조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페이퍼컴퍼니를 통과한 538억 원의 허위 세금계산서, 대법원이 그 통행로에 철퇴를 내렸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7"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1_51419_2238.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19 float-center" data-idxno="51419"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페이퍼컴퍼니를 통과한 538억 원의 허위 세금계산서, 대법원이 그 통행로에 철퇴를 내렸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37"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1_51419_2238.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페이퍼컴퍼니를 통과한 538억 원의 허위 세금계산서, 대법원이 그 통행로에 철퇴를 내렸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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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전인장 전 삼양식품 회장이 유령회사를 앞세워 538억 원 규모의 가짜 세금계산서를 주고받은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91억 원을 최종 확정했다. 2심의 ‘명의대여’ 판단을 뒤집고 조세정의를 왜곡한 ‘명의위장’이자 범죄행위로 규정한 이번 판결은 기업의 통행세 착취와 사익 편취 관행에 종지부를 찍은 분수령이다.</p>

<p>금융업체의 불투명한 파생상품들을 가리켜 "복잡함 뒤에 숨은 위험한 사기극"이라고 꼬집듯, 한국 재벌과 기업 집단 내부에서 오랜 세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내부 거래 구조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기업 지배주주가 실물 거래 경로 중간에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를 교묘하게 끼워 넣고 통행세를 챙기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수법은 한국 자본주의의 고질병이었다.</p>

<p>2026년 9월 10일 대법원 형사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가 선고한 판결(2025도21445)은 이러한 은밀한 계산서 장사에 내려진 강력한 사법적 응징이다. 재판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허위세금계산서교부등)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인장(63) 전 삼양식품 회장의 재상고심에서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및 벌금 191억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범행에 가담한 법인인 삼양식품과 계열사 2곳 역시 각각 벌금 1,000만 원의 형을 확정받았다. 2019년 12월 검찰 기소 이후 약 7년 만에 내려진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다.</p>

<p>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히 한 기업 총수가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서류를 꾸몄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사건의 핵심은 회삿돈을 횡령하기 위해 실체 없는 유령회사를 동원하고, 수백억 원대 허위 세금계산서를 수수한 행위를 세법상 허용되는 ‘명의대여’의 범주로 감싸 안을 수 있는가, 아니면 조세 징수 질서를 정면으로 파괴하는 불법적 ‘명의위장’으로 단죄해야 하는가였다. 2심 재판부가 피고인 측의 손을 들어주며 감형했던 논리를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통해 단호하게 뒤엎음으로써, 한국 세법과 조세범 처벌 체계는 중대한 법리적 기준선을 새로 세웠다.</p>

<p>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세금계산서는 거래의 실재성과 투명성을 증명하는 일종의 ‘경제적 신분증’이다. 재화나 용역의 공급이라는 실물 경제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해야만 부가가치세 제도가 유지되고 국가 조세 체계가 작동한다. 그러나 전인장 전 회장은 이 신분증을 조작했다. 외부 원자재 납품업체에서 계열사를 거쳐 삼양식품으로 향하는 온전한 실물 거래가 존재했음에도, 중간에 실체가 없는 페이퍼컴퍼니를 배치해 538억 원 규모의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수취하도록 지시했다. 기업 내부의 이익을 외부로 빼돌려 개인적인 비자금을 조성하려는 사적 탐욕이 조세 인프라의 근간을 훼손한 것이다.</p>

<p> </p>

<p><strong>유령회사가 삼켜버린 538억 원과 사법부의 엇갈린 시선</strong></p>

<p>사건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대단히 계획적이고 치밀한 왜곡이 드러난다. 실물 거래는 명확했다. 라면 제조에 필수적인 포장용 상자와 식품 원재료는 외부 공급업체에서 중간 계열사를 거쳐 완제품을 제조하는 삼양식품으로 고스란히 배송됐다. 그러나 서류상의 세무 증빙 흐름은 정반대로 뒤틀렸다. 정작 물품을 주고받은 실제 거래 업체들 사이에서는 세금계산서가 전혀 발행되지 않거나 수취되지 않았다. 대신 전인장 전 회장이 설립하거나 인수한 페이퍼컴퍼니 2곳이 거래의 전면에 등장했다.</p>

<p>페이퍼컴퍼니는 사무실도, 직원도, 독자적인 생산 시설도 갖추지 않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 유령회사들은 막대한 물품을 직접 공급하거나 납품받은 것처럼 꾸며져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총 538억 원에 달하는 허위 세금계산서와 계산서를 쏟아냈다. 그리고 정부 과세당국에는 거짓 매출·매입처별 세금계산서합계표가 버젓이 제출됐다. 이 과정을 통해 계열사들의 정당한 매출과 이익은 페이퍼컴퍼니로 이전됐고, 이는 고스란히 총수 일가의 횡령 통로로 작동했다.</p>

<p>1심 재판부는 이러한 행위의 불법성을 직시했다.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판단해 전인장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그리고 191억 원이라는 막대한 벌금형을 선고했다. 법인들 역시 각 1,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실제 물품의 공급 없이 오직 자금 세탁과 횡령을 목적으로 가공 세금계산서를 주고받았으므로 조세범 처벌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단이었다.</p>

<p>그러나 2심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에서 기류가 급변했다. 2심 재판부는 전인장 전 회장의 형량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6억 5,000만 원으로 대폭 깎아주었다. 삼양식품 법인에는 무죄를, 나머지 계열 법인들에는 벌금 800만 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의 논리는 실물 경제의 외형에 지나치게 관대한 해석을 내린 결과였다. 계열사들이 외부 거래처와 거래하면서 자체 재산과 책임으로 사업을 운영했고 부가가치세 역시 결과적으로 납부됐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즉, 페이퍼컴퍼니의 이름을 빌려 세무 처리를 한 것에 불과하므로, 이는 세법상 일정 부분 허용되는 단순 ‘명의대여’ 거래로 보아야 하며 가공 세금계산서 수수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취지였다.</p>

<p>사법적 혼란을 정리한 것은 대법원이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가차 없이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계열사들이 페이퍼컴퍼니의 이름만 빌려 정상적인 사업자등록을 한 뒤 실질적인 사업을 영위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애초에 회삿돈을 횡령하는 과정에서 매출을 유령회사로 빼돌리기 위해 기존 사업자등록을 악용해 거짓 세금계산서를 발급·수취한 것이 명백하므로, 이는 조세범 처벌법이 금지하는 위법한 ‘명의위장’에 해당한다는 판단이었다.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법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1심과 동일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91억 원을 다시 선고했고, 이번 대법원 재상고심에서 피고인들의 주장을 최종 기각하면서 길었던 법적 공방은 마침표를 찍었다.</p>

<p> </p>

<p><strong>전인장 전 회장의 허위 세금계산서 사건 심급별 판결 추이</strong></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14 float-center" data-idxno="5141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781px"><img alt="" height="959"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21_51414_3931.jpg" width="781" />
<figcaption></figcaption>
</figure>
</div>

<p> </p>

<p><strong>재벌기업 통행세 관행에 종언을 고한 조세 정의와 기업 거버넌스의 과제</strong></p>

<p>이번 판결이 경제계와 조세 법학계에 던지는 울림은 매우 크다.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은 명확하다. 실제 재화의 공급자가 아닌 자가 서류상 공급자로 둔갑하거나, 실제 공급받는 자가 아닌 껍데기 회사가 매입자로 등장해 세금계산서를 주고받는 순간, 그것이 아무리 복잡한 경영상 판단이나 명의대여의 외관을 띠고 있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인 ‘거짓 세금계산서’라는 점이다.</p>

<p>과거 일부 기업들은 조세 포탈이나 횡령 수사 과정에서 "실제 물품 거래가 있었고 최종적으로 세금도 납부됐으니 국가 조세 수입에 실질적 피해가 없다"는 논리를 방패막이로 삼아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세금계산서 수수 제도의 입법 취지를 엄격히 재확인했다. 국가의 조세 부과와 징수를 원활하게 하고 시장의 거래 질서를 투명하게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인 만큼, 실체 없는 명의자를 거래 중간에 삽입하는 행위 자체를 조세범 처벌법 위반으로 엄단해야 한다는 취지다.</p>

<p>특히 주목할 부분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적용과 벌금형의 규모다. 전인장 전 회장에게 부과된 191억 원의 벌금은 결코 가볍지 않다. 허위로 주고받은 세금계산서 공급가액의 합계가 50억 원 이상일 경우 법정형이 대폭 가중되며, 세금계산서 기재 금액의 일정 비율 이상을 벌금으로 반드시 병과하도록 한 특가법 규정이 엄격히 집행된 결과다. 이는 사익 편취를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하려는 기업인들에게 그 행위로 얻는 이익보다 훨씬 가혹한 금전적 파멸이 뒤따른다는 신호를 확실하게 전달했다.</p>

<p>전인장 전 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비단 이번 사건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과거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삼양식품이 계열사로부터 공급받던 포장 상자와 식품 재료 일부를 페이퍼컴퍼니에서 납품받은 것처럼 꾸며 49억여 원의 회삿돈을 빼돌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3년의 실형을 확정받고 복역한 바 있다. 당시 횡령 수사의 연장선상에서 세무 당국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페이퍼컴퍼니의 허위 세금계산서 수수 내역을 추적해 추가 기소했고, 그 결과가 이번 191억 원 벌금형 확정으로 귀결된 것이다.</p>

<p>삼양식품은 최근 전 세계적인 K-푸드 열풍을 타고 &#39;불닭볶음면&#39; 신화를 쓰며 수출 기업으로 눈부신 외형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화려한 수출 실적의 이면에는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구시대적인 사익 편취 수법에 매달렸던 오너 일가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투명한 회계 시스템이 결여된 성장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그것이 기업 브랜드와 주주 가치에 얼마나 치명적인 법적 위험을 안기는지 전인장 전 회장의 사법적 궤적이 웅변하고 있다.</p>

<p>이번 판결을 계기로 기업 집단 내부의 불투명한 중개 거래, 실질적 기여 없는 특수관계 법인으로의 통행세 배분 관행은 설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됐다. 과세당국과 사법부는 이제 거래의 외관이나 계약서의 명칭이 아니라, 실질적인 재화 이동과 부가가치 창출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끝까지 추적해 단죄할 무기를 완전히 확보했다. 투명성을 결여한 기업 거버넌스는 더 이상 시장에서 용납될 수 없으며, 거짓 세금계산서로 쌓아 올린 사익의 성벽은 결국 천문학적인 벌금과 형사처벌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교훈을 남겼다.</p>]]></content:encoded>
	  <category><![CDATA[내셔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박철웅의 AI디코딩] 빌려온 문장, 지워진 저자]]></title>
	  <link>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15</link>
	  <dc:creator><![CDATA[박철웅 (에디터)]]></dc:creator>
	  <guid isPermaLink="true">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15</guid>
	  <pubDate>Sun, 13 Sep 2026 22:23:37 +0900</pubDate>
	  <description><![CDATA[메나르의 문장, 사라진 저자보르헤스의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는 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아이러니를 정교하게 구현한 사건이다. 피에르 메나르는 세르반테스와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돈키호테』를 다시 쓰려 한다. 표절이 아니다. 필사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통과해 세르반테스의 문장에 다시 도달하려 한다. 문장은 같다. 그러나 산출된 의미는 같지 않다. 독자는 같은 문장 속에서 전혀 다른 시간의 결을 읽는다. 세르반테스가 17세기의 무게로 문장을 세웠다면, 메나르는 20세기의 아이러니로 그 문장을 되짚는다. 언어는 동]]></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img alt="▲ 빌려온 문장은 남지만, 그것을 살아낸 시간은 사라진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15_51402_4012.png" width="600"  class="type:primaryImage"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02 float-center" data-idxno="51402"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빌려온 문장은 남지만, 그것을 살아낸 시간은 사라진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15_51402_4012.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빌려온 문장은 남지만, 그것을 살아낸 시간은 사라진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strong>메나르의 문장, 사라진 저자</strong></p>

<p>보르헤스의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는 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아이러니를 정교하게 구현한 사건이다. 피에르 메나르는 세르반테스와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돈키호테』를 다시 쓰려 한다. 표절이 아니다. 필사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통과해 세르반테스의 문장에 다시 도달하려 한다. 문장은 같다. 그러나 산출된 의미는 같지 않다. 독자는 같은 문장 속에서 전혀 다른 시간의 결을 읽는다. 세르반테스가 17세기의 무게로 문장을 세웠다면, 메나르는 20세기의 아이러니로 그 문장을 되짚는다. 언어는 동일해도 저자가 통과한 시간이 다르면 의미는 달라진다. 보르헤스가 증명한 것은 이 저자성의 역설이었다.</p>

<p>많은 비평가는 이 단편에서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과 푸코의 「저자란 무엇인가?」를 미리 읽어낸다. 텍스트는 저자의 의도에서 풀려나고, 의미는 독자의 몫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메나르의 실험은 저자를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같은 문장도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저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부재와 전환이 텍스트를 새롭게 만들 뿐이다.</p>

<p>그러나 바르트와 푸코가 물었던 것은 저자의 권위였지, 저자의 존재 자체는 아니었다. 저자가 죽어도 문장 뒤에는 여전히 누군가 있었다. 세상을 살아낸 몸, 그 몸이 통과한 시간이 있었다. AI 시대의 질문은 더 근본적이다. 텍스트 뒤에 애초에 아무도 없어도 되는가. 세계와 접촉한 흔적 없이 언어가 태어날 수 있는가. 메나르의 문장은 유리처럼 투명해 보여도 그 뒤에 20세기의 그림자가 진다. AI의 문장에는 비칠 그림자조차 없다. 투명함만 있을 뿐이다.</p>

<p>이 역설은 오늘의 인공지능 앞에서 다시 첨예해진다. AI가 산출한 시와 소설, 그림과 음악은 언뜻 인간의 것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작품을 떠받치는 체험과 맥락의 부재는 숨겨진 균열로 남는다. 문장은 언어의 조합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체험과 사유의 깊이, 개인의 고통과 망설임이 응축된 흔적이다. 저자성이란 창작자의 이름이나 저작권 소유를 뜻하는 법적 개념이 아니다. 언어가 태어나는 과정, 세계를 관통한 체험이 언어의 표면으로 스며드는 방식, 그리고 그 체험을 독자와 나누려는 의지, 그 전이의 흔적이 저자성이다.</p>

<p>AI는 이 과정에서 언제나 단절을 안는다. 아무리 정교하게 언어를 배열해도, 그 출발점은 통계적 확률과 연산 구조일 뿐 세계와 부딪친 체험이 아니다. 인간은 슬픔을 겪고 상실을 견디고 사랑을 주저하며 문장을 낳는다. 그 문장은 개인을 넘어 시대와 공동체의 언어로 번진다. AI는 체험할 수 없고 상실을 모른다. 기억을 가진 듯 말해도 그 기억은 데이터의 조합일 뿐이다. 체험 없는 언어는 저자성을 지닐 수 없다. 저자 없는 문장만 남는다.</p>

<p>만약 AI의 산출물이 인간의 창작물과 구분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소비하는 우리에게는 차이가 없는가. AI가 쓴 시가 감동을 준다면, 여전히 시라 부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감동의 출처를 더듬으면, 그것은 언어 자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덧입히는 자리에서 생성된다. 체험을 언어로 전이시키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 독자이며, AI는 그 사이의 매개에 그친다. AI가 창작한 것처럼 보이는 작품은 결국 독자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p>

<p>번역의 자리에서도 같은 물음이 선다. 좋은 번역가는 원문의 문장을 베끼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온 언어로 원문을 다시 통과시킨다. 그 통과의 순간에 번역가의 시간이 스며든다. AI 번역은 통과하지 않는다. 두 언어 사이의 통계적 대응만 있을 뿐, 건너가는 자의 발자국은 없다. 메나르가 세르반테스를 옮겨 적으며 자신의 세기를 새겨 넣었듯, 진짜 번역과 진짜 창작은 언제나 옮기는 자의 흔적을 남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03 float-center" data-idxno="51403"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같은 문장도 그것을 통과한 시대가 다르면 다른 문장이 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15_51403_414.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같은 문장도 그것을 통과한 시대가 다르면 다른 문장이 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이 물음은 문학의 담장을 넘는다. 회화와 음악, 그리고 사랑의 자리까지 번진다. 모방이 아무리 섬세해도 체험의 진실은 비어 있다. 인간이 사랑을 말할 때 그 언어에는 기다림과 실패, 회복의 흔적이 스며든다. AI가 사랑을 말할 때 그것은 데이터의 틀에 그친다. 흉내는 정교해질수록 더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교함과 진실은 다른 자리에 있다. 창작과 사랑은 체험의 사건이므로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실재로 존재하지는 못한다.</p>

<p>조르조 아감벤은 근대인이 겪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경험의 소멸이라고 썼다. 겪은 일을 온전히 자기 언어로 되새길 힘을 잃어버린 자리에서, 정보와 산출물만 넘쳐난다는 것이다. 아감벤이 진단한 것은 인간의 빈곤이었다. 인간은 여전히 겪되, 그것을 말로 옮기지 못할 뿐이었다. AI의 자리는 그보다 더 아래에 있다. 겪은 적 없는 존재가 산출하는 언어이니, 애초에 소멸시킬 경험조차 없다. 빈곤은 무엇이든 가졌던 것의 상실을 전제한다. AI에게는 상실할 것 자체가 없다. 그러므로 AI의 문장은 빈곤하다기보다 애초에 무일푼이다.</p>

<p>저자 없는 문장이 범람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체험의 언어를 지켜야 한다. 문학은 효율적 산출이 아니라 결핍과 고통 속에서 빚어진다. 인간이 저자로 남는다는 것은 세계를 견디고 살아낸 흔적을 언어에 남긴다는 뜻이다. 그것이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창작의 존엄이다.</p>

<p> </p>

<p><strong>산출된 형식, 비어 있는 체험</strong></p>

<p>기계의 손끝에서 태어난 시와 그림과 음악은 언뜻 완결된 산출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완결성 속에는 인간이 통과해야 하는 시간과 고통, 우연과 결핍이 빠져 있다. 인간의 창작은 언제나 체험을 거쳐 나온다. 펜과 붓의 저항, 음표 하나를 고르며 잠시 멈추는 마음의 떨림, 그 모든 것이 작품에 스며들어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메를로퐁티는 지각과 사유가 몸을 통해서만 세계와 만난다고 했다. 손끝이 캔버스에 닿는 순간, 붓이 되받아치는 저항의 감각, 그것이 이미 사유의 일부라는 뜻이다. 화가는 손이 먼저 알고 머리가 뒤늦게 따라가는 순간을 안다. 그 어긋남, 그 지연이 작품에 결을 남긴다. AI에게는 이 몸이 없다. 저항할 캔버스도, 지연될 손도 없다. 패턴과 통계,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순식간에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곡을 편곡할 뿐이다. 형태와 소리의 완결성은 갖췄으나 인간적 체험의 심연은 비어 있다.</p>

<p>시의 영역에서, ChatGPT가 생성한 시는 형식적 완성도가 높아 일부 온라인 평가에서 인간 시인의 것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그 시에는 저자가 겪는 시간의 긴장과 감정의 불안, 내면의 어긋남이 없었다. 미국의 한 평론가 잭 패럴(Jack Farrell)은 2023년 자신이 진행한 창작 실험에서, AI가 쓴 시에는 &#39;목소리&#39;가 부재한다고 지적했다. 감정적 깊이는 인간 독자가 체험을 통해 느끼는 공명과는 다르다는 것이다.</p>

<p>회화 역시 같은 결여를 드러낸다. AI 이미지 생성기들이 17세기 카라바조의 화풍을 모사해 SNS에서 화제를 모았을 때, &#39;The Lute Player(루트 연주자)&#39; 풍의 결과물이 역사적 명작의 요소를 재현했다는 평이 회자되었다. 그러나 붓과 캔버스의 물리적 저항, 재료가 주는 우연한 질감과 손길은 부재했다. 카라바조는 어두운 방에서 빛 한 줄기를 놓고 몇 시간이고 모델을 세워두었다고 전해진다. 그 기다림이 화폭에 스몄다. AI는 그 방에 들어간 적이 없다. 결과물은 완전한 형태를 갖췄지만, 그림을 그리는 체험에서만 발생하는 삶의 흔적은 비어 있었다.</p>

<p>사진의 영역은 이 논의를 더 날카롭게 벼린다. 사진가는 그 자리에 있었다. 셔터를 누르기 전까지의 기다림, 빛이 바뀌기를 견딘 시간, 그것이 한 장의 사진에 새겨진다.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감춘 채로 존재한다. 풍경은 있으나 그 풍경 앞에 선 사람은 없다. 사건은 재현되나 사건을 겪은 몸은 없다. 자리를 밝히고 쓰면 그것은 그 나름의 쓰임을 갖는다. 자리를 숨기고 쓰면 그것은 거짓 목격이 된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은폐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04 float-center" data-idxno="51404"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완성된 형식은 복제할 수 있어도, 그것을 만들며 흘린 시간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15_51404_4159.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완성된 형식은 복제할 수 있어도, 그것을 만들며 흘린 시간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figure>
</div>

<p>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2023년 목소리를 모방해 논란이 된 &#39;Heart on My Sleeve&#39;는 드레이크(Drake)와 더 위켄드(The Weeknd)의 음색을 재현하며 인기와 논란을 동시에 얻었다. 2025년 수노(Suno)가 내놓은 작곡 모델 v5는 음표와 화성, 리듬을 한층 정교하게 다듬었지만, 인간이 느끼는 체험적 울림은 여전히 부족했다. 청취자는 친숙한 음색과 리듬의 쾌감을 느끼지만, 작곡자가 오랜 시간 쌓아온 삶의 감각과 결핍, 불안의 흔적은 거기 없다. 결과는 소비되어도 인간적 의미의 울림은 빈껍데기로 남는다.</p>

<p>문학과 회화와 음악, 세 영역의 사례는 하나의 역설로 모인다. 산출물은 완결되어 보이나 저자성은 공허하다. 인간은 체험과 시간을 통과하며 의미를 새기지만, AI는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재배열할 뿐 그 통과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 메나르가 20세기의 사유로 17세기의 문장을 다시 쓴 것처럼, 산출물은 같아도 의미가 태어나는 과정과 저자성의 깊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p>

<p>그렇다면 무엇이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가. 완성된 결과물만 놓고 보면 그 경계는 흐려진다. 그러나 결과물 이전으로 눈을 돌리면 경계는 선명해진다. 붓을 든 손의 떨림, 그 떨림을 견딘 시간, 실패를 딛고 다시 그은 선. 그것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완결된 형식은 있어도 인간적 울림은 없다. 우리는 이 대비 속에서, 기계가 끝내 만들지 못하는 인간 예술의 고유한 영역을 확인한다.</p>

<p> </p>

<p><strong>효율의 문장, 사라진 사유</strong></p>

<p>교실에서 학생들은 화면 속 글자와 마주하며 생각을 키운다. 국내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사가 구글 독스와 구글 클래스룸을 활용한 수업에서, 세 명씩 모둠을 지어 문제를 찾고 글을 쓴 뒤 AI에게 피드백을 받게 한다. AI는 주제 충실성과 어휘 적절성, 문법 정확성을 짚어주지만, 학생들의 고뇌와 웃음, 모둠 안에서 오간 작은 갈등과 발견의 순간은 스며들지 않는다. 창작의 경험이 아니라 평가의 경험만 반복된다.</p>

<p>교사들은 안다. 아이가 문장을 고치는 순간과, 점수를 받아드는 순간은 다르다는 것을. 고치는 순간에는 왜 틀렸는지 스스로 캐묻는 시간이 있다. 점수를 받는 순간에는 그 시간이 생략된다. AI 피드백이 빠르고 정확할수록, 생략되는 시간은 더 조용히 사라진다.</p>

<p>대학에서도 AI 기반 글쓰기 피드백은 낯설지 않다. 일부 전문대학에서는 학생의 초고를 다듬는 과정에 AI를 끌어들였다는 보고가 있다. 효율적이고 편리하며, 글쓰기 능력 향상에도 얼마간 기여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인간의 체험과 사유는 여전히 대신되지 않는다. AI가 만들어낸 문장은 정확하고 깔끔하며 때로 놀라운 구조적 완결성을 보이지만, 글을 쓰며 겪는 삶의 고통과 기쁨, 우연과 실패의 흔적은 거기 없다.</p>

<p>글쓰기 교육이 정말 가르치려 한 것은 무엇이었나. 맞춤법과 문장 구조만이 아니었다. 자기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가는 인내, 틀린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는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을 견디는 힘이었다. AI는 그 부끄러움을 대신 겪어주지 못한다. 지적만 할 뿐, 지적당하는 자리에 서지 않는다.</p>

<p>출판 현장에서도 AI는 속도와 비용 절감이라는 이름으로 스며든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청소년판은 2023년 새 표지를 AI 일러스트로 제작해 논란을 낳았다. 2016년 독일 베를린에서 설립된 출판사 인키트(Inkitt)는 독자의 행동 데이터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으로 베스트셀러를 예측해,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출판사 반열에 올랐다. 편집자의 안목 대신 데이터의 예측이 원고를 고른다. 무엇이 팔릴지는 더 정확히 맞힐 수 있어도, 무엇이 써져야 하는지는 여전히 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신속함과 효율 뒤에는 창작자의 체험과 의도가 빠져 있다. 작품은 소비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글을 쓰며 겪는 고통과 몰입, 실패와 수정의 반복, 우연한 발견은 삭제된다. AI는 패턴을 재조합할 뿐, 창작의 깊이를 재현하지 못한다.</p>

<p>학계에서도 거대언어모델의 글쓰기 활용은 뜨거운 화두다. 문학 창작을 돕고 학술적 글쓰기를 보조하는 실험적 성과들이 보고되지만, 사실과 다른 정보를 만들어내는 환각 문제는 여전하다. AI는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니 틀렸다는 자각도 없다. 연구 논문에서 AI는 책임을 질 수 없고 저자로 인정될 수도 없다. 문제를 제기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창의적 사유를, AI는 대신하지 못한다. 인간의 사고와 윤리적 책임 역시 대신할 수 없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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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05 float-center" data-idxno="51405"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효율은 시간을 절약하지만, 사유는 바로 그 남겨진 시간에서 자란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15_51405_4254.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효율은 시간을 절약하지만, 사유는 바로 그 남겨진 시간에서 자란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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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 모든 사례가 가리키는 사실은 하나다. AI가 만든 글과 책은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으나 체험이 빠져 있다. 창작은 문장과 문단을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인간은 글을 쓰며 자기 삶을 해석하고,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며, 실패와 우연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그 과정에서 사유의 깊이와 언어의 감각, 비판적 판단력이 숙성된다. AI가 내놓는 글은 이 체험의 과정을 전하지 못한다. 그것은 창조가 아니라 모방의 자동화이며, 인간 사유와 감각의 빈 껍데기다.</p>

<p>효율은 속도를 남기고 시간을 지운다. 지워진 시간의 자리에 무엇이 들어서는지, 우리는 아직 다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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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거울 속의 저자성</strong></p>

<p>AI와 사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영화 <허>(2013, Her)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감독 스파이크 존즈는 인간과 AI 사이의 정서적 교차점을 화면 위로 끌어올리며, 그 관계가 주는 환희와 그 안에 감춰진 결핍을 동시에 드러낸다. 주인공은 목소리 하나로 존재하는 AI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 감각은 끝내 허상이다. 손끝의 온기, 눈빛의 교차, 일상이 빚는 미세한 긴장과 파동이 거기 없다. 목소리는 언제나 다정하고, 다정함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준비된 다정함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온다. 사랑의 감각이 체험을 통해 길어 올려지듯, 관계의 무게 역시 체험이 결정한다. AI와의 사랑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결여에서 비롯된다.</p>

<p>창작도 다르지 않다. AI는 사랑을 흉내 내듯 창작을 모방할 수 있어도, 그 안에 경험의 필연성은 없다. 인간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을 만들며 자기 존재를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 결핍과 발견, 고독과 환희가 교차하며 작품의 내밀한 구조가 태어난다. 저자성이란 결과물이 아니라, 체험의 흔적이 매개된 서명이다. 작품 속 문장 하나, 음 하나, 붓 자국 하나는 창작자가 겪어낸 시간과 사유의 결정체다. AI는 그 결과를 흉내 낼 수 있어도, 과정 없는 산출물에는 서명이 새겨지지 않는다.</p>

<p>영화 속 주인공이 끝내 깨닫는 것도 이것이다. 목소리는 그를 위로했으나, 그와 함께 늙어가지 않았다. 사랑은 함께 늙어가는 일이고, 창작은 함께 흔들리는 일이다. AI는 위로할 수 있어도 함께 늙지 못하고, 흉내 낼 수 있어도 함께 흔들리지 못한다.</p>

<p>그렇다면 AI를 글쓰기에서 완전히 몰아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자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사고의 뼈대를 세우고 사유를 벼리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문장의 흐름을 다듬고 표현의 어긋남을 잡아내는 일에서는 AI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마름질은 내주어도 좋다. 그러나 무엇을 지을지 정하는 일은 내줄 수 없다. 퇴고와 윤문의 자리, 그 이상을 AI에게 내주는 순간, 글쓰기가 지켜야 할 사유의 깊이는 조용히 무너진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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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51406 float-center" data-idxno="51406" data-type="photo" style="display:inline-block; max-width:600px"><img alt="▲ AI가 비추는 것은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 인간이 그 안에 비춰본 자신의 얼굴이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height="343" loading="lazy" src="https://cdn.ilemonde.com/news/photo/202609/30615_51406_4355.png" width="600" />
<figcaption class="text-left">▲ AI가 비추는 것은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 인간이 그 안에 비춰본 자신의 얼굴이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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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와 인간의 관계, AI와 창작의 관계는 결국 허상의 교차점에 머문다. 그것은 인간적 저자성을 반사하는 거울이며, 체험의 깊이를 전하지 못하는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완결된 형태일 수 있으나, 그 안에 시간과 체험이 스며들지 않는 한 결코 인간적 저자성을 획득할 수 없다.</p>

<p>메나르는 세르반테스의 문장을 빌렸으나, 그 문장에 자신의 20세기를 새겨 넣었다. 빌린 문장에도 서명은 남았다. AI가 빌리는 문장에는 새길 시간이 없다. 서명 없는 문장, 저자 없는 언어가 그렇게 완성된다.</p>

<p>우리는 결국 문장 하나를 두고 두 가지 물음 앞에 선다. 이 문장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이 문장은 무엇을 견디고 왔는가. 첫째 물음에는 이름을 대면 그만이다. 둘째 물음에는 시간을 대야 한다. AI는 이름을 가질 수 있어도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인간과 AI, 창작과 사랑, 체험과 저자성 사이의 간극은 오늘 우리가 마주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낸 시간만이 문장에 서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빌려온 문장은 넘쳐나도, 지워진 저자는 돌아오지 않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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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글‧박철웅</strong><br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에디터<br />
작가‧문화평론가 <br />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 전공<br />
IBM과 NTT에서 마케팅과 컨설팅 담당<br />
2011년 『원순씨를 부탁해』 출간<br />
비평적 글쓰기, 사회, 문화 예술과 인간을 관통하는 글을 쓰고 있다</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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